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내가

한 방울의 내가

$15.50
Description
제1회 박지리문학상이 호명한 작가,
문단의 이단아이자 신화가 될 현호정의 첫 번째 소설집
2021년 『단명소녀 투쟁기』로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는 필사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선언으로 등장한 현호정 작가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과 평단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선보이고 있다.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연필 샌드위치」를 포함해 4년 동안 발표한 단편 가운데 여덟 편을 추려 이번 소설집으로 엮었다. 소설집 안에서 단편들은 각각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 단편의 첫 문장을 꼭 움켜쥐는 식으로 다정히 연결되어, 하나의 물줄기로 흐른다. 작가가 만들어낸 그 사랑의 물줄기는 책이라는 물관을 지나 독자에게 다양한 소리로 가닿을 것이다. 그 외에도 작년 5월 연극으로 올린 「한 방울의 내가」 희곡을 실어, 독자들에게 원작과 희곡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다.
현호정이 아니면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이야기들, ‘한 방울의 마음속’에 가득 찬 ‘한 방울의 그리움과 몸짓 그리고 시선’을 벅찬 마음으로 독자에게 전한다.

너와 개체로서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나를 세상 전체로 흩어뜨려 너에게 가닿겠다는 결단이 여기에 있다. (…) 그 고통의 크기야말로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의 크기다. _「기생奇生의 사랑-현호정론」, 강지희(문학평론가)

저자

현호정

저자:현호정
서울대학교에서국어국문학과인류학을공부했다.2020년제1회박지리문학상으로등단했다.쓴책으로『단명소녀투쟁기』『고고의구멍』『삼색도』등이있다.극단‘안티무민클럽AMC’의일원이다.

목차

라즈베리부루
RaspberryBorO
돔발의매듭
Dombal’soooooooooooooooooooOO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Oo~~
연필샌드위치
o=OSandwich
한방울의내가
Asofyou
청룡이나르샤
dragOnblues
옥구슬민나
MinnahOlord

작가의말
모래위의H
HontheO

부록
희곡‘한방울의내가’

출판사 서평

“어쩌면가장좋은눈물은가장작은눈물일지도.”

현호정을투과해탄생한이야기들이가리키는곳,
한없이작아졌다무한히확장되는물질의경계,
그곳에모이는터질듯한사랑이라는마음들

『한방울의내가』속단편들은저마다몇가지의키워드를나누어쥐고있다.단편들은손에쥔키워드를마치빈자리를찾아전철을한량한량지나는승객의시선에포착되는누군가의일어날채비처럼슬쩍내비쳐,독자에게자신이다른단편누구와연결되어있는지알린다.그들의손에는(생존을위한)식이,(다른순환을지니는)잉태,(무효화되는)시간성들이들려있다.

생존을위한식이

먼저소설집을여는「라즈베리부루」는핏물을요구하는식물‘부루’와빌라계단아래숨어사는‘나’의이야기다.‘나’는부루에게생리대로우린물을주고,부루는내게건물바깥으로나갈마음을먹게해준다.둘이정한무언가를주고받는원칙은“한번에많이먹지는못하니까,조금씩매일”이다.둘은각자의생존에필요한식이를서로에게공급하고,나아가부루는자기만의방식으로‘나’를돌본다.“땀을닦아주고물을먹여주고밤이면가장넓은잎사귀들사이에넣어품어주었다.늘이렇게하고싶었어.그래서빨리자라고싶었지.부루가말했다.엄마같다.내가말했다.”그형태는꼭새로운모습의잉태같다.
식이의흐름은「연필샌드위치」에서도발견된다.꿈에서연필샌드위치를만들어먹으라는명령을받은‘나’는먹기싫은마음을들키지않으려,먹어야지만그꿈에서깨어날수있다고느끼며잘근잘근나뭇조각을씹는다.그맛은내게누룽지라는익숙한맛을불러일으키고,그구수함은돌아가시기전할머니가마지막으로먹은캔에든‘구수한맛’의유동식과거식증상으로나날이축소되던엄마가그나마마시던누룽지끓인물로이어진다.당시‘나’는엄마와내가“영적인탯줄”로연결되어있다여겨평소보다더많이먹었고,엄마도할머니를돌보면서부터열심히밥을먹었다.서로에게식이를전달하려는행위속에서세여자의입은어느순간탯줄로써기능한다.「~~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의자연재해가닥친세상에서사람들이직면한문제역시“무얼먹고살아야하나”이다.생존을위한식이는이렇듯소설전반을엮는끈으로존재한다.

