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비행기에 사랑을 보낸다

종이 비행기에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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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난 과거를 통해 배우는 현재의 우리를 위한 인생 이야기!
되돌아 보니 모든 것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시간 후회할 틈도 없이 달려온 시간!
이제 80세가 넘어서여야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며,

인생의 교훈과 추억을 책을 읽는 모든 분에게 들려준다.


"등 따숩고 배부르면 됐지" 라는 말은 우리 조상들의 인생관이 잘 들어 난 구절이라는 생각이든다. 하루 세끼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배고픔의 설움을 겪어 본 사람은 이 말의 뜻을 더욱 공감할 것이다.

이러한 인생관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발견하고, 현재의 순간을 중시하며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리 조상의 현명한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저자

이수원

경기도가평의산골동네에서태어나그곳에서고등학교를마치고서울노원에있는삼육대학교에서신학을공부하고경희대학교에서수학을공부했다.교편을잡고후학을양성하다가하나님의은혜로불혹의나이에필리핀의CebuDoctor’sCollegeofMedine에서의학을공부하였다.의사가되어작은병원을경영하며진료가없는일요일에는산골깊은곳이나불우한처지에있는분들을위해형제의료봉사단이라는무료진료팀을만들어봉사하기도하였다.나이80이넘은현재도병든사람고치는일을계속하고있으니이것또한하나님의은혜로알고목숨이다하는순간까지환자곁을지키려는마음으로살고있다.

시골동네에서태어나신학과수학을전공,
불혹의나이에의학을공부하고,의사가되다!!
지금도주말이면산골깊은곳이나불우한처지의사람들에게
의술통해봉사를실천하고있다.

목차

아름다운이름
태어날아이의이름을어떻게지을까고민한날들이두달이되어가더구나.나는작명에열중해서그런지며칠밖에안된것같은데말이다.그런데혜원이는일년은된것같다고하는데,너희부부에게내가괜한고민을안겨준모양이다.

복있는사람
지난번글에는세상사람들이바라는복있는사람의조건을財,官,印을두루갖춘사람이라이야기했으나,마음을비우고작은것에서도행복을느낄수있는사람이복있는사람이지않을까?하는생각도해본다.물론의.식.주등인간이살아가는데필요한기본적인욕구는어느정도충족이되어야겠지.

연재가태어나길기다리며
우리들의공주님연재娟材가예정일을조금넘기고있지만,공주님은연회장에조금늦게나타나는주빈主賓처
럼,큰박수를받으며나타나자신의화려한탄생을알릴것같구나.

연재의모습을보면서
너희부부가블로그에올린연재의사진들을잘보았다.비록모니터를통해서보는것이지만,마치내앞에서
방긋웃는것같아,나도모르게모니터를바라보며손으로연재의얼굴을쓰다듬고있더구나.

연재는누구를닮았을까?
너희가블로그에올린연재娟材의생후3일째를기록한사진들과동영상을잘보았다.눈에넣어도아프지않는
다는말이바로실감이날정도로사랑스러운모습들이었다.지구반대편에서도사랑스러운연재의일거수일
투족을담은사진과동영상을볼수가있다니정말좋은세상이라는생각이절로든다.

어머니란존재의위대함
연재를돌보고키우느라얼마나정신없고힘이드느냐?
아이를낳아키우는일이얼마나힘든일인지너희는이제막경험하는것이요,앞으로더욱힘든일들이기다리고있을터이니어쩌겠느냐?그래도연재의모아쥔따뜻한손길,반짝이는눈,웃는소리가함께하는모든순간이소중하고특별하게느껴질것이고,그어떤어려움도감당하고도남을만한힘을줄것이다.

낙천적이고헌신적인스승님
지난주연재엄마와전화통화를하면서연재의일상(아기의일상이란것이뻔하겠지만)을물었는데,연재엄마의답이간단명료하더구나.

