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유라이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렸고,
끝내 매장되지 못했다.”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복원해나가는 철학적 추리소설
끝내 매장되지 못했다.”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복원해나가는 철학적 추리소설
미국에서 광부로 일하다가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 가족을 위해 헌신한 가장의 자리를 상상하지만, 이내 비정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이후 소설은 ‘호르두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추리해나가는데, 이러한 장르적이고 선정적인 서사의 이면으로 ‘우리는 과연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외면할 수 없는 철학적 물음을 담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카렐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세계적인 문학상에 호명돼온 정보라 작가가 체코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다.
마음이 엉킨 이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자꾸만 훔쳐보게 되는 타인의 마음
토마스 만, 조지 오웰, 아서 밀러가 극찬한 ‘작가들의 작가’ 카렐 차페크는 일간지 저널리스트로도 일했는데, 특히 ‘유라이 하르두베이’라는 한 남자의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외국에서 일하다 8년 만에 돌아온 하르두베이는 아내가 집안의 일꾼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 하르두베이는 일꾼에게 살해당하는데, 차페크는 이 사건에서 사람들이 살인자인 일꾼보다 남편을 배신한 아내를 더 심하게 비난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호르두발》에서 차페크는 호르두발의 관점으로 아내 ‘폴라나’를 바라본다. 호르두발은 폴라나의 마음을 왜곡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폴라나를 절대로 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죽음이었고, 소설은 거기서부터 인간의 꼬이고 꼬인 마음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니까 《호르두발》은 치정에 얽힌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마음이 엉킨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
치정 살인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3부작 중에서 가장 장르적이고, 말하자면 가장 선정적이다. 친밀한 타인의 마음을 얻으려 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과정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_정보라(번역가ㆍ소설가)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은 아내와 일꾼 ‘마냐’의 외도를 알게 된 뒤에도 어떻게든 부부 관계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아내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바실 게리치’와 절교를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제1권은 아내를 향한 호르두발의 이러한 내적 독백으로 진행되는데, 가족의 재건을 위해 담담하게 목소리를 더해갈수록 철저하게 격리된 자신의 자리만 더욱 뚜렷해진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호르두발은 오로지 목소리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데, 그의 육성은 아내의 짧은 대답과 딸의 침묵에 차갑게 부딪혀 되돌아올 뿐이다. 심지어 마냐는 나약해진다는 이유로 말(馬)에게조차 말을 걸지 말 것을 요구한다. 가장 가까운 존재여야 할 가족마저 타인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감정을 글로 기록할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호르두발은 혼잣말과 어설픈 몇 가지 영단어 속에서 실존적으로 완전히 고립돼버린다.
“유라이 호르두발이 살해당했다!”
시장 바실 게리치는 재빨리 겉옷을 걸쳐 입는다. “빨리, 제군, 빨리 헌병을 불러와.” 그가 서둘러 말한다. “호르두발 집으로 가라고 해.”
호르두발네 마당에서 폴라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뛰어다닌다. “오, 하느님, 하느님.” 탄식한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남편이 죽었어요. 죽었어!”(163쪽)
쿡쿡 쑤시는 심장의 통증을 참아가며 8년의 시간을 거스르던 호르두발은 제2권이 시작되자마자 살해당한다. 제1권에서 웅얼거림, 혼잣말, 짧은 영어, 주저함, 방백의 형태로 들리던 소설의 목소리가 뾰족하고 정돈된 언어로 완전히 뒤바뀐다. ‘호르두발 살인 사건’을 담당한 두 명의 헌병이 객관적인 범행의 증거물을 단서로 범인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신입 헌병 ‘비에글’은 넘치는 열정으로 작은 조각부터 사건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나가고, 이런 사건을 지겹도록 접한 베테랑 헌병 ‘겔나이’는 한 걸음 뒤에서 그런 비에글을 미심쩍게 바라본다. 비에글의 활약으로 우리는 사건의 진실에 빠르게 다가간다고 느끼지만, 그 과정에서 호르두발의 목소리가 한 번도 들리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아챈다(사건의 실제 증거물인 호르두발의 심장마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작고 불분명하나마 소설의 절반 이상을 들어온 그의 육성이 체계적이고 명확해 보이는 헌병의 귀납추리 뒤로 간단히 멀어져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다 아는지 민망할 지경이다. 하느님이 심판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심판한다.(208쪽)
폴라나와 마냐의 재판을 다룬 제3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날카롭고 그럴싸하다고 느꼈던 비에글의 사건 수사가 무디고 엉성한 자기 고백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철학소설 3부작’ 후기〉에서 차페크가 직접 밝힌 것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일부, 개인적인 우리 자신”이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일종의 자기 고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헌병은 물론이거니와 법정에서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도 각자의 사정에 근거할 뿐이다. 유라이 하르두베이의 실화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은 폴라나를 ‘부정한 여자’로 규정하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보다 자신이 무엇을 더 큰 죄로 여기는지에 따라 사건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우리 역시 어느 순간 사람들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지만 숨죽인 채 그들의 발언을 지켜본다. 다수의 생각과 홀로 어긋나는 일이 두려워서, 혹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의 진실이나 타인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은 어떤 마음 때문은 아닐까.
