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책들(큰글자책) (읽는 삶은 일하는 삶을 어떻게 구하나 | 개정판)

출근하는 책들(큰글자책) (읽는 삶은 일하는 삶을 어떻게 구하나 | 개정판)

$33.00
Description
'읽는 인생'은 어떻게 '일하는 인생'을 구원하는가?
직장생활이 눈물 쏙 빠지게 힘들 때
그 눈물을 닦아주는 '활자들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어느 날, 오늘 하루만 나를 대신해 출근할 아바타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단, 그 아바타는 책들 속 주인공으로 한정돼 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화자를 고를 것인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의 요조가 회식 자리에 앉아있다고 상상해 보자. ‘익살’이란 가면을 쓰고 그 시간을 용케도 잘 버텨내면서 내면에 큰 수치심과 괴리감, 시대와의 불화를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면 요조가 미친 척 발광에 실성한 척을 해대서 그 술자리는 일찍 파해 2차까지 가지 않아 다행스러울 수도 있다. 물론 다음날 내가 대신 그 민망한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고통은 있다.
아니면 『빨간머리 앤』의 주인공 앤을 보내 하루종일 수용초과의 투머치 토크를 건네, 상사가 다시는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건 어떨까? 이 또한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책 속의 어떤 주인공이든 오늘의 나를 대신해 회사 생활을 한다면 일은 망치겠지만 하루를 망치지는 않겠다는 묘한 쾌감이 든다.

일터에서 비루해지고, 초라해지고, 남루해지며, 처참과 비참, 비탄을 느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삶의 장르 자체가 회색빛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근사하게, 당당하게, 멋있게, 직업윤리를 지키며 자아 성장을 도모해 줄 것이라 믿었던 무지갯빛 일터는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다.
바람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다.
날카로운 굴욕과 치욕, 모멸과 너절함이 마음을 땅 밑으로 꺼지게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생계에 대한 중압감이 허무와 절망으로 누를 때. 그럴 때 저자는 순전히 도피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할 줄 아는 게 읽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일 생각 좀 떨쳐버리고 싶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때 눈물을 삼키며 읽은 ‘도망간 곳에서 찾은 활자’들의 기록들이다.


비정한 일터에서 처절히 무너진 '일개 독자'의 '읽는 인생'


책 속에 등장하는 활자들의 행진은 고작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흉포한 일터에서 찢기고, 할큄당하고, 쏘이고, 난도질 당하다 너절해진 저자를 안아주고 얼러주며 위로한 도서들이다.
저자가 읽은 책들은 일하는 고통에 휩싸인 인간에게 자기계발서나 처세술 서적이 그러하듯, 똑 부러지게 ‘이렇게 하세요’ 라는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답 같은 건 없다고 눙을 치며 슬그머니 뭉개기만 한다. 해답을 구하는 독자에게 더 난해한 질문과 난수표 같은 반응으로 응수해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일터에서 고통을 해소하는 수단으로서 책을 읽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생산성 낮은 ‘도피성 독서’를 통해 단언컨대 ‘일하는 인간’으로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명료해지며 단호해졌다고 말한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의 고통을 조명했다. 시작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대한 독후감이다. 저자는 일터에서 광대가 되어야 하거나, 허위와 가식에 환멸을 느낄 때 『인간실격』 요조의 포효를 떠올린다. 『라인: 밤의 일기』는 일터를 장엄한 시야로 볼 수 있게 하고, 『비타민』은 남루한 하루치의 노동에 깊은 소외를 느끼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2부는 일터에서의 대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야간비행』은 워커홀릭 상사들의 내면심리를 초고밀도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우신예찬』은 인간은 본디 본성이 불완전하고 어리석으니, 그깟 인간에 상처받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스토너』와 『관리의 죽음』은 사회생활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오해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내면을 지킬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인정 욕망에 대해 말하는 3부에서는 내 안의 음습한 마음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가 함께 한다. 4부는 매너리즘을 다뤘다. 『외투』를 읽으면 자아도취감이 얼마나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세일즈맨의 죽음』은 어딘가 불안정한 삶터와 일터가 인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간접 체험하게 한다.
5부는 일의 끝과 시작에 대해 말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일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집요하게 묻고, 『그림자를 판 사나이』, 『단식광대』는 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고 묵직하게 사색할 수 있게 한다.

