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좋은 단편은 그 안에 담긴 인생 단면을 통해
일종의 ‘내포적 전체성’에 이르는 각별한 경험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점에서 한동일의 여섯 편의 단편은 무의미한 관성의 집적으로 보이는 우리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끔 해주는 시선의 만화경萬華鏡으로 훤칠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어느 제도적 형식보다도 한 시대를 징후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살아 있는 보고寶庫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 소설집은 그러한 도정의 첨예한 증좌가 되어주면서
그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미학적 총아로 나아가게끔 해줄 것이다.”
_문학평론가 유성호
1. 인간 모독
학생이었던 시절, 나는 폭력의 피해자였다. 단 한 번도 그 상처를 달랠 길도 치유할 방법도 찾지 못했던 나는, 선생이 된 이후로 또다시 얻어맞았다. 선생이라는 이유로 구타했고, 선생이라는 이유로 얻어맞았다. 학교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조금의 그림자도 남겨주지 않고 나를 운동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던져두었다. 나는 우두커니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선생일 때도 달라진 건 없었다.
2. 죽음을 맞이한 방
M은 자신의 죽음이 타살로 보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에게는 죽음의 값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방식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저 빈집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찾아오는 사려 깊은 이방인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어느 날 미지의 존재가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 그럴수록 죽음에 대한 반감, 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져갔다. 불필요한 배려가 그에게 닿기 직전까지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 소송
은행장이 남자를 찾았다. 그는 은행의 파산을 막아야 했다. 행장의 지시에 따라 그는 출장을 떠났다. 하지만 소송에 잠식된 남자는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다. 종일 그를 추적하고 있던 까만 세단, 스스로 남기고 다니던 증거. 그 흔적들로 인해 그는 소송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는 그것이 모두 꿈이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차 타워에 숨겨 놓은 하얀색 렌터카를 확인해야만 했다.
4. 냄새
새벽에 온 전화, 박훈이 죽었다. 그는 내게 빚을 남기고 죽었다. 그가 살던 집에서 단 한번도 맡아볼 수 없었던 역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냄새가 내 몸 구석구석 깊게 스며들었다. 나는 그의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5. 불 꺼진 집
아내는 마지막까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떠나기 전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나는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둘의 관계를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오직 둘의 훔쳐낸 대화뿐이었다.
6. 팽팽하게 감긴 태엽
광막한 호수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 책을 호수에 던졌다. 알을 끌고 가는 남자, 커다란 호박을 베고 자는 남자, 달리는 꿈을 꾸는 하얀 말, 빨간 사막과 까만 산을 거쳐 도착한 모든 달이 떠있는 대지. 마침내 만난 그 남자는 창조자이자 죄악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의 심연이다.
일종의 ‘내포적 전체성’에 이르는 각별한 경험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점에서 한동일의 여섯 편의 단편은 무의미한 관성의 집적으로 보이는 우리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끔 해주는 시선의 만화경萬華鏡으로 훤칠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어느 제도적 형식보다도 한 시대를 징후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살아 있는 보고寶庫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 소설집은 그러한 도정의 첨예한 증좌가 되어주면서
그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미학적 총아로 나아가게끔 해줄 것이다.”
_문학평론가 유성호
1. 인간 모독
학생이었던 시절, 나는 폭력의 피해자였다. 단 한 번도 그 상처를 달랠 길도 치유할 방법도 찾지 못했던 나는, 선생이 된 이후로 또다시 얻어맞았다. 선생이라는 이유로 구타했고, 선생이라는 이유로 얻어맞았다. 학교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조금의 그림자도 남겨주지 않고 나를 운동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던져두었다. 나는 우두커니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선생일 때도 달라진 건 없었다.
2. 죽음을 맞이한 방
M은 자신의 죽음이 타살로 보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에게는 죽음의 값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방식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저 빈집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찾아오는 사려 깊은 이방인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어느 날 미지의 존재가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 그럴수록 죽음에 대한 반감, 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져갔다. 불필요한 배려가 그에게 닿기 직전까지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 소송
은행장이 남자를 찾았다. 그는 은행의 파산을 막아야 했다. 행장의 지시에 따라 그는 출장을 떠났다. 하지만 소송에 잠식된 남자는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다. 종일 그를 추적하고 있던 까만 세단, 스스로 남기고 다니던 증거. 그 흔적들로 인해 그는 소송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는 그것이 모두 꿈이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차 타워에 숨겨 놓은 하얀색 렌터카를 확인해야만 했다.
4. 냄새
새벽에 온 전화, 박훈이 죽었다. 그는 내게 빚을 남기고 죽었다. 그가 살던 집에서 단 한번도 맡아볼 수 없었던 역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냄새가 내 몸 구석구석 깊게 스며들었다. 나는 그의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5. 불 꺼진 집
아내는 마지막까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떠나기 전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나는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둘의 관계를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오직 둘의 훔쳐낸 대화뿐이었다.
6. 팽팽하게 감긴 태엽
광막한 호수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 책을 호수에 던졌다. 알을 끌고 가는 남자, 커다란 호박을 베고 자는 남자, 달리는 꿈을 꾸는 하얀 말, 빨간 사막과 까만 산을 거쳐 도착한 모든 달이 떠있는 대지. 마침내 만난 그 남자는 창조자이자 죄악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의 심연이다.
불 꺼진 나의 집
$15.00
- Choosing a selection results in a full pag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