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숲속에는 축복이

림: 숲속에는 축복이

$17.00
Description
“직접 해 봐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어.”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다섯 번째
날카로운 가시가 포옹의 부드러운 손길로 변모하는 시간,
가장 큰 포옹은 역설적으로 가장 생생한 아픔으로부터 태어난다

2023년 봄, 1호 『림: 쿠쉬룩』을 선보이며 시작한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이 어느덧 세 번째 봄을 맞아 독자에게 5호 『림: 숲속에는 축복이』를 전한다. 문학이라는 커다란 숲에 온전한 개체로 피어 있는 작품들을 기준과 경계 없이 한곳에 모아 소개하고자 하는 림의 취지에 맞게 이번에도 무성하고 이채로운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림: 숲속에는 축복이』에는 남궁지혜, 돌기민, 양기연, 양수빈, 윤단, 이서수 작가와 전승민 문학평론가가 함께한다. 이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경험했던 고통의 한가운데에 선다. 자기 안에서 솟는 욕망을 제 손으로 그러쥐고자 하지만 허공만을 더듬는 두 손을 망연히 바라보는 쓰디쓴 젊음을 그린다.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니고 먹기 위해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이중 미로 속에서 그들은 술독에 빠지고(이서수, 「미식 생활」) 어엿한 개인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 나가 보고자 애쓰지만 그럴수록 멀어지는 관계의 조각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남궁지혜, 「팔뚝의 노릇」). 인간의 본능적인 쾌락에 탐닉하며 생의 고통에 대한 마취제를 강구해 보기도 하지만(돌기민, 「불가마 메이트」), 그 원초적인 동물성은 욕지기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양수빈, 「숲속에는 축복이」). 험난한 시절을 함께 통과해 온 가족은 때가 되면 이별해야 할 죄의식이 되기 마련이고(양기연, 「홀로틀의 포옹」)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사랑하는 이들은 각자의 트라우마 속에서 버둥거리며 함부로 서로를 껴안지 못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위악으로 감춰 본다(윤단, 「친구를 데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더 나은 쪽으로 변하지 않고,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생의 열악한 조건”이 난무하는 이 “잔인한 시대” 안에서 여섯 편의 소설은 최선을 다해 아파하고 최선을 다해 실패한다. 소설은 함부로 위로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앓는다. 그것이 “고통으로 점철된 이 시대를 건너 오늘과 다른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최후의 저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큰 포옹은 가장 생생한 아픔으로부터 태어”나므로, 이 소설들을 통해 만난 우리는 나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가능한 한 가장 큰 포옹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남궁지혜,돌기민,양기연,양수빈,윤단,이서수

저자:남궁지혜
2017년경향신문으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저자:돌기민
더러운것,징그러운것,이상한것에속절없이끌린다.수치심에관심이많다.제법앙칼지게사는게작디작은소원.장편소설『보행연습』은미국,영국,폴란드,이탈리아,튀르키예에수출됐으며다코타존슨의영화제작사‘티타임픽처스’에영상화옵션이판매됐다.@dolkimin

저자:양기연
2022년부산일보신춘문예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저자:양수빈
2023년문화일보신춘문예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저자:윤단
2024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저자:이서수
소설을읽고쓰는일이가장즐거운사람.소설집『젊은근희의행진』『엄마를절에버리러』,장편소설『마은의가게』『헬프미시스터』등이있다.

해설:전승민
문학평론가.우주가우리에게준두가지선물은사랑과질문이다.문학평론집『퀴어-(포)에티카』와산문집『허투루읽지않으려고』그리고『다시만날세계에서』(공저)등을썼다.

