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마저 파란 쿠차에 가면 - 달아실시선 114

지옥마저 파란 쿠차에 가면 - 달아실시선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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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윤훈

저자:이윤훈
시인이윤훈은평택에서태어났다.바람구두를신고떠도는자칭트루바두르이다.2002년조선일보신춘문예(시)로,2021년동아일보신춘문예(시조)로등단했다.시집으로『나를사랑한다,하지마라』와『생의볼륨을높여요』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하늘에가까운나이

상강霜降|하염없이|인생사전|라산스카|한여자를스무가지의이름으로불러보다|겹꽃|오늘밤에는|은엉겅퀴에게|은혼의봄나들이|천년의사랑|찰나의꽃|원웨이티켓|포토포비아|심야독백|여치와그네를

2부.그대가있는그어디나그곳이천국

아스라이|서역만리|내인생경전의첫구절|달콤한오역|이름없는경전|호접몽胡蝶夢|지상의저녁|램프는나직이타오르고|그리움|검은침묵|라다크|신의얼굴|눈먼사랑|히말라야에가면|노승

3부.외로운만큼더푸른바다에닿을것이다

보헤미아|모래내|슬픔이여,안녕|꿈의종점|시와떠나는철학여행|끝|프놈펜의아침|숨겨진라오|오고가다|딘톤|수목한계선|긴밤의여로|다이아몬드인더러프DIAMONDINTHEROUGH|신생의아침|그리운이름,영등포

4부.슬픔과분노를넘어선곳에사랑이있다

밤의화엄경|검은피에타와두개의우화|북촌에서|그날의독법|대화적인간|산자의신성한의무|여수연가|누가영영우리의입에재갈을물릴수있는가|애월|실낙원|유채꽃역설|신생|비둘기통신|지구통신|하늘통신

후기.어느포유동물의이야기

해설_세상에살며,세상의바깥을갈구하는노래.김재홍

출판사 서평

불안과상실의시대,인간존재를향한치열한기록
-이윤훈시집『지옥마저파란쿠차에가면』

2002년조선일보신춘문예(시)와2021년동아일보신춘문예(시조)라는두번의이정표를통과해온이윤훈시인이세번째시집『지옥마저파란쿠차에가면』(달아실시선114)을펴냈다.

바람구두를신은트루바두르,서역만리에서실존을묻다

스스로를‘바람구두를신고떠도는트루바두르’라명명하는시인답게,이번시집은공간의한계를지우고전개되는거대한유랑의기록이자,그길위에서마주한실존적영도(零度)의탐색기다.

시인이당도한사유의첫정거장은역설적이게도‘하늘에가까운나이’가되어서야비로소눈에들어온일상의담백함과고독이다.1부에서시인은“밥보다/시가좋다”(「인생사전」)며단호히‘인생사전’의정의를새로내리거나,인생을‘가을밤역’을출발해‘실존역’으로향하는‘원웨이티켓’의안개여행으로규정한다.(「원웨이티켓」)

이러한실존적고독은2부에이르러서역만리실크로드라는광활한공간을만나며우주적사유로확장된다.호탄의백옥강,라다크,카일라스로이어지는고행의길위에서시인은문명과사적인아집을모두비워낸다.

겹겹이주름진붉은협곡을지나
마침내푸른석굴
흰말을탄순례자
천년을건너또천년
천상으로가는길지옥마저파랗다
백양나무아래구슬픈류트소리
천년의슬픔을내것으로받아도좋은
지상의하루
눈부시다
-「서역만리-6.푸른석굴」전문

협곡의붉은열기를뚫고마주한푸른석굴에서시인은“천상으로가는길지옥마저파랗다”는경이로운비전을제시한다.쿠차에서‘파랑’은곧행복의색이며,지옥같은치욕과고통속에서도눈에담아야할극락의세계를상징한다.천년의보석라피스라줄리(Lapislazuli)의푸른빛깔로써내려간이연작들은비극적세계를초월하려는시인의숭고한영혼의등고선이다.

