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별똥별

$14.00
Description
“아주 빨리 날아야만 했어요.
별똥별처럼 불타는 흔적을 남기면서 말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잃어버린 채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는 누구인가?
세 가지 상상력으로 추적해나가는 전혀 모르는 타인의 인생
미친 듯이 돌풍이 부는 날 하늘에서 떨어진 한 남자.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돼 병원에 실려 온 남자는 ‘환자 X’로 불린다.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심지어 얼굴마저도 붕대에 가려져 잃어버린 ‘환자 X’의 정체를 세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추적해나간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카렐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자 가장 독특하고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적인 문학상에 호명돼온 정보라 작가가 체코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고,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 후기〉를 부록으로 실었다.


그럴듯한 인생을 꾸며내기 위해 난무하는 마음들……
이해와 오해와 이야기의 경계까지 단번에 허물어뜨리는 반전

극작가 아서 밀러는 “차페크 같은 작가는 어디에도 없다”라며 차페크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극찬했다. 차페크는 인류에게 ‘로봇’이라는 신조어를 선사한 작가답게 독자적이고 색다른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별똥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환상적이고 독특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발견된 이름도, 얼굴도 잃어버린 정체불명의 남자. 차페크는 아무런 객관적인 정보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완벽한 타인’ 앞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환자 X’의 삶을 간호사인 ‘수녀’, 다른 병동에 입원한 ‘천리안’, 의사의 지인인 ‘시인’의 시선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연민과 직관, 예술적 상상력으로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그럴싸하게 그려나간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상상력과 마음들이 난무할수록 ‘환자 X’의 진실은 따라잡을 수 없는 별똥별처럼 아득해질 뿐이다. 즉 《별똥별》은 전혀 모르는 타인의 인생을 이해하고자 뻗어나가는 인간의 마음과 그로 인해 더욱더 멀어지는 삶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천 개의 가능성 중에서 겨우 하나일 뿐이며 그마저도 가장 일관되거나 가장 중대한 가능성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든 경험은 그저 우연히 펼쳐진 한 페이지이거나 현명한 예언자의 책에서 흘끗 읽어낸 한 단어에 불과하며, 우리는 더 많은 걸 알고 싶은 겁니다.(134∼135쪽)

세 사람이 각자의 경험대로 복원해내는 ‘환자 X’의 삶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인상적이다. 수녀는 꿈에서 ‘환자 X’가 자신을 프랑스어로 부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수녀에 따르면 ‘환자 X’는 부유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애정의 결핍과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준 엔지니어 여성을 버리고 열대지방을 떠돌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죽음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삶이 비겁한 도피였음을 참회하고, 마침내 진정한 사랑과 질서 안에서 구원받고자 열망한다.
수녀가 신앙과 연민의 눈으로 ‘환자 X’를 바라보았다면, 천리안은 직관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자기 몸으로 감각하며 그의 삶을 추적한다. 천리안에 따르면 ‘환자 X’는 학계의 권위자에게 무시당한 뒤 카리브해 지역에서 무기력하게 방랑하는 천재 화학자다. 그러나 훗날 자신의 창의적인 화학 공식을 완성하고자 별똥별처럼 조급히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다 돌풍을 만나 추락하고 만다.
한편 시인은 환자의 소지품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물을 바탕으로 ‘환자 X’의 삶을 추론한다. 시인에 따르면 ‘환자 X’는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은 뒤 쿠바 거상을 만나 카리브해 지역에서 새로이 살아가는 ‘조지 케텔링’이다. 케텔링은 농장의 중간 관리자로서 타인의 사정이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꾼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인다. 이후 가짜 신분과 양심 없이 살아가는 기만적인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 거상의 딸 ‘메리’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자 다양한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대공황과 파업 등으로 사업은 완전히 파산하고, 진짜 신분을 되찾아 메리에게 돌아가고자 황급히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하고 만다.

우연 같은 건 없어요. 환자 X는 아주 빨리 날아야만 했어요. 별똥별처럼 불타는 흔적을 남기면서 말입니다.(118쪽)

‘환자 X’라는 하나의 몸 위에 포개지는 세 개의 삶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서사적 개연성을 가지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소설의 상상력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 차페크는 생각지 못한 반전으로 이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에 되돌려놓는다. 우리가 진실이라 오해했던 입체적인 서사들이 사실은 “일종의 자기 고백”이자 자기 투사에 불과했음이 드러난다. 차페크가 〈‘철학소설 3부작’ 후기〉에서 말한 것처럼 ‘완벽한 타인’ 앞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이해와 상상은 결국 우리 자신의 경험과 한계를 반영할 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환자 X’의 삶이 선명해질수록 병상 위에 누워 있는 실체로서의 ‘환자 X’의 삶은 더욱더 아득한 가림막 뒤로 사라져버린다.