목차

남궁지혜·팔뚝의노릇
돌기민·불가마메이트
양기연·홀로틀의포옹
양수빈·숲속에는축복이
윤단·친구를데리고
이서수·미식생활

작품해설|전승민·아픈자여,그대의이름은젊음이니

출판사 서평

너대신에내가될수있고
나대신에네가되어줄수있는것들.
그러니까기선아,절대지지마.
-남궁지혜「팔뚝의노릇」

어느날‘선양’에게오랜친구‘기선’의전화가걸려온다.남편에게줄선물로가구를조립하려고하는데팔을다쳐혼자할수없다고,함께조립해줄수있느냐는요청이다.비혼주의자인선양은기선의부탁이탐탁지않다.꺾이지않는올곧은성정을가졌던기선이결혼이후남편을위해희생만하는것처럼느껴지기때문이다.열다섯살부터단짝이었던선양과기선은농담처럼함께하는미래를그려보곤했었다.수많은미래를쓰고지우고다시쓰기를반복하며함께늙어갈수있을거라고,세상과시절에꺾이거나지워지지않도록언제나서로에게팔뚝을내밀어줄거라고선양은믿었다.하지만기선의결혼이후,이미래엔자꾸만기선의남편이침입하게된다.「팔뚝의노릇」은“같은교실에서매일얼굴을마주하던친구와의관계가대학시절과결혼생활을거치면서이전과다른양상으로변모할때,그와더불어변하는사랑과의존의다면적인복잡성을수용해야만하는이의불가피한성장통”을그리며,무언가를지키고자하는누군가를위해팔뚝을내민다.

냉혹한세상의이치.
냄새가좋아야비로소어떻게생겼는지눈에들어오고
또잘생겨야말도걸고싶어지지.
-돌기민「불가마메이트」

찜통같은더위가계속되는세계.기후변화에적응하지못한동물들은멸종했고,땀을줄줄흘리는인간들에게는‘오도르’라는복족류가붙어있다.이오도르는인간의땀을양분으로삼는자웅동체생물이다.오도르가만들어낸배설물은특유의향을뿜는다.그래서오도르는어떤인간에게는(악취를뿜는)기생생물처럼느껴지고,어떤인간에게는(향기를뿜는)공생생물인것처럼느껴진다.악취나는이는연애도일도순탄치않고,향기나는이는그향기덕에인기를얻고돈을벌지만그의향기를이용하려는인간들에게이용당하기일쑤다.이렇게「불가마메이트」는체취가인간의사랑과우정에서부터삶의방식까지결정짓는사회를배경으로,악취를풍기는‘ㅎ’과향기를풍기는‘ㅇ’의공생인지기생인지모를미묘한관계를그린다.또한이소설은비인간인오도르‘상우랑이’,상반되는체취를가진‘ㅎ’과‘ㅇ’,세명의화자를등장시켜특유의어투로“시점의다각화를통해사랑의불가능성과그리하여기생으로만가능한사랑의구조를환유적으로보여”준다.

깊은자상과모유,절망과희망.
강인하잖아.상처받고도포옹하려했던점이좋아.
-양기연「홀로틀의포옹」

부모님을여의고남겨진두자매,언니와함께의지하며살아가던‘나’는어느날언니의임신소식을듣게된다.자발적비혼모인언니는산후우울증으로아이를돌보는데어려움을겪고,나는언니를도와조카보윤을살뜰히보살핀다.그러던중우연한기회로디자인회사의인턴직을제안받게되지만,부모님의죽음이후‘나’를위해젊은시절을고스란히희생한언니의마음을외면하고떠나기란쉽지않다.“서로를안는일이미안함과부채감으로행해진다면그관계와마음은결국언젠가는위태로워질테고,각자의생이서로에게저당잡혀있다는감각은종국에는원망으로치달을것이다.그래서여자는뚜벅뚜벅자신의생을향해홀로걸어간다.사랑하는이들을과거의빚속에서원망하지않기위해서,자신을포함한우주의모든것을깨끗한마음으로껴안을수있는미래의날들을위해서”라는전승민평론가의해설처럼,이소설은경계에선이들의등을조용히앞으로밀어주며,타인에게품을내주기위해서는내안에자신을위한품이먼저필요함을깨닫게해준다.

