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사형대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 ‘그린 마일’,
죄와 구원의 경계를 묻는 기적적인 휴먼 드라마
프랭크 다라본트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그린 마일』이 새로운 디자인과 판형으로 출간되었다. ‘그린 마일’은 작중의 교도소에 깔린 초록색 리놀륨 복도이자 사형수가 전기의자로 가는 마지막 경로를 가리키는 말로, 이 작품은 사형을 둘러싼 딜레마, 인종 차별, 사법 시스템의 모순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며 킹이 단순한 공포 소설 작가가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을 활용해 대중에게 보편적 감동을 선사하는 휴먼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작가임을 널리 각인시켰다. 『그린 마일』을 쓰는 것은 스티븐 킹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소설을 연재했던 찰스 디킨스의 방식을 따라 보자는 관계자의 권유에 응해 1996년 3월부터 8월까지 6권의 소책자 형태로 순차적으로 출간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긴박한 일정 속에서도 매번 고른 분량과 클라이맥스가 있는 결말을 갖춰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의 대가다운 솜씨가 십분 발휘된 절묘한 완급 조절과 전체 서사의 유기적 연결이 빚어낸 서스펜스와 경이 덕에 전 권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기적
잔혹한 살인마는 과연 괴물인가, 성자인가
홀로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노인 폴 에지콤은 수기를 쓰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에 대해 회상한다. 1932년, 미국 남부의 콜드마운틴 주립 교도소. 폴은 사형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E동을 관리하는 간수장이었다. 어느 날, 백인 소녀 두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흑인 남성 존 커피가 E동에 수감된다.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과 험악한 얼굴과는 달리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는 데다 순수하고 다정한 면모를 지닌 커피를 지켜볼수록, 폴은 그가 정말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 인물인지 점차 의구심을 품는다. 그러던 중 감방에서 커피가 선보이는 초자연적인 치유의 기적을 목격한 폴과 동료 교도관들은 그가 어떤 성스러운 존재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E동 수감자들의 사형 집행이 차례차례 시행되고, 냉혹한 사법 시스템의 판단을 뒤집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채 커피가 전기의자에 앉아야 할 시간도 가까워진다.
“여러분이 그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알겠는가?
나는 여러분이 그를 지켜보기 바란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합법적 살인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섬뜩한 공간 ‘그린 마일’. 이곳에서 이질적인 존재인 존 커피(John Coffey)는 스티븐 킹이 작법서인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결백했던 사람”(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에서 머리글자를 따왔다고 밝힌 것처럼 메시아적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타인의 아픔을 흡수하여 토해 냄으로써 기적적인 치유력을 발휘하는 그는 정작 제대로 된 수사와 변호는 받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커피가 일으키는 기적을 목도하고도 시스템의 톱니바퀴처럼 무력하게 그를 사형대에 이끌어야 하는 간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킹은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을 직접 논하지 않는 대신, 죽음과 가까이에 선 평범한 인간들의 시선을 통해 선(善)과 정의란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올 죽음 앞에서 인간이 마주해야 할 윤리적 고뇌를 직시하게 하는 『그린 마일』은 아득한 두려움과 가슴을 울리는 경이를 동시에 선사하며 인생에 대한 탁월한 이야기꾼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줄거리
1932년, 미국 남부의 콜드마운틴 교도소 E동. 베테랑 교도관 폴 에지콤은 두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사형수 존 커피를 만난다. 거구에 위압적인 외모와 달리 순수한 영혼을 지닌 커피를 마주할수록 그가 흉악한 살인마일 리 없다는 의구심이 폴의 안에서 커져 가는 가운데, 교도소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죄와 구원의 경계를 묻는 기적적인 휴먼 드라마
프랭크 다라본트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그린 마일』이 새로운 디자인과 판형으로 출간되었다. ‘그린 마일’은 작중의 교도소에 깔린 초록색 리놀륨 복도이자 사형수가 전기의자로 가는 마지막 경로를 가리키는 말로, 이 작품은 사형을 둘러싼 딜레마, 인종 차별, 사법 시스템의 모순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며 킹이 단순한 공포 소설 작가가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을 활용해 대중에게 보편적 감동을 선사하는 휴먼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작가임을 널리 각인시켰다. 『그린 마일』을 쓰는 것은 스티븐 킹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소설을 연재했던 찰스 디킨스의 방식을 따라 보자는 관계자의 권유에 응해 1996년 3월부터 8월까지 6권의 소책자 형태로 순차적으로 출간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긴박한 일정 속에서도 매번 고른 분량과 클라이맥스가 있는 결말을 갖춰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의 대가다운 솜씨가 십분 발휘된 절묘한 완급 조절과 전체 서사의 유기적 연결이 빚어낸 서스펜스와 경이 덕에 전 권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기적
잔혹한 살인마는 과연 괴물인가, 성자인가
홀로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노인 폴 에지콤은 수기를 쓰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에 대해 회상한다. 1932년, 미국 남부의 콜드마운틴 주립 교도소. 폴은 사형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E동을 관리하는 간수장이었다. 어느 날, 백인 소녀 두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흑인 남성 존 커피가 E동에 수감된다.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과 험악한 얼굴과는 달리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는 데다 순수하고 다정한 면모를 지닌 커피를 지켜볼수록, 폴은 그가 정말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 인물인지 점차 의구심을 품는다. 그러던 중 감방에서 커피가 선보이는 초자연적인 치유의 기적을 목격한 폴과 동료 교도관들은 그가 어떤 성스러운 존재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E동 수감자들의 사형 집행이 차례차례 시행되고, 냉혹한 사법 시스템의 판단을 뒤집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채 커피가 전기의자에 앉아야 할 시간도 가까워진다.
“여러분이 그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알겠는가?
나는 여러분이 그를 지켜보기 바란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합법적 살인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섬뜩한 공간 ‘그린 마일’. 이곳에서 이질적인 존재인 존 커피(John Coffey)는 스티븐 킹이 작법서인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결백했던 사람”(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에서 머리글자를 따왔다고 밝힌 것처럼 메시아적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타인의 아픔을 흡수하여 토해 냄으로써 기적적인 치유력을 발휘하는 그는 정작 제대로 된 수사와 변호는 받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커피가 일으키는 기적을 목도하고도 시스템의 톱니바퀴처럼 무력하게 그를 사형대에 이끌어야 하는 간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킹은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을 직접 논하지 않는 대신, 죽음과 가까이에 선 평범한 인간들의 시선을 통해 선(善)과 정의란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올 죽음 앞에서 인간이 마주해야 할 윤리적 고뇌를 직시하게 하는 『그린 마일』은 아득한 두려움과 가슴을 울리는 경이를 동시에 선사하며 인생에 대한 탁월한 이야기꾼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줄거리
1932년, 미국 남부의 콜드마운틴 교도소 E동. 베테랑 교도관 폴 에지콤은 두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사형수 존 커피를 만난다. 거구에 위압적인 외모와 달리 순수한 영혼을 지닌 커피를 마주할수록 그가 흉악한 살인마일 리 없다는 의구심이 폴의 안에서 커져 가는 가운데, 교도소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린 마일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