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시간 :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0년, 망각의 독일인과 부도덕의 나날들 (양장)

늑대의 시간 :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0년, 망각의 독일인과 부도덕의 나날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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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하랄트얘너

저자:하랄트얘너HaraldJahner

1953년독일뒤스부르크에서태어나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문학,사학,예술사를공부했다.1983년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은뒤오랫동안저널리스트로일했다.1989년부터1997년까지베를린‘세계문화의집’대외협력부를이끄는한편《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을비롯한유력일간지에다양한기사를써왔고,이어《베를리너차이퉁》의편집국에서일하면서2003년부터2015년까지문예란을책임졌다.2011년부터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문화저널리즘분야명예교수로재직중이다.하랄트얘너의대표작인《늑대의시간》은출간직후48주간독일베스트셀러목록에이름을올렸으며,2019년라이프치히도서전상에서논픽션부문을수상했다.



역자:박종대

성균관대학교독어독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독일쾰른에서문학과철학을공부했다.사람이건사건이건겉으로드러난것보다이면에관심이많고,환경을위해어디까지현실적인욕망을포기할수있는지,그리고어떻게사는것이진정자신을위하는길인지고민하는제대로된이기주의자가꿈이다.움베르토에코의《미친세상을이해하는척하는방법》,리하르트다비트프레히트의《세상을알라》《너자신을알라》《사냥꾼,목동,비평가》《의무란무엇인가》《인공지능의시대,인생의의미》를포함하여《특성없는남자》《데미안》《수레바퀴아래서》등150권이넘는책을번역했다.

목차


들어가는말:불행사이로비치는행복7

1.제로시간?
수많은시작과끝19|지옥을경험한사람들28

2.폐허속에서
거대한잔해는누가치울것인가37|폐허의아름다움과잔해관광55

3.대이동
영원히고향을잃은사람들71|해방된강제징용자와유랑포로78|충격적인자기자신과의만남102|길위에서의곤궁한삶124

4.댄스열풍
끓어오르는삶의기쁨139|잿더미위에서열린광란의파티149

5.파괴된도시의사랑
탈진한남자들의귀향171|《콘스탄체》,여성의목소리를내다185|삶에굶주리고사랑에목마른191|여성과잉시대199|동쪽여성들이겪은“능욕의시간”209|서쪽의양키애인,베로니카당케쇤216

6.약탈,배급,암거래:시장경제를위한수업
재분배의시작:약탈을배우다237|식량배급표의논리학243|좀도둑민족의탄생252|시민학교로서의암시장271

7.경제기적과부도덕에대한염려
화폐개혁,두번째제로시간285|볼프스부르크,인간대농장296|부부의성을사업모델로삼다321|도덕적타락에대한두려움332

8.재교육자들
연합국의독일정신개조343|고향을찾은낯선손님들360

9.예술냉전과민주주의설계
문화에대한갈망385|추상미술과사회적시장경제393|키드니테이블이바꾼생각들414

10.억압의소리
공기처럼사라진파시즘425|침묵,말,그리고내키지않는밀착434|탈나치화와민주주의451

맺음말:삶은계속된다460
주466
참고문헌507
그림및인용출처521
찾아보기522

출판사 서평

야만의시대에서시민의시대로,
전후독일인은무엇을망각하고어떻게회복했는가?

전쟁이끝날때까지똘똘뭉쳐있었던독일인들은전쟁이끝나자완벽하게분열되었다.옛질서는사라졌지만,새질서는아직모호한이때,‘인간이다른모두에게늑대’라는뜻으로‘늑대의시간’이란이름이붙었다.전쟁이후,절반이상의독일인은과거속하던자리에남아있지않았다.폭격에사망하거나피난,망명,강제이주를당한사람들에1000만명의강제징용자까지합하면그규모는총4000만명에달했다.자신이살던자리에서추방당하고끌려가고,풀려나며새로운자리를찾아가던사람들이어떻게다시시민의정체성을찾을수있었을까?완전히새로운구성원으로,무질서의상태에서새로운사회를만들어야했던시기.저자는이시기의이야기에주목한다.

가장중대한변화는일상에서시작되었다.먹을것을조달하는일에서,약탈에서,교환에서,구매에서일어났다.사랑도마찬가지다.전쟁이끝나자성적모험의물결이봇물처럼터져나왔고,다른한편으로그렇게갈망하던남자들의귀향뒤에극심한실망도뒤따랐다.사람들은모든것을새로시작하고싶어했으며,이혼수치는비약적으로치솟았다.
가족은해체되고,삶의질서는산산조각이났으며,인간관계는상실되어갔지만,사람들은새롭게다시모여어울렸고,젊고용기있는사람들은잿더미의혼란위에서매일마다자신의행복을찾는모험을즐겼다.전후독일인의의식을볼때홀로코스트가미친영향은놀라울정도로미미했다.자신들의‘수상쩍은행복’을위해서홀로코스트를회피했고,자신들을희생자로그렸다.그러면서도전후시대는지금까지여겨지던것보다더논쟁적이었고,삶은더개방적이었으며,지식인은더비판적이었다.의견의스펙트럼은넓었고예술은더혁신적이었다.이런의식적억압과왜곡속에서반파시스트적이고신뢰를일깨우는오늘의독일이탄생했던것이다.