그는 무엇이든 다 끊임없는 어떤 회상을 가림막을 통해 보는 느낌이 들 겁니다. 모든 것이 다 어디선가 알았던 듯하고, 자기 삶에서 언젠가 일어났던 듯한데, 세상에, 그게 어디였을까요? 그게 언제였을까요?(158쪽)
저자

카렐 차페크

Karel Čapek | 1890년 체코 북부의 작은 도시 말레 스바토뇨비체에서 태어났다. 체코 프라하와 독일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15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6년 형 요세프 차페크와 함께 쓴 산문집 《빛나는 심연》을 시작으로 소설, 에세이, 희곡, 동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동시에 체코의 일간지 《나로드니 리스티》, 《리도베 노비니》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20년 ‘로봇’이라는 말을 세상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희곡 《R. U. R.》을 펴냈고, 1933년부터 체코 문학의 최고봉이자 차페크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철학소설 3부작 《호르두발》, 《별똥별》(1934), 《평범한 인생》(1934)을 연달아 출간했다. 일곱 차례 이상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당시 유럽을 장악했던 나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페크는 명실공히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로 손꼽힌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희곡 《곤충 극장》(1921), 장편소설 《도롱뇽과의 전쟁》(1936), 에세이 《정원가의 열두 달》(1929),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1939) 등이 있고, 인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1924), 《조금 미친 사람들》(1930) 같은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기 몇 달 전,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 프라하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차

별똥별 _007

부록 ‘철학소설 3부작’ 후기 _259

해설 | 이해와 오해 속에서 _266

출판사 서평

정보라 작가의 번역으로 가닿을 수 있는
차페크 문장의 가장 아름다운 성좌

작은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환자 X’를 둘러싼 이 압도적인 상상력의 향연은 누군가의 삶을 엿본다는 통속적인 호기심이나 장르적인 쾌감의 측면을 뛰어넘는다. 차페크는 뭉툭하고 동정적일 수 있는 ‘비행기 추락 사고’라는 사건의 발단에서 ‘인간은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재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묵직한 인식론적 화두를 끄집어낸다. 층층이 쌓여가는 다채로운 서사 속에서 타인의 진실은 손에 잡히지 않는 별똥별처럼 멀어지지만, 동시에 그 까마득한 궤적을 좇는 인간의 마음에서 우리는 작디작은 이해의 가능성을 목격하게 된다.
더불어 《별똥별》을 통해 차페크의 창작론을 엿볼 수 있다. 정보라 작가가 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의 삶을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경험하고 그 이야기 속에 이입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한다. 차페크가 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장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까닭 역시 세상과 타인을 이해해보고자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근거에 살을 붙여 ‘환자 X’의 삶을 창조해내고, “생생하고 개연성 넘치게 풀어놓았던 이야기를 마지막 한마디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결말 또한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의 본질을 폭로하는 작가의 통찰”이다. 이러한 작가적 재능은 절대로 흔한 것이 아니다. 단 한 문장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 독보적인 소설은, 왜 차페크가 오늘날까지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수많은 거장의 극찬을 받아왔는지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모든 언어로 쓰인 철학소설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자
“손에 꼽을 만한 재미있는 철학소설”

‘철학소설 3부작’은 “차페크의 가장 뛰어난 걸작”(《시카고 트리뷴》)이라 불리는 세 작품 《호르두발》, 《별똥별》, 《평범한 인생》을 말한다. 각기 독립적인 줄거리이지만, 평생을 함께하고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나’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끈질기게 되살핀다는 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인간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소설들이다. 세계적인 문학상 후보에 호명돼온 정보라 작가가 세 작품의 번역을 모두 맡아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언어로 ‘차페크 유니버스’를 복원해냈다. 차페크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SF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철학소설 3부작’이야말로 자타공인 ‘차페크 문학의 궁극’이라 일컬어진다. 특히 “모든 언어로 쓰인 철학소설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문학비평가 레네 벨레크)이자 “손에 꼽을 만한 재미있는 철학소설”(《워싱턴 포스트》)이라 불리며 그 작품성과 서사적 매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타인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어가는”(번역가·소설가 정보라) 오늘날, 결코 타인에 대해 알 수 없지만 끝내 타인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모순을 이 3부작은 묵직하고도 진실한 목소리로 되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