현관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출근길은 늘 변함없는 루틴임에도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껄끄럽고 요원하다. 그 외롭고도 지난한 길에 누군가 우리 손을 잡아준다.
'걱정마, 오늘도 내가 같이 가 줄게.'
마치 전장을 나가는 신참 보병처럼 비장한 내 어깨 언저리엔 소총대신 '오늘의 책' 한 권이 들어있는 가방이 달랑거린다.
'출근하는 책들'과 함께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하루란 말인가.
저자

구채은

1985년에태어났다.서강대학교에서국어국문학을전공했다.아시아경제정치부기자다.10년넘게기자로일해왔지만뼈기자(기자일이천직인기자)가아니라순살기자(생계형기자)다.본캐는기자지만,부캐는심리학자,예술가지망생이다.2021년‘씨티대한민국소비자금융부문언론인상’을수상했다.2018년‘한국상담심리학회차세대연구자상’을받았다.한때문청이었다.지금도텍스트로된모든것을추앙한다.책을사랑하지만독서는늘미완이라느낀다.진정한읽기는활자에서린정신이삶에스며,행동으로나타날때완성된다고믿어서다.앎과삶의일치를추구하고,읽음과행함사이의거리를응시하며살고자한다.

목차

당신은일터에서울어본적이있나요?

1부.나를붕괴시키는일
건배사에학을떼는당신에게_다자이오사무『인간실격』
1지망이아닌일을하고있다면_이진경『김시종,어긋남의존재론』
저이런일할사람아닌데요_레이먼드카버『비타민』
익스트림롱쇼트로일을바라보면_조제프퐁튀스『라인:밤의일기』
#퇴근길농담_일이내면의바다를위협할때는


2부.인간관계가어렵다면
똑부꼰대상사의내면이궁금하다면_앙투안드생텍쥐페리『야간비행』
우리는다별로니상처주지도받지도말자_에라스무스『우신예찬』
일터에서필생의악연을만난다면_존윌리엄스『스토너』
오해하고할퀴는직장인간관계의본질_안톤체호프『관리의죽음』,『공포』
#퇴근길농담_업무메신저쿠션어사용법

3부.인정받고싶은마음
일터에서죽기살기로용기내야할때_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명상록』
동료가망하면기분이좋아요_티파니와트스미스『위로해주려는데왜자꾸웃음이나올까』
현대판계급지도,직업등급표에기죽지않으려면_스탕달『적과흑』
나는예뻐야하는가,유능해야하는가_게르드브란튼베르그『이갈리아의딸들』
#퇴근길농담_상사가그럴수밖에없는이유

4부.매너리즘에빠진그대에게
사람을뒤틀리게만드는일_니콜라이고골『외투』
원치않는부서로의인사이동이괴롭다면_아서밀러『세일즈맨의죽음』
퇴근하고유튜브와인스타그램만하는당신에게_솔벨로『오늘을잡아라』
일의야만과모순에어떻게저항해야하나_보후밀흐라발『너무시끄러운고독』
반복은광휘를만든다_아베코보『모래의여자』
#퇴근길농담_일터에이데아는없다

5부.끝과시작,다시일
죽기전에과연일생각이날까_레프톨스토이『이반일리치의죽음』
욱해서퇴사하고싶을땐_아데레르트폰샤미소『그림자를판사나이』
우리는일로연결되어있다_조지오웰『위건부두로가는길』
일터의연극은언젠가끝난다_프란츠카프카『단식광대』
자,이제눈물을뚝그치고

출판사 서평

“너무나도반듯한모양새로되바라진눈빛을던지는그들은
늘그렇듯매혹적이다.
그래서오늘출근길역시책의유혹을뿌리칠수없었다.”


