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년 8월 6일 페리고르에서 퐁스 드 페늘롱 백작과 루이즈 드 생-타브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두 살에 그리스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우아하게 글을 쓸 정로도 매우 영리한 학생이었다. 1663년에 플레시 학교, 1672년에 생쉴피스 신학교에 입학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1675년에 생쉴피스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677년에는 카오르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 해에 왕의 사료 편찬관으로 임명되었다. 1684년부터 약 3년 동안은 보빌리에 공작 부인의 요청으로《소녀 교육론》을 집필했고 1688년에 루이 14세의 손자인 부르고뉴 공작의 가정교사로 임명되었다. 1694년에는《루이 14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오디세우스》를 번역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텔레마코스의 모험》을 집필했다. 1695년에 캉브레 대주교에 임명된 페늘롱은 이 책 때문에 왕의 미움을 사 결국 1699년 부르고뉴 공작의 가정교사 지위와 은급을 박탈당했다. 1704년 이후 2년 동안 반 얀센파 교도 투쟁에 열중하던 페늘롱은《얀센파 교도들의 ‘공손한 침묵’에 대한 지도와 반박의 글》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