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종이 쟁쟁한 날 (제주 냄새, 사람 냄새, 물씬한 풍경들 | 김세홍 산문집)

은종이 쟁쟁한 날 (제주 냄새, 사람 냄새, 물씬한 풍경들 | 김세홍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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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붕어빵을 굽는 시인이 바라본 제주 사람들, 제주 풍경들
- 김세홍 산문집 『은종이 쟁쟁한 날』
1997년 한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세홍 시인이 산문집 『은종이 쟁쟁한 날』(달아실 刊)을 펴냈다.

1980년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며 문학에 발을 들였고, 군 전역 후 1994년 한라산문학동인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세홍 시인은 제주도에서 ‘붕어빵 굽는 시인’으로 통한다.

여러 해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는 김세홍 시인은 지금도 밤에는 생계를 위해 붕어빵을 굽고 낮에는 시와 산문을 쓰며 자유분방한 글쟁이로서의 삶,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번 산문집은 시인이 걸어온 지난 길과 그 길 위에서 만난 숱한 인연들을 가감 없이 기록한 이력서이며, “붕어빵을 굽고 팔면서 바라본, 붕어빵에 비친, 제주 사람들과 제주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김세홍 시인은 “생계유지와 문학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돈만 벌고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있으며, 붕어빵을 만들며 보는 그 모든 풍경들이 나에게는 시의 밑그림이다”라고 말한다.

이번 산문집은 김세홍 시인 개인의 내력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1960년대에 제주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낸 제주민들의 내력과 체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까 1960년대 이후 제주도라는 공간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인 셈이다.

“세홍아, 저녁에 뭐 할 거냐?”
“뭐, 별일은 없수다만 무사 마씨?”
“제원아파트 쪽에 삼겹살 먹으러 가자.”
“무사? 갑자기 삼겹살? 육고기 싫어허는 사람이.”
“왜? 이노무새꺄, 내가 삼겹살 먹으면 안 되나? 의사가 콜레스테롤 모자란다 햄쪄.”
“게민 육고기 먹으민 치료된댄 헙디까?”
“잔말 말앙 저녁 6시에 그쪽으로 와.”
- 「은종이 쟁쟁한 날」, 39쪽

산문집 곳곳에 나오는, 제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주 사투리는 이번 산문집의 또 다른 재미이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김세홍 시인에게 “이노무새끼야”라고 부르는 사람은 고(故) 정군칠 시인이다.

김세홍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이번 산문집을 이렇게 얘기한다.

“글쓰기의 갈피갈피, 층층이 쌓인 층위를 다스려 세상이 내보이는 질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알아챔과 끈기도 각성의 일부라고 여기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여러 해 동안 우리 집에서 산 사람이라면 한겨울에 바짝 말라 시커멓게 된 무화과가 새들의 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무화과가 열매를 밀어 올리는 것은 한겨울 먹이가 궁할 바람까마귀들을 위한 것이다. 알아차림이 둔해서 그렇지, 세상에 무용한 행위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이야기가 좋다. 긴가민가하지만 떨림이 커서 하루 종일 설레게 만드는 기운 말이다. 부끄럽지만, 여기에 실린 지극히 사적인 수많은 졸고는 하루 오백 자 쓰기의 소산이라는 것을 밝힌다.”

붕어빵을 굽는 손으로 매일 ‘오백 자 쓰기’를 지켜오고 있는 김세홍 시인이다. 천생 글쟁이라고 하겠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제주 바다 냄새가 풍기고, 제주 사람들의 삶과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제주를 여행하는 색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면, 김세홍 시인의 산문집 『은종이 쟁쟁한 날』을 일독하시라.
저자

김세홍

저자:김세홍
1997년한라일보신춘문예시등단.시집『소설무렵』.제주작가회의회원.

목차

작가의말

1부

코뿔소가시덩굴│니가타현의사마귀│벽돌한장│수인을읽었다│무두내마씀│감목관을배알하다│네댓번만나도초면인사이│은종이쟁쟁한날│형수L│느티나무열매│그는중국의좌파였다│때를놓치면뱃속이불량해진다│진주귀걸이를추억하며│네가먹은붕어빵개수를알고있다

2부

공구가나를길들인다│벚꽃축제│악덕업자│노변잡설│신의마법이풀리는순간│칼끝사랑│부러운착각│의심스러운이용사│여뀌장사│방귀유감│M여사의험담│허공에꽃이피었다│꽃을훔치는남자│구형백동전│저승미투리전

3부

옛일을끄집어내는방식│홀애비조새유감│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햇볕을섬기는집│가을비긴머리처녀야│보다자유롭고성실하게│저,김태원입니다│다시,당신에게│혼다오토바이에게안부를묻다│구릿대아래꺼병이들을생각했다│아들은언제아비를닮을까│맹꽁이소리│화려강산도│굼슬거운웃음이비쳤다

4부

검은별│똥간청소부승혁이│옛전집이있다│부치지못한편지│쇠다마│아버지의유산│양은밥상│어머니근력│예장(醴狀)│포도담금주│말똥버섯│DDT보리밥│바늘│아버지와먼길을걷다│수목제사│문중벌초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우리집마당에는매년9월초순이면호랑나비가알짱알짱날아든다.초피나무두그루에알을낳기위해서다.근십년가까이그애벌레들은단한마리도부화하지못했다.초록똥을누는애벌레는그집푸성귀를돌보던이씨부인의손가락에의해짓이겨지기일쑤였다.

올해도호랑나비는늦더위탓에일주일쯤늦었지만팔락거리며대문을타넘었다.마당한켠에서는처서가한참지났는데도무화과가열리고있다.찬바람이불면채익지못한채모조리마를것이다.

얼마전길가화단에서는수박줄기에맺힌손톱만한열매를본적도있었다.바람까마귀가아무도찾지못하게구름속에먹이를숨겨둔것처럼,그들은왜무용해보이는일을벌이는걸까.어딘가차원이다른곳에서애씀의결과를얻고있는건아니냐는바보같은상상을해보기도했다.

글쓰기의갈피갈피,층층이쌓인층위를다스려세상이내보이는질감을제대로이해하고싶었다.알아챔과끈기도각성의일부라고여기게된것은최근의일이다.여러해동안우리집에서산사람이라면한겨울에바짝말라시커멓게된무화과가새들의먹이라는사실을깨닫게될것이다.

그러니까지금무화과가열매를밀어올리는것은한겨울먹이가궁할바람까마귀들을위한것이다.알아차림이둔해서그렇지,세상에무용한행위란것이어디있겠는가.나는이런이야기가좋다.긴가민가하지만떨림이커서하루종일설레게만드는기운말이다.부끄럽지만,여기에실린지극히사적인수많은졸고는하루오백자쓰기의소산이라는것을밝힌다.

2025년초겨울제주에서
김세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