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평범한 인생

$14.00
Description
“삐걱거리지 않고 끙끙거리지 않고 폭발할 위험이 없었다고 해서
더 못한 삶이란 말인가?”

평범하다고 믿었던 한 인생의 거대한 반전,
자기 검열로 만들어낸 환영 위로 폭주하는 수많은 ‘나’
생의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둔 전직 철도 공무원. “언젠가는 평범한 사람의 전기도 나와야 하지 않냐”는 생각으로 자서전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단 하나의 삶을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자서전은 수많은 ‘나’의 목소리로 기록되며 장대한 인식론적 여정으로 탈바꿈한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더불어 체코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카렐 차페크의 대표작이자 ‘철학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걸작이다.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온 정보라 작가가 체코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고,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 후기〉를 부록으로 실었다.


스스로 묶은 마음의 매듭을 끈기 있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일곱 차례 이상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조지 오웰, 토마스 만, 아서 밀러 등이 극찬한 ‘작가들의 작가’ 카렐 차페크는 일평생 ‘타인에 대한 이해’를 문학적 화두로 삼았다. 《평범한 인생》은 바로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의 불가능성’이라는 질문을 ‘나’라는, 인간의 가장 깊숙한 영역으로 확장한 소설이다. 평생을 질서와 규칙에 맞춰 살아온 주인공은 자신의 지난날이 지극히 모범적이고 평범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나온 궤도를 글로 적어내는 순간, 정돈된 삶의 틈새로 자신이 외면하거나 내쳐야 했던 수많은 ‘또 다른 나’가 고개를 쳐든다. 천재 시인, 출세지상주의자, 건강염려증 환자, 아내를 증오하는 타락한 인간, 비밀 첩보원…… 단 하나의 평범한 삶이라 믿었던 유일무이한 얼굴 아래로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모르는 타인들’이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인생》은 하나의 방향으로 한 가지 삶만 살 수 있다는 인간존재의 한계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수많은 ‘나’를 마주하게 만드는 기이한 소설적 체험을 주는 작품이다.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볼 것이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가능성을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의 모습은 가장 평등하지 않은가 말이다. 누구나 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다.(228쪽)

주인공은 평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호등에 따라 작동하는 철도 공무원으로 살아왔다. 은퇴 후에는 정원을 가꾸며 지내왔지만, 심장에 이상이 생겨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서전으로 기록하며 돌아본 자신의 삶이 너무나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애썼던 어린 시절,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철도청에 입사해 승진을 거듭한 일, 그리고 결혼을 하고…… 그런데 이렇게 평범하고 평범해서 안정감을 주는 삶의 세목들 너머로 오래 인식하지 못한 또 다른 ‘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이 꿈꾸었거나 부정했거나 숨겼던 자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평범해야 하고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모두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삶의 비의를 눈치챘지만,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조용하고도 열띤 투쟁”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내면에는 충분한 자리가 있어서, 가장 평범한 인생이라도 여러 가지 의도가 충분히 동시에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141쪽)

자서전을 써 내려갈수록 그의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또 다른 자아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와 발언권을 요구한다. 열정적이었으나 현실과 타협하며 폐기된 ‘시인’, 사랑을 가장하며 성공에 목매는 ‘출세지상주의자’, 체코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비밀 첩보원’까지 여러 얼굴이 교차하며 단일했던 주인공의 정체성은 낱낱이 해체된다. 소설은 이처럼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평범함’이라는 가림막이 벗겨지는 순간을 촘촘히 그려낸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내지 못한 수많은 삶의 가능성과 직면하며, 내가 아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디고 흐릿한 환영에 불과했는지 깨닫는다.
자기 안의 무성한 목소리를 목격한 그의 인식은 자연스레 ‘나’를 넘어 모든 ‘타인’을 향한 작은 이해로 확장된다. 내 안에 이처럼 많은 ‘타인’이 우글거리고 있다면,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타인들 역시 내면에 무수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페크는 주인공이 솔직하게 써나가는 자서전 통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의 불가능성’에 도달했을 때, 타인을 향한 진정한 공감과 연대 또한 생겨날 수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그러니까 《평범한 인생》은 삶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는 한 사람의 회고를 빌려 우리 각자가 품고 있는 수많은 ‘나’의 가능성을 온전히 껴안도록 만드는 단정하고도 단순한 삶의 지침서다.

