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당신의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사용하는 총 단어의 수는 약 1만 5,000개. 그중 중복되는 단어를 빼면 약 2,000개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오늘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무엇일까? 언어의 측면에서 단어란 의미를 가진 최소 단위다. 내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 내가 좋아하는 단어에는 내 생각과 마음이 담기고, 그것이 쌓이면 삶이, 모이면 사회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6년 이맘때 한글을 지키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지키고 이어져 온 한글을 오늘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쓰고 있을까.
100년의 문학 작품, 142명의 작가, 142개 단어
“백하고도 마흔두 개의 인생과 길과 마음을 보내오니 고이 받아주세요”
나민애 서울대 교수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이해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해 마지않을 한국 문학계 142명 작가들의 작품 속 유정한 단어를 고르고 골라 온 마음을 다해 엮었다. 저자는 지난 1년간 무수히 많은 작가들, 그만큼이나 많은 작품들을 읽어 내려가며 오늘과 너무 멀지 않은 단어, 그러면서도 추억에 잠기게 되는 단어, 재미있어서 입가에 맴도는 단어, 예뻐서 눈이 가는 단어, 슬퍼서 외롭게 두고 싶지 않은 단어 등 더 많이 나누고 싶고, 알리고 싶은 단어들을 다각도로 고민하며 모았다.
“하루에 하나의 단어를 쥐고서 길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단어를 생각하고, 단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책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매일이 마치 한 단어의 인생 같았습니다.”
_ 프롤로그 중에서
단어의 사전적 정의, 그 이상의 의미
“사금파리를 아시나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단어의 품사와 뜻이 잘 정리돼 있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가 그렇게 똑 떨어지기만 할까. ‘사금파리’의 사전적 정의는 ‘사기그릇의 깨어진 작은 조각’이지만 저자는 그 단어에서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몹시 아끼고 귀하게 모시다 함부로 놓고 온 그때 그 첫사랑’이 모두 사금파리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이처럼 어떤 단어는 떠올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품게 한다.
웃을 땐 눈이 작아지는데 희색일 때는 눈이 커진다는 현현한 묘사, 사랑과 연정, 사모 사이의 미묘한 차이, 잠포록이 하면 떠오르는 온화한 풍경 등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단어의 분위기가 저자의 단상을 통해 자연스레 읽힌다.
물론 저자의 단상 역시 단어의 전부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 단어는 떠올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기억을 소환한다. 내 마음에 들어온 단어와 다른 사람의 인생 단어도 다를 수 있다. 나만의 단어를 모아보자. 세대를 편 가르는 새로 생겼다 금세 사라지는 단어에 마음 뺏기지 말고, 내 곁에 오래도록 두어도 좋은 나의 단어를 찾아,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자.
추천사
한국어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가 있다. 소셜 미디어 일각에선 고유어를 사용한 문장을 보면 ‘오그라든다’며 조롱한다. 어떤 젊은이들은 대개 한자어로 된 관념어·추상어의 뜻을 모르고 심지어 그게 왜 문제냐며 따진다. 어떤 학자들은 영어와 일대일 교환이 안 되는 한국어는 개념어의 자격이 없다고 여겨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를 선호한다.
나는 언어본질주의자도 언어신비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나 좋은 걸 좋은 줄 모르고 함부로 대하는 걸 보는 일은 힘겹다. 이럴 땐 누가 대놓고 한국어의 편을 들어주면 좋겠다. 저자가 고른 어휘도 신중하지만 거기 붙여둔 단상들이 읽기 아까울 정도로 어여뻐서 나는 이 책을 편든다. 한국어와 깊은 사랑에 빠진 이 사람의 말을 좀 듣자. 좋은 걸 좋은 줄 알고, 이미 알아도 다시 더 알자.
- 신형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