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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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통령 노무현과 참여정부 참모들이 꿈꾼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참 리더가 부재한 시대,
노무현의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2024년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5주기가 되는 날이다. 참 리더가 부재한 시대에, 노무현이라는 리더와 그가 이끌었던 참여정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애틋함은 너무도 크다. 대한민국을 더 나은 나라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5년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난리 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소한 표차로 당선된 노무현 후보를 도무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부감이 팽배해 있었고, 참여정부의 국정과 정책 기조에 반발하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북핵 위기, 카드 대란, 화물파업 연대, 은행과 철도 파업, 전교조의 대정부 투쟁, 스크린 쿼터를 둘러싼 영화계 갈등, 심각한 경기 불황 등 끊이지 않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4쪽)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 세월이 흐르고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바탕에는 청와대 안팎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남긴 다양한 기록이 있었다. 이 기록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노무현의 새로운 면모와 진정성을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참여정부의 초대 정책실장, 대통령 정책특보 겸 정책기획위원장을 차례로 역임한 이정우 교수도 당시의 회고를 남길 책무를 느꼈다고 한다. 신간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은 이러한 사명의 결과물로, 경제·사회 정책의 최일선에서 약 1000일 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정우 교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심도 깊은 이야기가 담겼다.
이 책은 이정우 교수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기록한 10권의 일기와 각종 회의 때마다 꼼꼼히 적어 둔 메모가 바탕이 되었다. 여기에는 오직 국민과 국익, 약자와 정의를 위해 국정을 운영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 부동산 대란, 재벌개혁, 언론개혁, 균형 발전과 신행정수도, FTA 문제 등 당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주요 정책들의 막전막후와 청와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지만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002년 대선에 얽힌 비화와 2004년 총선 전후의 청와대 풍경 등 그동안 다른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뒷이야기도 담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청와대 참모들이 만들고 싶었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이어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395쪽) 이 책은 노무현 정신과 참여정부의 유산을 되새김으로써 혼돈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학자 군주 노무현, 이런 리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이정우 교수가 기억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 둘의 첫 만남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2002년 8월, 공약 점검회의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이정우 교수는 약간의 정책적 의견과 함께 “말을 줄이라”는 조언을 건넸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초면에 실례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노 후보가 기분이 상해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은, 자신을 지지한다는 이정우 교수의 80대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어쩐지 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21쪽) 그렇게 노무현과의 1000일이 시작되었다.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에게 '학자 군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워낙 독서를 좋아해 학식이 높았고 여러 학자와 소통하는 일을 즐겼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정우 교수와도 청와대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중에 역사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가 많았다. 한번은 경호실에서 암살 시도에 대한 방어 시범이 있었는데 행사가 끝난 뒤 진시황과 자객 형가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371쪽)
노무현은 독특하면서 독창적인 용인술 역량을 지녔으며 자기 참모들을 아끼고 존경할 줄 아는 리더였다. 노 대통령은 '머리'와 '발'이라는 개념으로 참모를 분류했는데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한 일에는 '머리' 참모들과, 인사 문제처럼 코드가 중요한 일에는 '발' 참모들과 더 많이 소통했다. 참모의 성향에 따라 적재적소에 기용하고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 앞에서 참모들의 지식과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 탄복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자 옆에서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렇게 거들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가끔 참모들 자랑하며 진짜 놀랐다고 하세요.”(410쪽)
이정우 교수가 노 대통령에게 감탄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이정우 교수에 대해 악의적인 언론 기사가 나왔다. 그 기사를 본 노무현 대통령은 “이 실장, 하도 화가 나서 내가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가서 싸우세요. 이정우 죽이면 노무현 죽이는 거라고 얘기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정우 교수는 매우 놀랐다. 정작 자신은 잘 잤는데 대통령이 잠을 설쳤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180쪽)
무엇보다 이정우 교수가 지켜본 노무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대통령이었다. 정책을 만들 때면 눈앞의 인기보다 논리적 타당성과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만을 따졌다. 2003년 3월, 정부 출범 후 열린 첫 연수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토로했다. “나의 일생은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앞으로 5년간 국민의 먹을거리를 어떻게 장만하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참여정부 당시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불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반짝 경기를 호전시킬 응급 치료보다 근본적, 장기적 경제정책에 관심을 두었다. 어려운 서민 경제를 위한 대책을 세우되 나중에 부작용을 가져올 인위적 경기 부양은 지양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경기가 나쁘다고 내가 욕먹어도 좋습니다. 멀리 보고 원칙대로 갑시다.”(240쪽) 눈앞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소신은 이정우 교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솔직하고 소탈했던 사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할 줄 알았던 대통령, 늘 손해 보고 지는 길을 갔던 '바보 노무현'. “이런 정치인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이정우 교수는 의문과 기대가 섞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자신을 행운아라고 자축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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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정우

