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편역 『事大文軌』》 시리즈 중 5번째 결과물로, 『事大文軌』권19을 역주한 것이다.
『事大文軌』권19는 음력으로 1597년 2~4월까지, 즉 정유재란 발발 수개월 전부터 조선과 명이 어떻게 군사 협력 방안을 수립하고 이행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외교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군은 1596년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협상 결렬 선언 이후 곧바로 재침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조선과 명은 일본군의 재침 시기를 수년간의 전쟁 경험으로 볼 때 춘절 이후, 다시 말하자면 1597년 상반기 어느 시점으로 예상했다. 일본에 대한 절대 불신을 천명하고 주전론을 주장한 조선으로서는 최후의 결전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3년 이상 진행된 교섭에서 끝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명으로서도 이제부터는 조선과 함께 일본군을 힘으로 응징해야 했다. 총 29건의 외교문서로 구성된 『事大文軌』권19는 명일 교섭에 실패한 이후 조선과 명이 ‘싸워서 완전히 몰아내자’는 공통의 목표 아래 합동으로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는 모습을 잘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체 문서 가운데 21건(74%)이 전방의 최신 동향·병력 이동·군량 수송·방어 전략·병기 사용·보고 체계 재정립·연락 체계 재완비·원활한 행정 등 다양하면 서도 구체적인 군사안보에 관한 의견 교환과 조율 과정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1593년 상반기 명일 교섭이 재개된 이래로 약 3년 6개월간 조선과 명의 대일 전략에서 나타난 간극이 1597년 상반기로 들어서면서 건설적인 상호 협력으로 전환되는 현장인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事大文軌』권19는 임진왜란을 거쳐 정유재란으로 가는 과정에서 조명 군사 협력이 전쟁의 전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계기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문서고(文書庫)라고 할 수 있다.
『事大文軌』권19는 음력으로 1597년 2~4월까지, 즉 정유재란 발발 수개월 전부터 조선과 명이 어떻게 군사 협력 방안을 수립하고 이행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외교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군은 1596년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협상 결렬 선언 이후 곧바로 재침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조선과 명은 일본군의 재침 시기를 수년간의 전쟁 경험으로 볼 때 춘절 이후, 다시 말하자면 1597년 상반기 어느 시점으로 예상했다. 일본에 대한 절대 불신을 천명하고 주전론을 주장한 조선으로서는 최후의 결전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3년 이상 진행된 교섭에서 끝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명으로서도 이제부터는 조선과 함께 일본군을 힘으로 응징해야 했다. 총 29건의 외교문서로 구성된 『事大文軌』권19는 명일 교섭에 실패한 이후 조선과 명이 ‘싸워서 완전히 몰아내자’는 공통의 목표 아래 합동으로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는 모습을 잘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체 문서 가운데 21건(74%)이 전방의 최신 동향·병력 이동·군량 수송·방어 전략·병기 사용·보고 체계 재정립·연락 체계 재완비·원활한 행정 등 다양하면 서도 구체적인 군사안보에 관한 의견 교환과 조율 과정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1593년 상반기 명일 교섭이 재개된 이래로 약 3년 6개월간 조선과 명의 대일 전략에서 나타난 간극이 1597년 상반기로 들어서면서 건설적인 상호 협력으로 전환되는 현장인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事大文軌』권19는 임진왜란을 거쳐 정유재란으로 가는 과정에서 조명 군사 협력이 전쟁의 전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계기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문서고(文書庫)라고 할 수 있다.
편역 사대문궤 5 (양장본 Hardcover)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