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화 - 달아실 한국소설 20

겨울 동화 - 달아실 한국소설 20

$14.00
Description
시인이 되고 싶었던 소설가 강기희가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마지막 동화
2023년 8월 1일 쉰아홉이라는 나이로 훌쩍 세상을 떠난 故 강기희 소설가의 유고 소설 『겨울 동화』(달아실 刊)가 출간되었다. 달아실한국소설 20번으로 나왔다. 표지 및 본문의 그림은 강기희 소설가의 아내인 유진아 동화작가가 그렸다.

『겨울 동화』는 비록 달아실한국소설 시리즈로 나오긴 했지만, 실은 장편 동화라고 해야 맞겠다. 암투병을 하던 강기희 소설가가 출판사에 초고를 보내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생전에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아내와 함께 만들어보고 싶었던 동화인데, 알다시피 내 몸뚱이가 앞일이 불투명해서 거칠지만 초고 그대로 보내네. 시간이 허락한다면 퇴고를 하겠지만, 퇴고를 못하고 떠날 수도 있을 거야. 그때는 많이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대로 세상에 내보내주면 고맙겠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정말로 훌쩍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열 권이 넘는 소설책을 쓰면서도 한 권의 시집-『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달아실, 2022)-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소설가 강기희는 늘 시인을 꿈꾸었고 꿈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함백산 아래 울울한 전나무 숲
아름드리 숲 지나 정암사 일주문 따라 오르면
적멸의 땅으로 이어지는 작은 석교 하나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이승 사람도 극락에 이른다는 극락교
극락교 입구에서 발길을 멈추곤
스님을 찾아보는데
- 자장 스님 계시우?
두어 번 더 소리쳐도 스님은 나오지 않고
계곡 물소리만 청아한 오후
극락교 아래 돌 틈에 숨어있던 열목어가 눈을 빼꼼 열며,
- 스님은 출타하셨는뎁쇼
- 언제?
- 글쎄요, 하도 오래되어서. 1천3백 년도 넘었거든요
- 故 강기희 시, 「스님은 출타 중」 전문


시인이 되고 싶었던 소설가 강기희는 영영 출타 중인데, 그가 남긴 말이 씨가 되어 출판사에는 퇴고하지 못한 그의 초고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마오쩌둥과 김일성과 김좌진과 안중근과 신채호와 윤봉길 등을 오라 하여 술판이라도 벌이고 싶다는 사내, 살다가 생이 지루해질 무렵 덕산기 숲속책방 접고 북녘땅 물빛이 순하고 고운 어디쯤에다 작은 ‘통일책방’ 하나 열었으면 좋겠다는, 북녘 동무들에게 남쪽에선 팔리지 않는 내 소설들이나 팔며 남은 생 살고 싶다는 사내, 비록 정선 시골 마을이지만 그래도 이장도 해보고 회장도 해봤다며, 폐암 말기라는 의사 소견에 내 몸에 아라리가 제대로 났다며 너스레를 떠는 사내, 전생을 사람으로 소설가로 살았으니 후생에는 가난한 소설가네 집 아궁이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사내, 남과 북이 하나로 하나 되고 외세가 물러나는 날, 해방춤 추며 꽃 잔치나 해야겠다는 사내, 덕산기계곡에는 소설 쓰고 시 쓰다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며 제대로 아라리가 난 빨갱이 촌놈 강기희가 산다.
- 박제영 시, 「덕산기계곡에는 빨갱이 촌놈이 산다」 전문

이번 장편 동화를 편집하고 책으로 펴낸 박제영 달아실출판사 편집장은 “미완이면 미완인 채로 강기희 형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며 “형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완성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지만, 미완이어서 오히려 더 슬프고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동화가 되었다”고 책을 펴낸 소감을 밝혔다.

동화의 내용은 〈글쓴이(강기희)의 말〉과 〈그린이(유진아)의 말〉에 잘 나와 있어 별도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눈으로 가득한 겨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춥지만 따스함이 기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요. 어릴 적 도깨비가 있다는 도깨비소 앞에 살았습니다.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곳인데요. 장마철이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장관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였을까요. 도깨비소는 어린 내게 금단의 구역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느 때고 도깨비소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그때 등장하는 뿔 달린 도깨비는 얼마나 무섭던지요.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하여 어릴 땐 도깨비소로 접근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깨비가 잡아갈 줄만 알았거든요.
나이가 든 지금, 다시 도깨비소 옆에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그렇게 무섭던 도깨비소가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밤이 되면 도깨비를 찾아 어슬렁거리기도 하니 나이가 들긴 한 모양입니다. 도깨비소 인근엔 반딧불이가 많습니다. 도깨비 친구들이지요.
고향인 정선 덕산기계곡에 돌아오면서 도깨비와 도깨비소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책방에 고양이가 살고 있는 데다, 겨울철이면 해마다 아내와 만드는 눈 고양이를 등장시켜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작품을 쓰면서 〈동화〉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결말에 이르니 〈아이들 동화〉가 아닌 ‘슬프고도 아름다운’ 〈어른 동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고백하지만 작품을 쓰며 내 눈에도 눈물이 촉촉하게 고인 적 있었거든요. - 2023년 여름, 강기희”

