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사업을 시작해 소프트웨어 회사를 20년 넘게 경영해 온 저자 안유석은 직원들에게 AI로 업무를 해 보게 하면서 서로 다른 보고를 받았다. 어떤 보고는 도구가 틀렸다는 지적에서 끝났고, 다른 보고에는 어디서 막혔으며 무엇을 바꾸었는지가 담겼다. 저자는 이 차이를 개인의 적극성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료를 정리하고 동료의 검토를 받는 데 든 시간, 실험을 가능하게 한 권한과 지원도 함께 계산한다. 책은 4부 12장에 걸쳐 기업의 조직 변화와 과업의 재편, AI의 한계와 책임, 실무자의 역할과 경력의 문제를 연결한다. 공개된 기업 사례와 연구, 저자의 경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 장면을 구분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실무에 옮길 방법도 구체적이다. AI에 일을 맡기기 전에 결과를 누가 어디에 쓸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상태를 완료로 볼지 정한다. 결과가 반복해서 틀리면 과업을 나누고, 빠진 자료를 보완하고, 작업 순서를 바꾸고, 원문과 실제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를 둔다. 한 번 찾은 방법은 동료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남긴다. 자주 반복되는지, 오류의 영향이 큰지, 되돌릴 수 있는지에 따라 맡기는 범위와 검토의 깊이도 달라진다. 독자는 자기 업무 한 건을 따라가며 어디에 사람의 시간을 써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마지막 장은 이 과정을 ‘다섯 줄 보고’와 ‘90일 계획’으로 정리한다. 무엇이 안 되는지, 어느 정도인지, 되돌릴 수 있는지, 무엇이 바뀌면 되는지, 어떤 결정을 요청하는지를 한 줄씩 적는다. 첫 2주에는 현재 업무를 관찰하고, 3~4주에는 작은 실험을 한다. 둘째 달에는 준비부터 검토와 유지까지의 비용과 품질을 확인하고, 셋째 달에는 그 경험을 근거로 다음 역할을 협의한다. 효과가 없었던 시도도 중단한 이유와 다시 시험할 조건을 남긴다. 정해진 기간 안의 성공을 약속하는 공식이 아니라, 막연한 활용 경험을 확인 가능한 업무 경험으로 바꾸기 위한 실천 방법이다.
이 책이 끝까지 붙드는 질문은 ‘잘한 일이 나에게 무엇으로 남는가’다. 시간을 줄였더니 새 일만 늘어나거나, 만든 방법을 혼자 유지하느라 더 바빠진다면 개선을 오래 이어 가기 어렵다. 저자는 새 역할을 맡을 때 줄일 기존 업무, 필요한 시간과 권한, 평가와 대우를 다시 논의할 시점도 함께 정하라고 제안한다. AI로 자기 일이 달라지는 실무자에게는 경험을 다음 선택에 연결할 근거를, 팀장과 경영자에게는 직원이 실험하고 배우며 기여를 인정받을 조건을 묻는다. 시작점은 다음 주에 반복할 업무 하나다. 어디에서 막히는지 살피고, 무엇을 바꿨는지 기록하고, 그 결과를 누구와 어떻게 이어 갈지 정하는 데서 변화가 시작된다.
책 속에서
그러나 보고서는 누군가의 판단을 돕기 위해 있고, 회의록은 합의한 행동을 이어 가기 위해 있다. 파일이 늘어도 판단과 행동이 나아지지 않으면 받는 사람에게는 읽을거리만 늘어난다. p.30
AI 덕분에 기획안 초안이 하루에 10개씩 나온다고 하자. 그 기획안을 검토하고 결정하는 임원의 시간이 그대로라면 결정되는 기획안의 수는 늘지 않는다. 검토를 기다리는 초안만 쌓인다. 직원들은 AI로 시간을 아꼈다고 느끼는데 회사의 결과는 그대로이고, 오히려 모두가 더 바빠졌다고 느낀다. p.62
들쭉날쭉한 경계에는 계속 움직인다는 성질도 있다.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성벽의 모양이 바뀐다. 지난달 실패한 과제가 이번 달에는 성공하고, 예전에 잘하던 과제에서 새로운 실수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AI로는 안 된다’는 말에는 언제나 날짜가 붙어야 한다. 어떤 모델로, 어떤 지시로, 어떤 자료를 주고 해 봤더니 안 되었다는 기록이어야 다음 사람이 그 위에서 다시 시도할 수 있다. p.83
담당자가 중요한 결정을 맡으려면 원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고, 그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판단이 어려울 때 도움을 구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보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요청하는 일은 책임을 피하는 행동이 아니다. 회사가 약속한 결과를 실제로 만들기 위한 요구다. p.97
다투는 일은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런데 AI에 맞다고 거듭 주장한다고 해서 답이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빠진 자료를 붙이거나, 일을 쪼개거나, 순서를 바꾸면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조건을 바꾼 뒤에도 실제로 답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고칠 대상은 답이 아니라 답이 나온 조건이다. p.126
역할의 범위도 필요하다. 자료를 정리하는 데까지 맡는지, 운영 중 오류를 고치는 일까지 맡는지, 다른 사람을 교육하는지에 따라 필요한 시간이 달라진다. 새 업무가 시작될 때 이런 조건을 적어 두면 나중에 무제한의 지원 요청이 붙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작은 팀이라도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 수 있는 정도면 된다. p.166
마지막에는 처음의 업무 기록과 현재 상태를 나란히 놓아 본다. 무엇이 빨라졌고 어떤 확인은 여전히 필요한가. 다른 사람의 부담은 줄었는가. 자신이 새로 이해하게 된 문제는 무엇인가. 도구의 이름을 빼고도 이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면 활용 경험이 직무 경험으로 이어진 것이다.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