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간길을지금내가간다.”
슬프고아름다운이별의마침표,
시대의지성이어령유고시집
네가간길을지금내가간다.
그곳은아마도너도나도모르는영혼의길일것이다.-서문에서
2022년2월26일,시대의지성이자큰스승이었던이어령이향년89세를일기로별세했다.그보다먼저‘하늘의신부’가된딸이민아목사의10주기를앞두고선생은사랑하는딸과하나님아버지의품으로‘돌아가셨다’.그는소진되어가는생의끝에서오래도록이시들을모아정리하고표지와구성등엮음새를살폈다.그리고먼길을떠나기며칠전,어렴풋하지만단단한목소리로서문을불러주며이시집을완성했다.
1부‘까마귀의노래’는신에게로나아가얻은영적깨달음과참회를,2부‘한방울의눈물에서시작되는생’은모든어머니에게보내는감사와응원을,3부‘푸른아기집을위해서’는자라나는아이들의순수와희망을,4부‘헌팅턴비치에가면네가있을까’는딸을잃은후의고통의시간을써내려간다.헌팅턴비치는딸이민아목사가생전지내던미국캘리포니아의도시다.일찍이떠나닿을수없게된딸을그리워하는‘아버지이어령’의마음은정제된시어를통해투명한슬픔으로빛난다.부록은선생이평소탐미했던신경균도예가의작품에헌정하는시들을모았다.
불켜진창문같은한사람한사람의눈들을마주보렵니다/눈이있는모든생물과만날때에도그렇게하렵니다//(중략)누군가제눈을보고두드리면저도그에게/제방문을열어줄것입니다/그의키가제지붕만큼높아질때까지/우리는우리의방들을모아큰집을지을것입니다.
-「나의몸나의방」부분
이어령선생은날카롭고단호한시선으로세계를꿰뚫어보는명철의소유자였지만,동시에“사람의마음을믿”고자신의세상과사람을진정으로사랑하는시인이기도했다.사랑과공생의힘,인간의선한마음에대한신뢰,미래에대한확신과행동,삶과죽음의형태로순환하는영원한생명의가치…….“보듬어안을작은생명들을”돌보기위한비상을꿈꾸며“활이아니라하프가되거라”평화를강조하던선생의나직한음성이여전히귓전에생생히들리는듯하다.
“가난의추위”,“혼자있는추위”,“전쟁의추위”를이겨내기위해서는“좀더따뜻한게”필요하다.“어머니의겨울이야기”같은자애로운보살핌,“땅속에묻힌파충류의꿈”처럼지긋이품은내일에대한기대,“허들링으로벽을만들어눈보라를막는펭귄들의사랑”에서느껴지는배려의온기같은것.이‘따뜻한것’들이“천년의추위에도떨지않는사람들의생,사랑의양식”이되어공생의든든한디딤돌이되어주는것일지도.
생의한가운데죽음이라는고향으로,
엔딩크레디트에놓은꽃같은시집
눈을뜨면그많던밤은가고/부활의아침이온다//오직하나의아침을위하여/떠오르는태양을보거라/너의아침은나의아침/아침은하나.
-「하나의아침을위하여」부분
‘메멘토모리’,선생의좌우명과도같았던말.이어령은치열한삶의궤적을지나오며잠시도죽음을잊지않았다.죽음은탄생의그자리로돌아가는것이지영원히닫혀버리는결말같은것이아니라고.선생은“죽음이허무요끝이아니라는것”을딸이민아목사의인생을보고배웠다고말한다.“까맣던밤이가고”오늘도내일도아침은온다.흐려지지않는빛의모습으로.“아름답고찬란한목숨의부활”은“다시암흑을치는번갯불처럼”눈부시게찾아온다.
“한호흡의입김”조차나누지못하고“내살내뼈를나눠준”사랑하는딸을잃어야했던뼈시린아픔.이들은이제“혼자긴겨울밤을그리도아파”하지않고,더는“네가없는시간속으로”“혼자”걸어가지않는다.
‘인간이선하다는것’을믿으세요.
그마음을나누어가지며여러분과작별합니다.
내가받았던빛나는선물을나는돌려주려고해요.
애초에있던그자리로,나는돌아갑니다
-이어령(광화벽화추모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