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동정적 혜안으로 자연과 인간, 뭇 생명을 어루만지다
2001년 평화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춘천에서 줄곧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정주연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체리 핑크 맘보』(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기획시집 39번으로 나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정주연 시인은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신앙인으로서 ‘동정적 혜안’[철학가 김영민은 자신의 저서 『공부론』(샘터, 2010)에서 공감을 뜻하는 empathy를 연민을 뜻하는 sympathy와 구분 혹은 결합하여 ‘동정적 혜안’이라고 명명하면서, 타자성이라는 심연을 동정적 혜안으로 굽어볼 줄 아는 이가 바로 ‘동무’라고 말한 바 있다.]을 통해 타자의 존엄과 뭇 생명의 존귀함을 살피는 종교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감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 남자
이젠 오십 대로 들어서는 택배 배달원이다.
밤새 삼십 대 분량의 택배 상자를 내리고
새벽에 퇴근을 한다.
동료가 단잠에 들어 있는
원룸에 들어 라면을 먹는다.
노모는 요양원
아내와 두 자녀는 처갓집으로 갔다.
세상은 그저 무심할 뿐 춥지도 덥지도 않다.
길가 보라색 들국화
노란 꽃술에 매달린 꿀벌 한 마리
송금해야 할 일당에 골몰해
외줄타기 흔들리는 몸을 내맡기고 있다.
가을 햇살이
조금 서늘해져 있다.
- 「들국화」 전문
이번 시집 또한 지금까지 보여준 신앙인으로서의 타자와 뭇 생명에 대한 ‘동정적 혜안’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으며, 생태와 자연에 무게를 두면서 자신과 타자의 삶을 살피는 인문학적인 감성이 조금은 더 풍부하고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전윤호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우주로 통하는 뜰”이라며 정주연 시인과 이번 시집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주연 시인은 춘천 시내에서 좀 떨어진 산중에 산다. 그의 집에는 강아지 한 마리와 그가 가꾸는 넓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영토를 벗어나도 인간의 집보다는 나무와 새와 구름과 바람이 많다. 그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겨울은 쉬는 때이지만 시인에게 겨울은 또 다른 작업의 시간이다. 가을이 지나가면 호미를 창고에 넣어두고, 곱게 차려입고 큰 가방 끌며 시인은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지구의 먼 나라를 가는 것일 수도 있고 기억의 어두운 골목을 찾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냉정과 절제로 무장한 작은 방에서 가장 큰 일은 시를 쓰는 것이겠다. 시인에게 시는 또 하나의 매줘야 하는 뜰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무성해지는 잡념들과 웃자라는 관념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꽃을 보고 행복해하는 시간보다는 꽃을 볼 때까지의 시간이 더욱더 길다.”
아마도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이 나무의 부름이 아니었을까?
보호자가 없는 내 모습이 염려스럽다고
마당 끝 대문 도로변에서
늘 긴 팔을 너울대다가 눈이 마주치면 싱긋이 웃는
오고 가는 길손을, 온 동네를 다 품고 있다
내 남자
- 「느티나무」 부분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이 유행이다. 나무는 원래 신이니 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무가 신이면 꽃도 신이고 그 나무 위에서 우는 새는 신의 전령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정원은 신전이다. 신전을 지키는 사람, 시인의 본모습이다. 시인은 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 엄중한 신탁을 집행해야 하지만 신의 말이 너무 가혹해 바로 말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에둘러 나무와 풀과 새들을 말한다. 풀 한 포기의 말을 무시하지 마라는 시인의 말은 조금씩 자라난다.”
