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겨울까지 - 달아실 기획시집 53

겨울에서 겨울까지 - 달아실 기획시집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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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기택

저자:유기택
강원도인제가낳고,춘천이기른시노동자이다.춘천[시문]동인이며전[빈터문학회]회원이었다.전춘천민예총문학협회장,전강원민예총문학협회장을역임했다.2018년강원문화예술상수상했다.시집『둥근집』,『긴시』,『참먼말』,『짱돌』,『호주머니속명랑』『사는게다시지』,전자시집『제제봄이야』등을출간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봄비는흐린바람을몰고
[눈:]에서눈으로|도화桃花|사람|무척|알게될테지|뭐지|어떤부고訃告|산화山火|골목앞에서|그러고보니|바다로간사람들|보름달과백목련|절정|봄비는흐린바람을몰고|먼길

2부.슬픔번쩍거리는금빛트럼펫을불어줘
관심법觀心法|야한놈들|조용히쓸쓸하게맑은|시|삐딱하게|신비복숭아|칠월개망초|녹우綠雨|낙오落伍|적막강산寂寞江山|그여름|어떤귀가歸家|폭염|슬픔번쩍거리는금빛트럼펫을불어줘|입추立秋

3부.굼벵이사랑법
굼벵이사랑법|유령비雨|노루|허무虛無|반달|어떤,죽음과부활에관한질문|월식|세차장카페“Shall”에서|막차|우중雨中행行|추석秋夕|거진기행|반편半偏|소설小說|흉물凶物

4부.민들레국숫집이야기
우리들의천국은어디있나|민들레국숫집이야기|우린|완곡한화법|비|섬향나무|화석물고기|한그루나무처럼산다는건|늙은집|입동立冬|레이노드증후군|삑사리|분투기奮鬪記,슬픈자화상|눈이올거래요|치타,집에가자

에필로그_미완未完혹은디저트

출판사 서평

·비우고깎아내어당도한극점(極點)의언어

유기택의시는시종일관덜어내기와생략의윤리를따른다.소란스러운수식과감정의과잉이소거된그의시행들은극단적인미학적절제를보여준다.가령「사람」에서시인은조각도를든예술가처럼언어를돌려깎기시작한다.


ㅁ을깎는다

사람을사랑되도록

ㅁ을
돌려깎았다

깎기만했다
-「사람」전문

‘사람’이라는명사에서‘사랑’이라는무형의온기를발라내기위해시인은‘ㅁ’의모서리를깎아내고조사‘을’마저깎아낸다.그에게시를쓴다는행위는무언가를화려하게덧칠하는채색이아니라,사물의가장깊은핵심에가닿기위해피를흘리며껍질을‘깎아내는’가차없는수행에가깝다.그리하여도달한침묵의벼랑끝에서시인은본래아무것도없음을수용하는조용하고맑은관조의태도에닿는다.

·상실의언저리,소외된존재들을비추는조용한등불

그의‘깎아냄’은차가운냉소가아니다.오히려그것은가장소중한삶의조각들을세상의흔하디흔한오염으로부터지켜내기위한안간힘이다.그의쓸쓸한풍경저편에는소외되고스러져가는존재들을향한가슴시린연민과사랑이잠복해있다.

아내는
버스가오지않는다며,내게전화를걸었다

집에오고싶은거다

드문외출에서그러는걸보면,아내는
진화하지않는화석물고기일지도모른다

길을자주잃는아내의친구에게는
버스가오지않았을거란생각을했다

아내의어릴적친구는인지장애를앓고있다
집에가는길을잃을까봐,늘걱정이라했다

아내와친구는소양강댐수몰지구실향민이다
물에잠긴고향집이가끔꿈에보인다고했다

집을잃어본기억을가진사람들의지도위

갑자기낯선평일오후버스정거장에
화석처럼애매한억지웃음을지으며서있을

쓸쓸한실러캔스

아내의버스는어디서오고있을까
거기가어디라해도,눈물이솟을것같은

금방데리러갈테니,기다리고있으라했다
-「화석물고기」전문


화자의아내와인지장애를앓는그래서길을자주잃는아내의어릴적친구는돌아갈고향이없다.두사람은수몰지구실향민인까닭이다.둘을대비시키면서두사람을바라보는시인의표정은고요하다.물아래영원히잠겨버린고향처럼,기억의저편으로서서히잠겨가는삶의슬픔을시인은‘화석물고기’라는명징하고도아픈비유로관조한다.가만히다가가존재의흔들림을묵묵히지켜봐주는것,그것이‘일용직시노동자’유기택이세상을대하는고독하고도고결한문법일테다.

·삶을견디는명랑의비결,'디저트'라는반전

이번시집에서빼놓을수없는가장개성적인영역은단연책의삼분의일을차지하는50편의에필로그연작「미완(未完)혹은디저트」다.앞선본문시들이고독과성찰의결기를보여주었다면,이에필로그는무거운침묵끝에찾아오는달콤하고시큼한유머와명랑을선사한다.

춘천골방에서스스로를‘생존형백수’라칭하며강력한절대권력자인아내의눈치를살피고,땅에떨어진잣알갱이인줄알고번개처럼주워삼켰다가그것이비누조각임을깨닫고마취되는듯한고통에빠지는에피소드(「땅그지」)등은슬며시폭소를자아낸다.그러나이유쾌한좌충우돌행동지침들속에는평생의고락을함께하며서로의늙어감과쓸쓸함을안쓰럽게보듬는부부의속깊은사랑이고스란히비치고있다.비장함뒤에감춰진이헐렁하고명랑한숨구멍이야말로,시인이지독한겨울의한복판을기어이견뎌내고다시새로운삶으로나아갈수있는숨겨진생존동력인셈일테다.

·나이테를졸라매는겨울의정직함

유기택에게겨울은단순히지나가는계절이아니다.그것은화려한잎사귀들을모두떨구고오직자신의순수한골격만을마주해야하는진실의시간이다.봄을기다린다는상투적인희망대신,그는‘겨울에서겨울까지’묵묵히걸으며제생의나이테를더조밀하고단단하게졸라맨다.그리하여그의열한번째시집은고독의깊이가곧사랑의넓이임을증명해보이는아름다운증거가된다.이조용하고쓸쓸하며명징한겨울의지도속에서,우리는오랫동안잊어버렸던삶의정직한묵언을회복하게될테다.

·시인의말

무엇을드러내말할까보다
무얼말하지말까를더오래생각했다

섬광처럼다녀간사랑을위해서라도
우리가회복해야할묵언을위해서라도

천천히저무는저를닫으며
한동안
쓸쓸히지내게될거라는것을알았다

지나치게길거나너무짧은
혹은조용히쓸쓸하게맑은

2026년7월
유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