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는 멀리에 있어 (김수예 시집)

오아시스는 멀리에 있어 (김수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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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멀리 있는 것들의 내력, 손끝으로 읽는 세계
- 김수예 시집 『오아시스는 멀리에 있어』


김수예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오아시스는 멀리에 있어』를 펴냈다. 달아실 기획시선 48번으로 나왔다.

김수예는 멀리 있는 것들을 손끝과 몸의 감각으로 불러내어, 촉각-기억의 시학으로 풀어내는 시인이다. 그는 대상을 만지고 감각하며,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기억과 관계의 깊이를 탐구한다.

시인은 사물과 손끝이 맞닿는 순간 그 내력이 우리 몸속으로 스며드는 체험을 미세한 감각으로 기록한다.
저자

김수예

시인김수예는목포에서나고인천에서자라,전주에서시를읽고쓰며살고있다.문학매거진《포엠포엠》으로등단하였고,저서로미디어콘텐츠북『목소리가얼굴에게』,시집『피어나블루블루』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흰그림자를물고
테라스│한모반모│미시│패킹│정자나무집│서도역박공지붕아래│속눈썹│스푸마토│입김│싸이코메트리│으아리,큰꽃으아리│사태지다│민들레

2부.모래몰래
나는외발로│고딕의│표절│거울│오월│무언극│폭죽놀이│모래인간│밤배│포노토그래프1│포노토그래프2│씽크홀│연대

3부.일월화수목금토
끈│못난이토마토│백원만│경품칸타빌레│자정의삐에로│사과하지마세요│손가락총│보온병을켜라│둘레│동침│일월화수목금토│내비게이션│어머,차이나

4부.섬은섬을향한다
물앵두집│나는달에홀려│소변검사│열대1│열대2│바다의조리질│홀가분│협재│프라이빗│바글거리다│일요일│섬,서목│수묵

해설_감각의전이혹은간극의미학ㆍ김겸

출판사 서평

두마리개미는더듬이를맞걸고
하나의생각을나눈대요
인디언이낯선사람을만나면십여분가만히바라본다죠그에게서배어나오는소리를음미하는거지요

당신이흘리고간펜을주워들고그날의손끝을더퉈보아요

어린날의우리는쪼그려앉아흙장난을하지요
맨발을타고올라와
온몸으로번져가는아지랑이는대지를움켜쥐고있던나무의잔뿌리

대기의엽서에흙의마음을받아적다가
엉덩이를털어내고산길을걷다가
잎을흔드는뿌리의냄새가끼쳐와얼굴을붉히며우린멈춰서곤하지요

뭍이녹아내려물에잠기든
섬이들끓어솟아오르든
정작지구는눈하나깜빡하지않을거예요

어쩌면품속같은바람이불어올지도요

코를땅에박고강아지는부풀어오르는봄을들춰보고있네요
파헤친자리마다빛이새어나와요

애면글면지구에곁들여사는
우리,인면수심해요
-「싸이코메트리」전문


흘리고간펜,흙장난,뿌리의냄새,강아지가파헤친자리마다새어나오는빛-그모든것은촉각의통로를거쳐기억으로변환된다.세계는늘손끝을통해,몸의체험을통해내력을드러낸다.그리고그과정에서시인은“우리,인면수심해요”라고고백한다.촉각이불러낸기억이아름다움만이아니라결국인간존재의부끄러운내력까지드러내는것이다.

이촉각의체험은호흡과숨결로도이어진다.


잔에김이오른다

잠시비는멎고
커피가식어가고
휘청거리는대기에

둥둥떠내려가는발걸음
뒤꿈치는쩍쩍갈라져

야자수가부풀었다홀쭉해진다
오아시스는멀리에있어서오아시스

초여름눈빛은휘지않아
서로물들어가는중

얹혔던속이턱,
초목이한숨을뿜는다

폐부깊숙이더운숨에
뭉근히번져가는흙내
-「입김」전문


“오아시스는멀리에있어”라는제목은“오아시스는멀리에있어서오아시스”라는구절에서따온것일텐데,왜이구절에서제목을정했는지시인의속내는알수없다.다만숨결속에서되살아나는흙내와초목의기억,그건잘붙잡히지않는것이고,그렇기에더강렬하다.이처럼그의시는‘멀리있어야비로소의미가되는것들’을사유한다.오아시스가가까이에있다면더이상오아시스일수없듯,세계의진실또한거리를두었을때더욱선명해진다.이감각은일상의작은몸짓속에서도되살아난다.


