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저항하다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철학으로 저항하다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15.00
Description
‘철학’의 이미지에 갇힌 철학을 탈환하려는 야심 찬 시도
철학자의 이름과 철학사를 몰라도 철학에 입문할 수 있을까? 아감벤, 푸코, 데리다 등 현대 철학자들의 저작을 일본어로 번역해온 철학자 다카쿠와 가즈미가 철학의 문에 들어서는 색다른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철학사를 익히고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는 것과 철학 그 자체를 신중하게 구분하며, 모든 철학의 뿌리에 있는 ‘저항’을 중심으로 철학을 다시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이란 개념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 즉 생활이나 경험 속에서 건져 올린 어떤 개념을 통해 세계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고 그 세계를 지배하는 우월한 힘에 맞서는 것이 철학이다. 그러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면 ‘바다의 물고기’도, ‘주식主食’이라는 흔한 단어도 철학 개념이 될 수 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좁은 의미의 철학자’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저자는 그 대신 영화 〈흔들리는 대지〉와 〈스파르타쿠스〉, 소설 『캉디드』와 『제5도살장』, 역사적 인물인 가야노 시게루와 마틴 루서 킹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전태일 같은 이를 철학자로 보지 않는다면 나는 철학을 떠나겠다’라고 마음먹었던 철학자 고병권은 다카쿠와 가즈미가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가 철학을 탈환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항의 계기가 차곡차곡 쌓여도 냉소와 환멸만이 가득한 시대에 이렇게 되찾은 철학이 변화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야심이 깃든 이색 철학 입문서이다.
저자

다카쿠와가즈미

高桑和巳
1972년생.게이오기주쿠대학이공학부외국어ㆍ종합교육교실교수.전공은이탈리아·프랑스현대사상및정치철학.지은책으로『아감벤의이름을빌려』등이있고,옮긴책으로조르조아감벤의『호모사케르』,『내전』,『왕국과영광』,『산문의이데아』,『사고의잠재력』,미셸푸코의『안전ㆍ영토ㆍ인구』,자크데리다의『사형1』,이브-알랭부아ㆍ로잘린드E.크라우스의『비정형:사용자안내서』(공역)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
철학의이미지에겁먹지마라|모든것이철학으로보이는경험|철학은철학사가아니다|철학자는세습되지않는다|철학은고매한이념을논하는행위만은아니다|철학은고민이아닐뿐더러고민을해결해주지도않는다

1장철학을정의하다
철학의정의|개념-일관성있는단어혹은표현|당장개념을정의할필요는없다|개념이라고모순이없는것은아니다|개념을운운하는것-창조·폐기·왜곡·전용등에관하여|개념의긴장감이미치는곳,세계|‘엘리먼트’에관하여-와인과물고기|시간은금이다|인식-머리로세계를보면어떻게보일까|관점의갱신-전승이아닌행위|지성-사람은누구나평등하게머리가좋다|저항-말을듣지않거나들을수없는것|저항에는‘좋고나쁨’이존재하지않는다

2장예속된자의저항
〈흔들리는대지〉와〈스파르타쿠스〉|〈흔들리는대지〉|〈흔들리는대지〉의줄거리|토니의연애|“바다의물고기는먹는사람을위해존재한다”|시칠리아속담|철학자의탄생|속담의전용|저항이실패하더라도|푸코와〈흔들리는대지〉|봉기는쓸모없는가|〈스파르타쿠스〉|〈스파르타쿠스〉의줄거리|인텔리노예안토니누스|시칠리아출신|“내가스파르타쿠스다”|커크더글러스의의도|안토니누스의기지|원형연판장이발명되는순간

3장주식主食을빼앗긴다는것
가야노시게루|소년시게루의경험|동정에관하여|여성이라는소수자|다수자와소수자|감정이입의중요성|연어는아이누의주식|주식론|서서히정립된‘주식’이라는개념|시에페|소수민족과의교류|댐건설반대운동|감정이입의강요|주식론의계승

4장운명론에저항하다
『캉디드』와『제5도살장』|계몽사상가볼테르|『캉디드』|낙관론|신의론|충족이유율|팡글로스에의한최선설|신의론을깎아내리다|리스본대지진|대지진이전의볼테르|「리스본의재앙에관한시」|철학개념의폐기|커트보니것과볼테르|커트보니것의경험|드레스덴폭격|SF소설『제5도살장』|“그런것이다”|서두의몇가지예|끝부분의몇가지예|불편한농담|최선설과운명론을부정하다|그런것일리가없다|20세기의볼테르?