이책은전쟁직후10년의기간동안독일이거쳐야했던재건사업과그속에서분열된독일인의멘털리티를다각도로살핌으로써,잊고있던1945년과1955년사이의독일을새롭게조명한다.공식문서나출간된책뿐아니라일기,수기,문학작품,신문,잡지,영상자료,심지어유행가가사등방대한자료와세심한해석을통해독일이어떻게그시기를넘어오늘의독일을만들었는지새로운시선을제공한다.특히토마스만,한나아렌트같은유명인뿐아니라잘알려지지않은일반인들의개인적기록을통해그시대의분위기까지손에잡힐듯생생하게포착했다는것이이책의미덕이다.

우리가아는자기반성은없었다
홀로코스트에대한침묵의카르텔,희생양논리를주장한독일인들

1947년1월,독일의잡지《관점(DerStandpunkt)》에는이렇게묻는기사가실렸다.“독일인들은왜세상사람들에게그렇게인기가없을까?”기사는독일이“유럽의문제아이자,세계의속죄양”이라며,“국제사회에도일반가정과마찬가지로,사랑받는아이가있으면미움받는아이도있다”고질문에자답한다.‘과거청산부문에서세계최고의수출국’이라고자부하는독일에서,그것도수백만명의유대인이학살된홀로코스트직후에어떻게이런문답을던질수있었던걸까?세계대전을‘가정불화’수준으로축소시키고,가해민족을‘문제아’정도로치부하는사람의내면은대체어떤구조로되어있는걸까?
1945년5월8일독일이공식적으로패망한이른바‘제로시간’직후,독일인들이맞닥뜨린건약5억세제곱미터의폐허더미였다.전쟁으로인한6000만명의사망자,붉은군대의진입과함께시작된강간의물결,서방연합군의독일점령,1946년과1947년‘기아의겨울’이라불리는지옥을경험한독일인은마치홀로코스트가존재하지않았던것처럼,자신들을‘희생자’로여기기를주저하지않았다.자신들은그저사람을마비시키는‘독’과같은국가사회주의에,사람을순종적인도구로길들이는‘마약’과같은나치즘에,히틀러라는‘악’에희생되었다는것이그들의논리였다.

“어떤민족의영혼도독일민족의영혼만큼운명에의해그렇게자주,그렇게깊이갈아엎어져새로운정신의씨앗이싹틀토양을마련하지는못할것이다.”_본문430쪽

당시언론과책,논문에는독일인이겪은고통을다른민족의어떤고통도따라오지못할만큼최상급으로표현한글이넘쳐난다.그시기를어둡게그릴수록자신들의잘못과책임과죄책감이더가벼워진다고여겼기때문이다.앞선《관점》의기사는이러한처절한생존욕구앞에서독일인들이택한희생자논리,홀로코스트에대한의식적억압,집단적침묵의심리적발로였다.

전후독일인조차옛시절을회고할때,스스로를그동안겪은일을일단말없이견뎌내야했던‘위대한침묵자’로그리곤한다.그러나실제로침묵은홀로코스트에한해서만선택적으로이루어졌다.오히려죽음에서벗어났다는사실에대다수사람들은전례없이뜨거운‘삶의기쁨’을만끽했다.항복선언후보름만에폐허속에서영화관이다시문을열었고,두달만에밤새투어를돌수있을만큼수많은댄스홀이영업을재개했다.전후전체인구의약5%만이살아남은쾰른에서는1946년으스스한잔해사이로이미작은‘카니발행렬’이지나갔고,같은해베를린에서는‘환상무도회’가열렸다.1947년이되자사람들은벌써휴양지로휴가를떠났다.질트섬의1만여개휴양숙소가운데6000개는피난민들로꽉차있었지만,나머지숙소는휴양객들이차지했다.

저자는패망직후수십년간수백만명의학살에대한폭넓은사회적논쟁은존재하지않았다고말한다.과거청산은1963년부터1968년까지아우슈비츠재판이진행되면서야비로소시작되었다.이또한철저한자기반성의산물이라기보다는“나치세대에불복종운동을펼칩시다”라는1967년길거리에붙은전단처럼68세대의분노에서촉발된부모세대에대한역사적승리였다.즉우리가모범사례로드는독일의과거사청산은1945년이후독일인들이스스로에게가했던억압의후유증이었던것이다.

