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숙성된 문장과 문자의 이율배반으로 빚어낸 사랑의 깊이
- 조성림 시집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
- 조성림 시집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
2001년 『문학세계』로 등단하여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성림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달아실 刊)를 펴냈다. 달아실시선 93번으로 나왔다.
수학 교사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홍천여자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조성림 시인은 ‘남은 여생을 시에 바치겠다’며 오롯이 시의 길을 걷고 있다. 소위 기승전詩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시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한 그는, 매일매일을 시 공부에 매진하며 시를 살고 있다.
그는 말하길, ‘자연 만물이 결국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며 이번 시집은 ‘그러한 사랑, 사랑의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시인의 말〉을 통해 이야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참으로 세상 멀리도 달려왔다. 내 몸 위에서 꽃이 폈고 또 내 몸 위에서 새가 울었다.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삶의 웃음과 비애도 두 눈으로 또 가슴으로 처절히 보아왔다. 계절은 강물처럼 흘러오고 또 흘러갔고 내 몸이 낙엽이 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다. 나도 한낱 풀잎으로 태어났고 또한 무궁한 상상력으로 떠다니던 구름이었으며 밤이면 저 무한한 별에 닿아 소스라치고는 늘 외경과 찬사를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찬란한 자연 위에서 장미처럼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을 때 뜨겁게 사랑하는 것일 뿐.”
시집의 해설을 쓴 박성현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은 ‘문자의 이율배반과 문장의 밀도’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렇게 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문자는 감각적인 측면에서 이율배반이다. 문자는 빛과 어둠의 동시적 이중 노출에 포획된 채 ‘의미작용’이라는 문자와 사물이 얽혀 있는 현상을 표현한다. 문자와 텍스트의 이율배반은 소위 ‘랑그’라 불리는 언어의 특이한 구조 때문인데, 초기 언어학이 밝혀낸 바와 같이 인간의 언어 활동이 전적으로 문자가 아닌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의 이율배반이란 가시(可視)와 비(非)-가시를 동시에 내포하는 사태, 바로 그것이다. 비유하자면 조성림 시인이 노래한 ‘절망이 비경이 되는/ 여울의 노래’(「몰운대에 와서」), ‘절망’과 ‘비경’을 동시적으로 노출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돌담 곁에
붉은 입술이
폭설에 묻히고 있네
폭설에 날아와 묻히는
멧새 한 쌍
사랑처럼
붉은 찔레 열매
겨울 입속에 넣어주네
얼음처럼 춥다는 겨울 속을
열매는 불꽃처럼 씩씩하게
설경인 채로 떠가고 있네
- 「겨울 찔레」 전문
“이 한 편의 시는 문자의 얽힘이 장르의 강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곧 시인이 반출하는 서정은 ‘시’만이 드러내는 막중한 함축 그 자체로서, 폭설에도 사랑을 나누는 ‘멧새 한 쌍’의 정서와 겨울에도 색을 잃지 않는 ‘붉은 찔레 열매’의 고귀한 의지를 투사한다.”
아주 오랫동안
달빛이 창호지처럼
백자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때로
그 마음이 부풀 대로 부풀어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를 낳고 있다
- 「양구 백자박물관」 부분
“문자는 그것이 인지되는 순간 이미 가시권 내로 도약해 있으며, ‘문자-이미지’로서 고양된다. 벚꽃과 실재 ‘벚꽃’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얽힌 ‘문자-이미지’다. 두 영역은 얽혀 있으나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없고, 측정되지 않는 만큼 사태는 미묘하게 복잡해진다. 요컨대, 우리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자’와 ‘이미지’가 흘러가는 양상을 직관하는바, 작가와 독자의 시차(視差)에 따라, 혹은 서정과 서사의 맥락에 따라 문자는 얼마든지 고밀도의 텍스트로 출력된다. 이러한 현상은 시인이 노정한 시작(詩作)의 핵심을 이루는데, 이를테면, 「양구 백자박물관」과 같은 웅숭깊은 시가 그렇다.”
“조성림 시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문자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음지에 각인된 한기를 파헤친다. 그는 우선 대상의 존재 방식을 멈춰 세우고 전에 없던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삶을 실존으로 생활로 끊임없이 분기하며 우리의 정신적 영역을 확장한다. ‘한여름 장마에/ 나무 한 그루 무너져/ 강물에 떠내려가며/ 엎어져/ 흙탕물 위에/ 한 생애를 써 내려’(「묵시」)간다는 노래에는 대상을 깊고 진지하게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물론 대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
시인 김창균은 이번 시집을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시집은 ‘사랑’과 ‘사랑’ 이후로 가득하다. 시인은 그윽한 사랑의 시선으로 시적 대상을 바라보고 자기 속에 들이고 그 위에 살짝 연민을 얹어 독자에게 내민다. 또 한편으로 시인은 ‘장마에 떠내려온 나무 한 그루’, ‘이제 막 갓 태어난 어리디어린 새끼들’, ‘70년을 부서지고 깨어진 잔해’, ‘떠 있는 뭉게구름’, ‘대웅전에 드리워진 꽃살문’, ‘주먹을 불끈 쥔 모과’에 눈길을 주며 ‘나는 언제 시가/ 저 배꽃이나/ 불암산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고는/ 나의 생애를 또 한 번 더/ 말처럼 서럽게’ 울며 자신의 시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가 치열하게 시를 살아내는 만큼 그가 직조하는 문장들의 깊이와 밀도도 그만큼 깊고 단단해진 것일 터. 박성현 문학평론가의 분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하고 선명한데,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서 모과꽃이 피랴’라는 시집 제목으로 시인이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듯이, 다름 아닌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뜨거운 여름보다 더 좋은 계절이 어디 있으랴. 이 뜨거운 계절에 꼭 맞춤한 시집이겠다.
