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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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신정

저자:김신정
연세대학교문과대학국어국문학과및동대학원졸업(문학박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인문과학대학국어국문학과교수
저서:『정지용문학의현대성』,『풍경과시선』,『시의아포리아를넘어서』(공저),『동아시아기억의장』(공저)외다수

목차

들어가며

1장중학시절과비밀노트

첫시집을읽다

비밀노트를쓰는사람들
비밀노트를쓰다글쓰기의스승옮겨쓰고고쳐쓰고다시쓰기습작노트-독자에게가는길목

날짜와서명,그리고장소
시를쓰는‘오늘’의기록평양이라는장소경계너머의그리움-평양에서바라본고국과고향낯선고향윤동주가바라본‘고향’만주

국경을넘는여행
윤동주의연고를찾아가는여행‘시인윤동주지묘’의발견다시,묘비앞에서간도를떠난간도사람

2장모어의힘,‘작은언어’의가능성

이방에서만난윤동주의시
낯선모어의감각모어를잃어버린아이들윤동주의모어

오래된노트를읽다
시인의퇴고과정을따라드러내기와감추기-시적형상화의과정뜻밖의시어들-방언,한자,외국어

명동의말,육진의말
명동,낯선땅의모어공동체육진방언에새겨진월경과이주의역사부드럽고은근하며아름다운명동의말고향의방언과윤동주시의구어감각

만주의‘작은언어’
만주,이동을매개하는경계지대다른언어들사이에서‘틈새’의언어공간윤동주의언어환경‘작은언어’의가능성-소리감각과노래의힘음악적모어의기억,‘열린모어’의운동

3장움직이는시인,움직이는언어

신체의이동,다시고국으로
‘새로운길’위에서연희전문시절과기숙사기숙사에서아픈세상-세속과구원사이에서기숙사밖으로-세상을향해

이동과언어
일제말기의조선어시험두개의언어-국어와모어움직이는모어어떤조선어로시를쓸것인가

『하늘과바람과별과시』-모어의소리공간
『문우』에실린윤동주시두편활자의이면,우리말소리를새기다한자와방언을활용한모어의소리공간연애없는연애시와‘순이’‘황혼’의시간,모어의권리를노래하다

4장시인의여정,조응의글쓰기

생명의조응,모어의약동
한장의엽서“모든죽어가는것”에대한슬픔과사랑

출발과도착사이의장소들-시인의방,거리,정거장
백석의집과고향윤동주의방-‘나’에게로돌아오는길“육첩방은남의나라”기차와정거장-비장소에서다른시간,다른장소를향하여‘고향’이라는질문

이동과계절
사계절이없는나라“계절이지나가는하늘”신체의이동과계절의변화겨울을살다봄이되다

5장오늘,시인의노트를읽는사람들

죽은자와산자
감옥의시간폭력의체제,죽음의시간책의생명,이야기의끈지금,우리곁의윤동주

시비에새겨진원고노트-재일코리안,윤동주시비를세우다
일본에서만난‘코리아의시인’윤동주동창회와윤동주시비‘귀향하지못한’조선유학생과‘코리아’의시인윤동주추모70주기,노년의동창생들

영화로상상하는윤동주의교토시절-손장희와친구들,시인의마지막장소를담다
교토에서찍은영화〈타카하라高原〉처음만나는윤동주,새로만나는윤동주‘타카하라’라는장소상상속의만남-윤동주와교토의조선인장소에새겨진시간의지층

사진으로읽는간도의시간-도다이쿠코의경계를넘는모험
도다이쿠코와윤동주당신은일제시대에대해어떻게생각합니까‘남조선’아가씨,중국에서조선족을만나다변경에서본개인과역사첫만남-윤동주의고향에서마지막정착지

연루된삶,사랑과책임의방법-윤동주시를번역하는사제이다이즈미의이야기
2019년5월,뜻밖의만남이웃집조선인가족과한국(어)사랑사제의길,한국기독교사연구와전쟁책임선언윤동주에대한사랑과책임번역,사랑의방식‘연루’된삶이어지는이야기들

나오며
감사의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윤동주의원고노트에담긴시와낙서,메모와퇴고의흔적들,
그속에기록된시와시인의여정

