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이소개하는40가지사건사고는모두20세기의변곡점내지는분기점으로작용했을만큼중요하다.그시간들은마냥아름답고평화롭지않았다.그렇다고다툼과갈등으로만점철되지도않았다.변화와혁신이뜻하는대로이뤄지지않았지만이름없는이들의헌신과노력덕분에조금더나아질수있었다.빛과그림자가공존한20세기한국이다.
‘굴곡진사건,일상의시간이특별한역사가될때’
세상을뒤흔든무참하고비정한사건들의초상
사적인영역과공적인세계는쉽게구분되지않는다.개인의삶이외력과무관하기힘들고역사의수레바퀴가대중에의해굴러가곤한다.역사적사건들과우리삶이연결되어있고함께특별한역사를만들어왔다.하여크고작은사건사고들로우리가살았던시간을돌아볼수있겠다.하나하나되짚어보며앞으로어떻게살아야할것인지의실마리를찾을수있을것이다.
4.19혁명,5.18광주민주화운동,6월민주항쟁등은시대의한복판에서군중의일원으로서세상을바꾸자고한목소리로외쳤던경험의일환이다.일상의시간이특별한역사가되는순간이었다.누군가는역사의주인공으로우뚝섰을것이다.앞으로도사회적기대와미래에의희망을지닌채세상을뒤흔들사건들이계속일어났으면하는바람이다.
그런가하면와우아파트,성수대교,삼풍백화점붕괴사고등은성장사회의부실한민낯이자끔찍한자화상이라할만하다.다시는일어나지않아야할무참하고비정한참사다.한국사회전체에정신적트라우마를일으킬아픈기억으로남아있다.너무빨리잊어버리거나금방기억하지못할이야기로치부되지않았으면한다.
‘광주대단지사건부터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까지’
크고작은사건사고로돌아보는우리가살았던시간들
이책은총4부로구성되어있다.‘빵과장미의시간들’이라는부제를단1부에선성장의시대에서자유와평등을외친이들의이야기를들여다본다.유기당한빈민들의광주대단지사건,노측의나체시위를사측이똥물세례로되받아친동일방직여직공복직투쟁,30년만에재회한이산가족찾기특별생방송등이흥미롭다.‘욕망과추락의시간들’이라는부제를단2부는역사를바꾼몰락의얼굴들을정면에서바라볼기회를제공한다.사카린밀수사건부터국회오물투척사건까지이어지는1966년의한때,성탄절에일어난세계최대호텔‘대연각’화재참사,‘건국이래최대사기극’이라불린장영자어음사기사건등이몰락의얼굴들이다.‘죄와벌의시간들’이라는부제를단3부는시대가낳은범죄를재구성해봤다.박상은양피살사건,오대양집단자살사건,지강헌탈주사건,박한상존속살해사건등이폐부를찌르는듯하다.‘분노와슬픔의시간들’이라는부제를단4부에선한국현대사속만들어진괴물을엿볼수있다.국가의이름으로경찰이자행한성폭력,미군이저지른잔혹한성범죄,법망의사각지대에서은밀하게존재한근친성폭행과아동성폭행까지.괴물과짐승의시간을헤쳐나온이들이무해하길소망한다.
