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

$11.03
Description
숙성된 문장과 문자의 이율배반으로 빚어낸 사랑의 깊이
- 조성림 시집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
2001년 『문학세계』로 등단하여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성림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 모과꽃이 피랴』(달아실 刊)를 펴냈다. 달아실시선 93번으로 나왔다.

수학 교사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홍천여자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조성림 시인은 ‘남은 여생을 시에 바치겠다’며 오롯이 시의 길을 걷고 있다. 소위 기승전詩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시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한 그는, 매일매일을 시 공부에 매진하며 시를 살고 있다.

그는 말하길, ‘자연 만물이 결국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며 이번 시집은 ‘그러한 사랑, 사랑의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시인의 말〉을 통해 이야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참으로 세상 멀리도 달려왔다. 내 몸 위에서 꽃이 폈고 또 내 몸 위에서 새가 울었다.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삶의 웃음과 비애도 두 눈으로 또 가슴으로 처절히 보아왔다. 계절은 강물처럼 흘러오고 또 흘러갔고 내 몸이 낙엽이 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다. 나도 한낱 풀잎으로 태어났고 또한 무궁한 상상력으로 떠다니던 구름이었으며 밤이면 저 무한한 별에 닿아 소스라치고는 늘 외경과 찬사를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찬란한 자연 위에서 장미처럼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을 때 뜨겁게 사랑하는 것일 뿐.”

시집의 해설을 쓴 박성현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은 ‘문자의 이율배반과 문장의 밀도’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렇게 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문자는 감각적인 측면에서 이율배반이다. 문자는 빛과 어둠의 동시적 이중 노출에 포획된 채 ‘의미작용’이라는 문자와 사물이 얽혀 있는 현상을 표현한다. 문자와 텍스트의 이율배반은 소위 ‘랑그’라 불리는 언어의 특이한 구조 때문인데, 초기 언어학이 밝혀낸 바와 같이 인간의 언어 활동이 전적으로 문자가 아닌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의 이율배반이란 가시(可視)와 비(非)-가시를 동시에 내포하는 사태, 바로 그것이다. 비유하자면 조성림 시인이 노래한 ‘절망이 비경이 되는/ 여울의 노래’(「몰운대에 와서」), ‘절망’과 ‘비경’을 동시적으로 노출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돌담 곁에
붉은 입술이
폭설에 묻히고 있네

폭설에 날아와 묻히는
멧새 한 쌍
사랑처럼
붉은 찔레 열매
겨울 입속에 넣어주네

얼음처럼 춥다는 겨울 속을
열매는 불꽃처럼 씩씩하게
설경인 채로 떠가고 있네
- 「겨울 찔레」 전문

“이 한 편의 시는 문자의 얽힘이 장르의 강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곧 시인이 반출하는 서정은 ‘시’만이 드러내는 막중한 함축 그 자체로서, 폭설에도 사랑을 나누는 ‘멧새 한 쌍’의 정서와 겨울에도 색을 잃지 않는 ‘붉은 찔레 열매’의 고귀한 의지를 투사한다.”

아주 오랫동안
달빛이 창호지처럼
백자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때로
그 마음이 부풀 대로 부풀어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를 낳고 있다
- 「양구 백자박물관」 부분

“문자는 그것이 인지되는 순간 이미 가시권 내로 도약해 있으며, ‘문자-이미지’로서 고양된다. 벚꽃과 실재 ‘벚꽃’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얽힌 ‘문자-이미지’다. 두 영역은 얽혀 있으나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없고, 측정되지 않는 만큼 사태는 미묘하게 복잡해진다. 요컨대, 우리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자’와 ‘이미지’가 흘러가는 양상을 직관하는바, 작가와 독자의 시차(視差)에 따라, 혹은 서정과 서사의 맥락에 따라 문자는 얼마든지 고밀도의 텍스트로 출력된다. 이러한 현상은 시인이 노정한 시작(詩作)의 핵심을 이루는데, 이를테면, 「양구 백자박물관」과 같은 웅숭깊은 시가 그렇다.”

“조성림 시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문자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음지에 각인된 한기를 파헤친다. 그는 우선 대상의 존재 방식을 멈춰 세우고 전에 없던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삶을 실존으로 생활로 끊임없이 분기하며 우리의 정신적 영역을 확장한다. ‘한여름 장마에/ 나무 한 그루 무너져/ 강물에 떠내려가며/ 엎어져/ 흙탕물 위에/ 한 생애를 써 내려’(「묵시」)간다는 노래에는 대상을 깊고 진지하게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물론 대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

시인 김창균은 이번 시집을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시집은 ‘사랑’과 ‘사랑’ 이후로 가득하다. 시인은 그윽한 사랑의 시선으로 시적 대상을 바라보고 자기 속에 들이고 그 위에 살짝 연민을 얹어 독자에게 내민다. 또 한편으로 시인은 ‘장마에 떠내려온 나무 한 그루’, ‘이제 막 갓 태어난 어리디어린 새끼들’, ‘70년을 부서지고 깨어진 잔해’, ‘떠 있는 뭉게구름’, ‘대웅전에 드리워진 꽃살문’, ‘주먹을 불끈 쥔 모과’에 눈길을 주며 ‘나는 언제 시가/ 저 배꽃이나/ 불암산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고는/ 나의 생애를 또 한 번 더/ 말처럼 서럽게’ 울며 자신의 시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가 치열하게 시를 살아내는 만큼 그가 직조하는 문장들의 깊이와 밀도도 그만큼 깊고 단단해진 것일 터. 박성현 문학평론가의 분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하고 선명한데, ‘사랑 없이 어찌 모과나무에서 모과꽃이 피랴’라는 시집 제목으로 시인이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듯이, 다름 아닌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뜨거운 여름보다 더 좋은 계절이 어디 있으랴. 이 뜨거운 계절에 꼭 맞춤한 시집이겠다.
저자

