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사생아

$14.50
Description
외로움, 그리고 사랑과 소유욕⋯⋯
시공간을 뛰어넘어 계속되는 엄마와 딸의 환상 술래잡기
존재 자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시대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맞선 이디스 올리비어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 작가도 작품도 국내 첫 소개. 서른두 살의 ‘애거사’는 어머니를 여의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극심한 외로움이 덮쳐오자 어린 시절 상상 속 친구였던 ‘클러리사’를 떠올리고, 마음속에서 되살아난 클러리사는 다른 사람 앞에까지 실제로 나타난다. 외로움으로 빚은 클러리사라는 사랑의 모양은 그러나 애거사가 점점 집착적으로 변하면서 삐거덕거리게 되는데……. 시공간을 뛰어넘어 계속되는 엄마와 딸의 환상 술래잡기. 이를 슬프면서도 발랄하게 보여주는 올리비어는 타인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말고 어떤 순간이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언뜻 고딕소설의 문법과 분위기로 흘러가는 《사생아》는 애거사가 스스로 창조한 존재에 대해 모든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는 듯 행동한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도 한다. 《사생아》는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비라고 모던 클래식’에 포함되었고 2021년 대영도서관에서 20세기 초반 여성 작가의 소설을 새롭게 발굴했을 때 포함되며 다시금 회자되었다.
저자

이디스올리비어

저자:이디스올리비어EdithOlivier
1872년영국윌트셔에서성직자의딸로태어났다.아버지의영향으로보수적이며통제적인환경에서자랐다.제1차세계대전중이던1916년윌트셔의농업지원부인회창설을도운공로로1920년대영제국훈장을받았다.윌턴시의회에서일한최초의여성이었으며1938년부터1941년까지윌턴시장을역임했다.올리비어가본격적인소설창작을시작한건50대에접어들어아끼던동생밀드러드가사망한이후였다.《사생아》(1927)는그의첫장편소설로한밤중에착상이떠올라쓰기시작했으며,“해가밝기전에두장을완성했다”라고한다.존재자체에대한해명을요구하는시대에풍부한상상력으로맞서는‘애거사’가어린시절상상속친구였던‘클러리사’를다시금불러내는것으로시작되는《사생아》는초자연적현상에대한올리비어의깊은믿음을보여주는작품인동시에당시영국사회가독신여성을바라보는불편한시각을그이면에담았다.그밖의주요작품으로는《제인의할머니만큼멀리》(1928),《왜소증환자의피》(1931)등이있다.만년에작가로활동하면서그시대의‘총명한젊은이들’과어울렸는데화가인렉스휘슬러와특히친하게지냈다.올리비어의삶은그가60년이상쓴일기에기록되어있다.1948년윌트셔에서뇌졸중으로사망했다.

역자:김지현
소설가이자전문번역가로활동중이다.2002년대산청소년문학상동상,2018년SF어워드중단편소설부문우수상,2020년SF어워드중단편소설부문대상을수상했다.옮긴책으로는《레딩감옥의노래》,《흉가》,《조반니의방》,《끝내주는괴물들》,《인센디어리스》,《프랭키스슈타인》,《기억의빛》등이있고,지은책으로는소설집《로드킬》,장편소설《너라는이름의숲》,산문집《생강빵과진저브레드》,《사랑,편지》등이있다.

목차

사생아_7

부록에세이
책쓰기_153
설명불가능한것들_164

해설|‘노처녀’의상상속친구_174

출판사 서평

기억에관한소설이자
기억속에서전개되는소설

어머니의“장례를마쳤을때”애거사는남들과“한두발짝물러나”무덤앞에혼자서있다.결혼하지않았고형제도없었던터라이제정말홀로남겨진것이다.사교성이없는성격인데다극심한외로움이덮치자언젠가지금처럼“동반자를잃은적이”있었음을떠올린애거사는“멍하니과거를”훑는다.그러다이름하나를번개처럼떠올린다.“클러리사!”

오랫동안잊고지내던클러리사가“마음속에서되살아난것이다”.클러리사는애거사만의친구,애거사만만날수있는친구,그러니까애거사가빚은환상속친구였다.애거사는클러리사와대화할수있는자신의능력속에서만클러리사가살수있고또살아왔음을깨닫는다.그날밤,“클러리사가돌아왔다”.

이전과다른문제가생긴다.오직애거사에게만보였던클러리사가다른사람의눈에도보이기시작한것이다.처음에는먼친척이라고둘러댔지만당국에제출해야할서류작업을하러온경찰에게“아동의이름.출생장소와일시.아동을양도한사람의이름과주소”를대지못하고급기야구빈원으로보내야할수도있다는말에울부짖듯대꾸한다.

“사생아예요.제가낳은.”
그말과동시에눈물이터져나왔다.
“사생아예요.”(57쪽)

애거사와클러리사는서로를돌보고상상놀이를즐기며“스스로선택한사람들로가득찬,무한한세계속을”살아간다.그런데클러리사가또래인‘키티’,‘데이비드’와어울리기시작하면서서서히‘엄마’의품을벗어나려하고,급기야클러리사를향한데이비드의눈빛이달라졌음을깨달은애거사는점점클러리사에게집착하게되는데…….