“남편과 나는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면서 해마다 이런저런 눈고양이들을 만들었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눈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동화를 쓰면 좋겠다고, 나에게 써보라고 권하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못 들은 척했다. 태생적으로 죽을 운명(?)을 가진 눈고양이의 슬픈 삶을 쓰기 싫었다.
남편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하는 긴 겨울에는 눈 치우기 힘들어서 눈고양이도 더 이상 만들지 못했다. 그때 남편은 마당에 눈고양이를 만들어 세우는 대신 책상 앞에서 글로 눈고양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게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쓴 글을 읽어보니 과연 내 염려대로 눈고양이는 죽었고, 남편도 우리 곁을 떠났다. 글 속에는 히포크라테스를 상상하며 만들어낸 요정 ‘히포’가 죽어가는 눈고양이를 되살려놓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남편은 투병 중에 그런 기적을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을 때 그림 그려서 함께 만든 책을 펼쳐보자는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고,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 힘들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글을 다시 읽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마지막 글을 쓰던 남편이 떠올라 무척 힘들었다. 남편이 떠난 후 서툴고 부족하기만 한 그림을 이제야 완성했다. 누구보다 좋아했을 남편에게 많이 늦어서 너무 미안하다. - 2024년 여름, 아내 유진아”

이 책은 그러니까 소설가 강기희가 이승에 남은 아내와 독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겠지만, 반대로 아내와 독자들이 저승의 강기희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잃고
천삼백삼십 날 꼬박
지독한 열병을 앓았지
정선에 와서 알았지
아라리를 앓았다는 것을

당신을 잃고
해발 1,330미터 만항재에 올랐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만 개의 아라리를 적어
만 개의 풍등을 띄워 보낸 항구라지
만 개의 이별이 피워낸 아라리라지
열꽃들 만개한 만항재에 올랐네

당신을 천삼백삼십 번 잃겠네
그때마다 아라리를 앓겠지만
그때마다 만항재에 오르겠네
천삼백삼십 개의 풍등을 띄워 보낸다면
마침내 당신에게 닿을지 모르겠네
- 박제영 시, 「당신을 잃고 만항재에 올랐네」 전문
저자

강기희

저자:강기희
1964년3월7일강원도정선에서태어나강원대학교무역학과를졸업했다.1998년『문학21』신인상으로등단한이후장편소설로『아담과아담이브와이브』(1999),『동강에는쉬리가있다』(1999),『은옥이1,2』(2001),『도둑고양이』(2001),『개같은인생들』(2006),『연산-대왕을꿈꾼조선의왕』(2012),『원숭이그림자』(2016),『위험한특종-김달삼찾기』(2018),『연산의아들,이황』(2020),『이번청춘은망했다』(2020)등을출간했으며,시집으로는『우린더뜨거워질수있었다』(2022)를출간했다.
한국최초전자책전문업체인바로북닷컴이주최한‘5천만원고료제1회디지털문학대상(수상작『도둑고양이』),2018년레드어워드상(수상작『위험한특종』)을수상하였다.2001년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업작가창작기금,2005년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창작기금을수혜하였다.
민족작가연합상임대표와한국작가회의이사를역임했다.대한민국최고오지마을인정선덕산기계곡에서창작활동과함께‘숲속책방’을운영하다가2023년8월1일홀연세상을떠났다.

그림:유진아
동화는더러썼지만한번도그림을그려본적없는뻔뻔한그림작가.소설쓰는남편따라정선오지덕산기에들어와‘숲속책방’을운영하고있음.고양이와개,철마다피어나는꽃들,나무들에게둘러싸여울다가웃다가남들사는것과별반다를것없이평범하게살고있음.

목차


글쓴이의말
그린이의말
겨울동화

출판사 서평

함백산아래울울한전나무숲
아름드리숲지나정암사일주문따라오르면
적멸의땅으로이어지는작은석교하나나온다
다리를건너면이승사람도극락에이른다는극락교
극락교입구에서발길을멈추곤
스님을찾아보는데
-자장스님계시우?
두어번더소리쳐도스님은나오지않고
계곡물소리만청아한오후
극락교아래돌틈에숨어있던열목어가눈을빼꼼열며,
-스님은출타하셨는뎁쇼
-언제?
-글쎄요,하도오래되어서.1천3백년도넘었거든요
―故강기희시,「스님은출타중」전문

시인이되고싶었던소설가강기희는영영출타중인데,그가남긴말이씨가되어출판사에는퇴고하지못한그의초고만덩그러니남겨졌다.

