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13.86
저자

이가라시다이

저자:이가라시다이
1983년일본미야기현출생.들리지않는부모의들리는아이,즉코다CODA(ChildrenofDeafAdults)로성장했다.2015년부터작가로활동하며사회적소수자들의삶을취재,인터뷰한글을여러매체에기고하고있다.지은책으로『망한가족』,『농인부모에게서태어난내가들리는세상과들리지않는세상을오가며생각한30가지』,『에피라는수영안해』등이있다.

역자:노수경
일본어전문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옮긴책으로『철학으로저항하다』,『아이들의계급투쟁』,『여자들의테러』,『인생이우리를속일지라도』,『책의길을잇다』,『나를지키며일하는법』,『구원의미술관』,『만년의집』,『떠오른국가와버려진국민』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
주요등장인물소개

1장어린시절
시오가마에서태어나다
첫귀성
첫취재
‘들리지않는아이’가되다
일반학교로진학하다
농인의역사모리소야씨에게듣다
할아버지와할머니의생각

2장두언니
첫째사치코
“걱정했지”
둘째유미
“걱정은안했어”
통역자로서

3장모교로
입학수어와의만남
요코자와씨와오누마선생님
미야기현립청각지원학교
작은교실
진학과관련된선택
‘구화’에관하여

4장어머니의은사
추억과후회
은인
구화와수어사이에서
청각활용의한계
정면으로부정하다
‘적절한교육’이란
“사에짱같은아이들덕분에”

5장아버지(고지)와결혼하다
짝사랑
부모님에게소개하다
아버지의과거
“항상방글방글웃으라고했어”
‘선의’의반대
“불량한자손의출생을방지한다”
우생보호법재판후지키가즈코씨와함께
2022년3월센다이고등재판소

6장어머니의출산
사랑의10만인운동
무엇을빼앗겼는가
가해자의자손
새로운생활
내이름‘다,이’
“내귀는들리지않아”

에필로그
후기
참고문헌
인터뷰시기와횟수
옮긴이의말
추천사

출판사 서평

들리지않는부모의들리는아이,코다
부모와다른아이로자란긴외로움의시간을뒤로하고
힘차게써내려간‘엄마의역사’,농인과농사회이야기

한국의독자들은코다창작자이자이책의추천사를쓰기도한이길보라작가의글과영화를통해수어를모어로익히고농인부모와청인사이에서통역사역할을하는코다의남다른경험세계를접해왔다.그러나모든코다가수어를익히고농문화와청문화사이를오가며경계인의역할을하는것은아니다.이책을통해한국에처음소개되는일본의코다작가이가라시다이는간단한수어몇마디를익혔을뿐철저히청사회의일원으로성장했다.장애를가진부모를원망하고,가족은물론학교친구나선생님과도불화하며외톨이로성장한그의이야기는코다내부의다양성을짐작하게한다.

저자는농인부모의외아들이지만수어를적극적으로배우지않았다.한집에살았던할아버지,할머니는물론가까이에살며친밀하게교류하던이모들까지,즉어머니의원가족모두가수어를배우지않았기에그것이필요한일이라고생각하지못했다.그저부모와의내밀한소통이불가능한자신의처지를비관할뿐이었다.공통의언어를찾기보다유일한농인인어머니를홀로남겨두는쪽을택했던이가족의역사는20세기중후반일본농인들이경험한소외와몰이해의시간이기도하다.저자의어머니,아버지의유년기와학창시절일화들에서드러나듯청각장애에대한이해가부족했던사회는귀를고치는수술,남아있는청력을활용한교육,엄격한구화훈련에몰두할뿐들리지않는상태로계속해서살아가는미래를상상하지못했다.

〈중학교때였나?아버지,어머니랑밖에나갈일이있었거든.어디로데려가는지는몰랐지만,일단신이나서차를탔지.그랬더니얼마후에커다란병원에도착한거야.무서워서어쩔줄몰라하니어머니가이러더라고.“여기에서귀를고쳐줄테니까내려라”라고말이야.그게무섭고또무서워서울고불고난리를쳤지.그런나를보고아버지랑어머니도체념을했는지결국병원에는들어가지않고그대로집으로돌아왔어.〉
거의같은시기에지바의고모도“수술하지않을래??”라고물어보았다고한다.
〈머리를여는수술을하면들릴거라고했어.하지만수술같은건받고싶지않아서눈물을펑펑흘렸지.고모는내귀가안들리는게못마땅했던거야.그러니까수술을하라고했겠지.〉-36쪽

언어를습득하고교육받을기회를충분히누리지못한농인들은사회에적극적으로참여할수없었을뿐아니라,농밀한소통의세계에도진입하기어려웠다.저자의어머니는주변사람들의말을하나도알아듣지못한채방글방글웃기만하는유년시절을보내다가중학생이되어서야수어를배웠다.언어를가진뒤에야비로소친구를사귀고,공부를하고,훗날남편이될고지와연애도할수있었다.농학교이야기를할때마다어머니의얼굴이환해졌던것은그곳에서배운수어와함께어머니의진짜인생이시작되었기때문이다.

