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수상작가한승원이마침내완성한
‘조선천재3부작’『추사』『초의』『다산』을다시읽는다!
한승원소설가는1968년대한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목선」으로등단하여,반세기가넘도록소설을써오며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김동리문학상등굵직한문학상들을수상하고,수많은대표작을남겼다.“소설가는흘러다니는말이나기록(역사)의행간에서려있는숨은그림같은서사,그출렁거리는파도같은우주의율동을빨아먹고”산다는한승원의말처럼,역사속숨어있는진실을찾아내고자하는그의남다른소설적집요함은한시대의공기,바람과햇살,심지어역사적인물의숨결까지살려내소설에담아내기에이른다.그가평생에걸쳐좇아온‘조선천재’3인의평전소설『추사』『초의』『다산』이열림원에서새롭게출간된다.
어지러운세상속‘물흐르듯꽃피듯’살아간
차의선승,초의의삶을그리다
“지난한해동안내내나는초의스님과함께살아온셈이고그윽하고향기로운선풍을쐰듯싶다.자연초의스님이사귄여러선비들과함께어울릴수밖에없었다.내가초의스님속으로들어가고초의스님이내속으로들어와있었다.그결과가이소설이다.”_‘작가의말’에서
“초의는왜자기의도닦음으로얻은깨달음을평생동안중생에게되돌려주려했는가,하는것은나에게늘하나의화두가되어왔다.오랫동안그화두를든채책의내용을수정하고가필했고,이제개정판을낸다.”_‘작가의말-새로펴내며’에서
그이름대로평생을“풀옷의소탈한정신”으로살아온스님,초의.“시서화뿐만아니라범패,탱화,단청,바라춤에이르기까지”여러방면에서다재다능했던그는다산정약용,추사김정희등과실학사상을공유하며“묵은세상”을“싱싱하게바꾸어”나가려했던인물이다.“차에대한해박한지식”으로『다신전』『동다송』등의다서(茶書)를편찬하며한국차의기틀을마련한그는“한국차의중시조”라불리며,실학사상을바탕으로한선(禪)을실천함으로써“유학선비와벼슬아치들을제도”해기울어가는조선사회를바로잡고자했다.
“당대의지식인들과폭넓게교류”하며“호남칠고붕”으로서추앙받았지만,초의스님에대한기록은많지않다.한승원소설가는그삶을복원하기위해초의가“사귀었던여러지식인의행장이며문집,비문을뒤지고”“해남대둔사일지암과강진의다산초당사이를수없이”오고가며이소설을펴냈다.“차의선승”이라는,우리에게잘알려진모습이아닌그그림자에가려있던초의의삶과인간적인면모를부각하여복원해낸것이다.
“먼훗날그돈받을사람이따로있을것이네”
동전두닢의빚,추사김정희와다산정약용
소설에서초의는전염병으로모든것을잃고홀로고향을떠난다.빈털터리로강을건너지못할처지에있던그에게한여인이동전두닢을건네주고,초의는무사히고향을벗어난다.이후초의는자신이받았던그도움을다른이들에게선을베푸는것으로갚고자한다.“먼훗날그돈받을사람이따로있을것”이라는여인의말을가슴에품고…….세상에는그빚을갚아야할사람들이“외로운무인도들처럼지천”으로널려있었고,스승‘다산’과벗‘김정희’도예외는아니었다.
두사람은초의와같은뜻을품고함께나아가는동지였고,초의가부처님의마음으로품어야할존재이기도했다.초의에게큰산이자아버지같은존재였던정약용은그에게“실학과철학적인삶”에대해가르쳤다.김정희와는“허물없는지기”로살며백파등선지식을찾아가“선(禪)에대한담론”을벌이고다녔다.그러나정쟁의한가운데서있는그들은항상“어느정적이자기에게사약을내리라고소를올리고있지나”않을지두려워했다.초의는그들이“마음의안정을잃고”앓을때마다“그자리를메꾸”며동전두닢의빚을갚아나갔다.한승원소설가는“그상황을소설속에서재생해놓았다.”
초의는평정을찾을수없을때늘하늘을쳐다보곤했다.아,외롭고답답하고슬플때면하늘을쳐다보라는말을김정희에게해줄것을깜빡잊었구나.텅빈하늘,그것은얼마나좋은위안처인가.우리들이온곳도그텅빈곳이고돌아갈곳도그텅빈자리아닌가._본문에서
책속에서
아무에게도이야기하지않고바람처럼바랑하나짊어지고지팡이하나짚고.대관절어느누구에게무슨일이있어어디엘다녀오겠다고말을하고떠날것인가.중이중인것은망망대해속에떠있는섬처럼혼자인것.짙푸른하늘의한장흰구름같은것아닌가.
---p.19
정약용이떠나가고나자다산과강진이텅비어버린듯했다.서운해하는자기마음을웃었다.본래에정약용은다산에있지않았다.정약용의본래의고향으로돌아가고있는것이다.눈에보이는것보이지않는것모두가다본래의고향으로돌아간다.텅빈곳으로.
---p.86
“좀덜먹고살어.배고픔을참을수는있지만치욕은참을수없는법아닌가.후회가될일을했다싶으면은당장자르고새로이시작을해.새로운삶은중이머리를깎듯이,뱀이허물을벗듯이자르고벗으면되는법이여.”
허련은초의의두손을감싸쥐며소리죽여오열했다.어디선가설해목꺾이는소리가다시들려왔다.
---pp.174~175
초의는평정을찾을수없을때늘하늘을쳐다보곤했다.아,외롭고답답하고슬플때면하늘을쳐다보라는말을김정희에게해줄것을깜빡잊었구나.텅빈하늘,그것은얼마나좋은위안처인가.우리들이온곳도그텅빈곳이고돌아갈곳도그텅빈자리아닌가.텅빔은큰깨달음을낳고큰깨달음은텅빔을향해나아가는것인데.
---p.193
김정희를만나,우리좀더향기롭게죽어가자.아니죽음그자체를초월하자,하고말할참이었다.김정희와나는전생에무엇이었고어떤관계였을까.김정희만나를조바심치며그리워하는것이아니고,나도김정희를오매불방그리워하며조바심하며산다.
---p.235
“나는차를마실때마다늘찻잎하나하나를땄을손,그것을가마솥에덖었을손을생각한다.(중략)내가젊어서부터여러선비들을만나시회를하고다닌것은차향차맛차의뜻을제대로가르치려는것이었다.사람의죄가따로있는것이아니다.차를마시되찻잎딴손을알지못하는죄,가마를타되가마멘사람의땀이나가쁜숨결을알지못하는죄가제일큰죄다.”
---pp.269~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