저자:이정우
1950년대구에서나고자랐다.1972년서울대학교경제학과를졸업한뒤대학원을졸업했으며,1983년하버드대학교에서경제학박사학위를받았다.1977년부터경북대학교에서38년간불평등의경제학,비교경제론,경제민주주의등을강의했다.2003년부터2005년까지참여정부초대대통령정책실장,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겸정책특보를역임하면서참여정부의경제,사회정책의기초를놓았다.그뒤한국장학재단이사장을지냈고지금은경북대학교명예교수로있다.
대표저서로《불평등의경제학》《약자를위한경제학》《왜우리는불평등한가》가있으며,공저로는《노무현이꿈꾼나라》《헨리조지와지대개혁》《어떤복지국가인가?》《불평등한국,복지국가를꿈꾸다》《비정상경제회담》《경국제민의길》등50여권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노무현시대의징비록,참여정부천일야화

1장참여정부의탄생

1.노무현과의첫만남
2.노무현당선은민주세력의첫승리
3.지방중시,학자중심의인수위
4.'참여정부'작명전말
5.'정의가패배하고…'취임사뒷이야기
6.첫정책실장은누구인가?
7.내각구성과첫국무회의
8.뜨거운감자,대북송금특검법
9.아!통한의제주4·3
10.경제부총리의'법인세인하'돌출발언
11.경제학자스티글리츠
12.첫장관연수회와참여정부의개혁과제
13.파격또파격
14.국정과제위원회,국정의중심에서다
15.동북아위원장을찾습니다
16.토론식업무보고
17.형식적·상투적업무보고를질타하다

2장천하대란의시대

18.핵폐기장과양성자가속기연계안
19.수도권공장증설과균형발전
20.카드대란과학자출신의활약
21.화물연대파업과물류대란
22.방미·방일,균형외교에힘쓰다
23.철도구조개혁,드디어완성
24.NEIS,나이스냐네이스냐?
25.노동문제의이모저모
26.네덜란드모델소동
27.“이정우죽이기는노무현죽이기”
28.보수언론의행태
29.언론과의전쟁
30.그많던가판은어디로갔을까?
31.긁어부스럼,새만금사업
32.농림부장관의잠적과심야장관면접

3장개혁또개혁

33.한국영화살리기와스크린쿼터
34.영화계와의갈등,기적같은해피엔딩
35.외환위기극복의부작용
36.장기주의대통령의등장
37.조흥은행매각과정책관리의중요성
38.큰아쉬움을남긴참여정부의금융문제들
39.점진적이어서저평가된재벌개혁
40.기형적예산구조의문제점
41.경제우선주의를타파한3대예산개혁
42.지역균형발전과공공기관분산배치
43.반쪽짜리가되어버린신행정수도
44.획기적교육개혁과4경로입시제도
45.교사별평가대교과별평가
46.무산된교육혁신,최악의결과를맞다
47.국가를개조할것처럼정부를혁신하라

4장참여정부의공과

48.끝없는사회갈등
49.미완의노동개혁
50.사회적대타협실패
51.부동산대란의시대
52.부동산투기괴물과10·29대책
53.부동산정책은국민의신뢰를얻어야
54.부동산대란을잠재우고도오해를사다
55.선성장후분배,낡은철학을깨다
56.국회풍경:'좌파정부'공격에맞서다
57.'위징'같은바른말참모가너무많아
58.정책실장에서정책기획위원장으로
59.이정우가그만둔다는데땅을사놓을까?
60.약자와정의를우선한학자군주

5장못다한이야기들

61.심야에걸려온대통령의전화
62.'머리와발'로구분한노무현의용인술
63.그거다적어서언제써먹을겁니까?
64.2004년총선전후청와대의풍경
65.잘먹고잘자는(?)탄핵의나날
66.노무현과룰라“대통령못해먹겠다”
67.노무현스타일“여기내찍은사람없지요?”
68.고건,행정의달인유머의달인
69.박정희이야기
70.김대중이야기
71.김영삼이야기
72.기억에남는사람들
73.내가걸어온길

