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1936 : 오늘의 중동분쟁을 만든 결정적 순간 (양장)

팔레스타인 1936 : 오늘의 중동분쟁을 만든 결정적 순간 (양장)

$28.00
Description
‘중동분쟁’의 현대적 뿌리이자 분기점
아랍 민족주의 VS 유대 민족주의 그 최초의 폭발에 대한 이야기
약 90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현대적 기원을 찾는 책. 저자는 영국이 위임통치를 시작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이 유대국가 건설에 반대하고 독립을 요구하며 1936년~1939년까지 봉기한 아랍 대반란(Great Revolt)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대봉기 당시 아랍, 유대, 영국 측 주요 인물들의 행동과 판단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은 ‘언제’부터 분쟁 지역이 되었는지, 유대인은 ‘어떻게’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는지, 아랍인은 ‘왜’ 이스라엘 건국을 막지 못했는지 그 답을 찾는다.

팔레스타인인이 승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순간이자
오늘의 분쟁이 시작된 1936~1939년 아랍 대봉기
그 3년의 고난을 재현하다

많은 사람이 중동분쟁을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나크바(Nakba, 대재앙)에서 기인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1936년에서 1939년까지 3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지속된 아랍 대봉기가 그 출발점이다. 1936년 봄,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 공동체와 20년 동안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산파했던 영국 위임통치 당국을 겨냥한 봉기가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일어난 이 아랍 대봉기(Great Revolt)는 유대인, 영국인, 그리고 아랍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오늘날 우리가 ‘중동분쟁’이라 부르는 사건 또한 이때 본격화되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대봉기는 민족적 정체성이 하나로 모였던 최초의 시기였다. 경쟁 관계의 가문, 도시와 농촌, 부자와 빈자 할 것 없이 모두 독립을 위한 단일 투쟁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봉기는 내전으로 비화되는 동시에 영국의 공격적인 진압, 시온주의자들의 반격으로 아랍 팔레스타인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인의 전투력은 무력화됐고, 경제는 초토화됐으며,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고, 유력 정치 지도자들은 추방됐다. 시온주의 종식을 목표로 시작된 대봉기는 오히려 아랍인들을 처절하게 분열시켰다. 이 때문에 그들은 10년 후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설에 맞설 수 없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아랍 대봉기는 완전히 다른 유산을 남겼다. 대봉기를 목도한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영국과 아랍이 유대 국가 건설을 용인해주리란 환상을 버렸다. 주권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원히 무력에 기대야 할지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봉기로 인해 수천 명의 유대인이 당대 최고의 군사 강국이었던 영국에 의해 훈련받고 무기를 지급받았다. 어설펐던 경비대는 강력한 유대인 군대의 씨앗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대학살과 히틀러의 위협 속에서 ‘분할’ ‘유대 국가’와 같은 불길한 단어가 처음으로 국제 외교 의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5년간 3개 대륙과 3개 언어를 넘나든 광범위한 기록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아랍, 유대, 그리고 영국 세력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주요 인물들의 행동과 판단을 따라가며 서술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역사의 장면을 통해서 아랍 대봉기 과정뿐 아니라 오늘날 중동분쟁의 패턴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

오렌케슬러

저자:오렌케슬러
텔아비브를기반으로활동하는저널리스트겸정치분석전문가.미국에서태어나캐나다토론토대학교역사학부를거쳐이스라엘라이히만대학교에서외교와분쟁연구를주제로석사과정을마쳤다.이후이스라엘일간지《하레츠》와《예루살렘포스트》등의특파원으로일한뒤,영국의외교싱크탱크헨리잭슨소사이어티HenryJacksonSociety와미국의외교싱크탱크민주주의수호재단FoundationforDefenseofDemocracies에서연구원으로일했다.《포린어페어》《포린폴리시》등외교전문지와《폴리티코》등의정치전문매체,《월스트리트저널》과《워싱턴포스트》를비롯한주요일간지에꾸준히다양한글을기고해왔다.첫저서인《팔레스타인1936》은《월스트리트저널》올해의책과《북리스트》최고의역사책으로선정되었다.

