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흑

흰흑

$12.00
Type: 현대시
SKU: 9791170403906
Categories: ALL BOOKS 신간도서
Description
자명하다고 여겨온 ‘회색’의 한계와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출현하는 빈칸의 무한한 가능성

“흰색에 흑색을 더하면 흰흑색이 된다.”
언어와 사물 사이의 틈을 응시하며 낯선 감각과 사유의 지평을 열어온 김뉘연의 다섯 번째 시집 『흰흑』이 시-LIM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도전적인 전시와 퍼포먼스 프로젝트 등을 선보이며 시의 외연을 다른 매체로 확장해온 그는 전작 『모눈 지우개』 『문서 없는 제목』 『제3작품집』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등에서 “텍스트의 끊임없는 현재적 재배치와 갱신되는 관계-맺기”(해설)를 통해 대안적 공간으로서의 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시화해왔다.
“흰색에 흑색을 더하면 흰흑색이 된다”라는 낯선 지침으로 시작하는 『흰흑』은 관계-맺기의 공간으로서의 ‘빈칸’을 더욱 급진적인 방식으로 제시한다. 시인에 따르면, 흰색과 흑색은 만나 회색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겨온 ‘회색’의 사전적 정의가 지닌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 ‘흰흑색’이라는 불가능한 공간이 탄생한다. 그것은 “이 시집의 언어가 양쪽을 향해 열린 채 움직일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흰흑』은 “언어에 내재한 차이와 관계의 운동을 형상화한” 1부와 3부, 그 운동이 구체적 만남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2부로 나뉜다. 2부에 등장하는 일상 속 수많은 만남은 “‘나’와 ‘너’는 무엇을 통해 서로를 향해 가는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조명된다. 시인에게 있어 만남은 ‘이’. ‘그’, ‘저’와 같은 지시어의 거리가 만드는 ‘공백’을 통해 그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불가능과 시 사이를 오가는 이 만남은, 혼란과 불안의 시대를 살며 언어의 사전적 정의만을 움켜쥔 채 ‘만날 수 없다’는 감각이 초래하는 무력감에 놓인 우리에게 보다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방법론을 연습하도록 만든다. 이 작은 가능성이 전망하는 약속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가장 진실한 문학적 실천이 될 것이다.
저자

김뉘연

2020년『모눈지우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모눈지우개』『문서없는제목』『제3작품집』『이것을아주분명하게』,소설『부분』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청색
청색
갈색
청색
청색

2부
이사람
저사람


건네받은것


각자바위
손발

소도시에서
하천에서
폭포에서
동산에서
공원에서
카페에서
찻집에서
빵집에서
옷집에서
집에서
돌과돌의형상
하나의형상과또하나의형상
왼쪽의아래


쉬운말
가늠하는돌
세폭
돌부리
엎드러지다
안락의자
앞뒤가맞지않을가능성
두꺼운상태
말의넘침
무릎으로걷는모습
팔꿈치로걷는모습
바라지않는선례
시원찮은결과
훤히들여다보이는천
글쓰기의방임

3부
갈색
갈색
청색
갈색
갈색

해설
빈칸의시-김뉘연론│최가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불가능과시의사이를끊임없이왕복하며세계와연결되다

이것과완전히다른이것이있고,이것과어느정도다른이것이있다.이것과완전히다른이것은애초에이것과별개로,굳이이것과다르다고말할필요가없는단독의상태이다.그러므로완전히다른이것을이곳으로끌어와이것과완전히다르다고말하는것은지나친당연함에이른다.이것은이것이고,이것은이것이다.
-「청색」부분

언어와사물사이의틈을응시하며낯선감각과사유의지평을열어온김뉘연시인의『흰흑』이‘시-LIM시인선’의네번째시집으로출간되었다.도전적인전시와퍼포먼스프로젝트를선보임으로써매체를사유하는예술가이기도한그에게시는“자기자신의한계를다시사유하기위한조건이자과제”이다.(해설·최가은평론가)
“흰색에흑색을더하면흰흑색이된다.”『흰흑』은이러한시인의말로시작한다.최가은평론가는『흰흑』의지침이“양극의두색을아우르는중간자적정의”를바탕으로불가능과가능사이를왕복하는과정을시로형상화한다고설명한다.자명한사전적정의에기반한“‘회색’의한계를마주하는순간비로소출현하는작은가능성”이독자를새로운의미의지평으로이끄는것이다.
『흰흑』의첫번째시「청색」은“당연함”이어떻게“또다른당연함”으로옮겨가는지를보여주며,이러한“언어의작동원리에대한정교한자의식”의원리를재료삼아시인과시의내밀한관계를도모한다.그렇게시인에게‘지면’은무한한작은가능성들을펼쳐보이는“황홀한‘만남’의공간”이된다.

먼곳의‘저사람’혹은보이지않는‘그사람’과의
만남을도모하는구체적방법론

시집출간에앞서문학웹진LIM에연재되었던다섯편의시「청색」「청색」「갈색」「청색」「청색」에서단어들은무수한조합과경우의수로부터무량한다양성,또는가능성을가지고증식한다.『흰흑』의지시와정의로생성되는간극은자유를만들어내는구조,몰입을끌어내는제한으로기능해동일해질수없는각자의언어를연결한다.소도시에서시작된여정은하천에서폭포로,동산으로,공원으로,카페,찻집으로이어져집으로의귀가로마무리되는듯보이지만,지시는끝없이읽는이로하여금백지위의문자와장소,사물을만나고기억을공유하도록이끈다.

저사람을만난다.
저사람이뛰고있고,함께뛰기시작한다.
저사람이멈춘다.
저사람이운다.나는컵을든다.
저사람이세면대로향한다.
저사람이기침을한다.
여기는운동장이다.
컵은텀블러이다.
세면대에서,물이나오지않는다.
물이닫혀있다.
저사람이계속기침을한다.그렇게운다.
기침은눈물이다.눈물은땀이다.
열린물.
내가손수건을꺼낸다.호주머니에서.
옷에호주머니가하나달린다.
내옷.
손수건을건네받는다.저사람.
내손수건.
손이수건을만난다.
흘러내리는손수건.
흐르는물.
담긴물.
세면대가움직였다.
저사람도.나도.
손수건도.
나는호주머니달린옷을펄럭여본다.작은바람을만든다.
저사람이손수건을펼친다.
작은바람이다.
작은바람을나눈다.
여기.저기.
요기.
저사람은나를만난적이있다.바람이그것을불러온다.
나도저사람을.
나는물을마시기로한다.저사람은얼굴을씻기로한다.
손수건이저사람의얼굴을덮는다.
그것을떼어낸다.

-「저사람」전문

‘나’와‘저사람’사이에놓인것은독자인우리의자리이다.“작은일의흔적에귀기울이는”이공간에서우리는이결속을비트는보이지않는흔적과마주한다.앞선문장을소환하는공동의기억과함께현재를또다른현재로연결하는김뉘연의만남은“매체간경계의와해로상징되는혼란과착종의시대”를살아가는우리에게어떤의미를주는가?그것은단어의사전적정의를폐기함으로써비로소얻어지는관계맺음의작은가능성이다.
김뉘연의시도는텍스트사이를거니는독자가사물과장소,사람에붙여진지시에얽매이지않고,계량할수없는것을계량하며만날수없는것을만나게해현실/현재에고립되어있는‘나’들이‘저사람’그리고‘그사람’의흔적을의식하도록만든다.『흰흑』은흼과검음사이의무한한공백을탐색하는하나의시도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