눈꺼풀이내려앉는다

찬새벽을밀어내며
앞동옥상은함박눈으로꺼풀지고있다

분리수거장에서달그락거리는소리가
머리맡으로굴러온다

생각에잠긴어둠에서
음,푸르스름이배어나온다

블라인드를말아올리며
세상을한줄에모았다가편다

눈꺼풀이캐스터네츠처럼입을벌려

여명을맞는창밖의지도를따라
아프아프아침은헤엄쳐온다

눈치우며바닥긁는소리부터
쌀씻으며눈썹떨리는소리까지

고대로부터지중해연안까지

한밤이열렸다닫히는사이
나는조금더촉촉해진다
-「속눈썹」전문


눈의감각,눈을치우는소리,쌀을씻는촉각은단순한묘사가아니라몸의기억과시간의깊이를이어주는감각적회로다.일상적인감각이단순한묘사가아니라세계와인류의시간까지포괄하는회로로작동한다.작은촉각이그렇게더큰차원으로번져나가듯,김수예의시선은끝내닿을수없는거리까지확장된다.


섬은물위에떠있다

나는섬을향해서있고
섬은수평선을바라보고있다

나는섬에갈수가없고
섬은수평선으로가지않는다

섬은고유한섬인채로
수평선은늘수평선대로

물은끝없이섬을낳고
하늘은쉬지않고
구름을말아놓는다

배한척물에길을내며
사라진다살아진다

섬은하늘아래떠있고
수평선은구름아래멀고

나는출렁거린다

세상에서가장먼섬이거기있다
섬은섬을향한다
-「섬,서목」전문


섬은닿을수없다.그래서섬으로존재한다.거리를두고바라보는시선속에서관계의내력이드러난다.오아시스가멀리있어야오아시스이듯,섬도멀리있어야섬이다.

시집『오아시스는멀리에있어』는손끝과숨결,그리고닿지못하는거리의기억을불러내는시집이다.김수예는세계를곧바로붙잡는대신,촉각과지연,그리고거리를통해더깊은내력을읽어낸다.그게그의시학이다.그래서시집의제목은곧그의시학을압축한한줄로읽힌다.

빠르게스쳐지나가는일상에서김수예의시는우리에게“잠시멈추어손끝으로만져보라”고속삭인다.그렇게마주한사물과풍경은오래잠들어있던기억과내력을되살리고,멀리있어야비로소드러나는삶의진실을보여준다.독자는이시집을통해가까이서는보이지않던것들을새롭게감각하게될것이다.


■시인과의일문일답

1.이번이두번째시집인데,첫시집과달라진게있다면무엇인지?

첫시집까지가는길은가파른오르막이었습니다.등단이늦은만큼,조급했었던것같습니다.‘시다움’이라는주소를들고시의집을찾아가는길은힘겹고도짜릿했습니다.매순간절망하고,매일매일무릎을꺾곤했습니다.

두번째시집에다다라서는‘시’와소통하기시작한것같습니다.불도저의시동을끄고내려와가래로흙을고르기시작했다고할까요?시의눈과배를맞추고자손발은헐렁거렸습니다.

2.이번시집을관통하는주제가무엇이고,이번시집을통해독자에게전하고싶은메시지는무엇인지?

존재가존재하는방식에대해서줄곧바라보았던것같습니다.

이번시집에서화자와시의대상은서로한껏부풀어올랐습니다.줌인되어진시의‘대상’들은놀랍게도,확성기를들고저마다의목소리를내는것이아니라물적경계를허물고서로살을섞고있었습니다.그혼융과고유성이얼마나표현되었는지,독자분들께서어떻게읽어주실지기대되고설렙니다.해설과표4를맡아주신두분선생님께서그점을읽어주셔서조금은안도하고있지만요^^

3.다음시집은어떤계획을가지고있는지?

‘시인의말’에서도언급했습니다만,두권의시집을나에게서세상으로밀어내고나니그것이무엇인가를퍼내는일이었는지고이게하는중인지,‘시’가내민손을너무일찍놓아집으로들여보낸건아닌지저어되기도합니다.

다만지금까지는세상을두리번거리며관조했다면,다음시집에서는어느정류장에선가내려골목길을따라그실핏줄로빨려들어가보고싶습니다.그곳에서결국더예민하게‘나’를들여다보는‘나’라는감정과만나겠지요.한껏부푼세상(나)구석구석에는어떤생의환희나비의(秘儀)가웅크리고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