역자:정영은
서강대학교에서영미문학을,이화여자대학교통번역대학원에서한영통역을공부했다.졸업후국제교류NGO를거쳐다양한기관에서상근통번역사로근무했으며,현재는좋은책을발굴하고소개하는번역공동체펍헙번역그룹의일원으로활동하고있다.옮긴책으로《대약탈박물관》《자연의발견》《21세기최고의세계사수업》《걸리드링크》등이있다.

목차


등장인물7
들어가는글:역사에서사라진팔레스타인대봉기11

1장평온한사막의지배자들21
신실한소년27│위임통치령의탄생33│팔레스타인의잔혹한봄38│무프티중의무프티42│평온한나날들47│고통의나날들50│벽은우리의것이다!54│히틀러와뜻을같이하다63│무사얘기는다르던데?67

2장피로물든야파83
장작패고물긷는노예91│테살로니키에서온남자95│굉장한도덕적힘105│파업과반격112│동방에서온세명의왕130

3장두국가해법론137
위원회,항해를떠나다143│생각을바꾼대무프티153│관개전문가의등장160│억누를수없는갈등173│예상치못한반향181│두총회이야기188

4장검은일요일193
신의선물201│오직이를통해서만209│불안한운명218│뒷걸음질225

5장예루살렘의평화를위한기도233
사람은빵만으로살수없다242│에덴동산246│완벽한대가관계251│죽음이라는특권262│무법이곧법이다276

6장유대의로렌스283
사실의논리291│시온의군대299│9월의두주318│디베랴와타바리야319│대무프티의미소324│다시,필330

7장불타는땅339
자유팔레스타인은가능할까350│3인방의죽음368│흩어진마음374│라헬,내민족을사랑하는384│다시만납시다387

마치는글:끝나지않은봉기392
감사의말426
참고문헌506
주428
찾아보기518

출판사 서평

★★《월스트리트저널》선정올해의책★★
★★《북리스트》Editors’Choice선정도서★★
★★아랍대봉기를조명한최초의책★★

“아랍-유대간의투쟁방식과대응논리를치밀하게
재구성함으로써분쟁해결에중요한길잡이가되는책”
-이희수(한양대문화인류학과명예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소장)

팔레스타인인이승리에가장가깝게다가간순간이자
오늘의분쟁이시작된1936~1939년아랍대봉기
그3년의고난을재현하다
많은사람이중동분쟁을1948년이스라엘건국으로인한나크바(Nakba,대재앙)에서기인했다고알고있지만,실제로는1936년에서1939년까지3년간팔레스타인에서지속된아랍대봉기가그출발점이다.1936년봄,팔레스타인에서는유대인공동체와20년동안시온주의프로젝트를산파했던영국위임통치당국을겨냥한봉기가일어났다.팔레스타인전역에서일어난이아랍대봉기(GreatRevolt)는유대인,영국인,그리고아랍인수천명의목숨을앗아갔으며,오늘날우리가‘중동분쟁’이라부르는사건또한이때본격화되었다.
팔레스타인아랍인에게대봉기는민족적정체성이하나로모였던최초의시기였다.경쟁관계의가문,도시와농촌,부자와빈자할것없이모두독립을위한단일투쟁으로통합되었다.그러나봉기는내전으로비화되는동시에영국의공격적인진압,시온주의자들의반격으로아랍팔레스타인은막대한피해를입었다.이로써팔레스타인인의전투력은무력화됐고,경제는초토화됐으며,대규모난민이발생했고,유력정치지도자들은추방됐다.시온주의종식을목표로시작된대봉기는오히려아랍인들을처절하게분열시켰다.이때문에그들은10년후유대인의이스라엘건설에맞설수없게되었다.
유대인들에게아랍대봉기는완전히다른유산을남겼다.대봉기를목도한시온주의지도자들은영국과아랍이유대국가건설을용인해주리란환상을버렸다.주권국의꿈을이루기위해서는영원히무력에기대야할지모른다는불편한진실을받아들이기시작했다.봉기로인해수천명의유대인이당대최고의군사강국이었던영국에의해훈련받고무기를지급받았다.어설펐던경비대는강력한유대인군대의씨앗으로바뀌었다.그리고팔레스타인의대학살과히틀러의위협속에서‘분할’‘유대국가’와같은불길한단어가처음으로국제외교의제로등장하기시작했다.
5년간3개대륙과3개언어를넘나든광범위한기록연구를바탕으로한이책은단순한사건나열이아니라아랍,유대,그리고영국세력내에서중추적인역할을한주요인물들의행동과판단을따라가며서술된다.파노라마처럼펼쳐지는역사의장면을통해서아랍대봉기과정뿐아니라오늘날중동분쟁의패턴이어떻게탄생했는지살펴볼수있다.