세상에, 행복한 삶을 위한 이토록 단순한 지침이라니. 대의를 위해서 우리가 하는 일에 사랑을 담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이 기차역에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84쪽)
저자

카렐 차페크

Karel Čapek | 1890년 체코 북부의 작은 도시 말레 스바토뇨비체에서 태어났다. 체코 프라하와 독일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15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6년 형 요세프 차페크와 함께 쓴 산문집 《빛나는 심연》을 시작으로 소설, 에세이, 희곡, 동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동시에 체코의 일간지 《나로드니 리스티》, 《리도베 노비니》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20년 ‘로봇’이라는 말을 세상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희곡 《R. U. R.》을 펴냈고, 1933년부터 체코 문학의 최고봉이자 차페크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철학소설 3부작 《호르두발》, 《별똥별》(1934), 《평범한 인생》(1934)을 연달아 출간했다. 일곱 차례 이상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당시 유럽을 장악했던 나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페크는 명실공히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로 손꼽힌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희곡 《곤충 극장》(1921), 장편소설 《도롱뇽과의 전쟁》(1936), 에세이 《정원가의 열두 달》(1929),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1939) 등이 있고, 인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1924), 《조금 미친 사람들》(1930) 같은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기 몇 달 전,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 프라하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차

평범한 인생 _007

부록 ‘철학소설 3부작’ 후기 _234

해설 | 드넓은 세상 속의 복잡한 나 _241

출판사 서평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며 도달한
눈부신 인본주의의 정점

《평범한 인생》은 ‘모범적이고 평범했다’고 믿는 삶조차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수정을 거쳐 재구성된 결과물일 수 있음을 폭로한다. 깨끗하게 정리된 기억 너머에 숨겨진 욕망과 수많은 ‘나’를 대면하는 순간,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여러 우연과 인연이 얽힌 가능성의 집합체임을 깨닫는다. 내 안에 무수한 타인이 들끓고 있듯 세상의 타인들 역시 또 다른 ‘나’일 수 있다는 이 거대한 자각은, 마침내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단단한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차페크가 남긴 이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숨 막히게 아름”(번역가·소설가 정보라)다운 회상록이 ‘나’라는 협소한 자아를 넘어 ‘인간’이라는 아득한 다양성을 온전히 품게 만드는 눈부신 인본주의의 정점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모든 언어로 쓰인 철학소설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자
“손에 꼽을 만한 재미있는 철학소설”

‘철학소설 3부작’은 “차페크의 가장 뛰어난 걸작”(《시카고 트리뷴》)이라 불리는 세 작품 《호르두발》, 《별똥별》, 《평범한 인생》을 말한다. 각기 독립적인 줄거리이지만, 평생을 함께하고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나’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끈질기게 되살핀다는 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인간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소설들이다. 세계적인 문학상 후보에 호명돼온 정보라 작가가 세 작품의 번역을 모두 맡아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언어로 ‘차페크 유니버스’를 복원해냈다. 차페크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SF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철학소설 3부작’이야말로 자타공인 ‘차페크 문학의 궁극’이라 일컬어진다. 특히 “모든 언어로 쓰인 철학소설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문학비평가 레네 벨레크)이자 “손에 꼽을 만한 재미있는 철학소설”(《워싱턴 포스트》)이라 불리며 그 작품성과 서사적 매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타인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어가는”(번역가·소설가 정보라) 오늘날, 결코 타인에 대해 알 수 없지만 끝내 타인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모순을 이 3부작은 묵직하고도 진실한 목소리로 되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