출판사 서평

대통령노무현과참여정부참모들이꿈꾼
대한민국은어떤모습이었을까

참리더가부재한시대,
노무현의또다른이야기가필요한이유

2024년5월23일은노무현대통령의서거15주기가되는날이다.참리더가부재한시대에,노무현이라는리더와그가이끌었던참여정부에대한우리사회의애틋함은너무도크다.대한민국을더나은나라로,사람답게사는세상으로만들고자했던그의진심이큰울림으로다가오기때문이다.사실노무현대통령과참여정부의5년은“하루하루살얼음판을걷는것같은난리통”이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근소한표차로당선된노무현후보를도무지대통령으로인정하지않으려는거부감이팽배해있었고,참여정부의국정과정책기조에반발하는사람도많았다.게다가북핵위기,카드대란,화물파업연대,은행과철도파업,전교조의대정부투쟁,스크린쿼터를둘러싼영화계갈등,심각한경기불황등끊이지않는내우외환에시달렸다.(4쪽)
하지만강산이두번변할만큼세월이흐르고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정부를거치면서노무현과참여정부에대한대중의평가는눈에띄게달라졌다.그바탕에는청와대안팎에서노무현대통령과뜻을함께한사람들이남긴다양한기록이있었다.이기록들은그동안우리가알지못했던노무현의새로운면모와진정성을알리는데크게일조했다.참여정부의초대정책실장,대통령정책특보겸정책기획위원장을차례로역임한이정우교수도당시의회고를남길책무를느꼈다고한다.신간《노무현과함께한1000일》은이러한사명의결과물로,경제·사회정책의최일선에서약1000일동안노무현대통령을보좌했던이정우교수만이들려줄수있는심도깊은이야기가담겼다.
이책은이정우교수가청와대에서근무하는동안노무현대통령의권유로기록한10권의일기와각종회의때마다꼼꼼히적어둔메모가바탕이되었다.여기에는오직국민과국익,약자와정의를위해국정을운영한노무현대통령과청와대참모들의희로애락이생생하게그려져있다.또부동산대란,재벌개혁,언론개혁,균형발전과신행정수도,FTA문제등당시대한민국을뜨겁게달궜던주요정책들의막전막후와청와대에서일상적으로일어났지만외부에는공개되지않은흥미로운에피소드를소개한다.2002년대선에얽힌비화와2004년총선전후의청와대풍경등그동안다른기록에서는찾아볼수없었던뒷이야기도담았다.
대통령노무현과청와대참모들이만들고싶었던대한민국은과연어떤모습이었을까?이정우교수는“'참여정부는구름에싸인달'이어서언젠가는사람들이진가를알아줄날이올것”이라고단언한다.(395쪽)이책은노무현정신과참여정부의유산을되새김으로써혼돈의대한민국이나아가야할방향을제시하고있다.