민족시인,저항시인,국민시인이라는초상너머
‘경계에선시인’윤동주를만나다

생전에‘무명시인’이었던윤동주는오래된노트들을세상에남겼다.만주중학시절이던1934년12월24일,「초한대」라는시를처음적어넣으며시작한첫번째원고노트『나의습작기의시아닌시』와두번째원고노트『창』,끝내출간의꿈을이루지못한자필자선시집『하늘과바람과별과시』,그리고낱장원고들에는그가일본에서생을마칠때까지시를쓰고,고치고,덧붙이며한편한편지어나간과정이고스란히담겨있다.노트에남은치열한퇴고의흔적과성실하게기록된창작일자들은그가시를쓴정확한시점,시인이머무른공간의변화,그리고한글자한글자세밀하게시어를선택하고교체하는과정을보여준다.노트위에펼쳐지는전체창작과정을있는그대로따라가다보면,우리에게낯익은‘순수한우리말’뿐아니라옛말과방언,한자와한자어,외국어와외래어로된‘낯선’시어들도발견하게된다.노트곳곳의여백에는일본어와중국어로쓰인낙서,일본어로된메모와인용도남아있다.

이처럼원고노트에기록된복잡다단한퇴고의과정과여러언어·문자의흔적은약110년전만주에서태어나80여년전일본에서짧은생애를마칠때까지계속해서경계를넘나들었던시인의삶의궤적과겹쳐진다.이책은윤동주가고향만주와고국조선,제국일본의교차점에서한편한편시를적어넣은원고노트를통해그의삶과시가생동하는과정을직접들여다보는데에서출발한다.시인이자필로시를써나간원고노트는그의시에흔적을남긴‘이동’과‘월경越境’의역사,그리고시를짓는매순간그가겪었을고민과선택의시간을상상하게한다.그시간을헤아리며우리는한국문학의확고한‘정전’으로자리잡은윤동주시와그의서사,그를끌어당기는민족과국가의완고한테두리를넘어경계위에서“몸으로서일일히헤아려”“겨우몇줄의글”(「화원에꽃이핀다」)을써나갔다는시인의몸짓과,노트위에적히고지워지고고쳐지고다시쓰인시의역사를마주한다.

고향만주와고국조선,제국일본의
‘틈새’에서피어난윤동주의삶과시

이역에서태어난윤동주가또다른이역에서생을마친때로부터80여년이지난오늘,한국사회에서윤동주는“일제치하민족의수난기,순정한모국어를수호한민족·저항시인”으로기억·기념되고있다.그런데언어가‘순정’하다거나,‘순수’하다는것은과연어떤의미일까?언어가순정하고순수하다고할때,우리는흔히한자어와외래어등외래적요소를배제하고규범적으로정확한표준어를떠올린다.그러나막상윤동주의원고노트를자세히들여다보며한단어,한문장이만들어지고변화하며소멸하는과정을살피면,우리가믿어온‘순수’라는개념의범위에포함되기어려운한자어,외래어,외국어와방언어휘의흔적들을찾아볼수있다.

그는의도적으로한자를병기하거나한자만으로표기를하기도했고,“뽈”,“쩨네레슌[제너레이션]”,“포시슌[포지션]”처럼영어단어를한글로음차한단어나“간즈매통”,“도락구”등의일본어단어,일본식한자와중국식간체자,육진과함경도·평안도·중부지역의방언어휘들을시에담아냈다(「별헤는밤」의너무나익숙한구절,“가을속의별들을다헤일듯합니다”의‘헤다’도‘세다’를뜻하는함경도방언이다).「참회록」시고여백의여러언어로된“낙서落書き”들(“도항渡航”,“증명?明”,힘,생존生存,문학文學”,“시詩란?부지도不知道”등)도당시일본유학을위해창씨개명과‘도항증명’이필요했던시인의번민과복잡한상황을드러낸다.이처럼원고노트속윤동주시의민낯을응시할때마주하는‘낯선언어들’은우리에게무엇을말해주는가?

윤동주의삶은여러국가,여러장소에걸쳐있었다.1917년옛만주북간도명동촌에서이주민의후예로태어난윤동주의생은이동의연속이었다.시를쓰기시작한중학시절부터평양유학을떠났다가간도로돌아왔고,이후다시고향을떠나식민지조선의경성으로향했다.연희전문졸업후에는식민본국일본으로유학을떠나도쿄와교토로다시금이동하는삶을살았다.교토에서체포된시인은결국후쿠오카형무소에서짧은생을마쳤다.시인은오늘날중국동북지역과한반도,일본열도곳곳에자취를남겼다.각각의시간과장소에서윤동주는만주에온조선인,평양에온간도사람,경성에온간도사람으로존재했으며,만주국에서는‘선계鮮係’이자‘일본신민’으로강제되었고,일본‘내지’에서는‘외지인’으로분류되었다.