책속에서
4.19혁명은전세계적으로도보기드문‘승리한민주주의시민혁명’의사례이기도하다.1960년4월19일어린이부터노인까지,학생부터교수까지,남녀노소가리지않고수많은시민이거리로쏟아져나왔다.성난시위대는이승만이머무르고있던경무대를포위한뒤이기붕의처소가있던서대문으로기수를돌렸다.경무대보다더위세가높다던서대문이기붕자택은시위대에게점령됐다.이기붕의집안에는온갖귀중한물건들이많았다.사람들은그중에서도냉장고에있던참외와수박을보고깜짝놀랐다.여름에나먹어볼수있는과일이이른봄,집안냉장고에보관되어있다니도무지이해할수없는노릇이었다._21쪽
그해12월사람들사이에선대마초를피운연예인이야기뿐이었다.간첩으로몰린청년들이재판도제대로받지않고하루만에사형집행을당한‘민청학련사건’은금방잊혔다.오일쇼크때문에물가가앙등해서민경제는파탄지경에이르렀지만,김추자가대마초를펴그렇게기이한춤을출수있었다는이야기만꽃을피웠다.마침그해박정희정권이발표한‘긴급조치9호’는강력한문화통제로국민의눈과귀를가로막겠다는의도가담겨있었는데,정권의음험한문화적지배야욕을대마초피운연예인들벌주는것쯤으로생각하는사람들도있었다._54쪽
우리사회는천재의발굴과몰락을지켜보길좋아하는관음증을가진환자와도같았다.허장성세로드러난천재소동이허무하게막을내리면,어느새곧또다른신동이나타났다며세상앞에어린아이를발가벗겨내다놓았다.자식을영재로키우고자하는가정과천재의등장을바라는사회의욕망에편승해사교육시장의‘영재교육’비용은천정부지로치솟고,국가도정체불명의‘인재육성’간판을내걸고조기에천재를발굴하는데몰두하기도했다._146쪽
성수대교붕괴사고는너무나갑작스럽게일어난상식밖의일이라어떤사건사고보다사람들에게더큰충격을줬다.다리가무너지는현장주위에있던시민이119에신고전화를했을때,장난전화취급을받았던건유명한일화다.“한강다리가무너졌다니까요”라는말에신고전화를받던사람이어이없어하며“장난전화하지말라”는답을한기록이생생하게남아있다.더구나성수대교붕괴사고는불과1년전서해훼리호침몰사고(292명사망)의여파가채가라앉기도전에발생한참사였기에국민은더욱참혹한기분에휩싸였다._200쪽
경찰이발견한오대양집단자살현장은참혹그자체였다.빨래가쌓여있는것처럼천장기둥에속옷차림의시신들이널려있었다.처음에경찰은잔혹한범죄를의심했다.하지만수사를진행하자타살로보기에석연치않은구석이너무나많았다.도무지이해할수없었던건시신들에서저항의흔적이나삶의의지가전혀발견되지않았다는점이다.폭염과기갈로인해버티지못하고먼저죽은이들을제외하고대부분의사망원인이액사(縊死)로밝혀졌지만,어느시신에서도목이졸릴때반항한흔적이남아있지않았다.스스로선택한죽음인동시에공동으로집행된죽음으로볼수밖에없는상황이었다._251쪽
총기난사사건의원인은개인적인측면과사회구조적인측면으로나눠살펴봐야한다.조직내에서부적응자로취급되는사람들은쉽게외톨이가되어상실감을느낀다.자신에게적대적인집단에서적응하지못한사람은이내소외되고막다른길로내몰린다.어려운일을겪을때주변의도움이나이해를구하기어려운상황이되면감정의침체가오고될대로되라는식으로행동하기마련이다.감정의변폭이커진개인이극단적인행동을서슴없이감행하는이유다.응어리진마음을해소할길없는자신을더욱가혹하게학대해스스로삶을정지하는안타까운경우도있고,자신을무시하거나괴롭힌사람들을향한복수와응징을결행하기도한다._293쪽
1950년대까지도정조를빼앗긴처녀가스스로목숨을끊거나,순결하지못하다는뜬소문에여학생이수치심을느끼고자살하거나,애인에게정조를잃고버림받은딸에게자살을권해죽음에이르게한소식들이하루가멀다하고신문지상을장식했다.1920년대부터이어져내려온뿌리깊은전통이었다.신문독자들은젊은여성들의자살소식을탐욕스럽게소비했다.정조를잃은여성들은쥐약을먹고죽고,우물에빠져죽고,기차에뛰어들어죽고,나무에목을매죽었다._329쪽
이두사건은법망의사각지대에서은밀하게존재한근친성폭행이나아동성폭행문제를사회적으로공론화하는데도크게기여했다.가족간성폭행이나아동성폭행은피해자에게심각한피해와평생을괴롭히는트라우마를남기는범죄였지만,우리사회는이문제들을언급하는것자체를금기시할정도로폐쇄적이었다.그간피해자의행실만탓하거나알면서도모른채쉬쉬한일들이김부남,김보은사건이후법적처벌을받아야하는사회적의제로전환된것이다._370~3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