흉노 유목제국사 : 기원전 209~216

흉노 유목제국사 : 기원전 209~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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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국내 연구자의 첫 흉노 유목제국 통사
2016년에 출간한 『돌궐 유목제국사』로 아시아학자세계협의회(ICAS) 최우수학술도서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경상국립대 정재훈 교수가 몽골 초원의 첫 유목제국 흉노의 역사를 복원했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 중반 고비 사막 이남의 몽골 초원을 무대로 등장한 유목 세력으로, 기원전 209년 초원에 흩어져 살던 다양한 세력을 통합해 국가를 세우고 중국의 통일제국 한과 지속적인 대결을 벌이며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초원의 유목민, 장성 주변의 목축민, 중원에서 이탈한 정주민, 오아시스 지역 주민 등 다양한 구성원을 포괄한 복합적 성격의 국가로서 정주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400년 넘게 이어진 흉노의 역사는 돌궐, 위구르, 몽골로 이어지는 고대 유목제국의 원형으로 이후의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과 유산을 남겼다. 이 책은 『사기』, 『한서』, 『후한서』 등 문헌 자료를 새롭게 해석하고 고고학 발굴 자료를 활용해 흉노의 통사를 쓰는 시도로, 유목 국가의 시작점에 있는 흉노를 통해 초원 세계를 하나의 역사 단위로 자리매김하고 동아시아사를 ‘공존’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저자

정재훈

서울대학교인문대학동양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위구르유목제국사에대한연구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학교강사,튀르키예이스탄불대학교투르크학연구소와서울대학교동아문화연구소특별연구원,성균관대학교사학과박사후PostDoc연구원,미국일리노이대학교동아시아태평양학연구소방문학자등을거쳤다.2002년부터경상국립대학교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며,(사)중앙아시아학회회장을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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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서론
1.무대:고비남북의몽골초원과장성이남의목농복합구역(잡거지),그리고톈산주변오아시스와초원
2.자료:한문자료와발굴자료의간극극복
3.내용:400년넘게이어진몽골초원의첫유목제국역사복원

제1편진상과전사:『사기』「흉노열전」속의흉노

제1장사마천이그린기마유목민,흉노의‘진상’
1.사마천의「흉노열전」저술구상
2.사마천이그린흉노의선조와유목습속
3.선조와유목에대한기록의재구성과사마천의흉노이해

제2장사마천의흉노‘건국전사’구성:융적,융,호,그리고흉노의출현
1.도시주변의‘비농경민’융적과중국의공존
2.계곡에사는다양한목축민융과중국의만남
3.유목기마궁사호와중국의충돌,그리고장성
4.흉노의출현과대결의심화:흉노사의시작

제2편건국과발전(기원전209~기원전141)

제1장묵특의국가건설과지향:선우에서대선우로(기원전209~기원전174)
1.묵특의집권과호와융의통합노력
2.기마유목민‘인궁지민’중심의체제정비
3.통일중국한과의화친과반한세력의포섭
4.서방진출과기마유목민중심의유목제국‘인궁지국’의성립

제2장대선우중심의체제정비와한과의관계(기원전174~기원전141)
1.노상대선우의위상강화와한인관료의협력
2.군신대선우의압박과한의화친고수

제3편대결과위축(기원전141~기원전56)

제1장흉노와한의전면전과막북이주(기원전141~기원전119)
1.군신대선우의공세와무제의북벌
2.대결격화와이치사대선우의막북이주

제2장한의공세강화와막북에위축된흉노(기원전119~기원전56)
1.흉노의위축과지역국가화
2.전면전재개와흉노의고립타개노력
3.종전이후흉노의화친요구와공방전재개
4.선제의북벌이후흉노의위축심화와계승분쟁

제4편고립과반격(기원전56~48)

제1장흉노의고립과막북중심국가의형성(기원전56~기원전8)
1.호한야의남하와질지골도후의서천실패
2.막북초원중심의체제정비와한과의공존

제2장한에대한흉노의반격과그한계(기원전8~48)
1.흉노의고립심화와한과의갈등폭발
2.신한교체기흉노의확장노력과실패

제5편분열과해체(48~216)