도피성독서가일터의진창에서건져올린일하는인간의기록


OTT시리즈중〈좀비100:좀비가되기전에하고싶은일100가지〉가있다.주인공텐도아키라는매일강압적인철야에,인정사정없는상사,회사복지라고는하루종일켜놔도전기세한푼달라고하지않는'컴퓨터무제한사용'외에는없는짐승같은인생을살고있다.소위블랙기업의'사축인간'이된셈이다.
어제와다를바없는출근날아침,아키라는주문처럼중얼거리며무거운발걸음을뗀다.
'가기싫다,가기싫다,가기싫다,가기싫다,가기싫다,가기싫다'
그의주문이먹힌걸까?마침그의주변에심상치않은분위기가감지된다.케첩같은피를덕지덕지묻힌좀비떼들이여름모기처럼그의주변에몰려들기시작한다.그런와중에아키라가외치는어이없는한마디,'아,회사지각하면안되는데....'
생사를넘나드는상황에서도지각을걱정하는전형적인회사원의모습이다.자전거페달을죽을듯이밟던아키라는문득지금이어처구니없는상황이어쩌면절호의기회가될수있다는생각을하게된다.그리고살면서한번도느껴보지못했던희열을느낀다.

'그래!어쩌면회사에안가도될지몰라!'

우리는늘현관에앉아신발을신으며오늘은좀무슨일이벌어지지않나,되도않는상상을한다.천재지변으로전세계의전기공급이중단되어버리지는않을까,하늘에서갑자기개구리떼들이떨어져집안에만갇혀지내는판타스틱한상황이벌어지면좋겠다...라는말도안되는몽상이다.
이유는그.어.떤.상.황.보.다,싫.은.출.근.때.문.이.다.
좀비에게물려좀비가될지언정,차라리회사에안가도되는난리법석의상황이말할수없이행복한불행한회사원.결코이상하거나괴기스러워보이지않는다.이것이바로나의모습이니까.

『출근하는책들』의구채은저자는일터에서내면이찢기고자아가소멸되는것같을때,다큰성인으로서지켜야하는존엄함의영토가침범당하는것같을때,감정을억누르고익살꾼을연기해야할때,누군가의송곳같은말이뒷통수에착달라붙어꿈에까지쳐들어올때,그럴때마다책을펼쳤다.그리고그기록들을하나하나도장찍듯남겼다.
물론그런고비의순간에책이저자를살려줬다거나,지혜를줬다는식의금방들통이날거짓말은하지못한다.책속인물들은대개저자보다더찌질이에,못난이에,심지어실성한사람들이많았다.정면교사보다는반면교사로삼아야하는,파괴돼가는인간들투성이가책에서허우적대고있었다.“이바보를어떡하니,불구덩이속으로돌진하네”하며혀를끌끌차게하는,측은지심을불러오는인물들이어서,롤모델로삼았다간쫄딱망하기십상이다.그들의인생을관망하다,이제구원의힘을좀발휘해볼까...하고손을뻗을때쯤,지하철은목적지에도달한다.그리곤이런울림을준다.

'구하긴누굴구하니,너나오늘도무사히,일터에서잘살아남으렴.'

누군가는끈질기게분투해그세계의규정에맞게자신을조각해나간다.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거기에내가존재하지않을수도,마지못해지금세계에자족하고,슬프지만낙관해야하는순간도올것이다.그땐도리가없다.그어긋남을기꺼이받아들일수밖에.승복하고,그삶속에서살아갈틈새를찾아야한다.그비쩍말라비틀어진틈새에서구원의빛으로찾아낸건'책'이었다.고맙게도그거칠고황량하기짝이없는틈새를비집고나와나의손을잡아준'활자들'은잿빛의삶을햇빛가득한삶으로이끌어주었다.
저자가상황에맞춰소개해주는책들은절묘하다.기묘하고도비틀어져남루하기까지한주인공들의인생에서나의존재를찾고,위로하고,통곡하고,박장대소를던진다.
그렇게웃고,울고,떠들며,분노하고,한탄하다보면오히려오늘도오롯이나를위한지하철자리한칸이온전히남아있음에감사를건네게된다.

뜻대로되지않는삶과생계에대한중압감이허무와절망으로누를때.그럴때종종꺼내보는초콜릿같은책들.아직우리에게는다꺼내먹지못한수천,수만종의씁쓸하고도달달구리한초콜릿들이남아있으니우리의출근길은그리절망적이지않다.
나와함께출근하는그들은일렬종대로오늘도나를기다리고있다.
이들과함께사유하기위해가끔은지루하고자주졸리지만책을편다.그리고믿어본다.그작은힘이나를지킬수있을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