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젊은날의나는기다리면다음차가오고,길을잘못들어도얼마든지다시돌아나올수있을줄알았다.그러나그낡은터미널한복판에서처음으로,살아간다는것이어쩌면오지않는막차를기다리며오래버티는일일지도모른다는생각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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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마음은한참이지나야겨우보인다.지나간줄알았는데아니었고,잊은줄알았는데아니었다.엄마라는한사람을생각하는일도그랬다.끝난일이아니라,다른나이의나에게거듭도착하는일이었다.
엄마도처음부터엄마였을리없다.한때는딸이었고,젊은여자였고,자기앞에놓인삶을정확히알지못한채하루하루를지나온사람이었을것이다.
어쩌면엄마에게도그런밤이있었을까.어디로가야할지알수없는데그렇다고돌아갈수도없던밤.할말은많은데끝내아무말도하지못한채그대로앉아있어야했던시간들.
---p.9
그때는엄마가왜저런모습으로사는지이해하지못했다.서운한일이있어도엄마는다음날이면밥을차
렸고,늦는가족을기다렸고,아픈데는없는지또물었다.나는그것이사랑인지,책임인지,오래몸에밴습관인지알지못했다.
나는엄마처럼살수없었다.
---p.28
나는엄마가가만히있는줄만알았다.엄마가어떤바람을맞고있었는지는그때는알지못했다.엄마는그때그어마어마한상실의영역에들어서있었고,이제는나도그곳에와있다.
---p.31
평생식구들먹을것을챙겨온엄마에게누군가차려준밥앞에앉아자기몫만먹는일은어떤기분이었을까.
---p.48
엄마는또한번나에게실망했을것이다.그렇다고내가이미본길을보지않은척할수는없었다.어떤마음은접기전에한번쯤끝까지따라가봐야한다.그끝에별것이없더라도.
나는그마음을따라가봤다.별것도있었다.잘했다싶을만큼뿌듯했고,그래서뭐가남았나싶을만큼허탈하기도했다.그저삶이었다.목적같은것은아니고.
---p.78
엄마가살아온날들이너무고단해보여서내서러움은번번이별것아닌일이됐다.엄마때문에힘들었다고말하려다가도결국가장오래힘들었던사람은엄마였다는생각에입을다물었다.
엄마가살아있을때도그랬고,엄마가떠난뒤에도그랬다.나는엄마를미워할만큼자유롭지못했다.
부모의사정을너무잘아는아이는자기서러움을뒤로미루는데익숙해진다.하지만엄마가힘들었다는사실과내가엄마때문에힘들었다는사실은둘다사실일수있다.엄마의짐이무거웠다고해서어린나의짐이가벼웠던것은아니다.
---p.85
누군가에게사랑받고싶어애쓰는동안에는미처알지못한다.그사람도한번쯤은누군가의품에서마음놓고울었어야했던사람이었다는것을.우리는한참뒤에야그사실을알게된다.미움만으로는다담을수없었던한사람이그제야비로소보인다.
---p.134
나는엄마가무슨걱정을하며살았는지는알았지만,엄마자신이무엇을원했는지는궁금해하지못했다.
그래서물어야할것을하나도묻지않았다.
공부를계속했다면무엇을하고싶었는지.
셈이빠르고기억력이좋았던그머리로어디까지가보고싶었는지.
자기이름이마음에들었는지.
외삼촌이하고싶은대로사는모습을보며억울했던적은없었는지.
평생남걱정을하면서,한번쯤은누가자기걱정을해주기를바랐는지.
누구의딸도,누나도,아내도,엄마도아닌채로그냥자기마음대로살아보고싶었던적은없었는지.
---p.142
나는오랫동안더나은곳,더안전한곳,더그럴듯한삶에이르러야만비로소내자리에닿는것이라고믿었다.그래서자주늦었다고느꼈고,아직멀었다고여겼다.그마음이쌓이면삶전체가미완처럼느껴지고는했다.
하지만여기까지와보니,내가그토록찾아헤매던자리는멀리있는다른삶이아니었다.자주흔들리고,자주엉망이되고,그래도다음날이면또별일아닌듯지나온이자리.대단한빛같은것은없었지만,그래서오히려지극히찬란했던이자리.나를다른곳으로데려가줄막차를기다리는동안에도,나는이미내삶한가운데를지나오고있었다.
---p.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