학자군주노무현,이런리더가또나올수있을까

이정우교수가기억하는노무현대통령은어떤사람일까?둘의첫만남은제16대대통령선거운동이한창이던2002년8월,공약점검회의에서였다.그자리에서이정우교수는약간의정책적의견과함께“말을줄이라”는조언을건넸다.회의를마치고돌아가는길에'초면에실례했구나'싶었다.그리고노후보가기분이상해다시는연락하지않을거라고여겼다.하지만며칠뒤다시만난자리에서노무현은,자신을지지한다는이정우교수의80대어머니이야기를듣고이렇게말했다.“어쩐지내가대통령이될것같은기분이듭니다.”(21쪽)그렇게노무현과의1000일이시작되었다.
이정우교수는노무현에게'학자군주'라는별명을붙여주었다.워낙독서를좋아해학식이높았고여러학자와소통하는일을즐겼기때문이다.특히노대통령은역사에관심이많았는데,이정우교수와도청와대에서차를마시거나식사하는중에역사주제로이야기꽃을피울때가많았다.한번은경호실에서암살시도에대한방어시범이있었는데행사가끝난뒤진시황과자객형가의이야기를나누기도했다고한다.(371쪽)
노무현은독특하면서독창적인용인술역량을지녔으며자기참모들을아끼고존경할줄아는리더였다.노대통령은'머리'와'발'이라는개념으로참모를분류했는데전문가의지식이필요한일에는'머리'참모들과,인사문제처럼코드가중요한일에는'발'참모들과더많이소통했다.참모의성향에따라적재적소에기용하고이들의도움을받는것을전혀개의치않았다.언젠가노무현대통령이청와대참모들앞에서참모들의지식과능력이대단히뛰어나탄복할때가많다고털어놓자옆에서영부인권양숙여사가이렇게거들었다고한다.“집에와서가끔참모들자랑하며진짜놀랐다고하세요.”(410쪽)
이정우교수가노대통령에게감탄한또다른일화가있다.어느날이정우교수에대해악의적인언론기사가나왔다.그기사를본노무현대통령은“이실장,하도화가나서내가어젯밤에잠을잘못잤어요”“가서싸우세요.이정우죽이면노무현죽이는거라고얘기하세요”라고말했다.이정우교수는매우놀랐다.정작자신은잘잤는데대통령이잠을설쳤다고하니말이다.이런대통령을위해서라면더열심히일해야겠다는생각이절로들었다.(180쪽)
무엇보다이정우교수가지켜본노무현은대한민국국민이라면누구나사람답게살수있는세상을만들기위해고민하고노력한대통령이었다.정책을만들때면눈앞의인기보다논리적타당성과진정국민을위한정책인지만을따졌다.2003년3월,정부출범후열린첫연수회에서노무현대통령은이렇게토로했다.“나의일생은끊임없는도전이었다.막상대통령이되고보니앞으로5년간국민의먹을거리를어떻게장만하나하는고민이앞선다.”참여정부당시는외환위기의여파로불황이계속되고있었다.하지만노대통령은반짝경기를호전시킬응급치료보다근본적,장기적경제정책에관심을두었다.어려운서민경제를위한대책을세우되나중에부작용을가져올인위적경기부양은지양하라고내각에지시했다.“경기가나쁘다고내가욕먹어도좋습니다.멀리보고원칙대로갑시다.”(240쪽)눈앞의인기에연연하지않는노무현대통령의확고한소신은이정우교수의뇌리에깊이각인되었다.
언제어디서나누구앞에서나솔직하고소탈했던사람,자신의실수를인정하고국민에게머리숙여사과할줄알았던대통령,늘손해보고지는길을갔던'바보노무현'.“이런정치인이또나올수있을까?”이정우교수는의문과기대가섞인질문을독자들에게던진다.그리고이런대통령밑에서일한자신을행운아라고자축한다.