제1장흉노의남북분열과대결(48~91)
1.계승분쟁의재현과남북경쟁
2.흉노의남북대결심화와북흉노의소멸

제2장남흉노의약화와해체(91~216)
1.한의통제강화와남흉노의분열
2.대선우권위의약화와흉노의군소세력화

맺음말-고대유목제국의원상과그후계
1.흉노유목제국의성격과그유산
2.흉노의후계,내지로침투한병주흉노(216~310)

부록
1.흉노유목제국대선우의계승과분열
2.흉노유목제국대선우의계보도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몽골초원의첫유목제국흉노의역사를복원하다
위구르,돌궐에이은고대유목제국사3부작의완성

국내의대표적중앙아시아사연구자인정재훈교수는2005년박사학위논문을바탕으로『위구르유목제국사』를출간하고,2016년『돌궐유목제국사』를출간한데이어2023년『흉노유목제국사』를출간하며고대유목제국사3부작을완성했다.20년가까이이어온이여정은고대유목제국사를총정리하는작업이자,기원전3세기중반부터9세기중반까지북아시아를중심으로전개된역사를복원하려는시도였다.정교수는이3부작을통해유목제국의세계사적위상과의미를환기해그들이활약했던무대인‘초원’을정주세계와동등한하나의역사단위로자리매김하고자했다.
기원전3세기중반,유목기마궁사‘호胡’의하나로등장해국가를세우고중국의여러나라와대결하며성장한흉노는이후의유목국가들에역사적정통성을부여하는‘원상原象’의역할을했다.400년넘게세력을과시하며정주세계를위협한만큼역사가들에게문명의파괴자,야만의통칭으로불리기도했다.그연장선상에서흉노이후등장한유목세력들은한의멸망이후북중국에서전개된분열과혼란의책임을뒤집어쓰거나,‘호胡’와‘한漢’의융합을통해수당제국이성립하는과도기를연집단정도로해석되기도했다.정교수는문명과야만의대립,혹은통일제국으로가는과도기로서유목국가를바라보던시각에서벗어나초원과북중국을하나로연결된세계로이해하며그복합적이고다원적인체제를처음만든흉노의역사적위상을재정립하고자한다.이러한관점에서중국과그바깥세계를가르는상징처럼인식되어온‘장성長城’을“세력의부침과이해관계의변화에따라언제든지해체도되고유지도되는가변적인것”(114쪽),“꽉막힌벽체가아니라구멍이있는탄력적상태”(272쪽)로새롭게해석한것역시주목할만하다.
흉노의활동과영향범위는유라시아대륙전반에걸쳐있었기때문에그‘후계’를주장하는나라들에서흉노의역사를자국과연결하려는시도가많다.고대소수민족의하나였던흉노가중화민족의일원이되었다고해석하는중국을비롯해몽골공화국과중앙아시아투르크계통의국가들에서도흉노를자국의고대사와연결하는작업이활발하고,한국에서도초원문화와우리고대문화의친연성을확인하기위한다양한활동이이루어지고있다.다시말해서흉노의연원을설명하는일은곧첨예한정치적문제이기도하다.이책은역사연구자의엄격한시각에서문헌자료와발굴자료에입각해흉노의역사를복원하는작업으로,정치적이해관계에서벗어나흉노의‘진상眞相’에다가가는기회를제공할것이다.

문헌연구자의시각으로새롭게접근한흉노유목제국통사
-『사기』「흉노열전」모두부분의재해석

초기의흉노사연구는사마천의『사기』,반고의『한서』등중국측이남긴한문사료를연대별로정리해역주하는작업이주를이루었다.흉노스스로남긴기록이거의없는상황에서근거로삼을수있는유일한자료였기때문이다.그러다1924년노용올유적발굴이후100년에걸친발굴성과가축적되면서발굴자료를바탕으로한연구가중심이되었고,상대적으로사료는중국측의편견이담긴서술일수밖에없다는등의이유로덜주목받게되었다.정재훈교수는고고학발굴작업의성과를환영하면서도그한계를지적한다.발굴작업이활발한몽골공화국의막북초원위주로자료가편중되다보니막북이흉노의주요활동무대가된기원전1세기부터기원후1세기정도로연구시기가한정되고,기록이많은막남중심의초기역사에관한연구가상대적으로소홀해졌다는것이다.더욱이발굴자료만으로400년넘게지속된흉노사전반을설명하려는것도문제라고말한다.

