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라흐마니노프,리스트,포고렐리치…
클래식음악속그들의인간적인이야기
『Op.23』은총3개의파트로구성되어있다.파트1에서는이보포고렐리치,디누리파티,블라드미르호로비츠,알프레드코르토,백건우등저자가경애하는피아니스트들의이야기를섬세하게풀어낸다.그들의음악이탄생한삶의배경과연주자로서의존재의미를다시한번생각해본다.
파트2는클래식음악속감정의조각들을이야기한다.프레데리크쇼팽,세르게이라흐마니노프,프란츠리스트등의작품을통해삶을해석하고위로하기도하고,로베르트슈만과클라라슈만,요하네스브람스의이야기를통해서로다른삶이어떻게하나의음악적흐름으로이어지는지따라가기도한다.각곡과작곡가에얽힌감정,시대정신,저자자신의음악적경험이교차하며독자에게진한여운을남긴다.
파트3에는음악가로사는삶의이야기들을진솔하게담았다.음악을통해인간을이야기하고,예술을통해삶의본질을탐색하는여정이다.저자의언어는부드럽지만단단하고,독자의내면을섬세하게두드린다.
삶이음악이되고,
음악이생이되는순간
루마니아피아니스트디누리파티는마지막콘서트에서영화같은이야기를만들어낸다.죽음을앞둔연주자가극심한통증속에서도무대에올라마지막왈츠를건네고,끝내바흐의칸타타‘예수는인간의기쁨’을앙코르로끝낸다.아무도예상하지못했던그장면은음악이삶의기도이자마지막인사일수있음을말해준다.저자는이연주를“젊은예술가의영혼을일으켜세운그의문병”이라고표현한다.마지막박수는각자의자리에서고단히삶을살아내고있는모든이들에게리파티가보내는위로였으리라.
피아니스트이보포고렐리치의이야기도흥미롭다.전통적인콩쿠르의틀을벗어난파격적인연주로클래식음악계에경종을울리고,음악가로서의사회적책임을실천했다.음악을넘어인류애를실천했던그의삶은많은이에게깊은울림을남긴다.
이책에서다양하게풀어내는클래식의미학,거기에더해다양한작곡가와연주가의이야기는,클래식음악을접하는데깊이를더해줄것이다.
책속에서
그의당시실황연주는지금도온라인에서쉽게찾아볼수있다.흐름의예상치를뒤엎는그의연주를들으면어떤이는신경이거슬릴지도모르고,또다른누군가는눈물을줄줄흘리며‘고마워요’라고말하며바보처럼울지도모른다.나는후자였다.
끝없이과거를복원하고,모방하고,학습하여재현하는클래식음악의세계.그안에서그는여전히창작과창조성의가능성을열어보였다.그가펼쳐낸새로운지평은아름다웠다.모두가지쳐버린예술의불모지에서다시금불씨를지핀그는,클래식음악이여전히확장될수있음을증명했다.
_17쪽
쇼팽이살았던19세기의속도가21세기보다두배쯤느렸다면,그래서사유의양이두배쯤많았다면,쇼팽의영혼은일흔셋의백건우와동갑내기라해도괜찮을까?그래서그의밤의노래는이토록깊이스며드는가.
아니면,이바쁜시대속에서홀로모든문화적빠름을뒤로하고,오로지음악에몰입한세월을살아낸그의삶의정결함이,쇼팽의야상곡을이해할수있는문지방을넘을수있었던걸까.그래서그의야상곡이이토록깊이파고드는가.
_68쪽
이곡을연주할때리스트가남긴사랑의한숨과희열,그미세한흔들림이건반을타고내손끝으로스며드는느낌이들때가있다.그찰나,나는인간리스트를본다.오래도록잠들지않은그의사랑이야기,이백년의시간을건너서도,여전히우리의이야기처럼마음을파고드는이사랑노래.사랑앞에비범한사람도평범해지고,바로이평범함이한인간의고귀한깊은내면의고유한비범함을이끌어낸다는진실을리스트는노래한다.그가비트켄슈타인을만나수많은내면의음악을세상에내어놓을수있었듯이.
_117쪽
그는오랜고뇌끝에낭만성과대중성을큰맥으로잡고,그아래에흐르고있는복잡다단한당대의러시아인간사가섬세하게얽힌모습을그려냈습니다.제국주의적시선이나정치적시선을담은것은아니었습니다.그저불안한시대를살아내고있는,지극한한사람으로서그려냈죠.그래서이곡은어쩌면교향곡1번보다도,피아노협주곡2번보다도가장라흐마니노프자신에가까운곡이아닐까싶습니다.
_172쪽
아무튼이러한연유로저는피아노독주로편곡된교향곡을들을때만큼은마음껏자유롭고개성이넘치는해석을선별해들으려합니다.오케스트라의오리지널리티와다채로운소리의조화는오케스트라연주에서즐기고,독주편곡작품에서는톡톡튀는발상의기발함을즐기기에안성맞춤입니다.오로지이곳에서만누릴수있는자유이니거절할이유가없지요.몇몇곡을소개해볼까합니다.
_215쪽
그보다더유명한것은12년만의귀환무대.천개의심장이한꺼번에뛰고,확장된이천개의눈동자가그의열손가락만을응시하던그순간.마치운명교향곡의첫네음처럼이연주의가장중요한시작에서그는치명적인실수를했다.정적을깨고울려퍼진첫음을매우거슬리는소리로잘못누른것이다.12년동안그를짓눌렀던우울증과무대공포증을뒤로하고용기를끌어모아드디어무대에오른순간,어쩌면가장중요한바로그첫순간,어처구니없는이탈음에거장은잠시동요하는듯했다.그러나그뒤는오히려자연스럽게흘러갔다.아이러니하게도그를해방시킨격이되었다.받아들임의신호탄처럼,동요를털어내고는곧음악을따라갔다.“12년의다짐은소용없는것이었군.하하.그래,내본연의모습을받아들이고흘러가보자.”하는마침내찾아온내려놓음의순간이었는지도모르겠다.
_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