노무현시대의징비록,
참여정부주요정책들의막전막후를그리다

노무현후보와의첫만남이후이정우교수는경제1분과간사로제16대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참여했다.그리고인수위가끝나가던2003년2월,노무현당선자는불쑥“정책실장을맡아주지않겠습니까?”라고제안한다.정책실장은새정권의방향타와같은상징성이있는데대선기간동안딱세번만난사람에게이런중책을맡긴까닭은무엇일까?이정우교수는청와대에서근무하는내내궁금했지만대통령본인에게물어볼기회가마땅치않았다.그리고결국이궁금증은영구미제가되고말았다.(51쪽)
정책실장은외교·국방·통일을제외한모든정부부처의정책을총괄·조정하고,대통령국정과제추진을담당하는자리다.그런만큼참여정부의주요정책들이어떤취지를가지고구상되었는지,어떻게입안·실행되고그성과와의의는무엇인지이정우교수는누구보다깊숙이들여다보았다.저자는정책이라는무대안팎에서어떤인물과설왕설래가등장하고퇴장했는지,그막전막후를적나라하게서술한다.대표적인일화로신행정수도를둘러싼이슈를살펴보자.2024년4월에치러진제22대총선에서세종시로의국회이전은또다시주요공약으로등장했다.왜세종시는행정부만품은반쪽짜리행정수도가되었을까?제16대대선에서노무현후보는균형발전을위해수도이전이라는파격적인공약을내놓았고특유의뚝심으로이를실천에옮겼다.하지만2004년10월21일헌법재판소는신행정수도가'관습헌법'에위배된다는이유로위헌결정을내렸다.이날오후노대통령은문재인민정수석에게관습헌법에대해의견을물었다.머리가좋다(영리하다)는민정수석의대답에“나도처음든생각이'머리가참좋구나'였어요”라며맞장구를쳤다.이정우교수가상식적으로납득이가지않는결정이라고했더니이번에는“헌재에의한쿠데타”라는평가를덧붙였다고한다.(287쪽)신행정수도라는미완의과제를두고대통령과참모들이얼마나큰아쉬움을삼켰을지짐작할수있다.
이외에도막강한영향력을행사하던언론의횡포에맞선가판신문폐지,교육행정전산시스템인나이스(NEIS)도입,철도구조개혁,양여금·특별교부세·특활비등불필요하거나과도한정부예산축소및폐지,지역균형발전을위한공공기관분산배치,스크린쿼터문제해결,점진적재벌개혁을위한'시장개혁3개년계획',경로별입시제도도입무산,10·29대책이후일관되지못하고흔들려버린부동산정책등수많은정책이실행되는과정에서참으로많은우여곡절과비하인드스토리가있었다.예를들면노무현대통령의시그니처중하나라고할수있는'검사와의대화'에이어,나이스시스템도입을놓고'교사와의대화'가,조흥은행매각문제를두고대통령주재관련토론회가열릴뻔하기도했다.모두청와대참모들의만류로성사되지않았지만,문제해결방법으로대화·소통·타협을가장우선했던노무현스타일이돋보이는일화다.
하지만노무현대통령이라고모든비전과결정에확신을가졌던것은아니다.2003년8월의어느일요일,이정우교수는대통령과저녁식사자리를가졌다.반년동안정책실장업무를해보니어떠냐는대통령의물음에“처음에는막막했지만이대로가면괜찮겠고,과거여러정부보다잘할것같다”고대답했다.식사를마친후노무현대통령은문밖까지배웅해주면서이렇게덧붙였다.“일요일에쉬는데나오라고해서미안합니다.정책쪽은꽉장악해서잘해주십시오.”이때이정우교수는개혁에대한노대통령의강한의지와열망을느낌과동시에처음가는길에대한일말의불안을확인할수있었다.한국가의수장으로서감내해야했던고뇌를엿볼수있는대목이다.(418쪽)
이정우교수는참여정부가사면초가,고립무원의상황에서힘겹게싸웠다고기술한다.'비전이없다,개혁후퇴다,경포대(경제를포기한대통령),왼쪽깜빡이넣고우회전한다'등원색적인비난에시달리는와중에도대통령노무현과청와대참모들은궁극적으로개혁정부를완성하기위해최선을다했다.그들의고투를기록한이정우교수의회고는그런의미에서'노무현시대의징비록'이라할만하다.참여정부가시도했던정책들은그것이공이든과든오늘날전방위적으로악화일로를걷고있는우리사회에묵직한메시지를선사한다.

소박한여유와유머가함께했던청와대의일상

노무현과함께한이정우교수의1000일이진중하고비장한나날로만가득했던것은아니다.익히알려진것처럼노무현대통령은소탈하고유머와장난기가많았다.이정우교수또한노무현대통령이시골할머니들의그것처럼꾸밈없는화법을좋아했고주위에는항상웃음꽃이피었으며같이있으면마음이편하고즐거운사람이었다고소개한다.하지만재치와여유와인간미가넘치는노무현스타일은그의참모들덕분에더욱빛을발했는지도모르겠다.이정우교수는독자들을청와대의소소한일상속으로,노무현대통령과참모들사이에있었던유쾌한티키타카의현장으로안내한다.
2003년9월4일,노대통령의눈에다래끼가났다.그는수석회의에서“세종대왕은눈병이자주났다는데나도세종대왕처럼되려는가봐요”라며농담을했다.나종일안보실장이다래끼에는눈썹을두세개뽑고데운수건으로찜질하는게특효라일러주었더니실제로노대통령이눈썹을뽑았다고한다.(323쪽)또한번은청와대비서실업무연계회의자리에서조윤제보좌관이“제임무가무엇인지대통령이좀말씀해주세요”라며엉뚱한질문을했다.다른이라면1년이상일하고도이런질문을던지는참모에게화를낼텐데노대통령은그러지않고오히려“좋은문제제기”라며설명을이어갔다.이처럼노무현대통령은상대방의이견도귀담아듣는태도를항상견지했다고한다.(421쪽)
2004년11월,남미를방문한노무현대통령은그곳에서브라질의룰라대통령을만났다.당시한국언론들은룰라대통령에대해칭찬일색이었고비교대상이었던노대통령의기분은그리좋지못했다.그런데룰라대통령을직접만난후그에게큰호감을가지게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