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는 왼쪽에: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비상구는 왼쪽에: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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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신준

저자:강신준
1954년경남진해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독어독문학과를졸업했다.같은대학교대학원에서경제학을전공해1991년「독일사회주의운동과농업문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독일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독일노동운동사를연구한뒤,동아대학교경제학과교수로학생들을가르쳤다.경제학이마땅히다루어야할가장중요한대상은상식적으로빈곤,특히노동빈곤이며과학으로서의경제학의진정한소명은현실문제에대한‘비판’이라는점에천착하는과정에서마르크스를만났다.2008년전세계MEGA(마르크스엥겔스정본전집)출판을총괄하는본부가있는베를린에서연구년을보내며MEGA한국어판출간을기획했고,귀국한뒤2012년동아대학교에맑스엥겔스연구소를설립해지금까지번역작업을이어오고있다.1990년대중반에는조선산업노동조합들의요청으로임금체계개편연구를수행하며독일금속노조의교육교재를들여다보았고,그안에서마르크스의문장을발견한경험이이번책의출발점이되었다.
지금까지『자본의이해』,『노동의임금교섭』,『자본론의세계』등의이론서와『그들의경제우리들의경제학』,『마르크스의자본,판도라의상자를열다』,『오늘『자본』을읽다』,『수취인:자본주의,마르크스가보낸편지』등의교양서등다양한형태와내용의마르크스주의도서를집필했다.
또한『마르크스냐베버냐』(공역),『사회주의의전제와사민당의과제』,『프롤레타리아독재』,『자본』(전5권),『데이비드하비의맑스『자본』강의1·2』,『경제학비판을위하여1861~63년초고제2분책-잉여가치론1』등을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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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04

1장야만이온다
겨울이온다!13
극우냐야만이냐16
야만에대한기억18
마르크스의퇴장과야만의등장21
야만을막을방벽24
마르크스방벽에대한의심26

2장야만을막을방벽
마르크스의「모건개관」33
야만의기원35
야만과문명구별법38
야만의시간인식39
방벽은무엇으로세워지는가43
방벽이붕괴된이유47

3장새로운문명,자본주의
문명에서야만으로53
교환이가져온문명의불씨55
자본주의라는새로운문명57
새로운문명의함정62
수수께끼를푸는노력66

4장자본주의의묵시록:마르크스의『자본』
수수께끼의구조73
자본주의의이중구조와야만76
야만이가져올미래:자본주의의묵시록79
야만을제거하는방법:변증법적지양83
자본주의의변증법적역사적소명86

5장마르크스의방벽설계도
프랑스혁명모델91
혁명의이해93
혁명의과학적구조97
혁명은누가수행하나98
혁명의목표102
혁명을어떻게수행할것인가106
혁명은정말로실현될수있을까109
혁명은오래걸린다113

6장마르크스이후마르크스의실천
실천의첫걸음,제2인터내셔널119
배신의혁명:독일사회민주당124
실패한혁명:볼셰비키정부128
전후제3세계의마르크스주의133
냉전시기서방의마르크스주의138

7장실천의유산과잔재
마르크스는정말‘죽은개’인가145
실패한실천은무엇을남겼을까148
인간의얼굴을한자본주의:케인스주의153
케인스주의의몰락과야만의부활156
신자유주의와2008년공황160
좀비신자유주의와마르크스의소환163

8장마르크스없는한국사회
마르크스가금지된대한민국169
1987년이전한국사회와마르크스172
1987년민주화와마르크스의귀환175
북한,중국,일본의마르크스엥겔스저작출판179

9장벽에갇힌한국사회
마르크스없이발전한한국자본주의185
한국적야만의전통189
정치:좌파도노동자정당도없는나라193
사회:노동자와노동조합없는노동관계198
야만에갇힌사회의미래204

10장문명으로가는비상구:한국사회의과제
마르크스없는사회에서있는사회로211
마르크스문헌의출판212
마르크스실천의주체:노동자정당과노동조합215
마르크스의유산을담은강령218
장기실천의조건:시민정치교육220

에필로그:야만에서문명으로222
참고문헌234

출판사 서평

자본주의로성공한나라의이상한지표들

한국은20세기자본주의의최우등생이었다.식민지배를받던나라가독립후반세기만에OECD에가입했고,그사이6·25전쟁으로산산이부서졌던국토에는공장과도시가세워지고도로가깔렸다.이성공이너무나도압도적이었고,그성취감이시민의삶에짙게드리운어두운그늘을모두덮어버렸다.고통은사라진게아니라성장의성적표뒤로숨어버렸다.이제대한민국은반도체와로봇,우주항공같은최첨단산업을기반으로아예자본주의세계의맨앞줄에설준비를마쳤다.

