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왜 돼지가 행복해야 할까?”
국내 동물복지 축산의 선구 윤진현 교수 첫 저작!
농장동물의 좋은 삶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부터 방법까지 다룬 독보적 안내서
최초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고발하며 현대 축산 시스템에 경종을 울린 동물복지의 고전, 루스 해리슨의 《동물 기계》 이후 60년이 흘렀다. 현재 한국의 동물복지 축산은 어디쯤에 와 있을까? 최근 이슈가 된 슈퍼 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 축산물 유해 물질 잔류, 가축 전염성 질병 확산의 문제를 생각하면 현대식 축산 시스템에 대한 60년 전 루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사이 인간의 육식 문화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동물의 권리 향상이 진척되면서 비육식 담론 또한 확산되었다. “돼지의 복지를 위한다면서 돼지를 애지중지 키워 잡아먹는 건 괜찮고?”(12쪽)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듯, 육식의 윤리성이 시험받는 시대에 농장동물의 삶과 관행 축산 시스템의 개선 논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 책은 국내에 동물복지 논의가 전무하던 시절부터, 전 세계를 돌며 동물복지 축산을 연구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농장 운영 방안을 고민해 온 윤진현 교수의 첫 저작이다. 따라서 주로 국내 연구 부족을 이유로 유럽의 사례를 근거로 삼는 타 도서들과 다르게 한국의 기후적 특이성, 육류 시장의 경향, 소비자의 윤리의식 등을 고려한 논의가 가능하기에 독보적이다. 또한 동물복지를 관념적으로 논하기보단 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연구자로서 데이터를 통해 현실적인 농장 운영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쉽게 말해 《돼지 복지》는 한국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이론과 실전을 총망라한 단 한 권의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국내 약 60%의 양돈 농가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 데 반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은 약 0.3%에 그친다고 한다. 정부 지원 및 관리 정보의 부족, 수익 창출의 어려움 등이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농장동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지만 어려움에 봉착한 국내 축산업 관계자와 정책 입안자에게 단비 같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열악한 동물농장의 실태를 마주하고 동물복지 축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순간부터 핀란드를 비롯한 동물복지 선진국에서 연구한 경험들, 한국 실정에 맞는 고유한 축산 시스템을 고민하는 현재까지를 총 10장에 걸쳐 하나의 여정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축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차근차근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그 몰입감도 상당하다. 앞서 말했듯 공장식 축산의 여러 부작용이 대두되고, 이에 발맞춰 항생제 투약, 돼지의 거세 및 꼬리 자르기를 금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등 축산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앞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관해 고민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할 교양서이다.
“이렇게 먹어도 괜찮은 걸까?”
인간, 동물, 자연을 병들게 하는 현대식 축산 시스템
지금 우리가 동물복지 축산을 말해야 하는 이유
“항생제 내성 전염병은 코로나19 이후 다음 팬데믹을 불러올 것이다(2020년 11월 20일 유엔식량농업기구 보고서)”(220쪽). WHO는 2019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위험 중 하나로 ‘항생제 내성균’을 꼽았고, 2050년부터 이로 인한 사망률이 암, 홍역, 교통사고를 넘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슈퍼 박테리아’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항생제 내성균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가축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먹이 사슬이다. 현대 축산 시스템에 만연한 항생제 오남용이 가축의 내성균 감염을 촉진시키고, 축산물을 유통, 조리, 섭취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전염된다. 곧이어 지역사회에 확산하며 전염병이 만연해진다. 이처럼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대표되는 현대식 축산 시스템의 부작용은 동물을 넘어 인간과 자연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를 병들게 하는 ‘공장식 축산’을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현대사회의 육류 소비량을 충족하려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좁은 케이지에 갇혀 평생 알 낳기를 반복하는 암탉과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생을 마감하는 수평아리, 겨우 앉았다 일어서기만 가능한 분만틀에 갇혀 출산과 포유를 반복하다 폐사하는 어미 돼지와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거세를 당하고 꼬리가 잘리는 새끼 돼지들. 