현대적분쟁의시작
아랍대봉기는어떻게일어났나
1934년11월아랍의비밀결사검은손(BlackHand)의설립자이자이맘인이즈알딘알카삼이팔레스타인경찰에의해사망한다.대규모유대인이민을허가한영국과무장을시작한시온주의자들에맞서투쟁했던알카삼의죽음은팔레스타인내아랍과유대양측에뚜렷한족적을남겼다.이스라엘초대총리다비드벤구리온의말처럼,아랍인은그사건을통해“한인간이신념을위해목숨을바치는모습을처음으로목격했다”.그의죽음은팔레스타인인에게‘도덕적동력’을부여한최초의사건이었다.그로부터2년뒤인,1936년4월15일텔아비브야파에서유대인가금류업자하잔(IsraelHazan)이아랍인들의총격에목숨을잃는다.총격을가한이들은‘알카삼’의원수를갚기위해무기를사야한다며기부금을요구했고,그에응하지않는유대인들에게총을쐈다.하잔은1936년에시작된아랍대봉기의첫번째희생자가되었다.
제1차세계대전후영국의위임통치를받고있던1930년대팔레스타인은아랍인의민족국가건설계획에치명적인위협을마주한상황이었다.일단“팔레스타인에유대인을위한민족적고향을건설”한다는영국-유대간의밸푸어선언(1917)에도소수를유지하던팔레스타인내유대인의숫자가급격히증가한다.4년만에2배증가해1937년약40만명이된유대인은이제전체인구의30%에육박했다.토지매입도급격히늘어1935년유대인의토지매매건수와면적모두2배가된다.팔레스타인전역에서유대인정착촌과키부츠가건설되기시작한다.전세계적인불황에서도유대인이지배하는은행업,산업,건설업부문은번창했다.시온주의자들은팔레스타인내에서정착촌을지키는무장단체하가나,노동조합연맹히스타드루트,유대인경찰노트림,토지를사들이는유대민족기금,임시정부인유대인기구를설립하는등이미강력한국가적조직을확립한터였다.반면팔레스타인아랍인에게는이에대응할만한조직이거의없었다.양질의일자리는유대인이장악했다.이라크가독립을승인받고(1932),시리아가50일에걸친총파업끝에프랑스철수협상(1936)이시작됐지만,팔레스타인에서는아랍인이참여하는입법의회조차친시온주의영국정치가에의해무산되었다.
이런상황에서알카삼의죽음은팔레스타인인들의독립(이스티클랄,Istiqlal)을향한열망,그것도무력쟁취의불씨를당겼다.알카삼에대한복수,독립을위해죽음도불사하겠단신념,실질적위협이된유대인으로말미암은아랍대봉기는시위와불매운동,공공시설파괴,게릴라전,그리고전세계역사상유례없는6개월간의총파업을포함해3년간지속된다.