다른순환을지니는잉태

“생식기가하나의자상”이된듯피를흘리는여자아이를식물이품는잉태의모습은「~~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에서더극대화된다.세상이바다에잠긴날,“어른들이죽이지않는한은잘죽지않는아이들”이살아남아다음세대로자라났다.다음세대는지금까지인간과는다른모습으로,몸에또다른신체를매달고태어났다.그때까지인간들은바다에떠다니는흰물질을먹으며생존했고,그게세상이“바다에잠긴그날죽은이들의몸이분해된유기물뭉치”라는건나중에알게된다.

기생쌍둥이로태어난세대들은심장을가진자생체와신체기관으로써존재하는기생체로구성되어그들끼리생존하는방식을만들어나가지만,둘은결코공존할수없는결말에맞닥뜨린다.자생체의장기를나눠쓰며남는에너지를성장에만쓰는기생체는어느새자생체의크기를압도하고,더커진기생체의흡수력에자생체는나날이기능을잃어갈뿐이다.이비대칭의공존은결국자생체의축소와함몰을일으키고,그것은곧기생체자신의죽음이된다.이때소설은기생체를매단자생체들의대화로질문을던진다.“아름다운것과살아있는것을어떻게구분하지?”“난구분못해.”“난안해.”“그럼최종적으로는출산도해야할까?”“어떻게낳지?”“낳은뒤에는?”

일반적인잉태와출산의과정에큰질문을던진이소설은이렇게마무리된다.“여기있는것과아름다운것을어떻게구분하지?”이흐름은다시「옥구슬민나」로연결된다.“민나는민나의어머니보다먼저태어났다.민나의어머니는민나의암소가낳았고그암소가태어날때민나가도왔다”로시작하는소설에서민나는신이다.민나를만난동물들은궁금했던것을묻는다.밀알만한강아지는“여기서작아지는방향으로한번만더날갯짓하면그대로소멸할거예요.겁이나서아무데로도날아갈수없어요.”하고,용은다시도롱뇽으로돌아가고싶어앙앙울고,새는자기슬픔의근원에대해묻는다.모든것을창조했다고여겨지는신,민나는실존에대한질문들에“세상모든입자이자단하나의입자로서텅빈우주를가득채”우며증식함과동시에소멸되어그곳에존재함을알린다.

세상을바라보는현호정만의시선
물방울에고이는전생과전철이인간에게보내는러브레터
산자와죽은자모두를향한포기없는간절한손짓의시각화

이소설집에서가장흥미로운지점은바로여기에있다.존재하기위해소멸되고,소멸되기위해존재하는아이러니.어떤존재를사랑할수록주변을해쳐스스로를더작게분열시키다결국기원으로돌아가모든것을없음으로만드는시도.그시도에서야비로소완성되는사랑.결별을내포한이하나됨의사랑이야기는「한방울의내가」에서절정을이룬다.“자주우는자의”눈물로태어나매끄러운탄생을가졌던‘한방울의나’는작은물방울로서의삶보다메이의눈물로서의삶을지양한다.누군가의눈물로살고자하는마음은큰물에포함되어야하는작은물의순리와충돌한다.“왜나에게합쳐지지않기위해그렇게까지애쓰는거야?”“기억을잃는게싫어서그래요.저에게는이생에서다시만나야할사람이있어요.”