마오쩌둥과김일성과김좌진과안중근과신채호와윤봉길등을오라하여술판이라도벌이고싶다는사내,살다가생이지루해질무렵덕산기숲속책방접고북녘땅물빛이순하고고운어디쯤에다작은‘통일책방’하나열었으면좋겠다는,북녘동무들에게남쪽에선팔리지않는내소설들이나팔며남은생살고싶다는사내,비록정선시골마을이지만그래도이장도해보고회장도해봤다며,폐암말기라는의사소견에내몸에아라리가제대로났다며너스레를떠는사내,전생을사람으로소설가로살았으니후생에는가난한소설가네집아궁이로들어가면좋겠다는사내,남과북이하나로하나되고외세가물러나는날,해방춤추며꽃잔치나해야겠다는사내,덕산기계곡에는소설쓰고시쓰다<우린더뜨거워질수있었다>며제대로아라리가난빨갱이촌놈강기희가산다.
―박제영시,「덕산기계곡에는빨갱이촌놈이산다」전문

이번장편동화를편집하고책으로펴낸박제영달아실출판사편집장은“미완이면미완인채로강기희형의마지막소원을들어주고싶었다”며“형은사랑하는아내에게완성된이야기를들려주고싶어했지만,미완이어서오히려더슬프고아픈마음이고스란히전해지는동화가되었다”고책을펴낸소감을밝혔다.

동화의내용은<글쓴이(강기희)의말>과<그린이(유진아)의말>에잘나와있어별도로소개할필요는없을듯하다.

“눈으로가득한겨울이야기를하고싶었습니다.춥지만따스함이기대되는이야기를하고싶었던거지요.어릴적도깨비가있다는도깨비소앞에살았습니다.경치가무척아름다운곳인데요.장마철이면폭포에서떨어지는물이장관이었습니다.너무아름다워서였을까요.도깨비소는어린내게금단의구역이었습니다.
어른들은어느때고도깨비소에얽힌이야기를해주었는데요.그때등장하는뿔달린도깨비는얼마나무섭던지요.어린나로서는감당하기어려운문제였습니다.하여어릴땐도깨비소로접근도하지않았습니다.도깨비가잡아갈줄만알았거든요.
나이가든지금,다시도깨비소옆에살고있습니다.어릴적그렇게무섭던도깨비소가이젠하나도무섭지않습니다.밤이되면도깨비를찾아어슬렁거리기도하니나이가들긴한모양입니다.도깨비소인근엔반딧불이가많습니다.도깨비친구들이지요.
고향인정선덕산기계곡에돌아오면서도깨비와도깨비소에얽힌이야기를하고싶었습니다.책방에고양이가살고있는데다,겨울철이면해마다아내와만드는눈고양이를등장시켜평화를이야기하고싶었거든요.작품을쓰면서<동화>라는형식을빌렸지만,결말에이르니<아이들동화>가아닌‘슬프고도아름다운’<어른동화>가되고말았습니다.이제고백하지만작품을쓰며내눈에도눈물이촉촉하게고인적있었거든요.―2023년여름,강기희”

“남편과나는마당에쌓인눈을치우면서해마다이런저런눈고양이들을만들었었다.그때마다남편은눈고양이를주인공으로동화를쓰면좋겠다고,나에게써보라고권하곤했다.나는그때마다못들은척했다.태생적으로죽을운명(?)을가진눈고양이의슬픈삶을쓰기싫었다.
남편이폐암말기선고를받고투병을하는긴겨울에는눈치우기힘들어서눈고양이도더이상만들지못했다.그때남편은마당에눈고양이를만들어세우는대신책상앞에서글로눈고양이를만들었다.그리고이번에는내게어울리는그림을그려보라고재촉하기시작했다.
남편이쓴글을읽어보니과연내염려대로눈고양이는죽었고,남편도우리곁을떠났다.글속에는히포크라테스를상상하며만들어낸요정‘히포’가죽어가는눈고양이를되살려놓는장면이그려져있다.아마도남편은투병중에그런기적을꿈꿨을지도모르겠다.
살아있을때그림그려서함께만든책을펼쳐보자는소원을들어주지못했다.솔직히자신이없었고,그림을전문으로그리는사람도많은데내가할수있는일이아니라고생각했기때문에섣불리나서기힘들었다.그림을그리느라글을다시읽다보니컴퓨터앞에앉아마지막글을쓰던남편이떠올라무척힘들었다.남편이떠난후서툴고부족하기만한그림을이제야완성했다.누구보다좋아했을남편에게많이늦어서너무미안하다.―2024년여름,아내유진아”

이책은그러니까소설가강기희가이승에남은아내와독자들에게남긴마지막선물이겠지만,반대로아내와독자들이저승의강기희에게주는선물일지도모르겠다.

당신을잃고
천삼백삼십날꼬박
지독한열병을앓았지
정선에와서알았지
아라리를앓았다는것을

당신을잃고
해발1,330미터만항재에올랐네
고향을잃은사람들이만개의아라리를적어
만개의풍등을띄워보낸항구라지
만개의이별이피워낸아라리라지
열꽃들만개한만항재에올랐네

당신을천삼백삼십번잃겠네
그때마다아라리를앓겠지만
그때마다만항재에오르겠네
천삼백삼십개의풍등을띄워보낸다면
마침내당신에게닿을지모르겠네
―박제영시,「당신을잃고만항재에올랐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