아랍-유대간의투쟁방식과대응논리의기원을
치밀하게재구성하다
현대이스라엘을대표하는이미지중하나는서안지구를둘러싼거대한‘분리장벽’이다.팔레스타인땅에뱀처럼똬리를튼이장벽은2002년에건설이시작됐지만,저자는그유래를아랍대봉기진압을위해건설된테거트장벽(Tegart’sWall)으로본다.1938년경찰자문관으로팔레스타인에들어온찰스테거트경은시리아와레바논의무장세력침투를막기위해국경에철조망울타리와요새건설을계획한다.자금부족을이유로정부의반대에부딪힌그에게동아줄이되어준건유대인들이었다.시온주의노동지도부는테거트의요청에1000명의인력으로3개월안에장벽을완성시킨다.시온주의자들에게이장벽은특별한의미를지닌다.장벽의위력을확인한것도그렇지만,팔레스타인치안유지에유대인이공식활용하기시작했다는점에서도유의미한성과였기때문이다.장벽뿐아니라현재이스라엘군대가시행하는행정구금역시대봉기당시영국경찰이용의자들을구금했던것에서착안한것이고,오늘날팔레스타인테러범을붙잡고그집을철거하는것역시위임통치시기영국이쓰던수법이다.
팔레스타인아랍인또한대봉기의유산을상속받았다.시위,공공시설파괴,게릴라전과총파업도그렇지만,오늘날범아랍권으로널리퍼진이스라엘불매운동은대봉기기간내내지속했던유대인상점에대한불매운동과유대인손님에대한판매거부운동에서비롯된유서깊은방식이다.1987년결성된팔레스타인민족주의정당이자무장단체인하마스는자신들의군사조직에대봉기를촉발한알카삼의이름을붙였다.팔레스타인인들이오스만식페즈모자를벗고아랍무장투쟁의상징인체크무늬케피예(머리에두르는아랍전통스카프)를착용한것도대봉기시기아랍국가위원회의지시에서시작되었다.
저자는아랍대유대민족주의충돌,서로를향한공격과대응을치밀하게재구성하면서도‘서술식역사서’답게유려한이야기로독자를이끈다.연대기가아니라현장감이느껴지는1936~1939년팔레스타인의시공간속에서독자들은오늘날아랍-유대간의투쟁방식과대응논리의원천을파악할수있다.

맥마흔선언VS밸푸어선언
최대의이익을위해끊임없이말을뒤집는영국
맥마흔선언과사이크스-피코비밀협약,밸푸어선언으로이어지는일련의과정에서영국의목표는오로지자국의이익이었다.그런그들에게팔레스타인위임통치령에서벌어지는소요사태는두고두고골칫거리였다.그때마다영국은국제연맹으로부터부여받은이중의의무,즉“위임통치령이비유대인의시민적·종교적권리를침해하지않는것을조건”으로“팔레스타인내에유대인의민족적고향을건설”하기위해서각종조사위원회를꾸리고백서를발표한다.실상은그럴듯한약속으로아랍의민심달래기에불과했고,곧바로무효화되기일쑤였지만영국은위임통치종료때까지이전략을포기하지않았다.
1921년야파에서벌어진폭동을진압하기위해식민장관처칠이발표한〈처칠백서〉,1929년8월,예루살렘을비롯해20여개지역에서벌어진유혈사태의대책마련을위해발표한〈호프심프슨보고서〉와〈패스필드백서〉는모두유대인이민허용치에대한제재를약속했다.그러나시온주의측의로비와홍보총력전에1931년로이즈조지총리는‘대규모유대인이민은계속’될것이라는일명“검은편지(BlackLetter)”를발표함으로써이를무효화한다.이렇듯영국의팔레스타인정책은대개‘맥마흔선언-밸푸어선언’패턴의반복이었지만,1937년‘필왕립위원회’가발표한보고서는눈여겨볼필요가있다.1947년국제연합분할안,클린턴대통령의클린턴초안,트럼프대통령의“세기의거래”그리고바이든정부의공식정책에이르기까지모든‘분할안’의원전격이기때문이다.
저자는1936년아랍대봉기발발후파견된필위원회의조사과정을유대와아랍측의증언으로재구성해보여준다.바이츠만(초대이스라엘대통령)을비롯한유대측과하지아민(아랍고등위원회창설자)과같은아랍측대표자들의목소리를통해이른바‘두국가해법론’이어떻게제시됐는지입체적으로드러난다.유대국가,아랍국가,영국관리구역으로팔레스타인을나누는이제안을일컬어위원회는“깔끔한분할(cleancut)”이라고자평했지만,압도적으로많은유대인증인수,시온주의자들의로비등으로인구대비분할면적뿐아니라위치자체도이미시온주의쪽으로기울어져있었다.아랍측은제안을받아들일이유가없었고,유대측은‘유대국가’는받아들이되보고서가제안한분할선은거부하자고협의한다.대봉기를잠재우기위해영국이제시한대책은유혈사태를잠재우기는커녕봉기에다시불을붙인다.다시영국은〈우드헤드위원회보고서〉(1938)로분할안폐기를권고하고〈맥도널드백서〉(1939)에서독립적인팔레스타인국가설립을약속하는등말을바꾸지만,아랍땅에100년간계속될분쟁의씨앗을남긴채곧제2차세계대전의소용돌이에휘말리게된다.

