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폭스트롯

상하이 폭스트롯

$15.00
Description
순응하거나 도태되거나⋯⋯
기쁨을 가두는 가혹한 시절에 대한 거침없는 스텝
1930년대 모던 상하이의 밤 문화를 사랑했던 작가 무스잉의 소설집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다. 무스잉은 류나어우 등과 함께 중국 최초로 모더니즘 문학을 도입한 신감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데, 그의 문학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대표 단편소설 일곱 편을 모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의 문화와 사상 속에서 순응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는,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춤추는 것밖에 없던 상하이 젊은이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폭스트롯 댄스 리듬에 맞춘 듯한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린다.
저자

무스잉

저자:무스잉
1912년중국저장성츠시현에서태어났다.은행가였던아버지가파산하면서어려움을겪다가1929년광화대학서양문학과에입학해본격적인창작활동을시작했다.1930년첫단편소설〈우리의세계〉를발표하며류나어우,스저춘,다이왕수등의신감각파작가들과조우했고,1932년부터《남북극》,《공동묘지》(1933),《백금의여체조각상》(1934),《성스러운여자의감정》(1935)등네권의소설집을연달아펴냈다.무스잉은전통과근대,동양과서양,가난과부가뒤엉킨근대화도시상하이의이중성을,그런도시에서어느쪽에도몸담지못하는상하이사람들의불안감을폭스트롯댄스리듬에맞춘듯한감각적인문장으로포착해내며단숨에신감각파작가의대표자로발돋움했다.1934년대학때부터사귀던상하이의유명댄서추페이페이와결혼했고,항일전쟁이발발하자홍콩으로건너가《성도일보》의편집장을지냈다.이후상하이로돌아와친일파왕징웨이정부의기관지인《국민신보》의사장을거쳐《중화일보》의문예선전업무를주관했다.그러나이때문에반대파의협박을받았고,1940년상하이에서인력거를타고집으로가던중암살되었다.

역자:강영희
현재전문번역가로활동중이다.옮긴책으로는《사랑하는안드레아》,《뭇산들의꼭대기》,《시간의서》,《사랑을말할때우리가꺼내지않았던이야기들》,《인간의피안》,《마지막연인》,《비온뒤맑음》,《격정세계》등이있다.

목차

심심풀이가된남자_7
상하이폭스트롯_51
나이트클럽의다섯사람_73
거리풍경_109
팔이잘린사람_121
검은모란_159
공동묘지_177

해설|상하이의이중성을세련된기교로예리하게포착한무스잉_212

출판사 서평

상하이의이중성을세련된기교로
예리하게포착한무스잉

1930년대상하이에는영국과미국,프랑스의조계지를중심으로서구의온갖문물이빠르게수입되었다.댄스홀,영화관,호텔,백화점등의화려한네온사인이상하이의밤을물들였고,댄스홀에서는폭스트롯과찰스턴같은사교춤이매일밤펼쳐졌다.어린시절부터외국문학에관심이많았던무스잉은상하이광화대학서양문학과에입학해당시득세하던사회주의리얼리즘계열의소설과는전혀다른다양한작품세계를경험한다.하루가다르게뒤바뀌는상하이의풍경과외국소설에서접한실험적인문학형식이무스잉의작품을당대중국소설에서는찾아볼수없는독특한세계로이끈것이다.

행복의바깥으로내던져졌지만죽을생각따윈고사하고그저‘제기랄’이라고한마디욕설을내뱉으며다시생활속으로걸어간다.(〈상하이폭스트롯〉,70쪽)

당시상하이는‘동양의파리’라고불릴정도로화려함을자랑했지만,그뒤쪽에는급속한도시화의물결에올라타지못한채소외되어가는사람들이존재했다.누군가에게는상하이가활력넘치는기회의땅이지만,굉음을내지르는기계에“벽돌처럼평평하고매끈하게싹둑”팔이잘린사람에게는지옥같은도시일뿐이다.〈팔이잘린사람〉은상하이라는근대화도시의말단에서폭력과착취의노동현장을견디다가한순간의사고로팔을잃고,엇나간자격지심때문에가정에서까지스스로를내몰며끝내파멸에이르는도시노동자의비참한삶을리얼하게펼쳐보인다.

