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먼 나라의 시인들과 소통하는 작은 걱정의 시
- 고형렬 시인이 엮은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
고형렬 시인이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6개국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른한 명의 시인과 관북 시인-함형수, 김기림, 이용악, 윤동주, 설정식-을 한 자리에 묶은 무크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달아실 刊)를 펴냈다.
고형렬 시인은 이번 무크 엔솔러지를 묶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시인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집을 나와서 혼자 살고 있을까. 아직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을까.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시는 잘 써지는지. 궁금하다. 어떤 분은 이제 우리 사회에 시인은 없다고 말한다. 시인들이 어디로 가버렸다는 말이 정말일까.
시의 흐름은 끊어지고 시혼은 타버리고 냉기만 남은 것일까. 논쟁과 화제가 없는 문단은 서로 부르지 않고 찾지 않는다고 한다. 시가 떠들썩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비명을 지르고 대곡하는 시도 없는 것 같다. 반향도 없다. 한 세기가 풍장(風葬)되어야 궁한 언어가 살아나 피어날 것인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은 적막하고 사회는 관료화했다. 숲은 탄소가 부족해지고 사회는 산소가 부족해졌다. 시는 사라진 곳에 뭔가 불길한 것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러함에도 시인들로부터 한 편씩의 시를 받아 실었다. 그렇다고 시의 가치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시가 예언이 되고 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른한 명의 아시아 시인에게 다섯 가지씩의 간단한 질문을 던져 모두 150가지의 답을 받았다. 시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전히 벅찬 시의 일심(一心)이 전해진다. 시를 쓰는 그 이유가 독자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 믿는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꽃은 작아도 ‘자기’의 열매는 단단하리.
하지만 인적이 없는 도시의 저녁, 전쟁에 대한 불안, 청년들의 방황,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골목길 그리고 수소불화탄소의 증가, 밀림 파괴와 개발, 고온과 폭양, 빙하의 소멸, 남극의 강우, 원전 지역의 불안 등 모든 곳이 위험해지고 있다. 세기말 증상들이 칠십 년을 앞당겨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더 나은 세상으로 이행하는 과정일 리가 없다.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 데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영혼 속의 행성이 점멸(漸滅)되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혼란 속에서 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해는 지고 싸늘한 능선만 우리 눈을 비추고 있는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뼈와 영혼이 말라버린 것일까.
세계의 지성과 윤리가 사라진 대량 생산과 소비 사회는 바다의 고통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핵폐수의 해양 투기에 대한 시인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 사람들의 머리 위에 핵무기를 투하했고 금세기엔 바다에 핵폐수를 투기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공범자가 되었고 서로 묵과하고 있다. 치마(馳馬)의 무리가 날뛰는 AI 시대에서 만나는 무지와 폭력의 모습들이다.
시는 이런 것을 모두 걱정해야 하는 장르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가 쓴 시를 누가 읽고 공감할 것인가. 오지 않는 시를 부르지 않으며 부재의 고도도 기다리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의 실체를 껴안을 수 없는 기억일 뿐인가. 문학은 우리 내부에서 재생을 위한 지루한 소멸의 과정을 더 겪어야 하는가. 시는 의지나 닻이 아니고 오히려 표류이고 방황인가.
어떤 경우에도 시는 마음의 오염을 정화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길을 간다. 풀빛 하나와 바람 한 자락에 자기 언어의 옷을 입힌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송백이 혼자 푸를 수 없는 까닭에 시는 내재적 초월을 꿈꾼다. 그 시인들의 마음을 만나고 싶어 작은 앤솔러지를 만든 셈이다.
더불어 관북의 함형수, 김기림, 이용악, 윤동주, 설정식의 시를 다시 읽는다. 우리는 만나지 않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지평선의 석양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진다. 물론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앤솔러지엔 시를 사랑하는 뜻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시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성과 공을 들였지만 부끄러움을 참고 엮었다. 참가한 아시아와 한국 시인 그리고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점점 밝아지고 빨라지면서 점점 좁아지고 바빠지는 광속의 일상 속에서 시가 언어로 얻은 한 잔의 주스라도 되길 바란다.
이 책은 무크 앤솔러지로서 2000년에 창간한 계간 『시평(詩評), SIPYUNG』 54호의 뒤를 잇는 단행본 ‘아시아 포엠 주스’임을 밝힌다.
이번 무크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에 참여한 시인은 다음과 같다.
- 중국 : 위젠(于堅), 자이융밍(翟永明), 황리하이(黃禮孩), 얌꽁(飮江), 린쟝취앤(林江泉)
- 인도네시아 : 아흐다 임란(Ahda Imran), 줄파이살 뿌뜨라(Zulfaisal Putera), 넨덴 릴리스 A.(Nenden Lilis A.), 맛돈(MATDON), 히크맛 구메아르(Hikmat Gumear)
- 일본 : 한다 신카즈(半田 信和), 이토 요시히로(伊藤 芳博), 사가와 아키(佐川 亞紀), 시바타 노조무(柴田 望), 아오키 유미코(青木由弥子)
- 한국 : 김이듬, 황인찬, 장대송, 고형렬
- 대만 : 차이슈쥐(蔡秀菊), 린성빈(林盛彬), 예시엔저(葉宣哲), 양쉰(楊巽), 링진(齡槿)
- 베트남 : 부타잉화(Vũ Thanh Hoa), 르엉낌프엉(Lương Kim Phương), 마아반펀(Mai Văn Phấn), 호앙카잉(Hoài Khánh), 응웬티투이링(Nguyễn Thị Thùy Linh)
- 호주 : 댄 디즈니(Dan Disney, 한국 거주)
- 미국 : 제이크 레빈(Levine Jake, 한국 거주)
고형렬 시인이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6개국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른한 명의 시인과 관북 시인-함형수, 김기림, 이용악, 윤동주, 설정식-을 한 자리에 묶은 무크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달아실 刊)를 펴냈다.