“대체그런곳에왜가신거야?”
왜냐고?나는눈을깜빡였다.
눈가에맺혀있던눈물이마룻바닥위로똑똑떨어졌다.
[…]
“축복…….”
언니가어리둥절한얼굴로나를바라봤다.
“축복받으려고.”
-양수빈「숲속에는축복이」

열다섯살이던7월의어느날,‘예정’은숲난임센터로입소를결정한부모님의뜻에따라외삼촌네집에맡겨진다.갑작스러운상황에혼란한와중에도예정은사촌언니예주와의생활이나쁘지만은않다.외삼촌에게언니를감시하라는특별한임무를받기전까지는.하지만예정의서툰감시임무는예주에게금방들통나게되고,예주는그런나에게한가지제안을한다.예정의부모가입소한숲난임센터로데려다주겠다고.“한인간이자라서경험하는최초의트라우마가발생하는진원지로서폭력은집안에서태어난다.양수빈의「숲속에는축복이」는그‘집’의토대가되는이성애섹슈얼리티,그위로덧씌워진자연이라는신화적코드를섹스의그로테스크함과폭력적인사랑의관계를경유해탈신화”하며어떤아픔과상처를치유하기위해서는함께“사건속으로같이뛰어드는”타인이필요함을,그래서인간은다른인간을사랑할수밖에없다는것을보여준다.

나는선생님과채영에게서무언가를본다.
저건애쓰는얼굴들.무사하기위해애쓰는얼굴들.
아무도울지않고.그런데왜마음이들끓는거지?
-윤단「친구를데리고」

이소설은어떤하루를그린다.친구를데리고선생님을찾아가게된하루.인적드문어느지방소도시에서보낸느린하루.언뜻보기엔담담하고잔잔한하루.친구에게잠꼬대에관한이야기를듣고,이사를앞둔선생님집에놀러가고,함께마트에가서장본것을나눠들고,밤엔잠든친구가정말로잠꼬대하는것을듣는하루.그런데‘나’의회상을통해이들에게벌어졌던과거의일들이조금씩드러난다.다들마냥무결하지않고,그렇다고마냥나쁘지만도않아서우리는어떤판단도내리지않은채로,그저이들의하루를고요히따라가게된다.“어느선한사람은사라지는그순간에조차도자신의손길이스쳤던것에새겨진상처를아물게하는것이마지막과업이라여기기도한다”는전승민평론가의해설처럼,이소설은슬픔이범람하여다른밭들까지뒤덮지않게애써끌어안고있는모양새를,그엉망진창을사랑하는마음을담담하게지켜본다.

음식은그저음식이지않고,
입은그저입이지않다.
그것은기억을불러일으키고생과사에개입하며
특정한리듬안에잠기게해준다.
-이서수「미식생활」

먹방유튜브와요리사들의서바이벌프로그램이인기를끄는지금의한국에서,이소설은먹는행위가얼마나다양한형태로나타날수있는지,각각의형태가무엇에서기인해어디로가닿는지톺아본다.맛집투어를유일한재미와욕망으로여기고미식생활에열을올리는‘나라’,삶에대한의욕뿐아니라입맛까지잃어술만마시는‘호린’,활동하고기능하는몸이아닌인스타그램에박제된이미지로서의몸을위해먹고토하는‘미라’,“식사도노동”이라고말하며식탐을주체하지못하고뜨거운음식을찾는‘팀장’과,패배감을매운음식으로푼다는‘남자의아버지’까지.미래에대한낙관을잃은세대,그래서충족하기쉬운미식의즐거움에빠져드는지금.하지만이러한“여러개의식탁을뒤로하고소설이궁극적으로뒤좇는것은서로다른갈림길에서멀어지는듯보이는우정의행방”이다.결국우리는“무엇을먹느냐가아니라,[...]그보다더중요한것은실상누구와함께먹느냐의문제”라는것을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