“도덕적붕괴와집단적인식의왜곡”
내부자의눈으로전후독일인의멘털리티를부검하다

당연하게도전쟁은독일의수많은사회적개념을완전히뒤흔들어놓았다.가장대표적인예가‘도덕관념’이다.오늘날우리가독일인의특징으로떠올리곤하는‘정직성’은전후독일인에겐해당되지않는얘기였다.패망전까지굶주림이란걸몰랐던독일인들은종전이후보급망이파괴되고,연합군이식량배급을급격히줄이자처음으로‘죽음의공포’를느꼈다.살아남기위해서독일인들은새로이생존기술을익혀야했는데,약탈,암거래,좀도둑질이바로그것이었다.

패전후연합군이점령하기직전‘권력의공백기’에독일인들은‘약탈’에몰두했다.앞으로어떤상황이닥칠지모른다는극도의불안감속에서사람들은정부건물,비축품창고,화물열차,농장,이웃의집까지미친듯이물건들을털었다.이는18세의평범한독일여성의일기에친지,이웃들과함께떠난약탈기행이기록되어있을만큼일반적인일이었다.연합군은곧행정기관의정상화를통해사회시스템은안정시켰지만,도덕적붕괴는멈출줄을몰랐다.특히종전직후3년간은1인당최하800칼로리의식량만배급했기때문에독일인들은늘굶주림에시달렸다.사람들은대체로부도덕한자구책을다양하게마련했고,시골로의‘도둑질투어’도그중하나였다.돈이아무리많아도원하는것을살수없는도시민들은시골농부들의수확물을훔치기위해기차를탔다.식량배급표의틈새에도금세구멍이생겼다.암시장에는연합군의PX에서횡령하거나밀수한물건들이넘쳐났고,위조된식량배급표가다발로유통되었다.이시기의사람들은‘늑대의시간’,즉‘자연상태의인간이다른인간에게늑대인’시간이찾아왔다고말했다.법의식과도덕감정의완전한붕괴가임박했다는뜻이었다.

“얼어죽지않은사람은모두도둑질을했다.모두가도둑이라면과연서로를도둑이라고비난할수있을까?”_본문261쪽

1947년범죄학자한스폰헨티히는“독일의범죄양상은서양문명의역사에서유례없는규모와형태를띠고있다”며‘범죄의일상화’에대해우려하는글을발표했다.당시의잡지,학술서,신문,수기등에는이런독일인의법의식실종과죄책감에대해서벌인논쟁이수없이발견된다.

그러나독일전후일상의특수성에서벗어나역사적거리를두고이런논쟁을바라보면,논쟁자체가터무니없어보인다.독일에서만50만명의유대인이약탈당하거나집에서쫓겨났고,그중16만5000명이살해되었다는사실은법의식실종의이유를찾는과정에서전혀언급되지않았다.패전후세상사람들의눈에‘독일인들’은전쟁범죄와제노사이드를통해가해자로낙인찍힌지오래였는데도독일인들은여전히자신들의나라가질서와품격을갖췄다고생각했다.국외에서는전후의이런시스템붕괴를독일을재사회화할기회로바라보았지만,독일인들은이제야범죄의구렁텅이에빠졌다고우려했다는점에서당시에집단적인식의왜곡이얼마나극심했는지유추할수있다.

강제수용소유대인의행방,전쟁이주민의사회적역할
시민사회의초석은이렇게다져졌다

독일인들이궁핍한나날속에서수상쩍은행복을누리는동안,800~1000만명에달하는강제징용자들의송환도시작되었다.전쟁중에부족한노동력을해결하기위해서끌고온700만명의외국인과유대인들이었다.매일10만7000명이고향으로수송되었지만,수용소에남기를택한유대인도적지않았다.

유대인들이수용소에잔류한까닭은다양했다.대부분은돌아갈곳이없어서였고,정신적신체적쇠약함으로이송을감당하지못한사람도많았다.미군은“유대인은같은국적의다른비유대계주민들보다나치에의해훨씬더큰고통을받았다”는이유로유대인생존자들을위한새로운수용소를마련해줬는데,가장유명한것은뮌헨인근의‘푀렌발트수용소’였다.원래염료회사의사택단지였던푀렌발트는말이수용소지작은유대인사회나다름없었다.켄터키거리,뉴욕거리를포함해총15개의거리가있었고,자체행정기관,정당,경찰,법원,병원,직원훈련소,학교,극장,스포츠클럽등다양한시설과심지어이디시어로신문까지발간되었다.1948년이스라엘이건국되면서많은유대인이떠났지만,반대로돌아오는유대인들도있었다.십수년의수용소생활로자유로운삶에적응하지못한사람들,남들이알아서삶을정리하고보호해주는수용소속‘수동적삶’을그리워한사람들이었다.

