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문답·계방일기 : 인간과 만물 간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양장)

의산문답·계방일기 : 인간과 만물 간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양장)

$22.00
저자

홍대용

저자:홍대용
북학파의선구자혹은과학사상가로서지구가자전한다는지전설을주창한홍대용은1731년(영조7)충청도천안군수신면장산리수촌에서태어났다.마음만먹으면출세를보장받는가문출신이지만,순수한학문의길을선택하여과거시험은크게신경쓰지않았다.12세에석실서원에들어가23년간기호학파의대표적인유학자김원행아래에서수학하였으며,천문학·수학·역산학·음악등다양한분야에걸쳐관심을가졌다.홍대용의일생에서가장전환점이된사건은중국연행이다.1765년홍대용은서른다섯의나이로중국땅을밟기위해압록강을건넜다.이때북경유리창에서만난항주의선비엄성과반정균,육비와시공을초월한우정을나누면서,그리고천주당과관상대를방문하여서양의문물을접하면서홍대용은서서히새로운세계관을가진인물로탈바꿈되어갔다.불멸의명저『의산문답』은중국연행을다녀온후쓴책이다.40대에들어서음직으로관직에나갔고정조임금이왕위에오르기전17개월동안세자익위사에서근무하면서그경험을바탕으로『계방일기』라는글을남겼다.어머니의병을구실로고향에돌아와있던홍대용은1783년10월23일에생애를마감했다.꼭52년하고도7개월남짓의길지않은일생이었다.그의본관은남양南陽,호는홍지弘之라했고,자는덕보德保,당호로는담헌湛軒을썼기때문에오늘날그의문집은『담헌서湛軒書』란이름으로남아있다.

역자:정성희
인천에서태어나국립경상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에서「조선후기의우주관과역법」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책임연구원과대전대학교연구교수를지냈고,실학박물관학예연구관과경기도박물관학예연구실장을거쳐현재는실학박물관관장으로재직중이다.주요논문으로「조선후기서양과학의수용」(2007)「근기실학과반계유형원」(2017)등이있으며,저술로『우리조상은하늘을어떻게이해했는가』(2003)『장서각수집역서자료해제』(2008)『홍대용-경계없는사유』(2017)『세종의하늘』(2020)『실학,조선의르네상스를열다』(2018,공저)등이있다.

목차

서문_1766,스페이스오디세이

의산문답
세상에나온허자
의무려산에서실옹을만나다
실옹,허자를꾸짖다
실옹에게도의요체를묻다
사람과만물은구별이없다
땅의모양은둥글다
낡은지식에집착하는자와는함께도를논할수없고
땅은회전한다
우주의중심은지구가아니다
우주는무한한세계다
태양과달,지구의세계에대해말하다
달에대한이야기
유성과혜성에대해말하다
일식과월식,그리고음양의조화
자연현상에대해말하다
바다의형세
땅의형세
만물의근본과변화
하늘에서보면사람과만물은똑같다

계방일기
갑오년(1774,영조50)12월1일
갑오년(1774,영조50)12월4일
갑오년(1774,영조50)12월12일
갑오년(1774,영조50)12월14일
갑오년(1774,영조50)12월19일
갑오년(1774,영조50)12월25일
을미년(1775,영조51)1월21일
을미년(1775,영조51)1월22일
을미년(1775,영조51)1월29일
을미년(1775,영조51)2월16일
을미년(1775,영조51)2월18일
을미년(1775,영조51)3월28일
을미년(1775,영조51)3월29일
을미년(1775,영조51)4월8일
을미년(1775,영조51)4월9일
을미년(1775,영조51)8월26일

해설
1.홍대용의생애
2.천문에눈을뜨다
3.애오려와건곤일초정
4.사설천문대농수각
5.실옹과허자의오디세이,의산문답
6.정조와홍대용의학문토론기,계방일기

홍대용연보

출판사 서평

이땅을넘어중국너머의세계와지구의모습을제대로본,『의산문답』
영명한군주가될정조를통해자신의뜻을펼치고자한,『계방일기』

홍대용은『의산문답』을통해허례허식에찌든고답적인사고방식을혁파하고자애썼다.이책은청나라의무려산에서가공의인물을만나대화를나눈형식의글이다.의무려산은불교와도교의유적지가많이남아있는불교의명산이자,요동과중원을나누는기점으로이른바중화와오랑캐의경계가되는산이다.홍대용은청나라에서귀국하던길에이산에올랐다.