고형렬 시인은 이번 무크 엔솔러지를 묶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시인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집을 나와서 혼자 살고 있을까. 아직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을까.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시는 잘 써지는지. 궁금하다. 어떤 분은 이제 우리 사회에 시인은 없다고 말한다. 시인들이 어디로 가버렸다는 말이 정말일까.
시의 흐름은 끊어지고 시혼은 타버리고 냉기만 남은 것일까. 논쟁과 화제가 없는 문단은 서로 부르지 않고 찾지 않는다고 한다. 시가 떠들썩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비명을 지르고 대곡하는 시도 없는 것 같다. 반향도 없다. 한 세기가 풍장(風葬)되어야 궁한 언어가 살아나 피어날 것인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은 적막하고 사회는 관료화했다. 숲은 탄소가 부족해지고 사회는 산소가 부족해졌다. 시는 사라진 곳에 뭔가 불길한 것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러함에도 시인들로부터 한 편씩의 시를 받아 실었다. 그렇다고 시의 가치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시가 예언이 되고 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른한 명의 아시아 시인에게 다섯 가지씩의 간단한 질문을 던져 모두 150가지의 답을 받았다. 시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전히 벅찬 시의 일심(一心)이 전해진다. 시를 쓰는 그 이유가 독자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 믿는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꽃은 작아도 ‘자기’의 열매는 단단하리.
하지만 인적이 없는 도시의 저녁, 전쟁에 대한 불안, 청년들의 방황,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골목길 그리고 수소불화탄소의 증가, 밀림 파괴와 개발, 고온과 폭양, 빙하의 소멸, 남극의 강우, 원전 지역의 불안 등 모든 곳이 위험해지고 있다. 세기말 증상들이 칠십 년을 앞당겨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더 나은 세상으로 이행하는 과정일 리가 없다.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 데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영혼 속의 행성이 점멸(漸滅)되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혼란 속에서 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해는 지고 싸늘한 능선만 우리 눈을 비추고 있는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뼈와 영혼이 말라버린 것일까.
세계의 지성과 윤리가 사라진 대량 생산과 소비 사회는 바다의 고통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핵폐수의 해양 투기에 대한 시인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 사람들의 머리 위에 핵무기를 투하했고 금세기엔 바다에 핵폐수를 투기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공범자가 되었고 서로 묵과하고 있다. 치마(馳馬)의 무리가 날뛰는 AI 시대에서 만나는 무지와 폭력의 모습들이다.
시는 이런 것을 모두 걱정해야 하는 장르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가 쓴 시를 누가 읽고 공감할 것인가. 오지 않는 시를 부르지 않으며 부재의 고도도 기다리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의 실체를 껴안을 수 없는 기억일 뿐인가. 문학은 우리 내부에서 재생을 위한 지루한 소멸의 과정을 더 겪어야 하는가. 시는 의지나 닻이 아니고 오히려 표류이고 방황인가.
어떤 경우에도 시는 마음의 오염을 정화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길을 간다. 풀빛 하나와 바람 한 자락에 자기 언어의 옷을 입힌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송백이 혼자 푸를 수 없는 까닭에 시는 내재적 초월을 꿈꾼다. 그 시인들의 마음을 만나고 싶어 작은 앤솔러지를 만든 셈이다.
더불어 관북의 함형수, 김기림, 이용악, 윤동주, 설정식의 시를 다시 읽는다. 우리는 만나지 않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지평선의 석양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진다. 물론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앤솔러지엔 시를 사랑하는 뜻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시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성과 공을 들였지만 부끄러움을 참고 엮었다. 참가한 아시아와 한국 시인 그리고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점점 밝아지고 빨라지면서 점점 좁아지고 바빠지는 광속의 일상 속에서 시가 언어로 얻은 한 잔의 주스라도 되길 바란다.
이 책은 무크 앤솔러지로서 2000년에 창간한 계간 『시평(詩評), SIPYUNG』 54호의 뒤를 잇는 단행본 ‘아시아 포엠 주스’임을 밝힌다.
이번 무크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에 참여한 시인은 다음과 같다.
- 중국 : 위젠(于堅), 자이융밍(翟永明), 황리하이(黃禮孩), 얌꽁(飮江), 린쟝취앤(林江泉)
- 인도네시아 : 아흐다 임란(Ahda Imran), 줄파이살 뿌뜨라(Zulfaisal Putera), 넨덴 릴리스 A.(Nenden Lilis A.), 맛돈(MATDON), 히크맛 구메아르(Hikmat Gumear)
- 일본 : 한다 신카즈(半田 信和), 이토 요시히로(伊藤 芳博), 사가와 아키(佐川 亞紀), 시바타 노조무(柴田 望), 아오키 유미코(青木由弥子)
- 한국 : 김이듬, 황인찬, 장대송, 고형렬
- 대만 : 차이슈쥐(蔡秀菊), 린성빈(林盛彬), 예시엔저(葉宣哲), 양쉰(楊巽), 링진(齡槿)
- 베트남 : 부타잉화(Vũ Thanh Hoa), 르엉낌프엉(Lương Kim Phương), 마아반펀(Mai Văn Phấn), 호앙카잉(Hoài Khánh), 응웬티투이링(Nguyễn Thị Thùy Linh)
- 호주 : 댄 디즈니(Dan Disney, 한국 거주)
- 미국 : 제이크 레빈(Levine Jake, 한국 거주)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 - 아시아 포엠 주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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