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 정은진 소설집

가벼운 점심 : 정은진 소설집

$16.80
Description
“외로운 ‘한 점’에서 시작되었을 한 사람.
나는 보자마자 알았다. 사랑이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찰나의 계절 속
만개한 사랑과 호젓한 고독의 드넓은 파노라마

문학동네작가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장은진 신작!
“잘 짜인 구성과 차분한 이야기의 요철”(한강 소설가), “이상한 슬픔, 이상한 따뜻함, 이상한 고독”(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이미지를 유려하게 전개하며 문학동네작가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장은진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가벼운 점심》이 출간된다.
“자학적 고립을 감수하면서도 출구 밖 타인들을 향한 소통의 욕구”(《키친 실험실》)를 실천하고, “밖을 갈구하지만 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며”(《빈집을 두드리다》), “전시하지도 과시하지도 않는 자기만의 고독”(《당신의 외진 곳》)을 개척했다고 평가받은 작가에게 독자는 ‘끝내 믿음직한 시선’이란 수식을 더한 바 있다. 어떠한 과잉이나 점철 없이 세상 안팎을 두루 넘나드는 고유의 작풍은 수록 작품순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가벼운 점심》에 이르러 비로소 만개한다.
특히 표제작인 〈가벼운 점심〉은 가출한 지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이 “떠나기에도 돌아오기에도 좋은 계절”인 봄과 만나 더욱 극적으로 환기된다. ‘나’는 10년 전 떠난 아버지의 비밀을 그와 마주 앉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듣게 되고, 아버지가 건넨 사진 한 장을 본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마치 10년 세월의 비밀이 패스트푸드점 햄버거처럼 가볍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장은진 소설의 정수인 예리하고 섬세하게 조율된 이야기의 무게감은 독자 스스로“단단하고 짙은 인간의 외로움이 어떻게 부드러운 봄의 시간에 스미는지”를 감각하게 하고, 여섯 편의 소설로 말미암아 우리를 “고요한 빈방에서 나오게 한다”.

장은진의 소설은 나를 고요한 빈방에서 나오게 한다. 끝났다 싶은 곳에 문을 열어두고 한 발짝만 내밀라고 손짓하면서. 나는 진심이 담긴 여섯 편의 소설을 따라 읽으며 바깥의 계절을 확인한다. 단단하고 짙은 인간의 외로움이 어떻게 여리고 부드러운 봄의 시간에 스미는지 확인한다. _이주란(소설가)

저자

장은진

저자:장은진
2002년전남일보신춘문예와2004년중앙일보중앙신인문학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키친실험실》《빈집을두드리다》《당신의외진곳》,장편소설《앨리스의생활방식》《아무도편지하지않다》《그녀의집은어디인가》《날짜없음》《날씨와사랑》을썼다.문학동네작가상,이효석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가벼운점심
피아노,피아노
하품
고전적인시간
나의루마니아어수업
파수꾼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장은진의소설은나를고요한빈방에서나오게한다.끝났다싶은곳에문을열어두고한발짝만내밀라고손짓하면서.나는진심이담긴여섯편의소설을따라읽으며바깥의계절을확인한다.단단하고짙은인간의외로움이어떻게여리고부드러운봄의시간에스미는지확인한다._이주란(소설가)

“계절안에삶이있듯이
이야기도그안에있습니다”
당신앞에차려진이계절의소설여섯편

싱그러운봄과끈적끈적한여름이야기

〈가벼운점심〉의봄이누군가가꼭그러쥔봄날의이미지를유려하게그려냈다면,〈피아노,피아노〉의봄은척박한환경에서움트는생의갈증을뭉근히표현해낸다.서울살이5년차원룸생활자이며유통기한이임박한통조림같은처지의남자는어느날방의절반이상을차지하는업라이트피아노를집에들이게되고,애인의연주를감상하며“인생은피아노의하얀건반이아니라검은건반같은거라고”,다시한번퍽퍽한서울의것들에속아보겠다고다짐한다.

그러나산뜻했던다짐도잠시,만사가무용하게느껴지는여름이다가오면하릴없이시간을축내고싶은것이사람의마음아니던가.습하고끈적한여름같은작품〈하품〉은세번의유산후느려지고게을러지는아내와잘나가는피아니스트로서품위를포기할수없는남자의지독한애증을담아냈다.움직임이거의없는아내,움직이지않아소리도없는아내가박제같다고남자는생각한다.어쩌면아내가죽으면박제를하는것도나쁘지않겠다고…….늘어지듯내쉬는한숨처럼단문으로엮인〈하품〉의호흡은〈고전적인시간〉에와서청량한여름밤의공기로탄생한다.귀신이득실득실할만큼인적없던고향집에내려온그녀는침묵으로앙다문집의문을열어젖히며오래도록생각해온그일,시계와달력과가구가없는방에서“시간의질서가깨져서지키지않고살아도아무렇지않은무중력같은나날들”을보내기로마음먹는다.그러나“집에사람이있으면사람이들어온다”.도망치듯홀로숨어든곳에서뜻밖의인연을만나게되고방치해온그녀의시간이째깍째깍소리를내며달리기시작한다.