시인은매번발화위치가달라지고장소와정체성이어긋나는상황을겪어야했다.저자는이처럼한곳에정주하지못하고끊임없이이동해야했으며,어느한편의경계내부에속하지못하고이편과저편의‘사이’에위치해왔던윤동주를‘경계에선시인’이라표현한다.시인의발화위치와고향과의머나먼거리를드러내는“어머님,/그리고당신은멀리북간도에게십니다.”(「별헤는밤」),시인이“남의나라”일본에머무르고있음을가리키는“육첩방은남의나라”(「쉽게씨워진시」)와같은시구들,그의시에거듭등장하는‘기차’,‘거리’,‘정거장’과같은‘이동’의표상들은짧은생애동안고향과타향,고국과이국사이를오가며길을물은시인의경험을체감하게한다.

봄이오든아츰,서울어느쪼그만정거장에서
희망과사랑처럼기차를기다려,
-시「사랑스런추억」중에서

이제나는곧종시를박궈야한다.하나내차에도신경행,북경행,남경행을달고싶다.세계일주행이라고달고싶다.아니그보다진정한내고향이있다면고향행을달겟다.다음도착하여야할시대의정거장이있다면더좋다.
-산문「종시」중에서

윤동주의이동은비단물리적공간의변화에그치지않았다.그의이동은지역과민족,국가,그리고무엇보다언어의경계를가로지르는여정이었다.저자가원고노트의퇴고기록을통해시인의언어환경과시어에담긴역사와토양,그리고시어가변화하는과정을깊이탐색하는이유이다.윤동주는조선인이민자들이북간도에세운명동마을에서나고자라며함경북도끝자락육진방언의한갈래인명동의말을모어로익혔다.또한이시기만주는현지어인중국어와제국의언어인일본어가공존하는다중언어공간이기도했다.이윽고윤동주는고국조선의평양과경성에서유학하지만,식민지기고국은제국의국어인일본어와식민지의언어인조선어가명확한위계를이룬양층어체제가고착되어있었다.

당시동아시아는국제질서의격변과더불어영어를비롯한서양어와그사용자의유입도늘어나고있었다.이렇듯여러언어가공존하는가운데,조선어라는‘소수언어’를모어로사용한윤동주는나라와지역을이동하며매번다른언어환경을접했다.그리고이과정에서그의시어역시다양한언어·문자와접촉하고길항하며변화를겪었다.‘움직이는시인’은끊임없이변화하는‘살아있는언어’의한순간을붙잡아원고노트에새겨넣으며자신만의“새로운길”을모색했다.그렇게완성된그의시들은모어와다른언어들,방언과표준어,한글과한자,입말과글말사이를오가며거듭된조율의결과였다.

어디로가야하느냐동이어디냐서가어디냐남이어디냐북이어디냐아라!저별이번쩍흐른다.별똥떨어진데가내가갈곳인가보다.하면별똥아!꼭떨어저야할곳에떨어저야한다.
-산문「별똥떨어진데」중에서

조선어와조선문학의위기를직면한당대의문학인들모두에게‘언어’는절박한문제였다.조선어와조선문학이소멸해가는‘황혼’의시간,‘어떤조선어로,어떤조선어문장으로시를쓸것인가.’선배시인이었던정지용은당대의복잡한언어현실을시적자양분으로삼아시어를발굴하고다듬으며예술성을추구했고,백석은토속어와방언을적극활용하며고향과공동체의문화를시에담아내고자했다.예비시인윤동주도선배시인들의시를따라읽고적으며자신의언어를정련하고있었다.그리고그끝에서윤동주가찾은“새로운길”이바로일상의어휘와입말(구어),방언과한자(어)의활용,자연스러운운율감등이한데어우러진‘쉬운조선어-모어로시쓰기’였다.

