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최준 시집)

닭 (최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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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준 시집 『닭』. 최준의 세계에는 전망이 없다. 전망이 어둡다. 그리하여 그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며, 사회적 고통의 부정적 진실을 충실히 드러낼 뿐이다. 시집 『닭』은 ‘우리의 삶에는 전망도 역전도 없다’며 헛된 희망으로 절망을 포장하지 않고, 어둠을 외면하지도 않으려는 자의 기록이다.
저자

최준

저자:최준
1963년강원도정선에서태어났다.1984년『월간문학』신인상시당선.1990년『문학사상』신인상시당선.1995년중앙일보신춘문예시조당선.시집『너아직거기서』,『집에관한명상혹은길찾기』(3인시집),『개』,『나없는세상에던진다』,『뿔라부안라뚜해안의고양이』,『칸트의산책로』,인도네시아번역시집『OrangSuci,PohonKelapa』,『슬라브식연애』(3인시집)등을냈다.juns743@daum.net

목차


시인의말


우리에갇히다│밤에바라본산│우울해│구석에서중얼거리다│욕하는마음을│어두운쪽은어두운쪽으로│나를읽다│나나나나나│물을버리다│막막함으로│불구의발바닥│가는길│일상들│질서│부지불식간에│평화│벼슬│불치의봄│역전을꿈꾸지않는다│나날들│문의턱│불길한새벽│어쩌다가│세월│부대낌없이│재소자―행로를이탈한│길이없으니│혼숙의날들│수탉│모르겠다는것뿐│먹이의사슬│들어본일있는지│겨울의시절│우글거린다│우리는│미운오리새끼│남대문시장│미로│닭집골목│가시돋친마음이│무정란│갑옷│자문│고백―조류독감│아침염탐│칩거

해설_비천함속에서피어나는생의장엄함?임지훈

출판사 서평

어두운쪽을오랫동안응시하며살았어
어두운쪽은늘어두운쪽이었는데
어두운쪽을밝은쪽으로바꿔보려했었어
그건햇빛을거둬들이는일
몇날며칠햇살끝을끌어다가
어두운쪽에쟁여놓아도어두운쪽은
어두운쪽이었을뿐

내세상한곳이어두워있었어
그게늘불만이었는데
이따금세상의모래톱에몸을묻었어
여름의뜨거운모래톱에몸을묻으면
아뜩한현기증속으로세상은한동안씩
흐름멎어버리곤했어
봄부터예견했던우기가오고
비만내렸어내집과모래톱이
하룻밤새쓸려내려갔지
오래됐지만기억하고있어
어두운쪽은늘그렇게
어두운쪽이었던
가끔세상을조깅하거나
날아오르려기쓰고날개퍼덕거릴때에도
어두운쪽은
언제나어두운쪽으로
―「어두운쪽은어두운쪽으로」전문

빛을끌어와도어둠은변하지않는다.이단호한결론은시집『닭』전체를지배한다.중요한점은이것이개인적정서가아니라세계자체에대한인식이라는점이다.
세계가이처럼어둡게규정된다면,그구조는바뀔수있는가.시인은이물음에도간단히답한다.“역전은없다”.

불불에구워진다
물에잠겨삶아진다
빈뱃속에
찹쌀과대추와밤이
여섯해그모둠발로땅의힘움킨
인삼이채워지고
무명실로꿰매어진다

파마늘과소금을
식탁앞에늘어놓고
그대는기다리고있다
즐거운포식의시간이어서오기를

포식자인그대와
피식자인나
먹이사슬의질서유지를위해
기쓰고현위치사수한다

나는역전을꿈꾸지않는다안다
생은끝끝내내게
역전은없다
―「역전을꿈꾸지않는다」전문

닭이식탁위에서소비되듯,관계혹은질서는철저히고정되어있다.포식자와피식자의위치는바뀌지않는다.다시확인되는것은역전의부재,그리고전망의부재다.
그렇다면전망도없고,역전도없는삶에서남는것은무엇인가.시인은여기서삶을버티는흔적에주목한다.

더러운곳에서산다는생각도없이살아간다

가두는손있으면가두어지고
주면주는대로
굶기면굶는대로

그렇게살다가면그뿐
버팀으로무리이루어

동시대를그렇게살다가

어느날,문득
그대들곁에서사라진나를
발견하리라

오래걸어부르트고굳은살박인
불구의발바닥내려다보면서

지난세월을울리라

눈물마른가슴을쪼며
―「불구의발바닥」전문

발바닥에남은굳은살만이삶의흔적을증명한다.언젠가사라질지라도,몸에남겨진흔적이삶이지속되었음을말해준다.이반복되는고단함은다른시들에서더욱구체적으로드러난다.

어떤날은
현실이지나치게꼬여있다는

내부가얽히고설켜
도저히풀길없다는생각

도막도막끊어내어
다시조립하고싶다는,

(중략)

남는건절망과
부정뿐이라는,
―「일상들」부분

가슴헤집는칼날이있다
예고없이찾아오는이고통의실체
어떤이름으로불러줘야할지

어쩌다고통없는날일때,
고통과고통의사이드넓어질때,고통이
언제다시올지
도통알길없을때,

마음은폭풍경보내려진
해안마을처럼
초조하다차라리
오고야말고통이기다려진다
―「부대낌없이」부분

『닭』의세계에서일상은얽히고꼬여풀리지않고,고통은예고없이찾아와삶을흔든다.그러나끝내남는것은울음을삼키는반복과,언제닥칠지모르는고통을기다리며감내하는태도다.
시집『닭』은‘우리의삶에는전망도역전도없다’며헛된희망으로절망을포장하지않고,어둠을외면하지도않으려는자의기록이다.
독자들은이시집에서위로나탈출구를찾지는못할것이다.대신우리가살아가는현실을차갑게확인하게될것이다.그리하여아이러니하게도현실을읽어내는힘을얻게될것이다.
최준은희망을덧붙이지않는문장과반복되는고단함속에서묻고있는것이리라.이냉혹한현실을,당신은정면으로바라볼수있겠는가,라고.

저자의말

갖은풍자와모멸을
온몸으로받아내면서,
퍼덕거리면서,
그러나날지는못하고,
우글거리며지상에서살아가야하는,
모든가혹한운명들에게
이레퀴엠을,
이편협한
이기적인사랑을…….

2025년9월고향정선에서
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