발굴위주의연구는물질자료에기초한까닭에‘문화文化’라는관점에서접근하는경향이있다.이는고고학연구에서기록에나오는‘정치적실체’인흉노와그문화를바로연결하려는입장이다.하지만문화는정치적단위인흉노의건국부터소멸까지의시간과정확하게맞아떨어지지않는다.또한정치체의공간적범위와도일치하지않는경우가더많다.따라서하나의정치체인흉노의문화적양상이나특징을발굴자료와바로연결해설명하는일에는신중할필요가있다.-26쪽

이와같은문제의식에서정교수는문헌연구자로서사료에깃든편견을걷어내고,발굴자료와문헌기록의불일치를극복하면서기존의문헌자료를‘흉노나름의시각’에맞춰새롭게해석하는일을이책의과제로삼았다.흉노관련가장중요한기록인사마천의『사기』「흉노열전」에서흉노의선조와유목습속을다룬모두冒頭부분을기존의표점을옮겨새롭게해석한것이하나의예가될수있다.

匈奴,其先祖夏后氏之苗裔也,曰淳維.唐虞以上有山戎·粥,居于北蠻,(2)隨畜牧而轉移.(1)其畜之所多則馬·牛·羊,其奇畜則駝·驢·.逐水草遷徙,毋城郭常處耕田之業,然亦各有分地.

(1)에서끊어읽는기존의해석
흉노는그의선조가하후씨의먼자손으로순유라고한다.당[요]과우[순]이전에산융·험윤·훈육이있어북쪽족속[의땅]에살며길들인짐승을풀어먹이며따라다니는데[계절에따라일정한곳을]맴돌며옮겨다녔다.길들인짐승의많은수는말·소·양이고,쉽게보기어려운길들인짐승은낙타·나귀·노새·버새·뛰어난말·무늬가있는말이다.물과풀을따라옮겨다니며살아성곽,붙박여사는곳,농사를짓는땅에서먹고사는것이없지만각자나누어가진땅이있다.

(2)에서끊어읽는정재훈교수의해석
흉노는그의선조가하후씨의먼자손으로순유라고한다.당[요]과우[순]이전부터산융·험윤·훈육이있었는데북쪽족속[의땅]에살았다.[흉노는]길들인짐승을풀어먹이며따라다니는데[계절에따라일정한곳을]맴돌며옮겨다닌다.길들인짐승의많은수는말·소·양이고,쉽게보기어려운길들인짐승은낙타·나귀·노새·버새·뛰어난말·무늬가있는말이다.물과풀을따라옮겨다니며살아성곽,붙박여사는곳,농사를짓는땅에서먹고사는것이없지만각자나누어가진땅이있다.

정재훈교수는중화서국표점교감본에따른기존의해석은요순시대부터북쪽에살던족속이유목생활을했다는서술이되어실제정황과맞지않다고주장한다.순유가북쪽으로간상말기에중원사람들이접촉했던‘다른존재’는유목민이아니라,도시에서멀리떨어지지않은곳에사는비농경민혹은반목반농에종사하던집단이었다.당시유목은아직일반적인생산양식이아니었고,초원의유목민과중원세력이교섭을시작한것은훨씬후대,즉전국시대영역국가가발전할무렵의일이었다.지금껏많은역사가들이유목의발생시기나초원과중원이접촉을시작한시점을제대로고려하지않고‘북방=초원=유목’이라는도식에맞춰이부분을해석해왔다는것이정교수의주장이다.
정교수는표점을옮겨(2)부분에서끊어읽는다면앞문장은흉노의선조와원류만을간단히기록한것이되고,‘隨畜牧而轉移’이하의내용은유목습속에관한상세한설명이된다고본다.특히‘맴돌며옮겨다니다’라는뜻의‘轉移(전이)’는사마천이유목을정확히이해하고묘사한표현인데,반고의『한서』이래로많은역사가들이기존의표점을따라‘逐水草遷徙’의‘遷徙(천사)’,즉‘옮겨다니다’를유목의정의로사용하면서흉노를비롯한유목민들을정처없이떠돌아다니는존재로부정적으로인식하게되었다고주장한다.정교수는이예를통해그동안한계가많다고지적되어온사마천의『사기』「흉노열전」이유목민에대한관념적이고부정적인인식으로퇴보한후대의기록보다훨씬더정확하고객관적인현실인식에기반하고있음을보여준다.사마천은흉노제압을필생의사업으로삼은무제가간신들의꾐에넘어가지않고정확한상황판단을하기를바랐다.이를돕기위해‘현재사現在史’로서흉노의독자적인체제와강력한힘을‘직필直筆’하겠다는사명감속에서기록을남겼다.이와같은사마천의저술구상을확인하고,『사기』와그영향하에서저술된후대의사료들을엄밀히비교분석하여흉노의‘진상’을재구성하는것이이책의목표라하겠다.