과학사상서이자철학소설인『의산문답』에는실학자를상징하는실옹과공리명분에만치우친허자라는가상의인물이등장한다.『의산문답』은허자라는인물이의무려산을오르는것으로시작된다.홍대용은『의산문답』에서기존의경직된유교적가치와명나라중심의중화주의질서를비판했다.이바탕위에서홍대용은자신의사상과철학을완성했다.

또하나의책인『계방일기』는정조의세자시절학습을담당했던경험을담은책인데,이책에서는홍대용의개인적인인품이많이드러나있다.홍대용과함께세자의학습을돕는여러문신들이등장하고,가끔은세자가그들을품평하는모습도그려진다.이책에서도홍대용은자신의실학적사상을세자에게설파하는모습이보인다.

책속에서

30여년전한국과학사를처음공부하면서『의산문답』은홍대용의지원설과지구자전설이실려있는일종의과학사상서라고생각해왔다.이러한필자의생각은마치『의산문답』속의허자처럼우물안개구리같은생각이었음을깨달은게이번작업의가장큰소득이라면소득이다.『의산문답』은멸망의세계로질주하는인류미래를위한홍대용의마지막경고같은책이다.21세기미증유의기후위기를맞은인류의운명을홍대용은이미250년전에예측했다.그는기화시대의인류는욕심없이생활하여자연만물이모두제수명을누렸으나,인간이자신만을위한형화시대부터지구의생태환경이파괴되었다고주장한다.(중략)『계방일기』는홍대용이그의나이44세에세손을호위하는벼슬인세자익위사의시직으로근무했던1774년음력12월1일부터이듬해8월26일까지약9개월간의근무일기로,동궁시절의정조에게경사經史를강의하고문답을나눈말들이다.홍대용과세손간의질의응답내용을정리한『계방일기』는세손인정조가왕위에오른뒤자신의개혁방안을실천해줌으로써조선의국가발전에도움이될수있으리라는생각과뜻이잘담겨있다.
---「서문:1776,스페이스오디세이,9~10쪽」중에서

허자가사람과만물의차이를말하자,듣고있던실옹이말했다.
”오호라!그대의말대로라면사람과만물이다른점이거의없는것이아니냐?무릇털과피부같은재질과정액과혈액의교감은초목이나사람이나다를바가없거늘,하물며사람이짐승과다를것이있겠느냐?
이번에는내가다시묻겠다.
이세상에생명체가세가지있으니,첫째가사람이고둘째가짐승이며셋째가초목이다.초목은거꾸로땅에붙어자라나는까닭에아는것[知]은있지만깨달음[覺]이없다.짐승은옆으로기어다니는까닭에깨달음은있어도지혜는없다.이세가지생명체가한없이서로얽히고설켜살면서서로쇠하게도하고성하게도하는데,이들사이에귀하고천함의차등이있다고할수있겠는가?”
---「의산문답,26~27쪽」중에서

실옹이말했다.
“그렇지않다.하늘에가득한별들치고하나의세계가아닌것이없으니,저별들의세계로부터본다면지구역시하나의별이다.헤아릴수없는수많은별의세계가이우주에흩어져있는데,오직이지구만이우주의중심에있다는것은있을수없는일이다.
그러므로모든별은모두하나의세계가아닌것이없고회전하지않는것이없다.다른별에서보면지구에서보는것과마찬가지로각기스스로중심이라생각할것이니나머지다른별들은주변에있는뭇세계가될것이다.
만약칠정이지구를둘러싸고있는것이진실로그러하다면지구가칠정의중심이라고할수있으나,지구가뭇별의중심이라는것은우물안에앉아서하늘을보는것과같은좁은소견이다.
---「의산문답,45~46쪽」중에서

