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지은 집 :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양장)

글로 지은 집 :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양장)

$19.52
Description
단칸방 신혼집에서 각자의 서재가 있는 집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북적이고 때로는 쓸쓸했던
이어령 강인숙의 64년 부부 일지
부부에게는 집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셋이었다. 부부에게는 그냥 집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방이 많은 아주 큰 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도 집도 하나도 없는 텅 빈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지었다. 평창동 499-3.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한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해로 1974년을 기억한다. 남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준 해였다. 이어령은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글로 지은 집』은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서재를 갖춘 집을 갖기까지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다. 신혼 단칸방부터 이어령 선생이 잠든 지금의 평창동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의 역정이 담겼다. 1958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떠나고 머문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했던 부부의 삶이 강인숙 관장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책은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어령 선생이 그야말로 ‘글로 지은’ 집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령 선생과의 결혼식 날 풍경, 집을 찾은 여러 문인과의 추억, 동네 한복판에서 두 눈으로 목도한 4.19와 5.16 역사의 현장, 이어령 선생의 집필 비화 등이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저자

강인숙

1933년함경남도갑산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국문과를졸업하고숙명여자대학교국문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65년「현대문학」을통해평론가로등단했으며,건국대학교교수와문학평론가로활동했다.저서로는논문집『일본모더니즘소설연구』『박완서소설에나타난도시와모성』『김동인』『자연주의문학론1·2』,수필집『언어로그린연륜』『생과만나는저녁과아침』『겨울의해시계』『네자매의스페인여행』『아버지와의만남』『어느고양이의꿈』『편지로읽는슬픔과기쁨』『문명기행내안의이집트』『셋째딸이야기』,옮긴책으로는콘스탄틴버질게오르규의『25시』『키랄레사의학살』과에밀아자르의『가면의생』등이있다.현재건국대학교명예교수이며,영인문학관관장이다.

목차

머리말

1)집1.성북동골짜기의단칸방(1958년9월~12월)
사회초년병
야간학교의매력
도배지한장만붙인신방
혼례식
신혼여행생략하기
꽃분홍치마
자장면파티
예고없이오신손님

2)집2.삼선교의북향방(1959년1월~3월)
방두개만있는일각대문집
어항이얼어붙은방
현대평론가협회
키큰손님

3)대가족이야기
유산과가독권家督?
아버님의공작새
그집안의어른들
그집안의효도풍경
아버님의기도
‘페닌슐라’에서점심을
아버님의노년
가는정,오는정

4)집3.청파동1가(1959년3월~1960년3월)
별채같은방
병든여인의모성
그집에온손님들
남조선생과의만남

5)집4.청파동3가의이층집(1960년3월~1961년3월)
친구집에세들기
셋방살이의의미망
가난한마님의품위
장판소동
4.19

6)집5.한강로2가100번지(1961년3월~1963년4월)
내집갖기
야밤에들려온총소리
교사와학생겸하기
텔레비전과오디오
그집에온문인손님들
이집남자들왜이리션찮아?

7)집6.신당동304-194(1963년4월~1967년3월)
1963년신당동
집수리
대궐같은집
남자아이의엄마되기
경이로운신세계
1963년의4중고
세번째아이
부록:『흙속에저바람속에』
그집에온손님들
일터에서만난친구들
-은인같은친구:정금자
-보호자같던연상의친구:김함득
-갈대같이하늘거리는여인의균형감각:서정혜
-타고난훈장:이정자
에필로그

8)집7.성북동1가의이층집(1967년3월~1974년12월)
언덕위의이층집
연탄으로큰집덥히기
‘봉사와질서’
이웃
그집에온손님들
부록:《신상新像》
에필로그

9)집8.평창동이야기(1974년12월~)
소나무와바위산
길이넓어진사연
파격적인땅값
언덕위의하얀집
하얀집의문제
그해의산타클로스
1974년평창동은……
다람쥐와꾀꼬리
이웃
“어떤새끼들이이런데서……”
항아님같던세배객들
집허물고박물관만들기
‘오늘의과업’과‘모든날의과업’
너와나의쉼터

강인숙집필연도

출판사 서평

단칸방신혼집에서각자의서재가있는집에이르기까지,
더나은집필공간을찾아떠나고머문불가피한순간들에대한기록

부부에게는집이필요했다.글을쓰는남편과아내,모두서재가필요했기때문이다.아이가셋이었다.부부에게는그냥집이필요한게아니라,방이많은아주큰집이필요했다.그래서사람도집도하나도없는텅빈산중턱에외딴집을지었다.평창동499-3.일곱번의이사를거쳐마침내원하는크기의집을짓는데성공한것은,1974년의일이었다.문학평론가이자국문학자,강인숙영인문학관관장은세상에나서가장기뻤던해로1974년을기억한다.남편에게원하는서재를만들어준해였다.이어령은좋은것을다주고싶은남편이었다.

『글로지은집』은빈손으로시작해원하는서재를갖춘집을갖기까지이어령강인숙부부의주택연대기다.신혼단칸방부터이어령선생이잠든지금의평창동집에이르기까지,더나은집필공간을확보하기위한불가피한투쟁의역정이담겼다.1958년부터현재까지떠나고머문공간,그리고그공간안에서함께존재했던부부의삶이강인숙관장의이야기속에고스란히스며있다.책은한여자가새로운가족과만나동화되는과정의이야기이기도하고,이어령선생이그야말로‘글로지은’집이야기이기도하다.이어령선생과의결혼식날풍경,집을찾은여러문인과의추억,동네한복판에서두눈으로목도한4.19와5.16역사의현장,이어령선생의집필비화등이책곳곳에소개되어있다.

“세상에나서내가가장기뻤던때는,그에게원하는서재를만들어주던때였다.
이어령씨는내게좋은것을다주고싶은그런남편이었다.”