한방울의커져버린그리움은결국자신을“세계의절반이상”인바다로만들고,‘나’의그리움역시더이상“한방울의마음”이아니게된다.메이에게다가가려는바다의몸짓은지나는곳들을폐허로만들고,결국‘나’에게남은결말은하나.한없이가벼운수증기가되는것이다.수증기의형태는앞서민나가그랬듯“세상모든입자이자단하나의입자로서텅빈우주를가득채”우며,메이의눈동자속으로다시하강한다.이야기는‘나’가메이의눈동자를끌어안으며탄생만큼이나매끄러운합일,소멸로써끝이난다.여기서한가지기억해야할점은‘한방울의나’가자신의전생을기억하고있다는것이다.

무효화되는시간성

물방울일때만났던아기오리비비와‘나’는기원의일부를같이하는존재다.비비의어미가비비이전에낳은알속에서‘나’는흰자로존재했고,그알을깨뜨려먹은어미가다시낳은알이바로비비인것이다.“잊지않아도잊히는기억이있다.”비비어미의말을떠올린‘나’가말한다.“이제나는그말의의미를알아.잊지않으면더이상살수없는기억이있다는뜻이야.계속살아나가기위해전생처럼끊어내고지나가야할과거가있다는뜻이야.”한물방울에고인생을들여다보는일은결국나를,나와관계된주변의모든물질을다시바라보게한다.그시선은전철의시점으로인간에게보내는러브레터와도같은소설「청룡이나르샤」로도이어진다.

“당신에게가려구요......”로시작하는「청룡이나르샤」에는자신안에타고내리는인간을보며전철이품은마음들이담겨있다.“당신하나에퍼부어지는제사랑이박애라는말을이해할수있나요.제가당신을사랑한다고말할때제마음은그런방식으로가볍고무한합니다.”정해진선로만을도는자신의운명을받아들인전철은그안에서자기만의방식으로끝없이‘당신’에게닿으려는시도를한다.그목소리는차가운철제에갇힌혼,인간을향한포기없는간절한손짓,우리는결코알수없지만전해받을수밖에없는물성을전한다.있지만없는것,없지만있는것을기어코시각화하여우리에게전달하려는그희미하고집요한마음이바로이소설집의의미가아닐까.

「돔발의매듭」에서는살아서한번도만난적없는모르는이인M의염을지키게된인물,돔발의이야기가나온다.관에들어가기전수의를입은M의얼굴은언니에게서들은것과달리무척이나괴로워보인다.그표정이돔발의마음에걸리고,시신위에스물한개를올린다던매듭이열아홉개만만들어진것을확인하자돔발은더이상가만히있을수가없다.“과한것은커녕충분한것하나없어보”이는장례식장에서“M이실컷가질만한것은아무래도매듭뿐인것같았”으니.징검다리두개가모자라저쪽으로가지못하고쭈그려앉은M이돔발의머릿속에찰랑인다.“잠깐만요!”이승에서울려퍼지는돔발의그천둥같은외침은과연이승의것일까.M과돔발은이승과저승을잇는그징검다리위에서잠시눈을마주한다.소설집의인물들은,그들이가진마음들은모두경계에머문다.현실과꿈,이승과저승,과거와현재,미래그사이어딘가에서꼭하나쯤은발견되는살짝어긋한틈사이를비집고들어가열어젖힌다.그행위는우리가알고있던시간성을무효화하기도하고,다른질서로재배열하기도한다.

그넓은내부에서어리둥절한사이우리의“어깨위에있”던작가는“귀찮다는듯”우리손에들린“빵봉지속으로툭들어가흰빵들사이에숨어버”린다.그능청스러움에서비롯되는곁눈질,그가보내는모든사랑의몸짓을우리는이미느끼고있을것이다.경계에깃든사랑은결국경계없는사랑으로,『한방울의내가』안에모습을숨겨우리곁에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