그러니하늘에서바라보면어찌안과밖의구별이있겠느냐?그러므로각자가자기나라사람끼리서로사랑하고자기임금을높이며,자기나라를지키고자기풍속을좋게여기는것은중화나오랑캐나마찬가지다.대저하늘과땅이변하면서사람과만물이번성하고사람과만물이번성하면서주체와객체가형성되고,주체와객체가형성되면서안과밖의구별이생겨났다.오장육부와팔다리는한몸뚱이의안과바깥이요,자신과처자는한집안에서의안과바깥이며,형제와친척은한문중의안과바깥이다.이웃마을과변두리는한나라의안과바깥이며,천자가다스리는나라와교화가미치지못하는먼나라는천하의안과바깥인것이다.무릇자기것이아닌것을가지는것을도盜라하고,죄가없는데죽이는것을원수를뜻하는적賊이라한다.네오랑캐즉사이四夷가중국강역을침략하는것을떼도둑이라는의미의구寇라하고,중국이함부로무력을일으키는것을사이四夷들은적賊이라하니,서로구라하고서로적이라하는것은그뜻이매한가지다.
---「의산문답,102쪽」중에서

홍대용매우참람스러우나이렇게하문하시는데어찌감히바로아뢰지않을수있겠습니까?신은매번서연과소대가모두정지될때마다망령스럽게도지금저하께서혹시안일에빠져계시는가?아니면혹오락을즐기고계시지는않는가?하는지나친걱정을하고있었습니다.이제저하께서쉬시는가운데에도이런일에마음을두시니이어찌천만다행이아니겠습니까?또한저하께서저희궁료들의좋은말을연석에서잘받아들이시고다시이것을모아책자로까지만드시니가만히생각건대붓을잡고기록하실때에도연석에서말씀하실때와다름없이같은마음가짐이었을것입니다.귀에거슬리지않는말은궁구해보는것이귀하다.는성인의말씀그대로입니다.
---「계방일기,166~167쪽

동궁원명원은창춘원에비하면어떠하더이까?홍대용원명원은창춘원서쪽10리에있는데창춘원에비해어마어마하게넓고사치와화려함이백배도넘습니다.서산같은곳은또원명원의열배도넘었습니다.궁궐의사치함과검소함,임금의어짊과그렇지못함으로세상운세의성쇠를점칠수있습니다.또서산은누각과강변에지은건물이하천을따라40리를뻗어수도북경서쪽까지이어져있습니다.그위치와구조의정교함과절묘함은이루말할수없을정도이나실상은어린아이장난과같습니다.백성들의고혈을짜내오로지백해무익한놀이에빠져당시에는백성들의원망을샀고후세에는사람들의웃음거리가되었습니다.이는천고의감계鑑戒(거울로삼아조심함)로삼을만합니다.그런데하천을따라세워진누각들도세월이흐르니최근에는조금칠이벗겨지고떨어져볼품없어보이는탓에예전처럼이곳을자주찾아놀지는않는듯합니다.
---「계방일기,201쪽」중에서

1636년병자호란이후한세기이상이지났지만,조선사회는여전히중화주의적명분론에사로잡혀있었다.청나라는여전히야만국이었고명나라의제도를보존하고있는조선은사라진중화의적통이었다.홍대용의북경여행은조선유자들이사로잡혀있는명분론이비현실적인것임을깨우쳐주는계기가되었다.30년간성리학공부만하던허자가세상에나와야심차게내뱉은말은현실과동떨어져있었던것이고허자는곧홍대용자신이었다.실옹의입을빌려홍대용은무한우주론을설파했다.
“우주의뭇별들은각각하나의세계를가지고있고끝없는세계가공계에흩어져있는데오직지구만이중심에있다는것은있을수없다.”
무한우주론은그이전에는찾아볼수없는실로대담하고도독창적인것이었다.물론중국고대우주론에서선야설이라하여무한의공간을상정한적도있었고,북송의철학자장횡거(張橫渠,1020~1077)가이와비슷한이야기를한적이있었다지만,홍대용처럼파격적인주장을펼쳤다고할정도는아니었다.
---「해설,274~275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