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토크(Vostok). 50 (아주 보통의 하루 | 양장본 Hardcover)

보스토크(Vostok). 50 (아주 보통의 하루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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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보통의 하루들
이번 호에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키워드로 삼아 사진과 글을 모았다.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부터 대도시의 생활과 직장인의 하루까지 우리의 일상과 주변을 살피는 알뜰한 시선들이 사진 속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최진영, 김지연, 이석원, 유선혜, 조문영 등의 필자들은 각자 생각하는 ‘보통의 하루’의 모습과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전한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매우 대단한 광경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과 글마다 애써 바라보고 기록하려는 의지를 통해서 발견한 ‘오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보스토크프레스편집부

저자:보스토크프레스편집부

목차


특집|아주보통의하루

002향기와그림자_아키텍?
012InHerArms_Lyripapa?
022SowingtheSeedsHere_KazuyukiKawahara
032NotesonOrdinaryDay_OlaRindal?
042필링인비트윈_박하은?
054Metropolight_DavidGaberle?
066그날이후_최진영?
071보통이아닌날_김지연?
076아저씨_이석원?
081보통의척추를위한자세_유선혜?
086그의감자밭과광장_조문영?
092[연재:영화의장소들]자동차의안과밖_유운성
098[연재:일시정지]공원의내러티브_서동진?
108TTP_HayahisaTomiyasu?
120MilkyWay_VincentFerrane?
132Mother_PaulGraham?
146Passengers_DagmarKeller/MartinWittwer
156DaystoNothing_AlbertBonsfills?
172[에디터스레터]거대하고정교한거울_박지수
174NoSeconds_HenryHargreaves

출판사 서평

오늘또오늘,보통의하루를살아가는나에게

미리자백하자면,사진에‘보통의하루’가담기기는어렵다.우리는오늘하루를삼차원의공간에서,또지속적인시간속에서마주한다.세상에서사진처럼평면적으로,또멈춰서하루를바라볼수없는것이다.사진속에서이차원의공간으로,또순간적인시간으로가시화되는하루는현실그대로‘보통’일수는없다.현실을대상으로삼지만,현실이사진적인시공간으로전환된이미지에는어떤식으로든현실의정보가초과되거나누락되기때문이다.‘보통’을찍어도사진에는‘보통이상’이되거나‘보통이하’로나타날가능성이매우높다.

게다가카메라를들고무언가를주목하는행위와과정에서이미특별함이부여될수밖에없다.걸음을멈추고,바라보고,촬영하고,이미지를고르고,편집하고,보여주는일련의‘사진화’과정에서‘하루’는더이상현실처럼‘보통’인상태로남지않는다.엄밀히말해사진속에나타나는‘보통의하루’는이미지적으로가공되었을뿐만아니라,촬영자가각별하게관찰하고발견한결과물이다.그렇기에진정한의미에서‘보통의하루’는사진에기록되거나사진으로기억되지않는다.정말‘보통의하루’는지금이순간에도덤덤하게지나치고,무심코무시하고,굳이눈길을주지않고,의식조차하지못한채사라지기때문이다.매일매순간아무렇지않게들이마시고내쉬는공기처럼.

이번호특집〈아주보통의하루〉에는가족이나반려동물과함께하는소소한일상부터대도시의생활과직장인의하루까지폭넓게우리의일상과주변을살피는사진작업을담았다.드라마틱한사건이나매우대단한광경이등장하는것은아니지만,이미지마다사진이라는각별한수단을거쳐서,애써바라보고기록하려는의지를통해서발견한‘오늘’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하지만오늘또오늘,그렇게오늘만계속살아가는우리에게는사진으로붙잡을수있는오늘보다무심코놓치고마는오늘이더많을수밖에없다.그렇다면〈아주보통의하루〉에서도우리가의식해야할것은사진안의장면뿐만아니라사진밖에서기록조차되지않고사라지는순간들이다.

책속에서

당연하게여겼던것이라도다시질문을던지면,그렇게물어보기위해애써바라보면모든것이한뼘쯤은새로워진다.특별하기때문에바라보는것이아니라,의미가있기때문에물어보는것이아니라,더바라보기때문에특별하게기록되는장면이,더물어보기때문에특별하게의미를맺는순간이사진에피어난다.그모든작은기적들이이미지에새겨지게된다.
-〈올라린달:노트온오디너리데이〉중에서,39쪽

그날의글쓰기를끝내면운동화를신고집을나선다.한시간반정도집근처공원을걷는다.악천후가아니라면산책을거르지않는다.산책은글쓰기만큼중요하다.글쓰는나와생활하는나를분리해주는행위이기때문이다.모니터앞에앉아글을쓰다보면‘망했다’는생각이자주든다.이번글은망한것같고,형편없는글만잔뜩쓴것같고,내인생도통째로망하리라는불길한예감에시달린다.그러다가바깥에나가길을걸으며타인을,하늘을,새를,나무를바라보면알게된다.세상사람아무도내글에관심없다는것을.내글에관심있는사람은나뿐이며이번글이망한다고내인생이망하는건아니란사실을.걷는동안그단순한사실을깨닫는다.과잉된자의식을훌훌털어낸다.
-최진영,〈그날이후〉중에서,69쪽.