따라서저자가어머니의인생을알기위해가장먼저한일은수어를다시배우는것이었다.두살도되지않은아들에게〈내귀는들리지않아〉라며자신이농인임을밝히고수어를가르쳤던어머니처럼,이제는자신이공통의언어를준비해야할때였다.하나의온전한언어로서수어가지닌특성과농인의역사에대해서도따로공부했다.수어는농인에게소통수단일뿐아니라정체성의중요한부분이기도하기때문에,수어로묻고답해기록한어머니의역사는자연스럽게농인과농사회의역사가되었다.이책은1954년생농인여성의일대기를통해청인중심의공적역사에서드러나지않았던일본사회의한단면을진솔하게드러내고있다.

청각장애,수어와농교육에대한이해가부족했던시대
시행착오를거듭하며공생의방법을찾아간사람들

어머니사에코의원가족이수어를배우지않았다고해서어머니를방치하거나함부로대했던것은아니다.청각장애,수어와농교육에대한이해가부족한상태였지만,각자가할수있는만큼진심을다해서어머니를대했다.야쿠자출신에무섭기만한줄알았던할아버지긴조는알고보니딸의손을자기입으로가져가한음,한음또박또박말을가르치던다정한아버지였고,할머니나에코는딸의귀가낫도록열심히기도하는신앙인이었다.두사람은딸과떨어져지내고싶지않아사에코가중학생이될무렵에야농학교에보내는잘못된선택을했지만,사에코가농인인고지와연애를하고결혼과출산을하는과정에서는언제나딸의편에서주었다.청각장애가있는동생에대해“걱정했지”라고말하는첫째이모사치코와“걱정은안했어”라고말하는둘째이모유미또한방식은달라도사에코를도우며함께살아갈수있는방법을찾아나갔다.특히둘째유미는수어는몰랐지만,사에코의모든말을알아듣고가족에게전하는통역사역할을충실히수행했다.

농교육현장도마찬가지였다.“정답을몰라더듬어찾아가며가르치던시대였습니다”(122쪽)라는어머니의은사오누마선생님의말처럼다양한교육법을시도하며암중모색하던시기였다.1930년대초까지수어로교육을하던일본의농교육계는구화법을중시하는세계적인흐름에휩쓸려한동안수어를무시하고배척하다가1960년대에들어서야다시수어의중요성을인식하게되었다.1960년대에농학교에입학한사에코는수어로공부하고소통하며빛나는청춘을보냈지만,그시기에도농교육계는구화법을완전히버리지못했고남아있는청각을활용해언어를획득하게하려는노력을포기하지않았다.1995년“농인이란‘일본수화’라는,일본어와는다른언어를말하는언어적소수자이다”라고주장하는「농문화선언」이발표된후에야농인에게음성언어를강제하는것은농인의문화와인권을침해하는일이라는인식이자리잡았다.저자는어머니가졸업한농학교에방문해교원들을만나고,오누마선생님을인터뷰하면서수없이많은시행착오와갈등끝에농교육계에서마련한여러선택지와들리지않는아이들을위한물심양면의노력들을확인할수있었다.

“학교는여러수단을준비해종합적으로지원해야한다고생각합니다.초등학교와중학교를지역의일반학교에다니는바람에수어를배우지못한상황에서고등부때부터우리학교에다니는학생들도있습니다.이런학생들에게구화는소통의수단입니다.물론그가운데도수어와구화를다사용하는학생들도있습니다.또사회에나갔을때임기응변으로대응할수있도록필담과UD토크(음성을텍스트로변환해주는서비스)같은것을활용한소통능력도길러주어야한다는점을항상염두에두고있습니다.”
두선생님의이야기를듣고있으니‘들리지않는아이들이사회에나가서곤란해지지않도록’해야한다는마음이강하게느껴졌다.그러니다양한소통수단을익힐수있는환경을준비해놓았을것이다.-95~96쪽