이 같은 농장동물의 현실은 그동안 다수의 언론과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육류 소비 시장과 축산업계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의 양돈장을 방문하고 농장동물의 열악한 삶을 목격하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좁은 분만틀에 갇혀 비명을 내지르는 어미 돼지, 거세 후 피를 흘리며 걸어 다니는 새끼 돼지, 온몸이 분뇨로 뒤범벅된 채 기침을 반복하는 돼지들을 보고 저자는 “이런 곳에서 몇 달씩 갇혀 사는 돼지들은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을까”(37쪽)라며 동물의 고통에 깊게 공감한다. 그리고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길을 모색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동물복지에 관한 연구는커녕 집약적 생산 시스템에 관한 성찰도 없었다. 저자는 한국을 떠나 동물복지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핀란드로 향한다. 그곳에서 동물복지형 농장을 직접 경험하고, 뛰어난 연구자들을 동료 삼아 동물, 인간, 자연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농장을 고민한다. “동물복지가 무슨 쓰임새가 있겠냐며 우려와 의심을 쏟아”(45쪽) 내던 한국의 동료들, “돼지 키워봤어요?”(83쪽)라며 세상물정 모르는 이 취급을 하던 축산 관계자들, “돼지를 위한다면서 잡아먹는 건 괜찮고?”(12쪽)라 묻는 회의적인 사람을 마주하는 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10여 년의 꾸준한 연구를 통해 한국 실정에 꼭 맞는, 실현 가능한 동물복지 축산의 매뉴얼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이 책의 머리말 “왜 돼지가 행복해야 할까?”는 편리해서 외면해 온 동물농장의 관행과 이제는 ‘고기’가 익숙한 우리 식탁에 던지는 낯선 질문이다. 거세, 꼬리 자르기, 항생제 과다 투약, 거친 핸들링 등 농장동물이 받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결국 가축의 생산력을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또다시 앞서 말한 통제적 시스템을 이용하게 된다. 이것이 관행 농장의 악순환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작용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돼지의 행복과 인간, 자연의 행복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의 고통과 공장식 축산의 문제에는 공감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있던 소비자들, 혹은 농장동물의 삶을 개선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축산업 관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지침서로 자리할 것이다.
동물이 행복한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세 곳의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그 대안을 탐구하다
동물복지 농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어린 시절 동화책이나 영화를 통해 접했던 목가적인 동물농장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처럼 평화로운 시골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육류 소비량을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실적인 동물복지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총 세 곳의 동물복지형 농장을 방문한 경험을 돌아본다.
첫 번째는 핀란드에서 동물복지를 연구할 때 방문한 양돈장, ‘규따야 농장’이다. 이곳에서 목격한 돼지들의 편안한 표정과 관리자의 마음가짐은 저자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비좁은 케이지에 가두지 않아도 새끼가 젖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자리에 알아서 눕는 어미 돼지들의 행동과, 구획을 나누지 않아도 알아서 잠자리와 화장실을 구분하는 영특한 돼지의 본능은 그동안 한국에서 배웠던 돼지의 습성은 아니었다. 저자가 막 출산을 마쳐 공격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돼지에게 접근하는 관리자 키르시를 말리자, 그녀는 자신에게 코를 비비대는 돼지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All sows are good mothers(모든 어미 돼지는 좋은 엄마야).” 이때의 경험을 통해 저자는 동물의 본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믿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을 토대로 저자는 폐업 위기에 놓인 핀란드의 ‘올릭깔라 농장’을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올릭깔라 농장 또한 돼지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농장을 운영했지만, 그보다 뛰어났던 건 SNS 홍보를 통해 소비자를 확충한 일이었다. 올릭깔라의 관리자들은 돼지들의 행복한 표정과 윤리적인 축산물 생산 과정을 전면적으로 SNS에 공개했고, 3배 이상 비싼 고깃값을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불하도록 만들었다. 국내 농가들이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을 기피하는 첫 번째 이유가 소비 시장 확충의 어려움임을 고려하면, 올릭깔라 농장의 예시는 참고가 될 만하다.