조선어와조선어문학의공간이극히위축되어가는상황에서윤동주는가능한한많은조선어독자들에게가닿을수있는언어,간도와조선,용정과평양과경성의조선인모두에게다가갈수있는언어로시를쓰려고했던것이아닐까.‘쉬운시어’라는외피아래에는모어와국어,한글과한자,표준어와방언이라는이질적언어·문자사이를넘나들며섬세하게조율해낸시인의치열한고민이숨어있다.그렇게윤동주는일제말기그가마주한삶과문학,신앙과시대,생명의문제를시속에새겨넣었다.일제말기윤동주의언어가시공간을뛰어넘어21세기독자들에게까지자연스럽게읽히며마치‘오늘’의언어처럼생생하게와닿을수있는힘은바로여기에있을것이다.

윤동주와함께경계를넘는독자들의모험
오늘,동아시아의독자들과호흡하는‘지금-여기’의윤동주

두개의지면,땅위地面와원고노트위紙面에서펼쳐지는윤동주의삶과시의궤적을따라마지막5장에이르면,80여년전멈춰선시인의시간은오늘,각자의자리에서그의시를읽는‘우리’의시간과연결된다.우리에게윤동주는무엇인가.80여년전에세상을떠난무명의시인은지금우리곁에서어떻게기억되고있는가.지금우리에게윤동주가어떤존재인가를묻기위해,저자는먼저윤동주를기억하는‘우리’가누구인지질문한다.윤동주의독자들은시인의생이그러했듯,여러국가와장소에걸쳐있다.즉,윤동주를기억하는‘우리’의범위는한국인을넘어일본인,재일조선인,중국조선족등으로확대되고있다.이렇듯그의독자들이한나라의국경을넘어확대되는양상은생애내내경계를넘어이동했던시인의삶에서연원하며,한민족이산의역사와도맞닿는다.그리하여생전의시인은한곳에정주하지못한채끊임없이이동하는삶을살았으나,사후에그를기억하는이들은저마다자신이서있는경계선안쪽에서시인을마주하고있다.

한국사회에서는윤동주를오랫동안‘민족시인’이자‘저항시인’으로,이제는‘국민시인’으로호명하며국가를대표하는문화적상징,한국문학의‘정전’으로기리고있다.중국조선족사회에서는윤동주를자신들의‘자랑스러운’이민과개척의역사를대변하는‘고향의시인’,‘중국조선족시인’,‘애국시인’으로기억한다.일본에서는윤동주를‘평화의시인’,‘화해의시인’으로기억하려는움직임이있으나,과거사에대한책임과반성을놓지않은채‘평화’와‘화해’를논해야한다는과제가남아있다.한편,윤동주는재일조선인의정체성을되비추는역사적표상으로도여겨지고있다.윤동주시의독자이자연구자로서저자는20여년간시인의자취가남은동아시아의여러장소들,서울과연길,용정,도쿄,교토,나라,후쿠오카등지에서윤동주를기억하는사람들을만나시인과그들의삶에대해듣고기록해왔다.그가운데저자가특히주목한것은생전의시인과마찬가지로지역·국가·민족·언어의경계를넘는모험에참여하는사람들,각자의자리에서윤동주를기억하며윤동주와함께경계를넘어서고있는사람들의이야기였다.

일본도시샤대학에일본최초의윤동주시비를세운‘코리아동창회’사람들은대부분일제강점기에고향을떠나생계를위해식민종주국일본으로이동한사람들의후손이다.대개재일조선인2세인그들은시비건립을비롯하여윤동주를기억하는행위를통해일본사회내부의경계를넘고,또한재일조선인사회내부의경계를넘었다.그들이택한‘코리아’라는이름에는특정국가의이름만으로는담아낼수없는재일조선인의복잡다단한역사적경험,남과북,총련과민단으로찢긴그들의관계를회복하려는강한염원이담겨있다.한국인유학생손장희감독은일본인친구들과함께시인의마지막장소를비추는다큐멘터리영화〈타카하라高原〉를제작했다.이들은영화라는매체를통해윤동주시의‘소리공간’을주조해내고,자료화면과인터뷰,현재교토의풍경을겹쳐놓으며시인이머무른과거의시공간을현재와연결한다.

저널리스트이자작가,인천관동갤러리관장인도다이쿠코는젊은시절열혈역사학도였음에도‘일제시대’라는말을몰랐다는사실에충격을받고한국으로,다시중국으로경계를넘는모험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