5장지금이그시간
마틴루서킹과커트보니것|흑인민권운동의시작|「버밍햄교도소에서온편지」|편지는즉각적인효과를발휘하지못했다|시의적절하지않은운동|신화적시간개념|「편지」전체를지배하는시간론|워싱턴대행진연설과비교하면|신중하게고려된속도|토크니즘|토큰(대용화폐)|워싱턴대행진연설-수표에관하여|반드시지켜지는약속?|바울을대신하는킹목사|바울에대한명시적언급|1957년의설명|바울의설명|킹목사의해명과고통|구제되어야하는현재|지금이바로그시간|종말은왔는가

마치며
주요참고자료일람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사람은봉기한다.이는하나의사실이다”
저항을전면에내세운철학입문서

철학입문서라고하면대개고대부터현대까지철학자들의사상을연대기적으로정리한책을떠올린다.저자는철학사를따라가며공부하는것,철학자들의저작을정독하는것은모두가치있는일이지만그자체가곧철학은아니라고강조한다.또철학은무엇이아닐까.철학은세습되거나계승되는것이아니며,진·선·미같은고매한이념을논하는행위만도아니다.최근에는‘위로’나‘처방’같은말과도곧잘짝을이루지만철학은고민이아닐뿐더러고민을해결해주지도않는다.이와같이저자는‘철학이아닌것’을하나씩배제한뒤“어떤경로를거쳐서든철학하는마음이라는불꽃이날아오기만한다면누구든철학을할수있습니다.(…)철학이란일부의지적엘리트가독점하고있는행위가아니라,말하자면지극히민주적인행위,지식의서민에게도열려있는자유로운행위입니다”(13쪽)라며전형적인철학입문서와는다른길을갈것임을예고한다.
저자는철학을다음과같이정의한다.“철학이란개념을운운하는것으로세계에관한인식을갱신하는지적인저항이다.”(23쪽)그런다음이정의에등장하는‘개념’,‘운운’,‘세계’,‘갱신’,‘인식’,‘지성’,‘저항’등의어휘를차례로설명한다.요약하자면하나의세계안에서일관성있게쓰이고그세계에일순간긴장감을불러일으키는개념을통해세계를바라보는관점,인식을통째로바꾸는것,그달라진눈과머리로권력의통제나개입,폭압에맞서저항하는것이철학이다.이때의개념은물고기나와인이될수도있고,누군가의빈자리나식당앞에서맞닥뜨린문턱,폐관된공공도서관같은것일수도있다.그리고저항은시위나집회,파업같은강력한행동일수도있지만,움직이지않거나병에걸리는것일수도있다.
저항이성공했는가실패했는가는중요하지않다.“사람은봉기한다.이는하나의사실이다”(71쪽)라는미셸푸코의말처럼“사람은그냥저항”(67쪽)한다.이기든지든,쓸모가있든없든그저항에의해세계를보는방식이이미변하고있다는사실이중요하다.이책은저항하는이들에게튄철학의불꽃을전하는방식으로철학의문을연다.그불을받아스스로키우는사람은누구라도철학자가될수있다.


‘바다의물고기’도철학개념이될수있을까
철학사와철학자의이름없이철학을말하기

1장에서자신의언어로철학을새롭게정의한저자는2장부터영화와소설,인물이야기에서그정의에어울리는철학자와철학개념을건져올린다.루키노비스콘티의영화〈흔들리는대지〉에서잡은물고기를매번헐값에중간상인에게빼앗기던토니는어느날문득그물에잡힌물고기의운명이중간상인이짜놓은구조에서벗어나지못하는자신의처지와같다는것을깨닫는다.여성을사냥감취급하듯쓰이던농담인“바다의물고기는먹는사람을위해존재한다”라는말속의‘물고기’가불현듯자기자신으로보이는인식의전환이찾아온것이다.그물을찢지않으면평생먹이취급을당할뿐임을간파한토니는위험을무릅쓰고자기사업을시작한다.자본가,무산계급,착취같은잘다듬어진용어없이도‘물고기’를개념으로삼아세계를바라보는관점을뒤흔드는것,이것이바로저자가말하는철학이다.
저자는또한볼테르의『캉디드』와커트보니것의『제5도살장』을연결하여운명론에저항하는철학의힘을보여준다.‘신이창조한세계에왜악이존재하는가’라는질문에‘악에도선을실현하려는신의뜻이깃들어있다,세계는무수한가능성가운데최선의상태로존재한다’라고답하는신의론혹은최선설이지배하던시기에볼테르는이를우스꽝스럽게비트는소설『캉디드』를발표한다.리스본대지진같은재앙을‘최선’이나‘필연’같은말로설명하는철학이라면차라리폐기하는것이낫다고생각한것이다.

