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의 4해구 편지

91의 4해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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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바다가 풍경이 아니라 삶 자체일 때만 가능한 시편들
- 박수찬 시집 『91의 4해구 편지』
30년 넘게 뱃사람으로 살았고 현재는 해양수산부 어업감독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박수찬 시인의 첫 시집 『91의 4해구 편지』(달아실 刊)가 달아실기획시집 41번으로 나왔다.

뱃사람으로 뼈가 굵은 사내가 언제부턴가 시에 빠져서 시에 취해서 파도에 흔들리는 갑판에 앉아 시를 짓고 시를 읊기 시작했다. 시퍼런 너울과 파도 작열하는 태양 그리하여 바다와 배가 풍경이 아닌 삶 자체인 사람들을 시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사내가 바로 박수찬 시인이고 그렇게 담아낸 시편들이 이번 첫 시집 『91의 4해구 편지』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박수찬의 시집을 “바다의 몸, 바다의 언어”라고 요약하면서 이렇게 평한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 치고는 아쉽게도 해양 문학의 성과가 빈약한 한국에서, 이 시집은 매우 특이하고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고래잡이에 관한 극히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이 없이는 도저히 써질 수 없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처럼, 이 시집은 수십 년 바다 위에서 선원으로 살아본 경험과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쓸 수 없는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더욱 독특하다. 멜빌에게 바다가 인간의 무의식, 이해 불가능한 세계의 심연, 혼란스러운 거대한 힘의 상징이었다면, 박수찬에게 바다는 그대로 삶의 터전이자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과 하나가 된 거대한 몸이다. 시인에게 그것은 정신이나 개념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몸이어서, 생생한 감각으로, 물질로 존재한다. 박수찬에게 바다는 인간의 삶이 녹아 들어간 몸이며, 그의 시들은 그 몸의 소리를 받아쓴 생생한 언어이다.”


돛대 꼭대기에 앉아
흔들리는 배를 따라 놀던
해가, 하루의 쉼표를 찍어 갈 때
갈매기 한 마리
수평선 위에 빨간 알을 낳는다
알에게서
수평선은 양수
바다는 양막이다
하루가 몰락하는 시간을 딛고
알은
붉게 물든 바닷물에 몸을 풀고
배는
어둠 속에 몸을 푼다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뱃길 속에 당신을 푼다
-「항해 그 뒤편」 부분


“해와 바다, 배와 인간은 이렇게 하나의 동일한 궤도 위에 서 있는 다양한 좌표들이다. 박수찬에게 바다는 어디 멀리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가 일하는 배와 한 몸이며, 그 배 위에 있는 시인과도 한 몸이다. 그의 바다 시편들은 이와 같은 동일시에서 출발한다.”

한편 고은수 시인은 이번 박수찬의 시집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동안 배 위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느꼈다. 물론 시집 속에서다. 바다 생활은 육지에서 보면 낯설다. 하지만 박수찬의 시와 함께라면 그곳은 꽃도 피고, 새도 울고, 사람들의 고단함이 그리움으로 자라나는 곳임을 절실히 알 수 있다. 또 자연이 격한 환경 탓인지 나보다 남이 많이 보이는, 외로움이 흔들리는 자리이다. 초보 선원을 아끼는 마음, 팽목항을 향한 가슴 저림, 멀리 떠나갈 때 더 다가오는 사랑하는 사람들. 시인의 감성은 세세하고 놓치는 것이 없다. ‘이삿짐 상자 속에 포장되지 않는 파도 소리’, 이 표현이 참 좋았다.
김현 작가는 ‘글의 중요한 속성은 진정성과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늘 수긍하는 부분이다. 시가 삶을 가득 담으면 읽는 이는 눈물짓는다. 또 은유가 휘돌고 상상이 일렁일 때 우리는 독자로서 짜릿함을 맛본다. 박수찬의 시에는 두 가지가 모두 깃들어 있어서 찬탄이 나온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지만 사람과 사물을 보듬는, 투명한 시선만큼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바다에 시를 풀고, 건져 올린 시간들을 생각해본다. 두 손을 모으게 된다. 91의 4해구, 지명이 생소해도 다감한 편지로 당도하기에 그곳으로의 여행은 안전하다. 또 사이사이 울컥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시인 박수찬은 말하길, “돌아보면, 내 삶도 바람의 길이었다. 원양어선을 타고 낯선 바다에서 청운의 꿈을 펼치다가 돌아와, 우리나라 수산업법 수호를 위해 동, 서, 남해로 다닌 세월이 30년을 훌쩍 넘었다. 바다는 내 시의 원천이고 산실이다. 오늘도 나는, 내 시는, 바람 속으로 솟구치는 파도를 향해 달린다.”(「시인의 말」)라고 한다.

