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되고 탁한 것에 홀리지 않게
버티며 단단해지는, 일상 인문학 산책
우리에게 배움은 조금 ‘전문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과정, 학위와 자격증을 얻는 과정. 그래서 보통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면 정규 배움의 과정은 끝났다고들 생각한다. 그렇지만 배움에 끝이 있을까. 문밖을 나서면 모든 게 배움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고, 안으로 삭히고 숙성하고 성찰하여, 삶의 자양분으로 끌어올리는 사람이 흔치 않을 뿐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바로 그런, 흔치 않은 사람 중 하나이다. ‘배움’을 한 끼 밥처럼, 흥을 돋우는 술처럼, 마음을 다독이는 찻잎처럼, 삶의 고비마다 배움으로 에둘러 온 사람.
그에게 배움은 몸을 써서 짓는 여러 수련이고, 책과 영화와 여행, 자연이며, 세상을 등진 친구에 대한 애도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그러한 것들을 일컬어 ‘일상의 인문학적인 배움’이라 일컫는다.
배움은 성취가 아니라 삶의 숨구멍
화분 바닥의 물구멍이 식물이 숨 쉬는 통로이듯, 지은이에게 배움은 삶의 숨구멍이다. 신선한 숨을 들이마시며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고, 삶에 색을 입힌다. 그때 삶은 생생하게 살아나, 지은이를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지만 똑같지도 않은 하루가 모여, 삶이 손톱만큼 자란다. 그래서 이 책의 배움 목록은 유난히 손과 몸쪽으로 기울어 있다. 머리보다 몸의 수고가 마음에 더 좋을 때가 많다는 지은이의 경험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주 구체적이다. 쇠똥구리처럼 손과 다리, 온몸을 움직여 천천히, 꾸준히 삶을 굴리는 일상의 인문학적 도구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그 도구들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건, 우리 또한 지금 몸과 마음이 조금씩 녹슬어 가는 과정에 있고, 그녀 삶의 아픈 면면, 소소한 즐거움, 후회, 반성, 그리움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걸어온 삶의 이야기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은이가 그 이야기들을 찬 겨울의 별빛처럼 명징하고 아름답게 펼쳐 보여서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이 녹슬지 않게, 배움으로 삶의 각도를 유지한다
지은이는 이름도 낯선 인도네시아 파푸아의 자야푸라, 자카르타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서 자신을 부나방에 비유한다. 부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가 어설피 알듯,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달빛과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날게 되어 있는데, 모닥불이나 전등을 달로 착각한 것뿐이다.
저자는 여기서 두 단어를 꺼낸다. 달빛과 각도. 부동산 특수나 주식 대박, 자식의 성공처럼 과하게 빛나는 불빛에 이끌려 자신을 태우지 말자. 대신, 달빛을 향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날자. 살자. 지은이는 취미와 취향이 있는 인문학적으로 단단해지는 삶이 그 각도를 지켜준다고 믿는다. 산만해 보이던 삼십 년의 기웃거림이 마지막 장에서 하나의 비행으로 수렴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배움의 과정’이 흔들리는 우리들을 어떻게 지탱시키고 삶의 고비를 넘기며,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지 오롯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그의 배움이 겨우 자신에게나 도움을 줄 정도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배워서 나 주다 보면 남 줄 날도 분명 오리라고 희망한다.
철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전공과 무관하게 살아왔다고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본 그는 이미 재야 철학자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위대하게 살긴 어렵지만, 일상을 다독이며 숭고하게 사는 것은 해볼 만하다’고 지은이는 담담하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