이런강제징용자들외에도전후연합국이책임져야할사람은총4000만명이넘었다.피난민,노숙자,탈영병과얄타회담및포츠담회담으로독일동부가폴란드령이되면서강제이주당한실향민들,반유대주의와집단학살로독일로밀려드는유대인난민까지,종전직후독일은또다른디아스포라로뒤엉켜있었다.이에더해여전한인종주의와지역주의,부족주의까지횡행하며당시사람들조차사회통합이가능하리란상상을하지못했다.그런데도‘통합의기적’은일어났다.가장중요한역할을한것은1200만명의실향민이었다.연합군계획하에시골로이주한그들은지역토착민의적대감속에서도사회현대화의촉매제역할을했다.탈지방화의효소기능,지역적차이의평준화,경제기적의동력,그리고헌법적애국주의에기반한국가정체성을중심으로단결하는데도실향민이일조했다.곧제도적통합도뒤따랐다.특히1952년에서독에서실시된‘부담조정법’은‘부동산과주택,기타자산을소유한사람은50%를손실을입은사람에게양도해야한다’는본래목적보다더많은역할을해냈다.치열하고집요한논쟁을거쳐힘겹게균형을이룬타협안에동의하는재분배과정에서훗날‘시민사회’라불리게될공동체적자산의초석이놓인것이다.

나치,파시즘,제3제국의흔적은어떻게지워졌나?
거대한설계자연합국의치밀한계획

제3제국에서신생민주주의공화국으로전환기에파시즘의때를벗기는역할은연합군의몫이었다.연합군은독일제국의국경을넘는순간정복지관리를위한정교한계획을이미주머니속에갖고있었다.‘어떻게하면독일인들에게서오만함을몰아낼수있을까?’‘지난12년동안그들에게주입된인종주의를어떻게뇌에서제거할수있을까?’독일정신을점령할광범한구상으로서일단소련은‘울브리히트그룹’같은독일망명자집단과손을잡고,전단,라디오연설문,언론사등을차례로접수해나갔다.울브리히트그룹중몇몇은시체들이즐비한언론사거리에서쓸만한인쇄기와타자기를찾아냈다.이모든게얼마나빠르게이루어졌는지패전후약2주만인5월22일에첫일간지《베를리너차이퉁》창간호가10만부발행되었다.

미군또한메릴랜드의리치캠프에서고도의훈련을받은‘리치보이스(RitchieBoys)’와함께열여섯개의새로운신문을창간하고배포했다.한데소련과달리미국이‘민주주의의촉진제’로서독일인들을‘재교육’하기위해주목한게또한가지있었다.바로예술,그중에서도‘추상미술’이었다.미국은추상미술이‘상상력의탈나치화’에좋은미적프로그램일뿐아니라소련에대항하고서독에독자적인미적정체성을확립하는데적합한수단이라고생각했다.추상미술에대한미국의지원은전폭적이었다.젊은화가들에게보조금을지급하고,전시회자금을지원하고,그들의작품을다량으로구매했다.미국의치밀한작전을통해추상미술에대해여전히반감을가진독일인의집에도서정적인추상화가침투했다.추상무늬의커튼과카펫,테이블보가집안을장식한것이다.전후독일인들의집은곧둥글고불룩하고구부러지고비스듬한소도구들과‘콩팥모양’의키드니테이블같은가벼운가구들로채워졌다.파시즘의상징과같은육중한참나무가구들은버려지고새로운‘시대정신’이집안곳곳에놓인것이다.이성만이탈나치화의유효한수단이라보는사람들에겐터무니없어보일지모르지만,“디자인이의식을결정한다”는말처럼독일인들은환경을바꿈으로써과거를극복하고미래로나아가기시작했다.

이책을통해저자가규명하고자한부분은명확하다.‘다수독일인이개인적책임을거부했음에도어떻게나치정권을가능케한심리상태에서벗어날수있었나?’여기서이전의과대망상만큼이나핵심적인역할을한것은미몽에서화들짝깨어난듯한급격한‘현실자각’이었다.게다가연합국에딸려들어온느긋한생활방식의매력,암시장을통한쓰디쓴사회화과정,실향민에대한사회적통합노력,추상미술을둘러싼떠들썩한논쟁,새로운디자인에대한즐거움도중요한역할을했다.이모든것이심리상태의변화를촉진했고,그토대위에서민주주의에대한정치적담론은서서히결실을맺을수있었다.오늘날우리가‘독일’과‘독일인’이라부르는그들은바로이렇게탄생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