마음이 엉킨 이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자꾸만 훔쳐보게 되는 타인의 마음
토마스 만, 조지 오웰, 아서 밀러가 극찬한 ‘작가들의 작가’ 카렐 차페크는 일간지 저널리스트로도 일했는데, 특히 ‘유라이 하르두베이’라는 한 남자의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외국에서 일하다 8년 만에 돌아온 하르두베이는 아내가 집안의 일꾼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 하르두베이는 일꾼에게 살해당하는데, 차페크는 이 사건에서 사람들이 살인자인 일꾼보다 남편을 배신한 아내를 더 심하게 비난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호르두발》에서 차페크는 호르두발의 관점으로 아내 ‘폴라나’를 바라본다. 호르두발은 폴라나의 마음을 왜곡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폴라나를 절대로 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죽음이었고, 소설은 거기서부터 인간의 꼬이고 꼬인 마음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니까 《호르두발》은 치정에 얽힌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마음이 엉킨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
치정 살인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3부작 중에서 가장 장르적이고, 말하자면 가장 선정적이다. 친밀한 타인의 마음을 얻으려 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과정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_정보라(번역가ㆍ소설가)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은 아내와 일꾼 ‘마냐’의 외도를 알게 된 뒤에도 어떻게든 부부 관계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아내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바실 게리치’와 절교를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제1권은 아내를 향한 호르두발의 이러한 내적 독백으로 진행되는데, 가족의 재건을 위해 담담하게 목소리를 더해갈수록 철저하게 격리된 자신의 자리만 더욱 뚜렷해진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호르두발은 오로지 목소리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데, 그의 육성은 아내의 짧은 대답과 딸의 침묵에 차갑게 부딪혀 되돌아올 뿐이다. 심지어 마냐는 나약해진다는 이유로 말(馬)에게조차 말을 걸지 말 것을 요구한다. 가장 가까운 존재여야 할 가족마저 타인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감정을 글로 기록할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호르두발은 혼잣말과 어설픈 몇 가지 영단어 속에서 실존적으로 완전히 고립돼버린다.
“유라이 호르두발이 살해당했다!”
시장 바실 게리치는 재빨리 겉옷을 걸쳐 입는다. “빨리, 제군, 빨리 헌병을 불러와.” 그가 서둘러 말한다. “호르두발 집으로 가라고 해.”
호르두발네 마당에서 폴라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뛰어다닌다. “오, 하느님, 하느님.” 탄식한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남편이 죽었어요. 죽었어!”(163쪽)
쿡쿡 쑤시는 심장의 통증을 참아가며 8년의 시간을 거스르던 호르두발은 제2권이 시작되자마자 살해당한다. 제1권에서 웅얼거림, 혼잣말, 짧은 영어, 주저함, 방백의 형태로 들리던 소설의 목소리가 뾰족하고 정돈된 언어로 완전히 뒤바뀐다. ‘호르두발 살인 사건’을 담당한 두 명의 헌병이 객관적인 범행의 증거물을 단서로 범인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신입 헌병 ‘비에글’은 넘치는 열정으로 작은 조각부터 사건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나가고, 이런 사건을 지겹도록 접한 베테랑 헌병 ‘겔나이’는 한 걸음 뒤에서 그런 비에글을 미심쩍게 바라본다. 비에글의 활약으로 우리는 사건의 진실에 빠르게 다가간다고 느끼지만, 그 과정에서 호르두발의 목소리가 한 번도 들리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아챈다(사건의 실제 증거물인 호르두발의 심장마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작고 불분명하나마 소설의 절반 이상을 들어온 그의 육성이 체계적이고 명확해 보이는 헌병의 귀납추리 뒤로 간단히 멀어져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다 아는지 민망할 지경이다. 하느님이 심판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심판한다.(208쪽)
폴라나와 마냐의 재판을 다룬 제3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날카롭고 그럴싸하다고 느꼈던 비에글의 사건 수사가 무디고 엉성한 자기 고백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철학소설 3부작’ 후기〉에서 차페크가 직접 밝힌 것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일부, 개인적인 우리 자신”이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일종의 자기 고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헌병은 물론이거니와 법정에서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도 각자의 사정에 근거할 뿐이다. 유라이 하르두베이의 실화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은 폴라나를 ‘부정한 여자’로 규정하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보다 자신이 무엇을 더 큰 죄로 여기는지에 따라 사건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우리 역시 어느 순간 사람들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지만 숨죽인 채 그들의 발언을 지켜본다. 다수의 생각과 홀로 어긋나는 일이 두려워서, 혹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의 진실이나 타인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은 어떤 마음 때문은 아닐까.
호르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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