우리가 그동안 풍경으로 바라보았던 바다가 결코 보여주지 못한 진짜 바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진짜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시집을 꼭 일독하기 바란다.
저자

박수찬

저자:박수찬
시인박수찬은경남거제에서태어나자랐고부산에살고있다.직장생활을하며시문학에대한애정과향수에이끌려한국방송통신대학교국어국문학과졸업을했고,전국공무원문예대전시부문과시조부문에서다수의수상을했다.현재해양수산부어업관리단어업감독공무원으로재직중이며부산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중이다.
dragon09120@naver.com

목차

시인의말

1부.따꼬매듭
따꼬매듭│시집이야기│출항│히빙라인│초보선원│바가지│아버지의배│퇴임식은없다│남대서양에서부치는편지│돌려치기│항해는소리로길을연다│항해의시작│텔레그라프│사이클론앞에서│해양자연사박물관│방한복에대한고찰│칠성이│바다의오계五季

2부.나는어업감독공무원이다
항해그뒤편│소라게│나는어업감독공무원이다│한글학교91의8해구│야간항해│벽을말하다│12월의대화퇴를만나다│민원처리1│아버지의바다2│황천항해│술래잡기│S.O.S│고향바다│코에걸리다│빗장을여는시간│복어│일천일만의귀환을기다리며│대마도가잡히는날

3부.무적그사랑의기적
대화퇴1│항구의출산│야누스,그바다│무적그사랑의기적│해도속사람들│태풍이지나간뒤│모슬포│낯선겨울│수장│착시현상│대변항의꿈│왜가리│순대말이│아버지의바다1│91의4해구편지│제주항연대기│영도이야기

4부.바람의언덕에부는바람
성산일출봉│얼굴해도│미투│태풍전야│용의남자│바람의언덕에부는바람│항해,그역마살에대하여│냉이꽃피는바다│남극해양과학기지를그리며│겨울어머니│바다를건너온봄│안개주의보│울릉도에게│자갈치1│아버지의달│산골이고향인그사람│파도

해설_바다의몸,바다의언어?오민석

출판사 서평

오민석문학평론가는박수찬의시집을“바다의몸,바다의언어”라고요약하면서이렇게평한다.

“삼면이바다인나라치고는아쉽게도해양문학의성과가빈약한한국에서,이시집은매우특이하고도신선한느낌으로다가온다.(19세기중반미국의)고래잡이에관한극히전문적인경험과지식이없이는도저히써질수없었던허먼멜빌의『모비딕』처럼,이시집은수십년바다위에서선원으로살아본경험과지식이없는사람이라면도무지쓸수없는시들로이루어져있다.그래서더욱독특하다.멜빌에게바다가인간의무의식,이해불가능한세계의심연,혼란스러운거대한힘의상징이었다면,박수찬에게바다는그대로삶의터전이자삶을비추는거울이며,사람들속으로스며들어그들과하나가된거대한몸이다.시인에게그것은정신이나개념이라기보다는말그대로몸이어서,생생한감각으로,물질로존재한다.박수찬에게바다는인간의삶이녹아들어간몸이며,그의시들은그몸의소리를받아쓴생생한언어이다.”

돛대꼭대기에앉아
흔들리는배를따라놀던
해가,하루의쉼표를찍어갈때
갈매기한마리
수평선위에빨간알을낳는다
알에게서
수평선은양수
바다는양막이다
하루가몰락하는시간을딛고
알은
붉게물든바닷물에몸을풀고
배는
어둠속에몸을푼다
나는
아스라이멀어져가는뱃길속에당신을푼다
―「항해그뒤편」부분

“해와바다,배와인간은이렇게하나의동일한궤도위에서있는다양한좌표들이다.박수찬에게바다는어디멀리있는공간이아니라,그가일하는배와한몸이며,그배위에있는시인과도한몸이다.그의바다시편들은이와같은동일시에서출발한다.”

한편고은수시인은이번박수찬의시집을이렇게이야기한다.

“한동안배위에서출렁이는바다를느꼈다.물론시집속에서다.바다생활은육지에서보면낯설다.하지만박수찬의시와함께라면그곳은꽃도피고,새도울고,사람들의고단함이그리움으로자라나는곳임을절실히알수있다.또자연이격한환경탓인지나보다남이많이보이는,외로움이흔들리는자리이다.초보선원을아끼는마음,팽목항을향한가슴저림,멀리떠나갈때더다가오는사랑하는사람들.시인의감성은세세하고놓치는것이없다.‘이삿짐상자속에포장되지않는파도소리’,이표현이참좋았다.
김현작가는‘글의중요한속성은진정성과스타일이다.’라고말했다.늘수긍하는부분이다.시가삶을가득담으면읽는이는눈물짓는다.또은유가휘돌고상상이일렁일때우리는독자로서짜릿함을맛본다.박수찬의시에는두가지가모두깃들어있어서찬탄이나온다.아름다움은어디에나있지만사람과사물을보듬는,투명한시선만큼정신을고양시키는것은없는것같다.바다에시를풀고,건져올린시간들을생각해본다.두손을모으게된다.91의4해구,지명이생소해도다감한편지로당도하기에그곳으로의여행은안전하다.또사이사이울컥할마음의준비도해야한다.”

시인박수찬은말하길,“돌아보면,내삶도바람의길이었다.원양어선을타고낯선바다에서청운의꿈을펼치다가돌아와,우리나라수산업법수호를위해동,서,남해로다닌세월이30년을훌쩍넘었다.바다는내시의원천이고산실이다.오늘도나는,내시는,바람속으로솟구치는파도를향해달린다.”(「시인의말」)라고한다.

우리가그동안풍경으로바라보았던바다가결코보여주지못한진짜바다이야기를듣고싶다면,진짜뱃사람들의이야기를듣고싶다면이시집을꼭일독하기바란다.

시인의말

쇠락해가는바람이마지막까지제소임을다하는모습이저파도라고생각하니,대자연의섭리가새삼숭고해지면서도왠지가슴이짠해진다.

돌아보면,내삶도바람의길이었다.
원양어선을타고낯선바다에서청운의꿈을펼치다가돌아와,우리나라수산업법수호를위해동,서,남해로다닌세월이30년을훌쩍넘었다.

바다는내시의원천이고산실이다.
오늘도나는,내시는,
바람속으로솟구치는파도를향해달린다.

2025년비양도에서
박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