그런데성적표뒤에감춰놓은숫자들이어딘가이상하다.2025년한국인의연간노동시간은1833시간으로OECD평균1736시간을훌쩍넘는다.공동체유지의근간인사회복지지출은GDP대비14.4퍼센트로OECD평균23퍼센트에한참못미친다.임시직노동자비율은26.9퍼센트로OECD평균11.2퍼센트의2.4배에달하고,산업재해사망사고의70퍼센트이상이비정규직노동자에게발생한다.성장은계속되는데그성장이보통의삶으로흘러가지않는구간이점점넓어지고있다.

마르크스주의경제학자로서『자본』의독일어판정본을국내최초로완역한강신준은새책에서이숫자들을‘야만’이라는단어로묶는다.야만과그대척인문명에대한그의정의는무척간단하다.야만은오늘만살고문명은내일까지계산한다는것이다.내가죽은뒤에도살아갈사람을셈에넣는순간양보와타협의자리가생긴다.반면그것을넣지않았을때남는것은각자도생과적대뿐이다.이를바탕으로지금한국사회는야만인지문명인지,나아닌타인의존재를어떻게계산하고있는지질문한다.

서울강북의아파트소유자가잠못드는이유

이책은마르크스주의의복잡한개념을우리가매일말하고듣는일상의언어로옮겨놓았다.지은이는은퇴후시골에내려가장을담갔다가구더기가생겨된장한단지를통째로버린이야기,결혼식에서흘러나오는바그너의음악과송년음악회에서들리는베토벤의음악이야기,영화〈박하사탕〉의영호가철길위에서“나다시돌아갈래”라고절규하는장면등을자본주의와마르크스주의설명에대입한다.

뚜껑을열어보니구더기가생겼더군요.이렇게한번실패했으니이제장담그기를그만두고장독을없애버려야할까요?아뇨,그럴수없습니다.내일도음식을해먹기위해장을새로담그고이번에는뚜껑을더욱철저히밀봉해야지요.…마르크스는문제를없애는게아니라그걸고쳐서한단계더높은수준으로끌어올리자고얘기합니다.더구나자본주의의야만적속성은그것의문명적요소에결합해있습니다.구더기(야만)때문에장(문명)을포기할수는없습니다._「4장.자본주의의묵시록:마르크스의『자본』」,83~84쪽

가난도마찬가지다.지방에아파트를가진사람보다서울에아파트를가진사람이부자지만,강북의아파트소유자는강남을생각하면잠이오지않을만큼자신이가난하다고느낀다는예로가난의상대성을부각시킨다.

자본주의에서부는곧노동시간이고,그래서가난도노동시간의격차로환원된다.하루는누구에게나24시간인데어째서누군가는어마어마한노동시간을,즉부를소유하게될까?2025년말보도된이재용회장의1년간주식가치증가액11조3260억원을2026년최저임금으로환산하면약11억3000만시간어치에달한다.다시말해최저임금을받는노동자는12만년넘게일해야저만큼을벌수있다.‘이재용만큼벌게해줄테니최저임금을받으며영생을살겠느냐’고한다면,아마신도거절할것이다.이무자비한부의차이는어디에서왔을까?답은하나뿐이다.마르크스가이미설명한것처럼,다른사람의노동시간이다.

우리는수수께끼의정체가노동하는사람의노동력이다른사람의수중으로넘어가는데있다는것을알고있습니다.수수께끼의해답은두사람의관계였습니다.이들의관계는교환이라는구조에서평등한것처럼보이지만,사실은일방적입니다.소유한사람과소유하지않은사람,노동하는사람과노동하지않는사람,판매만하는사람과구매만하는사람처럼말입니다.두사람의관계는완전히대립적이고배타적이며적대적입니다.노동빈곤은이구조가만들어낸것입니다._「4장.자본주의의묵시록:마르크스의『자본』」,77~78쪽

자본주의의구조도마찬가지다.카를마르크스가『자본』의출발점으로삼은상품은나에게필요한것(1)이면서동시에남과교환할수있는것(1+1)이었다.이겹침이자본주의를봉건제와갈라놓은문명의표식이었고,동시에이겹침에서소유를독점하려는야만이자라기시작했다.

연주에실패했어도악보를버리지않는이유

한국의시민들이,다수의노동자들이마르크스라는이름앞에서멈칫하는데는이유가있다.그의이론과실천은한국전쟁의역사와연결되고,그의실패를증명한1990년대소련및동구권의대붕괴가우리기억에생생하게남아있다.강신준은이의심을피하지않고정면으로다룬다.이대목에서그는마르크스의이론과실천을고전음악에비유한다.같은악보를보고연주해도누가연주하느냐에따라서로다른음색과감정이악보바깥으로표출된다.이처럼매번의연주가새로운곡으로태어나지만,그바탕에는애초에작곡가가직접만들어놓은단하나의악보가있다.이것이교본과실천의관계이며,마르크스를폐기하면안되는이유이다.