마지막은 국내 1호 양돈 복지 농장, ‘더불어 행복한 농장’이다. 국내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양돈장이 0.3%이고 이중 대기업 계열 농장을 제외한 개인 사업자가 단 3곳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만하다. 인터넷을 통해 유럽의 연구를 접하고, 직접 실험해 보고, 축산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농장주의 모습과 그 시행착오는 앞으로 국내에서 동물복지형 농장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많은 농장주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물론 모범적인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과 비교한다면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동물의 행복을 최대한 고려하며 설계한 농장의 설비와 시스템은 그 자체로 뛰어난 인사이트를 준다. 이곳에서 저자는 멀리서부터 미소를 지으며 사람에게 다가오는 어미 돼지와 폭염의 날씨에도 기쁜 인사를 건네는 관리자들을 보며 “동물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고 간다는 생각”(170쪽)을 떠올린다.
동물의 입장에서 행복을 측정하는 법
생산자, 소비자, 제도의 3박자가 중요하다
이쯤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동물의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저자는 동물복지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보다 동물의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과 이를 향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농장동물처럼 먹이 사슬의 하위층에 속하는 동물들은 포식자에게 스트레스의 징후를 숨기려는 습성이 있기에 이들의 행복과 고통을 측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따라서 과거에는 주로 적절한 시설과 환경의 제공 여부를 통해 동물의 복지 수준을 평가했다. 사료 및 음수 급이기의 개수, 마릿수당 사육 면적, 행동 풍부화를 위한 물질 제공 여부 등을 측정하는 것이다. 평가자 입장에서는 특별한 훈련 없이도 빠르고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며,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아 객관적 평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 방식을 따르려면 농장에서는 시설 투자를 위한 비용이 발생하고, 동물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비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생산자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기분, 감정,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동물 기반 평가 방식’은 주로 동물의 행동 관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에 관리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또한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부정적 경험을 최소화하는 ‘복지 조율’보다 긍정적 경험을 최대화하는 ‘복지 향상’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리자의 적절한 지식을 바탕으로 깔짚이나 장난감 같은 행동 풍부화 물질을 제공하고 동종의 동료들과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는 농장동물을 대면하는 관리자가 갖춰야 할 기본 지식부터, 동물의 복지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사진과 데이터를 활용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농장의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첫 단추인 관리자의 자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에 발맞춰 소비자와 제도의 뒷받침도 중요하다. 먼저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치를 알고, 이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소비자 의식이 필요하다. 책에 따르면 2021년 134개소의 양돈 농가를 조사했을 때, 약 60%의 농가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는 의향이 있다고 답한 데 반해, 실제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양돈장은 0.3%에 그쳤다. 이들에게 전환 어려움의 이유를 묻자 ‘초기 비용 부담’이 75.3%로, ‘수익률 우려’가 49.4%로, ‘판매처 확보 어려움’이 32.1%로 나타났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가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을 막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실제로 동물복지형 농장이 자리 잡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동물복지 축산물이 활발히 거래되는 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생산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의식 전환 역시 동물복지 축산에 한 걸음 다가가는 데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동물복지 인증제도 시스템의 적정성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증을 위한 평가 기준을 유럽 등 해외의 동물 복지 평가 지표를 인용해 적용하고 있다. 국내 연구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해당 기준을 따를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할뿐더러, 한국의 농가가 충족하기에 지나치게 높은 기준도 문제다. 따라서 한국 실정에 맞는 평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와 이를 위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저자는 ‘항목별 인증마크’ 부여의 방식을 제안한다. 