변방의세속적만다라와긴밤의여로

시인의시선은신비로운도정(道程)에만머물지않고,지상의가장낮고소란스러운표면으로하강한다.〈3부.외로운만큼더푸른바다에닿을것이다〉에서는베트남하노이의뒷골목‘딘톤’과캄보디아프놈펜의아침이날것그대로의언어로스케치된다.

시인이포착한‘딘톤’은“사원앞이바로시장”이고생존을위해썩어버릴남의살을주무르는앳된아가씨와문신을새긴사내들이뒤엉킨“세속의만다라”다.고요는죽은자들의것이기에이거리의소란과부대낌을축복으로받아들이는시인의시선은깊은인류학적연민에닿아있다.(「딘톤-하노이골목스케치」)

동시에이여정은고독을통해사랑을증명해야하는외로운투쟁이기도하다.서울양양간고속도로의긴터널을지나며시인은“외로운만큼더푸른바다에닿을것이다”라고가속기를밟는다.터널이라는빈속,그불면의통로를빠져나가가랑비내리는속초의빈티지카페‘소설’에안착하는과정은,그자체로한편의서사시이자파란바다에도달하기위한필연적인통과의례다.(「긴밤의여로」)

상흔을관통하는역설,분노를넘어선‘사랑의신생(新生)’

이번시집의심장부는단연〈4부.슬픔과분노를넘어선곳에사랑이있다〉이다.시인은가슴아픈한국현대사의현장인순천,여수,제주의북촌과다랑쉬굴,빌레못동굴로걸어들어간다.야만의광기가인간을인간으로읽지않고짐승으로읽어내며떼죽음을한날한시에몰고왔던참혹한역사앞에서시인은숨죽인통곡을받아적는다.

섬제주를아름답다하지마라
유채꽃피는곳에슬픔이있다

섬제주를슬프다하지마라
슬픔이있는곳에유채꽃핀다

일출을맞는아침제일로크게핀다
-「유채꽃역설」전문

그러나이윤훈의시학이빛나는지점은이참혹한슬픔을고발하는데그치지않고,그것을거대한역설의영양분으로삼아‘사랑’을피워내는데있다.시인은삭풍에목이꺾인여수의동백꽃을바라보며“인간을,적어도한사람을/미워할이유만큼이나사랑할이유가있다”(「여수연가」)는것을깨닫는다.그리하여“밤이마지막으로키워주는것은사랑이라는것을/슬픔과분노를넘어선곳에/사랑이있다는것을”(「신생」)마침내온몸으로체득하며‘푸른바람의섬’으로새로태어난다.

가엾은식충(食蟲)들을향한뜨거운숟가락의연민

시집의대미를장식하는후기「어느포유동물의이야기」는시인의유년과가리봉골목의청춘을복원해내며시집의정서적뿌리를확인시켜준다.특히〈5.숟가락〉에나타난밥과인간에대한사유는눈물겹다.“숟가락안에는배고픈짐승이산다”고말하는시인은맨몸으로상경한아버지의숟가락하나,한겨울무덤속에숟가락처럼누워더는슬픈달을파먹을일이없는어머니를호명한다.

희미한불빛아래아내의숟가락이비스듬히제숟가락에기대어있는것을바라보는중년시인의시선에서,우리는지상의허기를견디며살아가는모든포유동물들을향한안쓰러움과지극한사랑을읽게된다.“등이시린날식구,라는말에서달그락,밥숟가락소리가난다”는구절은이시집이도달한연민의깊이가어디까지인지를단적으로보여준다.

이윤훈의『지옥마저파란쿠차에가면』은방랑의발걸음으로시작해역사와개인의상흔을두루만진뒤,따스한밥냄새가나는지상의식탁으로돌아오는시적만다라다.지옥같은삶의비극속에서도기어이푸른구원의색을찾아내어우리손에쥐여주는,올해가장눈여겨보아야할서정의성취다.

·시인의말

잃어버린무엇을찾아길을떠나는
슬픈눈동자

영원의이름으로길을헤매는
아름다운여행자

그대이름은


2026년여름,바람객잔에서
이윤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