“예전에는청각활용을중시했지만지금은수어를중요하게생각합니다.제가이자리에있을수있는것은그때저를전면적으로부정해준보호자들덕분이라생각합니다.(…)저같은게뭐라고.아무것도한게없는데요.저야말로고맙지요.젊은시절에저를교사로키워준사람이바로사에짱을비롯한농학교아이들입니다.그렇게천진한아이들이유소년기에말을빼앗기고소통의기회를잃어버렸던것이지요.그렇게교육하면안된다는깨달음을얻은것도바로사에짱처럼자라난아이들을목격한덕분입니다.그경험으로조기교육의중요성을알게되었습니다.감사의말을전해야한다면제가해야합니다.”-116~122쪽

이처럼어머니의인생에는분명차별과배제의흔적이곳곳에남아있지만,더나은공생의방법을찾기위해시도하고모색하는사람들이늘함께했다.그래서인지저자의짐작과달리어머니와의대화는늘유쾌하고따뜻했다.“눈을가늘게뜨고학창시절을추억하는어머니를보고있으면,어머니는정말로풍요로운청춘을보냈구나싶어부러운마음이들었다.”(85쪽)“어머니가이야기해준것은자신의인생에있었던행복한순간들뿐이었다.”(181쪽)그러므로이책은고통스러운과거의기록이라기보다는‘차이’를맞닥뜨린사람들이개인차원에서,또사회차원에서기울인노력과그성과를미래로전하는작업이라고봐도좋겠다.

“불량한자손의출생을방지한다”
우생보호법이빼앗은것과잘못된과거를바로잡으려는사람들

어머니사에코는농학교에서만난고지와결혼해무사히아이를낳아키웠지만,그과정이순탄하기만했던것은아니다.가족들은“결혼을하려면꼭귀가들리는사람이랑해”,“만약들리지않는아이가태어나면어떡할거야?”,“두사람이결혼해서만약아이가생긴다면그아이는내가대신키워줄게”같은말들로사에코를힘들게했다.물론이는‘선의’로한말이었지만,사에코는들리지않는다는이유로자신이바라는미래를빼앗기고싶지않았다.이이야기를들으며저자는‘우생사상’을떠올린다.

1948년일본에서는우생보호법이성립했다.패전이후인구증가를억제하면서부흥을꾀하지않으면나라가붕괴될것이라는공포가일본사회를휩쓸었고,그결과로“우생상의견지에서불량한자손의출생을방지함”을목적으로하는우생보호법이제정되었다.이법에의해유전성질환,한센병,정신장애,신체장애등56가지질병과장애를가진사람은합법적으로강제불임수술을당하게되었다.1996년모체보호법으로개정되기전까지국가에의해강제불임수술을받은피해자는1만6500명을웃돈다(본인의동의를받은수술까지포함하면약2만2500명).이들이당한신체적,정신적피해는오늘날까지계속되고있으며,2018년센다이에사는한피해자가국가를상대로손해배상청구소송을제기한이래로전국각지에서재판이이어지고있다.그피해자가운데는당연히농인도있다.저자는어쩌면자신도국가에의해태어나기전에‘살해당했을’수도있고,어머니와아버지도아이를만들수없는몸이되었을수도있다는사실에공포를느낀다.

이일이남의일처럼여겨지지않았던저자는우생보호법의피해자들과그들을지원하는변호사,활동가,연구자들을차례로만난다.우생보호법재판도방청하고,관련공부모임에도참여한다.뜻밖에도우생보호법을실행한사람의자손,즉자신의할아버지가보건소소장으로서지역의강제불임수술을관리하는일을했다고밝힌아키씨를만나기도한다.이들모두는잘못된과거를바로잡기위해,국가의책임인정과사죄를이끌어내기위해각자의자리에서분투하고있었다.이취재의과정은저자에게감정적으로힘든시간이었지만,이책을쓴가장직접적인이유가되기도했다.이런법이50년가까이유지될수있었던것은국가의정책이었기때문만이아니라,‘공익을위한일이니까,남들이다찬성하니까,장애는없는편이좋으니까’라며암묵적으로동조하거나눈감았던사람들이그만큼많았기때문이다.

“우생보호법이계속해서이어졌던것은국민한사람한사람의책임이라고생각합니다.(…)국회에서우생보호법이성립되었을때,그리고이후오랜시간이법이유지되는동안우리는이를문제라고보지않았잖아요?재판이끝나더라도이런소수자차별을문제라고생각하지않는다면같은역사를반복할뿐이지않을까싶습니다.공생사회란무엇인지진지하게고민해야합니다.”-155쪽

우생보호법은없어졌지만,나날이발전하는출생전진단기술로생명선별이버젓이이루어지고있는것은지금도우생사상이면면히이어지고있다는뜻이아닐까?저자는우생보호법의생존자로서,태어나지말았어야할생명이라여겨졌던코다로서같은역사가반복되지않도록차별과편견에맞서는일을계속해나가겠다고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