현재는 모든 항목을 충족해야 인증마크를 받을 수 있는데, ‘건강 상태’, ‘관리 방법’ 등 일부 항목을 충족했을 때 부분 인증을 부여한다면 많은 농가에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인증제도는 0.3%의 농장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상황을 개선하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승태의 추천사가 언급하듯 생산자, 소비자, 제도가 발맞춰 걸어갈 길을 제안하는 ‘동물복지 조립 설명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이 비록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행복한 세계에 관한 완벽한 답이 아니더라도, “대안으로 향하는 길”을 논의하는 마중물이자 “건강한 고기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인간과 자연이 건강하게 관계 맺는 길을 발견”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농장동물의 좋은 삶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부터 방법까지 다룬 독보적 안내서
최초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고발하며 현대 축산 시스템에 경종을 울린 동물복지의 고전, 루스 해리슨의 《동물 기계》 이후 60년이 흘렀다. 현재 한국의 동물복지 축산은 어디쯤에 와 있을까? 최근 이슈가 된 슈퍼 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 축산물 유해 물질 잔류, 가축 전염성 질병 확산의 문제를 생각하면 현대식 축산 시스템에 대한 60년 전 루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사이 인간의 육식 문화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동물의 권리 향상이 진척되면서 비육식 담론 또한 확산되었다. “돼지의 복지를 위한다면서 돼지를 애지중지 키워 잡아먹는 건 괜찮고?”(12쪽)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듯, 육식의 윤리성이 시험받는 시대에 농장동물의 삶과 관행 축산 시스템의 개선 논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 책은 국내에 동물복지 논의가 전무하던 시절부터, 전 세계를 돌며 동물복지 축산을 연구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농장 운영 방안을 고민해 온 윤진현 교수의 첫 저작이다. 따라서 주로 국내 연구 부족을 이유로 유럽의 사례를 근거로 삼는 타 도서들과 다르게 한국의 기후적 특이성, 육류 시장의 경향, 소비자의 윤리의식 등을 고려한 논의가 가능하기에 독보적이다. 또한 동물복지를 관념적으로 논하기보단 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연구자로서 데이터를 통해 현실적인 농장 운영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쉽게 말해 《돼지 복지》는 한국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이론과 실전을 총망라한 단 한 권의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국내 약 60%의 양돈 농가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 데 반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은 약 0.3%에 그친다고 한다. 정부 지원 및 관리 정보의 부족, 수익 창출의 어려움 등이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농장동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지만 어려움에 봉착한 국내 축산업 관계자와 정책 입안자에게 단비 같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열악한 동물농장의 실태를 마주하고 동물복지 축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순간부터 핀란드를 비롯한 동물복지 선진국에서 연구한 경험들, 한국 실정에 맞는 고유한 축산 시스템을 고민하는 현재까지를 총 10장에 걸쳐 하나의 여정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축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차근차근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그 몰입감도 상당하다. 앞서 말했듯 공장식 축산의 여러 부작용이 대두되고, 이에 발맞춰 항생제 투약, 돼지의 거세 및 꼬리 자르기를 금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등 축산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앞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관해 고민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할 교양서이다.
“이렇게 먹어도 괜찮은 걸까?”
인간, 동물, 자연을 병들게 하는 현대식 축산 시스템
지금 우리가 동물복지 축산을 말해야 하는 이유
“항생제 내성 전염병은 코로나19 이후 다음 팬데믹을 불러올 것이다(2020년 11월 20일 유엔식량농업기구 보고서)”(220쪽). WHO는 2019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위험 중 하나로 ‘항생제 내성균’을 꼽았고, 2050년부터 이로 인한 사망률이 암, 홍역, 교통사고를 넘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슈퍼 박테리아’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항생제 내성균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가축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먹이 사슬이다. 현대 축산 시스템에 만연한 항생제 오남용이 가축의 내성균 감염을 촉진시키고, 축산물을 유통, 조리, 섭취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전염된다. 곧이어 지역사회에 확산하며 전염병이 만연해진다. 