따뜻한기억으로남아있는피란시절
“등따숩고배부르면됐지”라는말은우리조상의인생관이잘드러난구절이라는생각이든다.하루세끼먹을것을걱정하면서배고픔의설움을겪어본사람은이말의뜻을더욱공감할것이다.

아기의미소가주는행복
연재가태어난지벌써삼칠일이지났다고하니시간이금방간것같구나.이메일로보낸사진들도잘보았다.그사이에더예뻐진것같구나.젖을먹여놓으면방싯방싯잘도웃는다니그모습이눈에선하구나.언젠가는후후후’하며웃는소리도낸적이있다니연재는꽤낙천적인성격을타고났을것도같다.

나는행복한사람
내가초등학교에들어가기전이었으니대략만6~7세경으로생각된다.그시절에는유치원이라는것이시골에는없었고조기교육이무엇인지모르던때였다.아버님께서는어느날나에게큼직한선물을하나주셨는데,그것은아버님이목수에게부탁하여짜오신내책상이었다.

세발자전거의추억
초등학교에입학하기전의어떤날이었다.나는아버님이운전하시는트럭을타고우리집에서170리정도되
는서울을가게되었다.

빨간물뿌리개
내가초등학교에들어가기전에,어머니를따라읍내초등학교에서근무하시던누님집에간적이있었다.누님
집은학교인근에있었는데,그전까지내가가본집중에서는제일근사한집이었다.

엉터리골목대장을추억하다
내가초등학교에입학했을때는6·25사변이일어나기약1년전쯤이었고,우리동네는38선이가까워인민군의남침을막기위해국방군이들어와주둔하고있었다.

넷째손가락의비밀
내가초등학교에들어가기전이었다.어머님과내가읍내누님집에들렀을때인데,누님이근무하시는초등학교에나를데리고가셨다.아마도내가취학연령이거의되었으니학교에적응시키시려그러셨을것이다.

피란민초등학교시절
1.4후퇴때,우리는다시피란을가게되어충청도로피란을갔었다.정확히어디인지기억나지는않은데과수원을하는집의오두막집에서머물게되었다.

잊지못할유년의크리스마스
6·25사변은너희들도잘알겠지만,한민족이겪은참혹한전쟁이었다.수많은사람이집과생활의터전을잃고전쟁의틈바구니에서이리저리쫓기며,총탄과질병으로소중한가족을잃고눈물을흘려야했고,타관객지를
정처없이떠돌며굶주리고헐벗었으며추위와더위를견디어야했다.

내고향의겨울
영하10도를오르내리는매서운추위가연일계속되고있구나.너희내외와연재도추위에별고없이잘들있느냐?연재는이제말귀도꽤알아들어도리도리,짝짜꿍,곤지곤지도하고숨바꼭질하는시늉도한다니나날이재롱이늘어나는구나.연재가재롱떠는모습을보고싶구나.

밴드부시절1
중학교1학년때,여름방학이가까운어느날조회시간이었다.그당시우리학교는매일아침수업시작전에전교생이운동장에모여조회를했는데,교장선생님의말씀은중학교1학년인나에게는너무어려워무슨뜻인지도모르겠고재미도없어늘빨리끝나기만기다렸다.

밴드부시절2
내가들어간학교밴드부는,규율이엄하고기합이많다는밴드부에대한소문과는달리매우분위기가좋았다.음악선생님은늘다정다감한모습으로우리를가르쳤으며거친말을하시거나화를내시는모습을보이시지도않았다.

잊지못할서울나들이
10월초어느일요일이었다.음악선생님을따라우리밴드부원은서울나들이를하였다.행선지行先地는서울이었지만나들이목적은말씀을안하시고가보면안다고만하셨다.어둠침침한새벽에떠나는첫통근열차를탔으나,역마다다정차하는완행열차여서두시간이상걸려아침8시경서울청량리역에도착하였다.

