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정조 대왕과 박아(博雅)한 선비들과 함께 실천하고 싶었던 연구 프로젝트
“아아! 내가 선대 대왕(정조)의 치세에 태어나 마침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빛나는 듯한 때여서 바르지 못한 설은 도깨비불처럼 숨었었다. 만약 선대 대왕의 웅대한 계책을 힘써 도와 대업을 빛나게 넓혀 『십삼경주소』를 취하여 왕필의 『역주』를 배척하면서 이정조의 『주역집해』를 특별히 취해 『주역』의 주석으로 삼고, 박학하고 고아한 선비들을 모아 의소를 지어 그 결함을 보완했다면, 어찌 성왕의 큰 공훈이 아니었겠는가! 때를 놓치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눈을 감지 못할 한(恨)이로다!” -『역학서언』 「왕보사역주론」 중에서
정약용은 정조(正祖)와 박아(博雅)한 선비들과 함께 『십삼경주소』를 토대로 한국 역학인 의소(義疏) 편찬을 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恨)으로 여겼다. 그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정약용은 유배 시절과 해배 시기에 걸쳐 홀로 그 한(恨)을 감내하며 혼신의 힘을 쏟아 2천 년이 넘는 중국역학사를 비평한 『역학서언』을 저술한 것이다. 『역학서언』은 정약용이 정조 대왕과 함께 이루고자 했던 학술적 이상을 담은 저술이며, 이를 홀로 감당한 연구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약용은 정조(正祖)와 박아(博雅)한 선비들과 함께 『십삼경주소』를 토대로 한국 역학인 의소(義疏) 편찬을 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恨)으로 여겼다. 그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정약용은 유배 시절과 해배 시기에 걸쳐 홀로 그 한(恨)을 감내하며 혼신의 힘을 쏟아 2천 년이 넘는 중국역학사를 비평한 『역학서언』을 저술한 것이다. 『역학서언』은 정약용이 정조 대왕과 함께 이루고자 했던 학술적 이상을 담은 저술이며, 이를 홀로 감당한 연구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약용 역학서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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