이처럼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대표되는 현대식 축산 시스템의 부작용은 동물을 넘어 인간과 자연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를 병들게 하는 ‘공장식 축산’을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현대사회의 육류 소비량을 충족하려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좁은 케이지에 갇혀 평생 알 낳기를 반복하는 암탉과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생을 마감하는 수평아리, 겨우 앉았다 일어서기만 가능한 분만틀에 갇혀 출산과 포유를 반복하다 폐사하는 어미 돼지와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거세를 당하고 꼬리가 잘리는 새끼 돼지들. 이 같은 농장동물의 현실은 그동안 다수의 언론과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육류 소비 시장과 축산업계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의 양돈장을 방문하고 농장동물의 열악한 삶을 목격하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좁은 분만틀에 갇혀 비명을 내지르는 어미 돼지, 거세 후 피를 흘리며 걸어 다니는 새끼 돼지, 온몸이 분뇨로 뒤범벅된 채 기침을 반복하는 돼지들을 보고 저자는 “이런 곳에서 몇 달씩 갇혀 사는 돼지들은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을까”(37쪽)라며 동물의 고통에 깊게 공감한다. 그리고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길을 모색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동물복지에 관한 연구는커녕 집약적 생산 시스템에 관한 성찰도 없었다. 저자는 한국을 떠나 동물복지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핀란드로 향한다. 그곳에서 동물복지형 농장을 직접 경험하고, 뛰어난 연구자들을 동료 삼아 동물, 인간, 자연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농장을 고민한다. “동물복지가 무슨 쓰임새가 있겠냐며 우려와 의심을 쏟아”(45쪽) 내던 한국의 동료들, “돼지 키워봤어요?”(83쪽)라며 세상물정 모르는 이 취급을 하던 축산 관계자들, “돼지를 위한다면서 잡아먹는 건 괜찮고?”(12쪽)라 묻는 회의적인 사람을 마주하는 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10여 년의 꾸준한 연구를 통해 한국 실정에 꼭 맞는, 실현 가능한 동물복지 축산의 매뉴얼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이 책의 머리말 “왜 돼지가 행복해야 할까?”는 편리해서 외면해 온 동물농장의 관행과 이제는 ‘고기’가 익숙한 우리 식탁에 던지는 낯선 질문이다. 거세, 꼬리 자르기, 항생제 과다 투약, 거친 핸들링 등 농장동물이 받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결국 가축의 생산력을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또다시 앞서 말한 통제적 시스템을 이용하게 된다. 이것이 관행 농장의 악순환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작용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돼지의 행복과 인간, 자연의 행복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의 고통과 공장식 축산의 문제에는 공감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있던 소비자들, 혹은 농장동물의 삶을 개선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축산업 관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지침서로 자리할 것이다.
동물이 행복한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세 곳의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그 대안을 탐구하다
동물복지 농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어린 시절 동화책이나 영화를 통해 접했던 목가적인 동물농장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처럼 평화로운 시골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육류 소비량을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실적인 동물복지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총 세 곳의 동물복지형 농장을 방문한 경험을 돌아본다.
첫 번째는 핀란드에서 동물복지를 연구할 때 방문한 양돈장, ‘규따야 농장’이다. 이곳에서 목격한 돼지들의 편안한 표정과 관리자의 마음가짐은 저자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비좁은 케이지에 가두지 않아도 새끼가 젖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자리에 알아서 눕는 어미 돼지들의 행동과, 구획을 나누지 않아도 알아서 잠자리와 화장실을 구분하는 영특한 돼지의 본능은 그동안 한국에서 배웠던 돼지의 습성은 아니었다. 저자가 막 출산을 마쳐 공격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돼지에게 접근하는 관리자 키르시를 말리자, 그녀는 자신에게 코를 비비대는 돼지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All sows are good mothers(모든 어미 돼지는 좋은 엄마야).” 이때의 경험을 통해 저자는 동물의 본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믿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을 토대로 저자는 폐업 위기에 놓인 핀란드의 ‘올릭깔라 농장’을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올릭깔라 농장 또한 돼지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농장을 운영했지만, 그보다 뛰어났던 건 SNS 홍보를 통해 소비자를 확충한 일이었다. 올릭깔라의 관리자들은 돼지들의 행복한 표정과 윤리적인 축산물 생산 과정을 전면적으로 SNS에 공개했고, 3배 이상 비싼 고깃값을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불하도록 만들었다. 국내 농가들이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을 기피하는 첫 번째 이유가 소비 시장 확충의 어려움임을 고려하면, 올릭깔라 농장의 예시는 참고가 될 만하다.
