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의 만남

서울과의 만남

$18.00
Description
기차 지붕 위에서 시작된 십 대 소녀의 ‘비상시의 이력서’
문학평론가이자 영인문학관 관장인 강인숙 저자가 80년 전 대한민국이 마주했던 가장 뜨겁고 혹독했던 과도기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유년 회고록 『성안집 사람들』(2025)이 함경도 고향에서의 유년기(2차 대전 종전인 1945년 11월까지)를 담았다면, 이번 신작은 그 이후 피란 열차를 타던 1945년 11월부터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52년 3월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과의 만남』은 저자가 나면서부터 마주해야 했던 ‘보편적 삶의 질서가 깨진 시대’, 즉 ‘비상시(非常時)’의 연속이었던 소녀 시절의 고백이다. 1933년생인 저자는 초등학생 시절 2차 대전을 겪으며 솔뿌리를 캐는 근로 동원에 시달렸고, 해방 후 공산 정권이 들어서려 하자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하했다. 열두 살 소녀가 밤중에 38선인 한탄강 철교 침목 사이를 뱀처럼 기어서 건너며 시작된 남하 여정은, 검은 매연을 뒤집어쓴 채 미군의 DDT 소독약 세례를 받으며 서울에 입성하는 혹독한 ‘서울과의 첫 만남’으로 이어진다. 빈손으로 월남해 변두리 적산가옥에서 지독한 추위와 남동생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난민으로서의 고통과 함께, 서울의 가장 중심이자 서울다움이 응축되어 있던 ‘경기여고’에 진학하며 겪은 이질적인 문화적 충격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 낸다. 함경도라는 북방 문화권에서 자란 저자에게 사대문 안 서울 토박이들의 세련된 어법과 예절의 미학 그리고 현실을 투시하는 조숙한 삶의 철학은 생소하면서도 탐닉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세계였다. 또한 대낮의 도심에서 정객들이 암살당하고 학교에 좌우익 테러대가 드나들던 시국 속에서도, 마분지로 만든 교과서로 처음 우리 문학을 배우며 눈물짓던 환희의 순간이 교차된다. 온통 결핍투성이였던 세월, 놀잇감도 음악도 없던 시대에 일본어 일역본을 통해서라도 구미 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미친 듯이 탐독하며 내면의 요동을 잠재웠던 지독한 ‘향학열’의 기록은 오늘날 풍요 속에서 활자를 잃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

강인숙

건국대학교명예교수이자현재영인문학관관장이다.1933년함경남도갑산에서출생,경기여자중ㆍ고등학교와서울대학교국문과를졸업하고숙명여자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다.1965년『현대문학』을통해평론가로등단,건국대학교교수와문학평론가로활동했다.
저서로논문집『자연주의문학론Ⅰ,Ⅱ』『일본모더니즘소설연구』『박완서소설에나타난도시와모성』등이있으며,문화기행집『함께웃고,배우고,사랑하고-네자매의스페인여행』『이집트문화기행』『시칠리아에서본그리스』,자전적에세이『글로지은집』『만남』『나는글과오래논다』『성안집사람들』등이있다.

목차

머리말_비상시의이력서
서시(序詩)_1945년8월

Ⅰ.기차지붕에타다
포도무늬누비이불/한탄강철교를기어서넘는다/미군과DDT/다시본한탄강철교/기록말살형/비상시의풍속도

Ⅱ.서울과의만남
청엽정3가48번지/무덤에깔아준방석/강내과와가족복지/부숙이네가게와천서방네가게/진이엄마/헤픈우정의속내/재봉틀과멸치/효창초등학교

Ⅲ.멀고먼학교
정동1번지/전차problem/교훈과교가의수사학/교과서에서배운우리문학/서점없는시대의책읽기/뿌리다시내리기

Ⅳ.먼저떠난친구들
강형순/이범준/양찬집/김주상/박경희

Ⅴ.선생님,우리선생님
우리역사선생님은곰돌이/조흔파선생과「사미인곡」/‘유랑의무리’합창과김순애선생/‘6시5분전’채인기선생/새내기물리선생유한흥

Ⅵ.내가만난서울
내짝꿍의신부놀이/서울스럽게늙는다

출판사 서평

문학평론가강인숙이복원해낸80년전서울의기억과전통문화의미학

1945년11월,열두살소녀강인숙은밤중에38선한탄강철교를기어서건넌다.침목사이가너무넓어뱀처럼납작엎드려건너야했던그철교를.이장면에서시작되는『서울과의만남』은피란민가족이서울에뿌리내리기까지의혹독하고도생생한기록이다.
이책은두층위로읽힌다.하나는역사적기록이다.38선을넘는방법이2년사이에네번이나바뀌던혼란기,1·4후퇴당시한강이얼어달구지를밀며강을건넌피란민들의풍경,소한·대한사이의혹한속기차지붕위의삶이열두살아이의눈높이로세밀하게포착된다.또하나는문화적발견의서사다.함경도북방문화속에서자란저자는서울에서처음으로한국전통문화의아름다움과조우한다.저자는이낯섦과아름다움에이끌리면서도'너무반듯한'서울문화에저항하던시절을솔직하게그린다.
서울의문화는충격이기도했다.서울토박이아이들의단단하고반듯한현실감각은열두살니힐리스트에게는낯설고빡빡해보였다.그러나세월이흐르고90대가된경기여고동창들이"아프다,외롭다"는말없이품위있게모이는것을보며,저자는비로소이이질적인문화와화해한다."다른것은탐나지않는데늙는것만은'서울스럽게'늙고싶어진것이다."

93세의현재에서열두살에게건네는말

책은과거와현재가교차한다.글을쓰다가문득경원선을타야겠다고생각한83세의저자가한탄강역에내려철교앞에서는장면,70년전기어서건넌다리를바라보며그시절가족들을불러세우는장면은회고록이아니라한편의시처럼읽힌다.저자스스로밝히듯"상상력이부족하고고지식해서직접겪은것밖에쓸수없는"사람이쓴책이기에,이책에담긴모든장면은더욱묵직하다.
역사가개인을어떻게통과하는지,그리고그통과속에서도아름다움을향한감각이어떻게살아남는지-이질문에답하는책이『서울과의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