대봉기가진압당한후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이스라엘건국까지다시는일어서지못했다
1939년아랍대봉기는아랍에만8000명의사망자,2만명의중상자,4만명의난민을발생시키며영국군에의해진압됐다.대봉기로인해팔레스타인의경제는그야말로회복불능상태가됐다.지주들은피난을떠나고농민들이수천명에달하는무장세력의식량과자금을대느라정신이없는동안농작물은모두말라버렸다.세수가감소하고정부에서일하던아랍인수천명이충성을의심받으며직장을잃었다.아랍인마을에서는대봉기기간내내비공식적으로유대인상점에대한불매운동과유대인손님에대한판매거부운동이이어졌는데,이또한아랍상인들의수입이크게줄어든원인이됐다.한때야파항구를통과했던화물의절반이이제유대인의항구인텔아비브로갔다.하지만경제의초토화보다더심각했던것은민족적사기가떨어졌다는것이다.대봉기를계기로아랍의유력한정치지도자들은모두추방당했고,대봉기를진두지휘했던아랍의전사들또한영국에의해대부분사망했다.8000명의아랍인사망자중1500명이같은아랍인에의해살해당했을만큼내분또한심했다.이런상태에서10년뒤1948년이스라엘건국으로인한나크바를맞닥뜨리게된것이다.
유대진영에도500여명의사망자와1000명가량의부상자가발생했지만,그들은대봉기를자신들에게유리한방향으로활용했다.그들은3년간단한곳의정착촌도포기하지않았다.오히려‘벽과탑’사업으로전략적요충지에60개의정착촌을추가로건설했다.아랍의유대인불매운동은오히려‘자급자족적이고독립적인’유대인농업과산업을만드는데직접적인도움이됐다.시온주의금속산업과무기산업이등장하면서지뢰와수류탄을생산할수있게되었고,곧박격포와폭탄의생산까지가능해졌다.정착촌을지키는무장단체하가나는영국에의해대대적인훈련과무기를지원받아영국의팔레스타인치안유지에동참하기시작했고,건국후이들은이스라엘방위군의핵심이되었다.
1936~1939년에일어난대봉기는시온주의자들의역사에서도,아랍의역사에서도중요한위치에있지않았다.유대인들은시온주의를유대인자결권을위한투쟁으로만볼뿐타인의자결권을부정하는행위로보지않았기때문이다.대봉기는그저자신들의위대한건국신화의방해물일뿐이었다.아랍인들은대봉기에서교훈을얻지않았다.나크바에집중함으로써작금의상황에대한탓을시온주의자나주변아랍국가들,영국을비롯한국제사회에돌렸다.저자가5년간3개대륙의20개의기록보관소를넘나들며아랍대봉기를재구성한이유는바로거기에있다.과거를정확히알때얽히고설킨실타래의첫매듭을풀수있기때문이다.바로오늘도이스라엘에서는90년째아랍대봉기가이어지고있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땅에평화는찾아올것인가.이책이시급하고시의적절한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