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없는 지도와 지워지는 사진들

표지 없는 지도와 지워지는 사진들

$35.00
Description
살기 위해 일하다가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윤성희가 하는 일은 산재사고로 노동자가 죽은 사건이 벌어졌던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죽음의 흔적을 치워버린 텅 빈 풍경을 바라본다. 그 과정을 통해 윤성희는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 주변을 떠도는 이야기와 싸움들, 사망사건과 관련된 기록과 기억을 수집한다. 윤성희는 살아있던 한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 그가 생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죽고 난 이후에는 어떤 조치와 처벌이 있었는지, 그 지난한 경과를 애써 되밟는다. 그의 사진과 글을 찬찬히 함께 따라가면 제대로 알려지거나 기록조차 되지 못한 죽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리고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안전조치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자본의 논리와 이익의 명분은 생명까지도 무시한다는 사실에 섬뜩해진다.

저자

윤성희

저자:윤성희
어떤위력하에서만들어지거나사라지는것들을사진과글로포착하고자한다.개인전<쌍용차,겨울로부터다시>를열었고몇개의단체전에참여했다.야간노동자르포『달빛노동찾기』등을함께펴냈다.2013년온빛사진상후지필름상을수상했다.@yoons_graphy

목차

산재사망사고연표.
분향소에서나오는길에생각했다.
문송면은열일곱살에죽었다.
길곳곳에봄꽃이흔들렸다.
불은지하1층에서시작되었다.
그건무너진채석장에서왔다.
사람들이떠내려갔다.
그문만있었어도다섯명은살았을걸요.
300kg짜리컨테이너에짓눌린그를발견한건아버지였다.
영정은한개였다가수십개로늘어섰다.
그는안전벨트를맨채숨졌다.
그의죽음은단순변사로처리되었다.
그밤은보여줄수없는것들로이루어져있었다.
누구도아닌
그런것들에대해이야기해보려고했다.

출판사 서평

죽음이치워진빈자리를
힘겹게응시하는시선

이것은누구나한번쯤들었던이야기다.뉴스나기사에서보거나읽었을이야기일테니까.매일매일반복되는이야기니까.김군,이군,박씨,최씨,정아무개,강아무개…살기위해일하다가죽어간이들의이야기.통계상으로어제도그리고오늘도여섯명의노동자가일터에서죽었다는이야기.그러니까내일도누군가는일터에서떨어지고,깔리고,끼이고,잘리고,빠지고,부딪혀죽을거라는이야기.

하지만그이야기의시작부터끝까지전부를들었던이는아무도없을것이다.살아있던한사람이언제어디서어떻게왜죽었는지,죽기전에그는어떤사람이었는지,그가죽은후에남겨진사람들은어떻게살아가야하는지,사람이죽었는데왜누구도책임을지지않고아무도처벌을받지않는지.결코끝나지않을길고긴이야기에서우리가들은건기껏해야한줌에불과하다.몇몇의이름과숫자몇개,닳고닳은구호들,겨우손에쥔단어와문장들마저도점점희미해지고잊혀진다.어제죽은자는오늘을말할수없고,오늘을살아가는이들은내일을위해그이야기를어제로묻어둔다.“이미그렇게된걸어떡하겠어,산사람은살아야지.”

그러니까윤성희가하는일이란오늘의빈자리를응시하는것이다.내일을위해어제의죽음을치우고,그흔적마저지워버린현재의공백들.그곳의텅빈풍경은어제도여섯명이죽었고내일도여섯명이죽을테지만,아무일도없었다는듯변함없이오늘을살아가는우리의얼굴처럼무심할뿐이다.어제의죽음과상관없이내일의삶을준비하는그빈자리를바라보며윤성희는의심하며묻는다.이죽음들을‘정말우리의현재와분리할수있는것일까?’

그러니까윤성희가하는일이란우리의현재와연결된죽음들을다시응시하는것이다.이를위해그의사진과글은일터의빈자리마다묻혀있는노동자의이야기를다시끄집어낸다.그과정에서좀처럼잘알려지지않거나기록조차되지않는존재들을,간혹경제발전을위한숭고한희생으로은폐되는이야기들을마주한다.그리고노동자들의죽음마다드리워진자본과권력의어두운그림자를응시한다.최소한의안전장치와안전조치가정상적으로작동되었다면이렇게많은사람들이죽지않았을텐데,이익을위해생명을보호하는최소한의무엇도쉽게무시한자본과권력의그늘은서늘하고도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