표제작인〈상하이폭스트롯〉은밤과유흥문화를선망하고즐기면서도댄스홀의불이꺼지듯한순간에그것이사라져버릴까두려워하는인물들의이중적인심리를당시유행하던폭스트롯댄스리듬에맞춘듯한감각적인문장으로그린다.어머니와아들의연애를묘사하는장면도파격적이다.

〈심심풀이가된남자〉는여자를혐오한다면서도“자극과속도를추구하는”도시문화의상징같은여성‘룽쯔’에게끌려다니다심심풀이로전락하고마는남자의심리를재즈,네슬레초콜릿사탕,선키스트,애프터눈티같은도시이미지속에자연스레녹여낸작품이다.아울러클래라보,빌마뱅키,노머시어러등당대의스크린을주름잡던영화배우의이름도자주등장하는데,작가가영화예술에대한깊은애정과이해를지니고있었기때문이다.무스잉은각종영화논평에참여해글을쓰거나직접영화를감독하기도했다.무스잉소설의주된특징중하나로꼽히는‘영화적상상력’역시이러한배경에서짐작해볼수있다.무스잉은빠른장면전환과속도감넘치는묘사로소설을자주시각화하는데,특히점점이흩어진듯한상하이사람들의모습을하나의거대한서사로긴밀히이어붙이는몽타주기법에능했다.

느닷없이튕!한줄의현이뚝끊어졌다.조니가고개를숙이고손을내렸다.
“어쩔수가없어요(Ican’thelp)!”
춤추던사람들도멈춰서서그를멍하니바라보았다.
정핑이어깨를으쓱하며말했다.“누구도어쩔수가없어(Noonecanhelp)!”
지제가끊어진현을보고불쑥말했다.“이게그의삶의전부야(C’esttotne,savie).”(〈나이트클럽의다섯사람〉,107쪽)

허무하게멈출것을알면서도춤추는일밖에달리할일이없었던다섯사람의좌절과몰락을나이트클럽의리듬감으로그려낸〈나이트클럽의다섯사람〉에서처럼무스잉의소설에는외국어가빈번하게등장한다.중국어번역없이쓰인영어나프랑스어문장들은당시상하이밤문화를즐기던사람들의언어습관을엿보게하는동시에본래의의미가지닌리듬감을생동감있게전달한다.나아가급격하게유입되는서양의문화를미처체화할틈도없이받아들여야하는현실의방증으로도볼수있다.1930년대모더니즘의기수였던시인이상의작품에서도외국어문장을자주마주칠수있는데,외국언어에대한번역과차용의문제에깊이고민하고소설안에서나름의방식으로구현하고자한실험정신이무스잉의그것과도맞닿아있다.

지팡이를짚어기우뚱한발걸음이라도
어디로든건너갈수있다는가능성

위태로운상하이의밤을무대로하는일련의감각적이고실험적인소설들외에따뜻하고너그러운어조로상하이젊은이들을감싸안는단편들에도주목할필요가있다.가을정취로가득한상하이의풍경과그이면에서지워진존재의목소리를섬세하게되살린〈거리풍경〉,자전적인경험을바탕으로아련한첫사랑의기억을담담하게풀어낸〈공동묘지〉는무스잉이인간의마음을천천히들여다보고섬세하게표현하는데도장기가있음을잘보여준다.

무스잉은전통과근대,동양과서양,가난과부의어느쪽으로도쉽게몸담지못하는상하이사람들의불안감을아슬아슬하게그렸지만,그들이끝내네온사인아래주저앉거나소설밖으로밀려나도록내버려두지않는다.〈심심풀이가된남자〉는룽쯔의심심풀이로전락한현실을자각한남자가“외로운남자는지팡이를사야지”라며지팡이를구입하는상징적인장면으로끝맺는다.도회적인이미지로가득한소설속에서‘지팡이’는언뜻이질적으로느껴지지만,각단편의곳곳에서귀중하게나타나위태로운인물들이어디로든건너갈수있다는가능성을열어준다.비록지팡이를짚어기우뚱한발걸음이라도“한걸음또한걸음의인생여정에늘함께하는반려”의존재는무스잉의인물들에게도,그리고지금우리에게도더없이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