‘비한非漢’세계의다원성을품은유목기마궁사의나라,흉노
화친,전쟁,교역,기미등다양한공존방식을개척한유목제국의원상

기원전209년고비사막이남의몽골초원(막남)에서세력을형성한흉노는장성주변의목축민융을통합하고진,조,연과같은중국북변의국가들,나아가통일제국한을위협하며‘인궁지민引弓之民(유목기마궁사)’의나라‘인궁지국引弓之國’을세웠다.건국이후흉노는한에대한군사적도발을지속하며다른한편으로계속해서‘화친和親’을요구했다.이는자체생산력에한계가있는유목국가가정주국가로부터물자지원을받아내체제를유지하는방식이었다.다른한편으로는지금의중국신장위구르자치구북방의중가리아와톈산산맥주변,즉이른바‘서역西域’에진출하여오아시스지역국가들의공납을받거나중국에서얻은물자를교역하며정치적,경제적안정을도모했다.이를저지하려는한의서방진출로이후‘실크로드silkroad’라고불리는동서교통로가열리기도했다.
이와같이흉노가열어젖힌역사의무대는몽골초원만이아니라이와연결된유라시아동부초원,장성남북에펼쳐진목농복합구역(잡거지),그서부에서동서를연결하는오아시스와그주변초원까지를포함하는넓은범위였다.216년흉노가소멸한이후그일부가중국내지로남하해‘병주흉노’를형성한것까지고려한다면범위는더욱넓어진다.지리적범위뿐만아니라흉노내부의구성원도유목민,목축민,전쟁중에투항하거나중국에반기를들고이탈한정주민,오아시스지역주민까지넓고다양하게펼쳐져있었다.따라서‘초원의유목민’과‘중국의정주민’의대결혹은융합이라는이분법적인시각에서벗어나,더넓은범위의‘비한非漢’세계의다양성이라는관점에서흉노사의전개를살펴봐야한다는것이정교수의주장이다.
내부에다양성과복합성을품은흉노는대선우大單于라는유목군주의지도하에그체제를유지하기위해중국과여러가지방식으로관계를맺었다.한고조를포위할만큼군사적우위를보인초기에는흉노대선우와한의황제가대등한형제임을확인하고,혼인관계를맺는등화친을통해정기적인물자지원을받았다.그러는가운데도융의원주지인목농복합구역을회복하고,한을위협해물자를얻어내기위해계속해서군사적도발을했다.한은이를방어하기위해장성을수축하고물자지원에제한을두었다.이후한무제의강력한북벌정책이실시되면서기원전119년흉노는막남고지를포기하고막북으로패퇴한다.막북초원에고립된상태에서대선우의계승분쟁까지일어나자,분열한세력가운데하나였던호한야대선우는기원전51년이래로장안을세번이나방문해한의지원을얻어냄으로써체제를유지할수있었다.이후흉노는왕망의집권과몰락으로중원이혼란에빠진시기에일시적으로세력을회복했다가,48년또한번의계승분쟁으로남북분열이라는결정적인타격을입었다.남흉노의호한야(비)대선우는한의번병藩屛이되겠다며자발적투항을통해막남고지故地로돌아왔다.이는기미를수용해한에종속되는일이기도했으나,다른한편으로원주지의회복이기도했다.이후한이몰락하고중국이분열의시기로접어들면서남흉노는결국조조에게군사적으로동원되며분할통치되다가216년완전히소멸했다.
이와같이흉노는정주세계와다양한방식으로관계를맺으며400년넘게세력을유지했다.이전에도이후에도이렇게오랜기간초원과북중국을무대로큰존재감을과시한세력은없었다.이과정에서흉노가시도한화친,전쟁,교역,기미등의방식은이후에등장한유목세력과중국의관계에서더욱발전,확장된형태로나타났다.정재훈교수는이다원적이고복합적인구성의‘원상原象’으로서흉노를조명하며,‘호’와‘한’의대결과융합이라는관점을넘어‘공존’에초점을두고동아시아사를새롭게이해할것을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