결론적으로 정주연 시집의 핵심은 타자의 존엄에 대한 성찰과 화해 그리고 뭇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겠다. “다 함께 락, 락이다”(「라일락, 락 락」)라는 그의 말은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고해를 헤쳐 나가야 하는 고단한 삶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맘보 맘보 체리 핑크 맘보!” 리듬에 맞춰 기꺼이 즐겁게 헤쳐 나가자는 그의 말은 얼마나 명쾌한가. 그의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정주연 시인은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신앙인으로서 ‘동정적 혜안’[철학가 김영민은 자신의 저서 『공부론』(샘터, 2010)에서 공감을 뜻하는 empathy를 연민을 뜻하는 sympathy와 구분 혹은 결합하여 ‘동정적 혜안’이라고 명명하면서, 타자성이라는 심연을 동정적 혜안으로 굽어볼 줄 아는 이가 바로 ‘동무’라고 말한 바 있다.]을 통해 타자의 존엄과 뭇 생명의 존귀함을 살피는 종교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감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 남자
이젠 오십 대로 들어서는 택배 배달원이다.
밤새 삼십 대 분량의 택배 상자를 내리고
새벽에 퇴근을 한다.
동료가 단잠에 들어 있는
원룸에 들어 라면을 먹는다.
노모는 요양원
아내와 두 자녀는 처갓집으로 갔다.
세상은 그저 무심할 뿐 춥지도 덥지도 않다.
길가 보라색 들국화
노란 꽃술에 매달린 꿀벌 한 마리
송금해야 할 일당에 골몰해
외줄타기 흔들리는 몸을 내맡기고 있다.
가을 햇살이
조금 서늘해져 있다.
- 「들국화」 전문
이번 시집 또한 지금까지 보여준 신앙인으로서의 타자와 뭇 생명에 대한 ‘동정적 혜안’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으며, 생태와 자연에 무게를 두면서 자신과 타자의 삶을 살피는 인문학적인 감성이 조금은 더 풍부하고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전윤호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우주로 통하는 뜰”이라며 정주연 시인과 이번 시집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주연 시인은 춘천 시내에서 좀 떨어진 산중에 산다. 그의 집에는 강아지 한 마리와 그가 가꾸는 넓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영토를 벗어나도 인간의 집보다는 나무와 새와 구름과 바람이 많다. 그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겨울은 쉬는 때이지만 시인에게 겨울은 또 다른 작업의 시간이다. 가을이 지나가면 호미를 창고에 넣어두고, 곱게 차려입고 큰 가방 끌며 시인은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지구의 먼 나라를 가는 것일 수도 있고 기억의 어두운 골목을 찾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냉정과 절제로 무장한 작은 방에서 가장 큰 일은 시를 쓰는 것이겠다. 시인에게 시는 또 하나의 매줘야 하는 뜰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무성해지는 잡념들과 웃자라는 관념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꽃을 보고 행복해하는 시간보다는 꽃을 볼 때까지의 시간이 더욱더 길다.”
아마도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이 나무의 부름이 아니었을까?
보호자가 없는 내 모습이 염려스럽다고
마당 끝 대문 도로변에서
늘 긴 팔을 너울대다가 눈이 마주치면 싱긋이 웃는
오고 가는 길손을, 온 동네를 다 품고 있다
내 남자
- 「느티나무」 부분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이 유행이다. 나무는 원래 신이니 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무가 신이면 꽃도 신이고 그 나무 위에서 우는 새는 신의 전령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정원은 신전이다. 신전을 지키는 사람, 시인의 본모습이다. 시인은 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 엄중한 신탁을 집행해야 하지만 신의 말이 너무 가혹해 바로 말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에둘러 나무와 풀과 새들을 말한다. 풀 한 포기의 말을 무시하지 마라는 시인의 말은 조금씩 자라난다.”
결론적으로 정주연 시집의 핵심은 타자의 존엄에 대한 성찰과 화해 그리고 뭇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겠다. “다 함께 락, 락이다”(「라일락, 락 락」)라는 그의 말은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고해를 헤쳐 나가야 하는 고단한 삶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맘보 맘보 체리 핑크 맘보!” 리듬에 맞춰 기꺼이 즐겁게 헤쳐 나가자는 그의 말은 얼마나 명쾌한가. 그의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겠다.
체리 핑크 맘보 (정주연 시집)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