소련의실패는실천의실패지교본의실패가아니었습니다.따라서그실패를이유로교본자체를폐기해서는안됩니다.연주에실패했다고악보를찢어버리지않는것처럼말이죠.오히려실패를딛고새로운실천을구성하는것이우리의시대과제라는점을기억해야합니다._「1장.야만이온다」,28쪽

이구분위에서저자는제2인터내셔널부터독일사회민주당,볼셰비키,제3세계,냉전기서방까지한세기동안이루어진마르크스의교본실천사례를검토한다.무엇이어디에서어긋났는지되짚되변호하지는않는다.볼셰비키가마르크스의교본에서벗어난것은설계도를몰라서가아니라준비되지않은상태에서혁명에성공했기때문이며,의지로만구성된혁명은실패할수밖에없다고결론내린다.그리고우리에게는소련이실천했던마르크스의방법이아니라마르크스자신이직접쓴교본을바탕으로우리의상황에맞추어설계한방법이필요하다고설명한다.

주5일제와하루8시간노동,오늘의기본을누가만들었을까

실패한실천이아무것도남기지않은것은아니다.지은이는우리에게이미주어져있는마르크스의유산들을,그러나그기원을잊어버린것들을하나씩꺼내놓는다.대표적인예가,1919년창설된국제노동기구가헌장제1호로결의한‘8시간노동일’이다.1900년이전유럽대부분의나라에서하루12~13시간노동이당연했다.지금우리가13시간이아니라8시간만일하는것이마르크스의방법을실천한결과이다.무엇보다타인을위한노동을멈추어야한다.그렇게했을때노동시간의감소는여가시간의증대로이어지고,그여가시간을통해시민의자유와부가증가한다.그사회가바로마르크스가『자본』에서보여준자유의나라이다.

이지점에서이책은한국의시민과노동자에게중요한교훈을전달한다.마르크스는이념의문제이기전에이미우리의노동과일상에스며들어있었다.단지그것을꺼내어쓰는방법을몰랐을뿐이다.그렇기때문에지은이는“마르크스는우리의현재”라고말한다.

4·19에서응원봉집회까지,우리는문명의문을계속찾았고
처음부터지금까지언제나비상구는왼쪽에있었다

한국사회는야만의벽을허무는시도를멈춘적이없다.4·19혁명,6월항쟁,박근혜탄핵촛불집회와윤석열탄핵응원봉집회까지.그런데그시도의끝에는늘폭력이되돌아왔다.무엇이잘못되었을까.저자는의지가부족해서가아니라지렛대가없었다고답한다.19세기유럽의실패한혁명들을분석해마르크스가찾아낸방법,‘혁명의과학’이부재했다는뜻이다.

그럴수밖에없었다.마르크스저작은1910년식민지편입이래1987년까지거의한세기동안금서였다.해방직후와4·19직후에잠깐숨쉴틈이주어졌을뿐이다.어렵사리해금된1987년으로부터불과2년만에베를린장벽이무너졌고,1991년에는소련이해체되었다.이로인해마르크스는한국사회에서제대로빛한번보지못한채역사속에묻혔다.1997년IMF경제위기도,2008년세계금융위기도한국에서는마르크스를불러내지못했다.그결과정치적으로는좌파도노동자정당도구축하지못했고,노동조합조직률은10퍼센트에그치며,그나마도기업별로쪼개져정규직과비정규직이서로반목하고있다.

그렇다면우리는무엇을해야할까?이책은아주당연하지만현실에는부재하는일들을대안으로제시한다.과제는체제의전복이아니라다음의네가지다.마르크스의문헌을제대로갖추는일(MEGA한국어판출판),실천의주체를바로세우는일(초기업단위의산업별노동조합과노동자정당구축),주체들이공유할강령을작성하는일,그리고이모두를오래지탱할시민정치교육시스템을만드는일이다.

언제어디에서나혁명은단번에완성되는사건이아니라얼마나오래걸릴지모르는과정이다.“민주주의는민주주의자를필요로한다”는프리드리히에버트의유언처럼,제도를바꾸려면그제도를바꿀사람이계속필요하다.또한2026년현재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휴머노이드로봇을사업장에도입하는것을반대하는상황이잘보여주듯이,새로운기술이만들어낼여유시간을누가가질지가가장중요한문제이다.마르크스가150년전에만든교본에나와있는것처럼이노동시간의소유만이인간의진정한자유를보장하기때문이다.

그리고이모든논의는이책의제목으로도착한다.다시광장이불타고있다.그리고우리는야만의벽에가로막힌채로광장에갇혀있다.지금당장해야할일은마르크스가남긴설계도를펼쳐밖으로나갈문의위치를확인하는것이다.그런데처음부터지금까지언제나비상구는왼쪽에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