이어령선생은2015년대장암에걸렸다.생명에시한이생기자선생은조급해졌다.쓰다가끝내지못한글이많았기때문이다.그래서항암치료를거부하고혼자글을쓸수있는고독한시간을갈망했다.아내인강인숙관장도절로혼자있는시간이많아졌다.삶을정리해야할시기였다.그래서책을쓰기시작했다.구십이되어가는동갑내기부부가하나는아래층에서,하나는위층에서글을쓰면서,각기자기몫의아픔과외로움을견뎌야하는세월이계속되었다.

“네것과내것을분리할수없는것이부부관계이니혹시라도남편을다치게할까봐마지막까지손이떨렸다.”_서문에서

이책은어디까지나강인숙관장의입장에서쓴,“한신부가단칸방에서시작해서‘나만의방’이있는집에다다르는이야기”다.강인숙관장은서문에서,남편이야기가나올수밖에없는이글을쓰면서혹여라도‘그’를잘못읽었을까봐조심스럽다고고백한다.그럼에도우리는,결코깊숙이알수없었던한시대를대표하는지성의빛나던청춘과,평생쉬지않았던치열한배움의삶과,한가정의남편이자평범한아버지였을그가뚜벅뚜벅걸어온길을비로소따라가볼수있기에,이책의출간이더없이고맙고반가울수밖에없다.

“둘만남는세월이왔다.나간자리가살펴져서슬프고외로웠다.
우리는그외로움을공부하고글쓰는일로메꾸어갔다.”

책은이어령강인숙부부가십육년동안거쳐간여덟곳의집이야기로구성되었다.“오년이나사귀어보았으니,결혼할것이아니면이쯤에서끝내는게좋겠다”라는어머니의말에화들짝놀라빠르게계를들어마련한보잘것없던성북동골짜기의셋방,머리맡에놓은어항속붕어가얼어붙을만큼냉골이었던삼선교북향방,이어령선생이사온철이른수박을먹으며가슴충만하게첫아이를기다리던청파동1가,4.19와5.16을동네한복판에서목도하며동조를갈망했던청파동과한강로집시절,저자에게는사중고가겹친힘든시기였지만이어령선생은좋은글이많이나와독자들의뜨거운호응을받았던신당동집에얽힌기억,박경리선생?김지하시인과왕래하던성북동언덕위의이층집,그리고부부에게마지막쉼터가되어준지금의평창동499-3.

가족이늘고글이늘고,그래서북적였고따뜻했고,그러다가나간자리가살펴져서슬펐고쓸쓸했던이어령강인숙부부의그간알려지지않은이야기가책에생생하게담겨있다.

책속에서

우리는둘다남편이나아내같은건되고싶지않았는지도모른다.다방에서떠들다헤어지는관계가훨씬애틋하고간결했기때문이다.결혼에는성과돈이끼어들어번거로워진다.양가의가족들과뒤엉겨삶이복잡해지는것도달갑지않다.우리힘으로는어쩔수없는비본질적인변수가자꾸생겨나서생활을늪지대로만들어버릴수도있기때문이다.

하지만같이있을수있는공인된방법이결혼밖에없으니선택의여지가없었다.전통적인보통가정에서자라나서우리는둘다관습과규범에서자유롭지못했다.남하는의식을생략하고과감하게동거생활을시작하는흉내같은것은낼용기가없는상태니결혼식을올리는것밖에같이있을방법이없었다.우리는그냥계속같이있고싶었고,아기도낳고싶었다.결혼은그두가지가용납되는유일하게합법적인방법이었다.
---「집1.성북동골짜기의단칸방」중에서

연재는한강로집을떠나기전에이미시작되어서,그는수리를하는동안에도계속글을써야했다.이사간다음날도그는글을썼다.아기가태어나던날도마찬가지다.집수리가덜끝나서한동안은침대매트리스를이방저방으로끌고다니면서그위에밥상을올려놓고〈흙속에저바람속에〉를써야했다.그렇게노상글을써야해서그에게는서재가필요했다.내가그의서재를치외법권지대처럼일상세계와격리시키려고기를쓰는이유도거기에있다.어쩌면나는힘들고번거로운일을대신해서그의글쓰는시간을늘려주기위해서둘러결혼했는지도모른다.그는학교에나가면서연재를계속했기때문에언제나피곤했던것이다.
---「집6.신당동304-194」중에서

그집은우리가살았던집중에서가장큰집이었다.가장많은가족이살던집이기도했고,가장오래산집이기도했다.우리는마흔한살부터일흔넷이되는2007년까지삼십삼년의세월을그집에서살았다.삶의전성기를거기에서보낸것이다.세아이의결혼식도그집에서치렀다.그리고여덟손자의돌잔치도거기서했다.할아버지할머니가되는축복도거기에서받은것이다.우리는열여섯명의대가족이되어그집에서북적거리며살았다.

그러다가둘만남는세월이왔다.1993년부터우리는신혼초처럼둘이만그집에서살게되었다.둘이시작한집에둘이남았으니원상으로돌아간셈인데,세상이다빈것같이늘헛헛했다.아이들이나간자리가살펴져서슬프고외로웠다.
---「집8.평창동이야기」중에서

이곳에자리를잡은지반세기가가까워온다.이어령씨의장엄한반세기가평창동499-3에담겨있다.머지않아그이와나는걷는일이어려워질것이다.머지않아그이와나는쓰던글을마무리하지못한채사는일에서손을놓을것이다.신이허락한다면우리는이집에서숨을거두고싶다.평창동은사계절이모두아름다우니어느철에가도무방하지만,이왕이면송홧가루가시폰chiffon숄처럼공중에서하느작거리는계절이면좋겠다.
---「집8.평창동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