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것들속에서인간의온기를기록하다
―석정미시집『경춘서점』
사라지는시대,남겨진말들을줍다
자본과속도의시대에던지는무덤덤한위로와버팀의미학
춘천에서활동하고있는석정미시인의네번째시집『경춘서점』이달아실기획시집51번으로나왔다.
『경춘서점』은시인이오랫동안천착해온삶의현장과사람들의이야기를더욱깊고따뜻한시선으로담아낸작품집이다.오래된서점,마을골목,시장,들녘,절집,강변과같은일상의공간을배경으로사라져가는풍경과기억,그리고그속에남아있는인간의온기를섬세하게길어올린다.
이번시집은「경춘서점」,「홍수」,「거름의말」,「낙엽을쫓다가」,「냉장고탑」,「나는대보름」등총4부60여편의시를수록하고있다.표제작「경춘서점」은오래된서점에켜켜이쌓인시간과기억을통해사라져가는것들의가치와존재의의미를되새기게한다.또한「냉장고탑」에서는노모를향한자식의사랑을,「홍수」에서는지역서점과사람들의삶을통해공동체의기억을따뜻하게복원한다.
시인은이번시집의‘시인의말’에서“순간들을놓치지않으려고시를씁니다.숙명으로받아들이고나아가겠습니다”라고밝히며,시를향한자신의진솔한태도를전했다.
해설을맡은전윤호시인은“석정미의시는삶이가장오래머물고가장쉽게사라지지않는낮은자리를오래바라본다”며“사라진자리에서끝내남는것들을기록하는시”라고평가했다.
모든것이초고속으로흐르는세상이다.손가락끝의가벼운터치한번으로관계가맺어지고,채읽히기도전에새로운정보의홍수속으로휩쓸려내려가는디지털디스토피아안에서인간의영혼은정처없이마모된다.효율과생산성의잣대로만평가받는이차가운현대사회에서,자본의속도를따라잡지못하는존재들은너무도쉽게‘무가치한것’으로분류되어중심부밖으로밀려난다.불안과소외가일상이된우리에게,지금필요한것은더빠른내비게이션이아니라잠시멈춰서서내면의허기를들여다보는일이다.
시인석정미는바로그자본과디지털의궤도바깥,가장낮고외진곳으로걸어들어가우리시대의지독한결핍을응시한다.그가도달한세계는화려한상징이나거대한구호가존재하지않는,눅눅하고낡은삶의현장이다.시인은몇주째이력서를쓰며공수표가된개인정보동의서를휴지통에버리는청춘의막다른골목끝에서,기어이순대국밥집의온기를찾아낸다.“동물의질긴길/바닥을통과하면/다시세상으로뛰쳐나가/야생을누비는나의긴슬픔이여”(「순대」)라는고백은,현대인이겪는생존의비장함과처연함을온몸으로받아내는자의육성이다.
이시집의표제작이자중심공간인‘경춘서점’은단순히책을파는가게가아니다.그것은소멸해가는아날로그적가치들의마지막퇴적층이다.서점을지키는여인은점점여위어가고병실에는장마가찾아오며,서점바닥은진흙으로뭉개지는홍수를맞이한다.그러나시인은그파괴의현장에서절망을노래하는대신,침수된공간을뚫고솟아오르는언어의생명력을예감한다.“책들이살아서/창문을열었으면좋겠다/둥둥떠다니는말들을주우러/아이들이모여들었으면좋겠다”(「홍수」)라는간절한염원은,모든것이사라지는시대속에서도완전히가라앉지않는문학과인간성에대한엄숙한신뢰다.
『경춘서점』은화려한수사보다삶의결을따라가는언어로오늘을살아가는독자들에게깊은공감과위로를전한다.빠르게변화하는시대속에서잊혀가는사람과장소,기억의가치를다시생각하게하는이번시집은지역문학의새로운성취이자한국서정시의따뜻한현재를보여주는작품으로주목받고있다.
■시인의말
오다보니여기까지왔습니다.
올해봄에도
파밭이울창합니다.
푸른대공위로하얀꽃망울이터집니다.
가슴벅차오릅니다.
순간들을놓치지않으려고
시時를씁니다.
숙명으로받아들이고나아가겠습니다.
2026년여름
석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