아내의책상은구석에완전히닿아있다.완전하게차고습하고어두운곳이다.아내는이제더는밀릴데가없다.더는느려지고게을러질수없어서완전히멈춘다.여기서옮겨질데가더있다면그건죽음일까.아내는죽은사람처럼왼쪽어깨와머리를벽모서리에집어넣듯두고앉아있다.그곳은관의모서리같다.책상에서는삐걱대는소리조차나지않는다.그는다급하게피아노앞에앉아곡을쓴다._〈하품〉에서

쓸쓸한가을과고즈넉한겨울이야기

2021년이상문학상우수작인〈나의루마니아어수업〉은“누구나저절로쓸쓸해지고,쓸쓸해지지않으면쓸쓸한척이라도해야하는계절”가을의이야기다.루마니아어를전공한‘나’는대학시절유독외로이지내던은경에게다가간다.밤을새워무명의루마니아작가체보타루의소설을번역해가면은경이소리내어읽고,가을을고스란히담아낸눈동자로나를바라봐주던순간들.그러나갑작스러운만남이그러하듯둘의관계는“예고도징후도없이”끝나버리고이후나는후배에게그녀의소식을묻지만후배는그런애가있었느냐고하더니얼마안가충격적인이야기를전해온다.

짙고짙은고독의끝자락,권태로움으로의겨울여행을다룬〈파수꾼〉은사별후귀에물이들어찬듯먹먹해져소리를들을수없는증상에시달리던건널목관리인강씨의이야기다.경고음을듣지못해철로에뛰어든사람의죽음을목격한뒤로강씨의증상은더욱심해지고,때마침건널목이폐쇄될거라는소식을듣는다.이제마지막열차를떠나보내야만한다.강씨는“끝나는곳에는문이활짝열려있고,우리는그문으로발하나만내밀면되는거야”라고읊조리며흰눈으로뒤덮인선로위에홀로선다.

가을은누구나저절로쓸쓸해지고쓸쓸해지지않으면쓸쓸한척이라도해야하는계절이되었다.그거야말로가을이란계절에올바로순응하는거고,가을에대한예의이자약속이며,가을이원하는것이고,가을이생겨난목적이자의도라고.그녀는그런면에서가을이가장신뢰하는사람일지도모르겠다._〈나의루마니아어수업〉에서

“사랑해야할때사랑하고
슬퍼해야할때슬퍼하는방식으로”
장은진이바라보는우리생의절기

장편소설《날짜없음》《날씨와사랑》등을통해제약없는사랑의세계를서정적으로장식한장은진의시선은《가벼운점심》에서더욱깊고진하게설계된다.24개의절기가모여한해가되듯,작품안에돋보이는삶과죽음,청년과노년,도심과시골,부와가난,덩어리와덩어리되지못한자의이야기는다시하나로묶여우리생을이룬다.인물모두가고독한삶을경험해나갈때“모두의인생은그랬던것”이며살면서때만놓치지않으면된다고,“사랑해야할때사랑하고,용서를빌어야할때빌고,슬퍼해야할때슬퍼하는”방식으로살라고외는소설은미쁘다.“열심히우는사람이혼자이듯이,이들이저마다의시간속에서들여다보았을사람과사랑을,오랜자리를생각하면너무고마워서열심히울것같은마음이된다”라는이주란소설가의말처럼,작품끝에다다르면우리는누군가를사랑하고성장하고그리워하며권태로워지는과정에살고있다는것을절로깨닫게될것이다.이곳에담긴여섯편의소설이사랑이란우리삶의전부이자새로운시작이라고다독이고있다는사실도.

작가의말

이야기를시작할때반드시생각하는것중의하나가‘계절’입니다.이이야기는파릇한봄이어울릴것같아,이이야기는추운겨울이어야해,이이야기는무더운여름에일어나면흥미로울거야,이이야기는쌀쌀한가을이필요해보여.계절이정해지면인물들의말과생각과행동에도계절이입혀집니다.가끔은계절이이야기의전부가되기도합니다.

하고싶은이야기가많은데계절은네개뿐이라여덟개인행성에사는상상을해본적도있습니다.사계절이더있다면그계절에는어떤특별한변화가찾아오고,어떤예쁜이름이붙여졌을까요.한편으론계절이여덟개면삶이조금복잡해질것도같습니다.하지만우리는이미수십개의계절을살고있습니다.해마다찾아오는봄이같은봄으로기억되지않으니까요.그봄에자기만의이름을붙이면유일무이한계절이되니까요.저또한지금상상하는일이어느계절에찾아올지궁금합니다.온다면그계절의이름은여름이나겨울이아닌새로운이름으로불릴겁니다.

여기여섯편의소설에사계절을담았습니다.각각의계절에필요한이야기는아니더라도그계절에문득생각나는이야기였으면좋겠습니다.모든계절은아름답고,계절안에삶이있듯이이야기도그안에있습니다.오늘도저는소설과함께계절을배우고느끼고지냅니다.한권의책이나온것만으로특별해서이봄에새로운이름을지어줘야겠습니다.

추천사

장은진의소설은나를고요한빈방에서나오게한다.끝났다싶은곳에문을열어두고한발짝만내밀라고손짓하면서.나는진심이담긴여섯편의소설을따라읽으며바깥의계절을확인한다.단단하고짙은인간의외로움이어떻게여리고부드러운봄의시간에스미는지확인한다.장은진의인물들은홀로감당해야할고독의시간을겪지만,“사랑해야할때사랑하고슬퍼해야할때슬퍼하는”방식으로깊은사랑과마주한다.열심히우는사람이혼자이듯이,이들이저마다의시간속에서들여다보았을사람과사랑을,오랜자리를생각하면너무고마워서열심히울것같은마음이된다.누군가에게“집이란지키고지내온자의것”이듯,삶이나마음역시지키고지내온자의것일테니까.
-이주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