조성림

저자:조성림
시인조성림은1955년강원도춘천에서태어났다.2001년『문학세계』로등단했다.시집으로『지상의편지』,『세월정류장』,『천안행』,『겨울노래』,『눈보라속을걸어가는악기』,『붉은가슴』,『그늘의기원』,『멧새가와서사랑처럼울었다』와시선집으로『낙타를타고소금바다를건너다』를냈다.
csl4793@naver.com

목차

시인의말

1부
묵시│예감│꽃살문│바다가보이는집│눈사람│양구백자박물관│첫사랑│사랑나무아래│배꽃│아버지│야무나강│봄바다│달│모과│우물

2부
선운사동백│그럼에도불구하고사랑은썩지않는다│녹동항에서잠들지못하다│바람의궁전│몰운대에와서│뼝대│흑산도│어수리│서귀포│천안행2│미륵│그물코│빈방

3부
제진역│옛철원제일교회│물의악보│귀가│매화꽃새벽│춤│청동나신상│안락의자│시인의방│나무시인│윤용선시인을추억하며│호두│술벗

4부
겨울찔레│달려라고독│어머니│좁은문│껍질│칸나│풀협죽도│떡│어린것│병│삼광조│봄편지│후회│바라캇컨템포러리

해설_‘깊이’의익어감혹은빛과어둠의이율배반박성현

출판사 서평

돌담곁에
붉은입술이
폭설에묻히고있네

폭설에날아와묻히는
멧새한쌍
사랑처럼
붉은찔레열매
겨울입속에넣어주네

얼음처럼춥다는겨울속을
열매는불꽃처럼씩씩하게
설경인채로떠가고있네
―「겨울찔레」전문

“이한편의시는문자의얽힘이장르의강도에얼마나영향을미치는지여실히보여준다.곧시인이반출하는서정은‘시’만이드러내는막중한함축그자체로서,폭설에도사랑을나누는‘멧새한쌍’의정서와겨울에도색을잃지않는‘붉은찔레열매’의고귀한의지를투사한다.”

아주오랫동안
달빛이창호지처럼
백자에스며들었을것이다

때로
그마음이부풀대로부풀어
보름달같은
달항아리를낳고있다
―「양구백자박물관」부분

“문자는그것이인지되는순간이미가시권내로도약해있으며,‘문자-이미지’로서고양된다.벚꽃과실재‘벚꽃’은동전의양면처럼동시에얽힌‘문자-이미지’다.두영역은얽혀있으나그거리를가늠할수없고,측정되지않는만큼사태는미묘하게복잡해진다.요컨대,우리는문장을읽으면서‘문자’와‘이미지’가흘러가는양상을직관하는바,작가와독자의시차(視差)에따라,혹은서정과서사의맥락에따라문자는얼마든지고밀도의텍스트로출력된다.이러한현상은시인이노정한시작(詩作)의핵심을이루는데,이를테면,「양구백자박물관」과같은웅숭깊은시가그렇다.”

“조성림시인의시선은끊임없이문자의어둠을바라보고있으며,그음지에각인된한기를파헤친다.그는우선대상의존재방식을멈춰세우고전에없던다른방식으로의삶을부여한다.그리고그삶을실존으로생활로끊임없이분기하며우리의정신적영역을확장한다.‘한여름장마에/나무한그루무너져/강물에떠내려가며/엎어져/흙탕물위에/한생애를써내려’(「묵시」)간다는노래에는대상을깊고진지하게응시하는시인의시선은물론대상을구원하고자하는시인의의지가동시에깃들어있다.”

시인김창균은이번시집을또이렇게이야기한다.

“이시집은‘사랑’과‘사랑’이후로가득하다.시인은그윽한사랑의시선으로시적대상을바라보고자기속에들이고그위에살짝연민을얹어독자에게내민다.또한편으로시인은‘장마에떠내려온나무한그루’,‘이제막갓태어난어리디어린새끼들’,‘70년을부서지고깨어진잔해’,‘떠있는뭉게구름’,‘대웅전에드리워진꽃살문’,‘주먹을불끈쥔모과’에눈길을주며‘나는언제시가/저배꽃이나/불암산에다다를수있을까하고는/나의생애를또한번더/말처럼서럽게’울며자신의시에스스로질문을던지기도한다.”

그가치열하게시를살아내는만큼그가직조하는문장들의깊이와밀도도그만큼깊고단단해진것일터.박성현문학평론가의분석은어쩌면당연한결과이겠다.
그러나무엇보다이번시집을관통하는주제는분명하고선명한데,‘사랑없이어찌모과나무에서모과꽃이피랴’라는시집제목으로시인이공공연히선언하고있듯이,다름아닌사랑이다.사랑하기에뜨거운여름보다더좋은계절이어디있으랴.이뜨거운계절에꼭맞춤한시집이겠다.

시인의말

참으로세상멀리도달려왔다.

내몸위에서꽃이폈고
또내몸위에서새가울었다.

많은세계를돌아다니며
온갖삶의웃음과비애도
두눈으로또가슴으로처절히보아왔다.

계절은강물처럼흘러오고또흘러갔고
내몸이낙엽이되는것을슬퍼하지않았다.

나도한낱풀잎으로태어났고
또한무궁한상상력으로떠다니던구름이었으며
밤이면저무한한별에닿아소스라치고는
늘외경과찬사를보냈다.

내가할수있는일이란그저,
이찬란한자연위에서
장미처럼
그래도사랑할수있을때
뜨겁게사랑하는것일뿐.

2025년6월현곡시거(玄曲詩居)에서
조성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