철학개념의유해성을끈질기게반어적으로보여주는이런행동은철학자의이름을참칭한타락한자들로부터진정한의미의철학을탈환하려는행위라고간주해도좋을것입니다.-152쪽

리스본대지진에버금가는재앙인드레스덴폭격을겪은커트보니것은그체험을기초로쓴소설『제5도살장』에서마치운명론에굴복하는듯한“그런것이다Soitgoes”라는표현을반복해서사용하지만,타임슬립이라는SF적장치를도입해이를‘그런것일리가없다’라는메시지로뒤집는다.위기의시대마다인간을사로잡는운명론에저항한볼테르와커트보니것은철학자로부르기에손색이없다.
미국에서흑인민권운동이한창이던시기,마틴루서킹은“기다려라.인종통합은신중하게고려된속도로이루어져야한다.언젠가적절한시점이되면차별은시정될것이다”라는이야기를수없이들어야했다.문제해결을끊임없이지연시키는이와같은‘신화적시간개념’에맞서킹목사는바울의종말론을참조하여맹렬한긴급성을지닌‘지금’이라는시간개념을세운다.‘시간이문제가되는현장에서는시간이해결방법이될수없다.종말을설정하여기다리는시간을폐기하자,우리에게는창조적으로사용해야할지금이라는시간이있을뿐이다’라는킹목사의시간론은‘언젠가’에저항하는철학이었다.이밖에도저자는스탠리큐브릭의영화〈스파르타쿠스〉,아이누문화연구자가야노시게루의삶과글에서한계상황에처한인간이문득개념하나를집어들어자신을둘러싼세계에맞서는순간,즉철학이탄생하는순간을날카롭게포착해낸다.


냉소주의에맞서는철학자의실천
저항과연대라는일상의윤리감각을회복하기위한철학적훈련의장

이책의저자다카쿠와가즈미는‘번역기계’라는별명으로도불릴만큼현대프랑스ㆍ이탈리아철학자들의수많은저작을일본어로번역하고,학술논문을쓰거나대학에서철학을강의하는전문연구자로활동해왔다.그런그가왜이런독특한형식의철학입문서를썼을까.책을마치며쓴글에서저자의생각을짐작해볼수있다.

이책에서저항을전면에내세운데는당연하게도시대적인배경이있습니다.[…]코로나든원전재가동이든문제는자연에서비롯한재난그자체보다는이를기회로삼아무질서를만들어자리보전을획책하는체제입니다.그체제는특히최근몇년동안특별히계기가되는재난없이도사람이해서는안될다양한일을종횡무진전개했습니다.[…]최근몇년간,차근차근논의를만들어가는것보다거짓말이나궤변,변명으로상황을넘기는것을현실주의적이라평가하는냉소주의가무시할수없을정도로자리잡은듯합니다.[…]중요한것은그러한경향에끈질기게“아니오!”라고말하며기본적인윤리감각에숨을불어넣는일입니다.-213~216쪽

재난상황을틈타이익을취하고,힘을키우고,약자를억압하는정치권력의전횡에냉소와환멸,무력감을보일뿐인사람들에게철학은무엇을할수있을까.이책은저자의이런문제의식을바탕으로단순하지만정교하게구상된실천적철학입문서이다.저자는모든철학의뿌리에있는저항의면모를드러내는한편으로,연대를우직하게긍정하는일에도비중을두었다.이책에등장하는어부,반란노예등의‘철학자’들에게‘철학의불꽃’이튄순간은모두억압당하고차별받는자들이함께있는때였다.억압당하고차별받는사람이저항하는존재로거듭날때그옆에는반드시함께서는사람이있다는것,저항자와연대하는일은결코어렵지않다는것.저자는이런일상의윤리감각을회복하는일에철학이기여할수있기를바랐다.철학입문자에게저자가마지막으로전하는말은냉소를걷어내고저항하고연대하자는것이다.

복잡한이야기는나중에해도충분합니다.내가맞았다면“아프다”라고말하고,“아프다”라고말하는사람이있다면그옆에서는것.실제로항상그렇게할수있는가는별개의문제입니다만,적어도원칙은이것뿐입니다.이책이그원칙위에쌓인먼지를털어내는역할을조금이나마할수있기를바랍니다.-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