어느날은친구가지금행복한데왜행복한지를모르겠다고말했다.만나서이야기한것이아니고카톡메시지로그말을전해받았을뿐이라그말을하는친구의목소리나표정,손짓,발짓같은것이어땠을지전혀알수없었지만친구가정말이지행복한것같다고느꼈고그글자가내게로도전해져행복의기운이내마음속에조금스미는것같다고도생각했다.친구도지극히평범한하루를보내고집으로돌아와문득그렇게생각한것이리라.그러니까이유를찾으려고해도쉽게찾을수가없었을것이다.…아무이유가없는그행복이야말로왠지행복의궁극같았다.흔히들사람들이누군가를사랑하는데이유가없는것이야말로궁극의사랑이라고생각하는것처럼이유를찾을수없는행복감이야말로궁극의행복이었다.어쩌면그것은아무런일도일어나지않음,에서비롯된것일지도모른다고생각했다.그게내가생각하는아주보통의하루의모습이다.실은보통이아닌,꽤나희귀한날.
-김지연,〈보통이아닌날〉중에서,75쪽.

나는아저씨에게내멋대로혼자한오해를어떤형태로든사과하고싶었지만,다시아저씨를볼일이없었으므로그럴기회는주어지지않았다.아저씨가내게알은척을하고싶어할때에는열심히도망을다니다가,내가뭔가전하고싶은게생기니이젠아저씨가출근하지않는현실.나는오늘도,글을쓰다가머리를식히기위해서하루세번씩아파트앞마당으로산책하러나간다.그러면서,제복을입은낯설고새로운얼굴들을마주치고인사할때마다종종그아저씨를생각한다.물론나는아저씨가영영퇴직했는지아파서휴직중인지여전히알지못한다.하지만만약아저씨가다시출근하게된다면나는아저씨가이곳에서가능한한오래근무하길,그렇지만여전히가급적내게말은덜걸어주기를바라며오늘도평소처럼아파트이곳저곳을거닐고있다.
-이석원,〈아저씨〉중에서,80쪽.

나는보통이라는말이무서웠고항상보통이가장힘겨웠다.보통의상태라는것은보통어려운경지가아니었으니까.김보통.천계영의?만화『예쁜남자』의여주인공이름이다.남주인공의이름은‘독고마테’로,그는이름만큼이나범상치않은,너무아름다워서모든사람의마음을흔드는외모의소유자다.그만화는재벌기업의서자인독고마테가무시무시할정도로능력있고똑똑하며아름다운열명의여성을거치면서성장하는이야기.부동산재벌,스타배우,천재해커,소문난무당,정의로운검사...이들을거치며독고마테는깨닫는다.자신에게필요한사람은바로김보통이라는사실을.나에게도보통이절실했다.동시에보통은너무어려웠다.독고마테가날고기는열명의여성을사로잡고나서야김보통에게향하듯이,보통으로가는길은너무나험난했으니까.지나쳐서도안되고,모자라서도안되는.과잉과결핍사이에서아슬아슬한중심을잡기위해항상바짝몸을긴장하고있어야만겨우유지할수있는절묘한균형.어떤...포즈.
-유선혜,〈보통의척추를위한자세〉중에서,84쪽.

아침에일어나카톡문자를확인했다.부지런한기독교신자신씨의평범한하루는이미시작된모양이다.“(어제)밤10시40분XX도착,주님과동행하는아침을시작합니다.교수님도굿모닝요.”나는전날그가보낸사진을다시꺼내보며하루를시작한다.곧있으면감자꽃이피겠지.햇감자는한달은더기다려야겠지.광장에서농민들과범상치않은하루를보내고나니그의감자밭이예사로운풍경이아님을깨닫는다.그의보통의하루가기후재난을버티고국가폭력에악다구니라도써야간신히유지할수있는시간임을깨닫는다.싸우는사람들의광장덕분에,광장너머일상이흐른다.그들의,우리의평범한하루가시작된다.
-조문영,〈그의감자밭과광장〉중에서,91쪽.

카메라가자동차의내부에놓이는것은그안에있는사람을포착하기위해서거나그가보는풍경을포착하기위해서다.그런데오직전방을주시하는시선말고는아무것도없다면어찌해야할까?이강박적시선의그로테스크함을포착하기위해서는그시선이그리는직선을따라가는동시에그직선의궤적자체를보여줄필요가있다.그러려면일단카메라가철저히자동차외부에머물러야한다.자동차내부에서는이직선의궤적은보여주지못하고기껏해야직선이향하는방향의소실점을보여줄수있을뿐이니말이다.사정이그렇다면,300미터에달하는이동촬영용레일을설치하면서까지얻어낸저가공할숏은고다르특유의천진한엄격함에서나온‘대항-사물’이었다고해야할까?
-유운성,〈자동차의안과밖〉중에서,87쪽.

뉴질랜드의사진가헨리하그리브스는사형수들이마지막으로원했던음식에관한정보를조사하고,이를바탕으로사진작업을진행했다.작가는사형수의시점에서바라본마지막식사의모습을시각적으로연출했다.…내일죽는다면지금당장무엇을먹을래?우리가한번쯤재미삼아주고받는질문과대답이너무나진지하고엄숙하게펼쳐진사진이미지를바라보면할말을잃게된다.곧죽을텐데,음식이무슨대수라고싶다가도그런순간에도자신이좋아하는무언가를희망하는것이야말로인간다운일이아닌지곱씹게된다.그리고사형수에게마지막식사를대접하는매우인간적인전통과그럼에도그들의목숨을박탈하는매우비인간적인제도가공존하는아이러니가씁쓸하게다가온다.그런가하면내일죽을사형수들이다시는먹을수없을마지막식사를바라보면서지금을살아가며마주하는오늘의가치와평범한식사한끼의의미를되새기게된다.
-박지수,〈노세컨즈〉중에서,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