수학 교사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홍천여자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조성림 시인은 ‘남은 여생을 시에 바치겠다’며 오롯이 시의 길을 걷고 있다. 소위 기승전詩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시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한 그는, 매일매일을 시 공부에 매진하며 시를 살고 있다.
그는 말하길, ‘자연 만물이 결국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며 이번 시집은 ‘그러한 사랑, 사랑의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시인의 말〉을 통해 이야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참으로 세상 멀리도 달려왔다. 내 몸 위에서 꽃이 폈고 또 내 몸 위에서 새가 울었다.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삶의 웃음과 비애도 두 눈으로 또 가슴으로 처절히 보아왔다. 계절은 강물처럼 흘러오고 또 흘러갔고 내 몸이 낙엽이 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다. 나도 한낱 풀잎으로 태어났고 또한 무궁한 상상력으로 떠다니던 구름이었으며 밤이면 저 무한한 별에 닿아 소스라치고는 늘 외경과 찬사를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찬란한 자연 위에서 장미처럼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을 때 뜨겁게 사랑하는 것일 뿐.”
시집의 해설을 쓴 박성현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은 ‘문자의 이율배반과 문장의 밀도’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렇게 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문자는 감각적인 측면에서 이율배반이다. 문자는 빛과 어둠의 동시적 이중 노출에 포획된 채 ‘의미작용’이라는 문자와 사물이 얽혀 있는 현상을 표현한다. 문자와 텍스트의 이율배반은 소위 ‘랑그’라 불리는 언어의 특이한 구조 때문인데, 초기 언어학이 밝혀낸 바와 같이 인간의 언어 활동이 전적으로 문자가 아닌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의 이율배반이란 가시(可視)와 비(非)-가시를 동시에 내포하는 사태, 바로 그것이다. 비유하자면 조성림 시인이 노래한 ‘절망이 비경이 되는/ 여울의 노래’(「몰운대에 와서」), ‘절망’과 ‘비경’을 동시적으로 노출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돌담 곁에
붉은 입술이
폭설에 묻히고 있네
폭설에 날아와 묻히는
멧새 한 쌍
사랑처럼
붉은 찔레 열매
겨울 입속에 넣어주네
얼음처럼 춥다는 겨울 속을
열매는 불꽃처럼 씩씩하게
설경인 채로 떠가고 있네
- 「겨울 찔레」 전문
“이 한 편의 시는 문자의 얽힘이 장르의 강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곧 시인이 반출하는 서정은 ‘시’만이 드러내는 막중한 함축 그 자체로서, 폭설에도 사랑을 나누는 ‘멧새 한 쌍’의 정서와 겨울에도 색을 잃지 않는 ‘붉은 찔레 열매’의 고귀한 의지를 투사한다.”
아주 오랫동안
달빛이 창호지처럼
백자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때로
그 마음이 부풀 대로 부풀어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를 낳고 있다
- 「양구 백자박물관」 부분
“문자는 그것이 인지되는 순간 이미 가시권 내로 도약해 있으며, ‘문자-이미지’로서 고양된다. 벚꽃과 실재 ‘벚꽃’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얽힌 ‘문자-이미지’다. 두 영역은 얽혀 있으나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없고, 측정되지 않는 만큼 사태는 미묘하게 복잡해진다. 요컨대, 우리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자’와 ‘이미지’가 흘러가는 양상을 직관하는바, 작가와 독자의 시차(視差)에 따라, 혹은 서정과 서사의 맥락에 따라 문자는 얼마든지 고밀도의 텍스트로 출력된다. 이러한 현상은 시인이 노정한 시작(詩作)의 핵심을 이루는데, 이를테면, 「양구 백자박물관」과 같은 웅숭깊은 시가 그렇다.”
“조성림 시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문자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음지에 각인된 한기를 파헤친다. 그는 우선 대상의 존재 방식을 멈춰 세우고 전에 없던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삶을 실존으로 생활로 끊임없이 분기하며 우리의 정신적 영역을 확장한다. ‘한여름 장마에/ 나무 한 그루 무너져/ 강물에 떠내려가며/ 엎어져/ 흙탕물 위에/ 한 생애를 써 내려’(「묵시」)간다는 노래에는 대상을 깊고 진지하게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물론 대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
시인 김창균은 이번 시집을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시집은 ‘사랑’과 ‘사랑’ 이후로 가득하다. 시인은 그윽한 사랑의 시선으로 시적 대상을 바라보고 자기 속에 들이고 그 위에 살짝 연민을 얹어 독자에게 내민다. 또 한편으로 시인은 ‘장마에 떠내려온 나무 한 그루’, ‘이제 막 갓 태어난 어리디어린 새끼들’, ‘70년을 부서지고 깨어진 잔해’, ‘떠 있는 뭉게구름’, ‘대웅전에 드리워진 꽃살문’, ‘주먹을 불끈 쥔 모과’에 눈길을 주며 ‘나는 언제 시가/ 저 배꽃이나/ 불암산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고는/ 나의 생애를 또 한 번 더/ 말처럼 서럽게’ 울며 자신의 시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가 치열하게 시를 살아내는 만큼 그가 직조하는 문장들의 깊이와 밀도도 그만큼 깊고 단단해진 것일 터. 박성현 문학평론가의 분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하고 선명한데,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서 모과꽃이 피랴’라는 시집 제목으로 시인이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듯이, 다름 아닌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뜨거운 여름보다 더 좋은 계절이 어디 있으랴. 이 뜨거운 계절에 꼭 맞춤한 시집이겠다.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