마지막은 국내 1호 양돈 복지 농장, ‘더불어 행복한 농장’이다. 국내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양돈장이 0.3%이고 이중 대기업 계열 농장을 제외한 개인 사업자가 단 3곳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만하다. 인터넷을 통해 유럽의 연구를 접하고, 직접 실험해 보고, 축산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농장주의 모습과 그 시행착오는 앞으로 국내에서 동물복지형 농장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많은 농장주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물론 모범적인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과 비교한다면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동물의 행복을 최대한 고려하며 설계한 농장의 설비와 시스템은 그 자체로 뛰어난 인사이트를 준다. 이곳에서 저자는 멀리서부터 미소를 지으며 사람에게 다가오는 어미 돼지와 폭염의 날씨에도 기쁜 인사를 건네는 관리자들을 보며 “동물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고 간다는 생각”(170쪽)을 떠올린다.
동물의 입장에서 행복을 측정하는 법
생산자, 소비자, 제도의 3박자가 중요하다
이쯤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동물의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저자는 동물복지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보다 동물의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과 이를 향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농장동물처럼 먹이 사슬의 하위층에 속하는 동물들은 포식자에게 스트레스의 징후를 숨기려는 습성이 있기에 이들의 행복과 고통을 측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따라서 과거에는 주로 적절한 시설과 환경의 제공 여부를 통해 동물의 복지 수준을 평가했다. 사료 및 음수 급이기의 개수, 마릿수당 사육 면적, 행동 풍부화를 위한 물질 제공 여부 등을 측정하는 것이다. 평가자 입장에서는 특별한 훈련 없이도 빠르고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며,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아 객관적 평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 방식을 따르려면 농장에서는 시설 투자를 위한 비용이 발생하고, 동물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비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생산자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기분, 감정,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동물 기반 평가 방식’은 주로 동물의 행동 관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에 관리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또한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부정적 경험을 최소화하는 ‘복지 조율’보다 긍정적 경험을 최대화하는 ‘복지 향상’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리자의 적절한 지식을 바탕으로 깔짚이나 장난감 같은 행동 풍부화 물질을 제공하고 동종의 동료들과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는 농장동물을 대면하는 관리자가 갖춰야 할 기본 지식부터, 동물의 복지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사진과 데이터를 활용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농장의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첫 단추인 관리자의 자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에 발맞춰 소비자와 제도의 뒷받침도 중요하다. 먼저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치를 알고, 이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소비자 의식이 필요하다. 책에 따르면 2021년 134개소의 양돈 농가를 조사했을 때, 약 60%의 농가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는 의향이 있다고 답한 데 반해, 실제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양돈장은 0.3%에 그쳤다. 이들에게 전환 어려움의 이유를 묻자 ‘초기 비용 부담’이 75.3%로, ‘수익률 우려’가 49.4%로, ‘판매처 확보 어려움’이 32.1%로 나타났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가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을 막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실제로 동물복지형 농장이 자리 잡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동물복지 축산물이 활발히 거래되는 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생산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의식 전환 역시 동물복지 축산에 한 걸음 다가가는 데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동물복지 인증제도 시스템의 적정성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증을 위한 평가 기준을 유럽 등 해외의 동물 복지 평가 지표를 인용해 적용하고 있다. 국내 연구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해당 기준을 따를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할뿐더러, 한국의 농가가 충족하기에 지나치게 높은 기준도 문제다. 따라서 한국 실정에 맞는 평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와 이를 위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저자는 ‘항목별 인증마크’ 부여의 방식을 제안한다. 현재는 모든 항목을 충족해야 인증마크를 받을 수 있는데, ‘건강 상태’, ‘관리 방법’ 등 일부 항목을 충족했을 때 부분 인증을 부여한다면 많은 농가에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인증제도는 0.3%의 농장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상황을 개선하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승태의 추천사가 언급하듯 생산자, 소비자, 제도가 발맞춰 걸어갈 길을 제안하는 ‘동물복지 조립 설명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이 비록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행복한 세계에 관한 완벽한 답이 아니더라도, “대안으로 향하는 길”을 논의하는 마중물이자 “건강한 고기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인간과 자연이 건강하게 관계 맺는 길을 발견”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돼지 복지 : 공장식 축산을 넘어, 한국식 동물복지 농장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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