잊지못할등산의기억
고등학교1학년때였던것같다.여름방학이거의끝나가고있던어느날,한동네에살던친구대여섯명이등산을가기로하고목적지를정하였는데,우리동네주변에서제일높다는화악산華岳山이었다.나중에안사실이지만그산의높이는해발1468m로경기도에서제일높은산이고,10월쯤첫눈이내리기시작해서이듬해5월까지눈발이날리며,겨울에는영하20도밑으로수은주가떨어지고,강풍이자주불어체감온도가영하30도이하가되는곳이었다.

나의첫사랑
고등학교1학년2학기가개학하고읍내에서20리떨어진시골집에서다른학생들과같이버스로통학을하게되는첫날이었다.그전에는읍내에있던누님이자취하는집에서편하게다녔는데,누님이결혼하시고서울로가셔서집에서통학하게되었다.내가사는동네가종점이어서창가의좋은좌석을골라앉을수가있었다.

밴드부시절3
봄이오자교장선생님은우리밴드부에적극적인지원을시작하셨다.그덕분에밴드부는악기도열개를더늘릴수있었고,밴드부원도더모집할수있게되었다.

머나먼이국에서전사한19살병사의어머니
내가다닌중학교는가평에있는가이사중학교인데,가평은내가태어나자란경기도의한군의이름이기도하고군청소재지인작은읍의이름이다.보통작은읍에는하나의중학교만있고,그래서당연히학교는그지역명으로짓는데,가이사중학교라는이름이왠지생뚱맞았다.

그리운누이동생정송이
6·25사변에는군인들외에국민의피해도막대하였는데,우리집도예외가되지못하여열명의가족이피난을떠났지만,전쟁이끝나집에돌아왔을때는다섯명으로줄어있었다.피난중포탄에희생되기도하였고,무슨병인지도모르는전염병에걸려약도한번제대로써보지못하고유명을달리하기도하였지.

뜻과길1
내가고등학교를졸업하고대학에진학하는데는많은우여곡절이있었다.내가고3이되던해,5.16이일어나전국의고등학교에휴교령이내려졌고9월이되어서야다시학교가문을열게되었는데,개학하자마자내게청천벽력靑天霹靂과같은소식이전해졌다.

뜻과길2
낮에는아버님과농사일하고밤에는성경을읽으면서고향집에서지낸지일년이지날무렵이었다.동네장로교회목사님이우리집을찾아와나에게도움을요청하셨다.교회에서운영하는고등공민학교에수학과과학을가르칠선생님이필요하다며내게이과목들을맡아달라는부탁이었다.

아버님과명심보감
내가세상에태어나처음만난선생님은나의아버님이라고할수있다.누구나걸음마를떼고학교들어가기전에아버지나어머니로부터배우게된다.이를테면밥먹고나서양치질하기,거짓말하지않기,어른에게인사하기,누군가에게도움을받았을때인사말하기등이있겠지.

선생님으로서의나의누님
나에게누님은든든한후원자이면서훌륭한선생님이기도하셨다.열일곱살이나차이가나는남동생을많이사랑하셨던누님은내가초등학교에들어가기전까지,근무하던읍내초등학교부근의자취방에나를한참씩데리고계실때가많았다.

잊지못할은사님
“뜻이있는곳에길이있다는말이있지?지금내가구체적으로무슨말을해줄수는없지만나는그말을믿는다.나도아무런경제적대책없이동경유학을나섰지만,열심히일하여학교를졸업할수있었다.”

풍수지탄風樹之嘆
얼마전나보다몇살위이지만친구로지내는영수와이야기하다가내가기억하지못하는어린시절에피소드를듣게되었다.내용인즉아버님이어린나를데리고다니시기를좋아하셔서지게에소쿠리(대나무를엮어만든위가트이고테가둥근그릇)를얹고,그안에나를태우고다니셨다는데,유모차가없던시절아버님이고안하신기발한유모차였던것이었다.

이수원을말한다
“형님건강은어떠세요?오랫동안격조했습니다.”
서울에서병원운영을하는후배의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