외로움에서사랑으로
집착에서독립으로

진짜삶,진짜행동,진짜현실
어느날클러리사는“어떤별이아주살짝더움직여서,태양이끌어당기는힘에서벗어나버리면어떻게될지궁금해”라고말한다.애거사는“재빨리”그럴일은없다고말을물리치지만고개를든불안이애거사를잡아먹는다.자신이클러리사와떨어진다면,그것이물리적이든정신적이든,클러리사가사라져버릴거라는불안.

이를알리없는클러리사는방금고안한‘별놀이’를하자고제안한다.비밀스러운끈을서로에게묶고클러리사가애거사주변을빙빙도는게임이었다.신난클러리사는갑자기원래의항로에서재빠르게벗어났고,그러다실이끊어지고만다.“애거사는진심으로괴로워”하며소리치지만,클러리사는“날불러도소용없어.난사라졌어.비밀스러운끈은끊어졌다고”라고말할뿐이다.

클러리사는갑자기나타난만큼갑자기사라질수있었다.애거사는둘만살아갈수있는“무한한세계”를만들고클러리사와영원히살고싶어하지만“상상만하는건허무하잖아”라고말하는클러리사는자기만의세상으로나가려한다.시간이흐르면서클러리사가데이비드와사랑에빠지자‘모녀’관계가깨질가능성은더욱커지는데,이때나타나는애거사의소유욕과불안감이신비롭지만위태롭게그려진다.
‘연약한어머니와딸’의관계를올리비어는감동적으로때로는슬프게구축했다.김지현번역가가해설에서짚어주듯《사생아》는“자식을자신의복제물로대하고소유하고자하는어머니와그시도를벗어나려하는딸의관계에대한유비”로도읽을수있다.

클러리사는그놀이에서진짜모험의세계와가장가까이접촉할수있는통로를발견했다.(……) 바깥세계를한번조우하니자신이원하는것은삶자체라는사실을깨달은셈이었다.(85쪽)

당대의‘잉여여성’과애거사

애거사는악한인물로그려지지않는다.사랑에익숙하지않은사람이자기가창조한존재를잃게될위기에처했을때느끼는고통을보여줄뿐이다.
제1차세계대전으로인해다수남성이사망하면서영국내미혼여성의수는급증했다고한다.1921년의인구조사에따르면여성은남성보다무려170만명더많았고사회는그들을‘잉여여성’이라는멸칭으로불렀다.오늘날에도여성에대한차별이공고한데《사생아》가발표된1920년대에는어땠을까.책에직접언급되지는않지만애거사는당대의‘잉여여성’중한명으로보인다.애거사를세심히따라가면“규범적삶에서소외되고그밖의인간관계를구축하기어려워하는,그리고전쟁의암운가운데에서고립된미혼여성의곤경”을살펴볼수있다.클러리사를‘창조’한것부터극심한외로움과공허함의표현이다.

하지만애거사는무기력하게무너지지않는다.자신이창조한존재를끝까지지키려고노력한다.사회적평판에도아랑곳하지않고자신이낳은사생아라고소리치고,세례도직접준다.자신은내키지않지만클러리사가운전,춤,테니스등을배우게하는등사랑으로보살피고책임진다.상상속존재가현실에나타났다는,믿을수없는일이벌어졌지만,그저함께“삶을살아갈”뿐이다.

이세상에서자기자신의존재를해명할수있는사람이누가있나?(41쪽)

50대에시작한소설쓰기와
‘설명불가능한것들’에대한애정

올리비어는50대에접어들어본격적으로소설창작을시작했다.아끼던동생밀드러드가사망한이후였다.한밤중에착상이떠올라“몸은피곤한데정신은비정상적으로빠르게제멋대로굴러가는듯했던그열에들뜬시간동안”《사생아》의첫두장을완성했다고한다.애거사가클러리사를불러냈던것과유사하게.《사생아》는올리비어의첫소설이며그전까지작가가되겠다는생각은한번도해본적이없었다고하는데《사생아》와함께작가로다시태어난것이다.작가와작품,그리고등장인물까지모두“비밀스러운끈”으로묶여있다고생각하는것은지나친해석일까?

올리비어는자전적인에세이〈설명불가능한것들〉에서가끔초자연적현상을경험한다고밝힌바있다.어느여름밤난데없이침대옆에서오래된라켓하나를발견했는데집에는아무도없었고창문과방문도모두닫혀있었으며자신의집에있을법한물건이절대아니었다고말한뒤만약“지나가던어떤혼령이장난삼아남긴물건이었다면,저승의유머감각은우리와는많이다른모양이라고말할수밖에없겠다”라고덧붙인다.설명할수없는대상과공존하고있다고생각하지않고서는“저승의유머감각”을운운하기란어렵지않을까.《사생아》는이처럼‘설명불가능한것’에대한올리비어의관심을유감없이보여주는환상소설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