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화가,화단의이단아,분리파의수장…19세기미술사의거장‘구스타프클림트’에겐수많은애칭이있다.하지만이것들이클림트의모든면모를설명하고있을까?해부학자이자의사인저자는클림트의이름앞에‘인간과과학에매혹된예술가’라는새로운수식어를덧붙이며,비밀스럽고색다른미술관탐험으로독자들을초대한다.
《클림트를해부하다》는화려한화풍과도발적인시도로전세계인의사랑을받은화가,구스타프클림트의작품에숨겨진생물학적도상,즉“클림트코드”를발견하는책으로인간의탄생부터성장,노화,죽음까지의이야기를과학과예술의흥미로운만남속에서풀어낸다.또한이책은‘인간의생로병사’를평생의테마로삼았던클림트가‘과학의시대’에인간의기원을추적하는발생학을접하고,또그것을그림에녹여냈던집요한과정을되짚어보는작업이기도하다.해부학자의눈으로〈키스〉에빼곡히그려진문양을해석한저자의연구는세계3대의학저널인《JAMA》에소개되었고,노벨화학상수상자를비롯한전세계석학들의찬사를받았다.《클림트를해부하다》는해당연구를근간으로‘클림트를사랑한해부학자’인저자가지금까지모아온귀중한연구성과를엮어낸첫책이다.
1부에서는클림트를비롯한당시의예술가들을과학에매료시킨시대·문화적배경을살피고2부에서는〈키스〉,〈다나에〉등클림트의작품속인간발달을상징하는도상들을본격적으로분석한다.3부에선프리다칼로,에곤실레,에드바르뭉크등클림트와마찬가지로과학에서예술의영감을얻었던화가들의작품을살펴본다.AI로복원된다수의컬러작품뿐만아니라,당대과학자들의연구스케치,과학전문서의삽화등이다수수록되어있어오래전인간탄생의비밀을추적하듯색다른미술관람이가능하다.
19세기전후빈에는무슨일이있었을까?
빈에서움튼작은씨앗,과학하는예술가들을낳다
“클림트는어떻게이런그림을그릴수있었을까?”(8쪽)라는저자의의문으로시작하는이책은클림트를비롯한걸출한예술가,지성인들이탄생했던1900년대전후오스트리아빈으로시간여행을떠난다.이들이활동했던19세기말에서20세기초의빈은합스부르크제국이몰락하고입헌국가가시작되던시기로,국가는쇠락하고있었지만역설적으로문화와학술의꽃은만개했다.말러와쇤베르크의음악,카프카와슈니츨러의문학,하이데거와비트겐슈타인의철학,프로이트의의학이단번에세상에쏟아졌던시기이기도하다.이책의1부는이러한시대·문화적토양에서클림트가‘인간’과‘과학’에매혹되고,이를평생의테마로삼게된계기를두가지관점에서제시한다.
첫째는‘빈모더니즘’을견인했던빈의살롱·카페문화다.당시빈에서는기성세대의정치나문화에실망한지식인들이살롱이나카페에모여들어예술,철학,정치,과학등경계없는지식을공유하고20세기로나아갈새로운문화를도모했다.이곳에서다양한학문이통합되며문화의‘빅뱅’을일으킬작은씨앗이마련되었다고할수있다.이시기클림트는자신이즐겨찾던살롱에서해부학자인에밀주커칸들을만났고,그의실습실에서‘예술인을위한해부학강의’를듣게된다.정자와난자의만남에서시작되는인간발생의신비와다윈의진화론은클림트에게강한인상을남겼고,그때부터클림트는자신의작품에해부학의코드를그려넣기시작한다.
둘째는현미경의발달로촉발된‘과학의시대’다.클림트뿐만아니라3부에서살펴볼에곤실레,프리다칼로,에드바르뭉크등의화가들역시자신의작품에생물학의요소를가득새겨넣었다.인간의임신과출산,노화에관한지식뿐만아니라유전과면역,세포분열등과학자못지않은생물학에관한깊은이해가그들의그림에서엿보인다.이책은생물학,발생학이론이진화해온과정을별도의부록으로구성해상세히설명하고있다.당시예술가들이과학적진실을접하며느꼈을신선한충격을함께경험해보고눈높이를맞춰가는과정이다.세포수준의이해와다윈의진화론,헤켈의‘생명의나무’등은인간에깊은관심을품은예술가들에게정확한표현의도구가되어주었다.과학은오래전부터예술의뮤즈였던셈이다.
그림에새긴발생학의암호,‘클림트코드’를파헤치다!
인간의탄생부터죽음까지를그려낸클림트의연작
르네상스시대에‘다빈치코드’가있었다면,19세기말빈에는‘클림트코드’가있었다.클림트는어린시절아버지와동생의죽음에영향을받아,평생‘인간의생로병사’라는주제에천착했다.주커칸들교수와의교류로쌓은높은생물학적이해를바탕으로,자신의그림에정자와난자,착상,임신,세포분열을상징하는요소를빼곡히새겨넣었다.의과학적관점에서분석한다면,〈키스〉에서시작해〈죽음과삶〉에이르는클림트의모든작품은인간이태어나죽음으로향해가는과정을발생학과진화론적관점에기반해그린‘연작시리즈’인셈이다.
이책의2부역시인간의발생과진화의순서에따라클림트의작품을해부한다.남녀가만나인간발생이시작되는태초의공간,자궁을묘사하는〈벌거벗은진실〉에서시작해,죽음이후생의순환을상징하는〈죽음과삶〉,그이후개체의진화를암시하는〈스토클레프리즈〉로마무리된다.이러한관점에서클림트의작품들을들여다보면,그치밀함과집요함속에서그의인간을향한애정과과학을향한갈망이생생히느껴진다.
2부의절정이라고할수있는〈키스〉를좀더자세히살펴보자.황금빛배경에서키스를나누며황홀경을경험하는남녀의모습은앞서말했듯정자와난자의만남,그이후수정과발달의과정을암시하고있다.남성의옷자락에는무채색의직사각형들이,여성의옷자락에는빨간색,보라색의원형과타원형의문양들이그려져있다.저자는클림트가세로의직사각형을남성의성기로,원형과타원형의문양을난자와세포를상징하는데사용했다는점에기반해,〈키스〉가표현하는인간발생의과정을설득력있게펼쳐보인다.과학자들은1670년대정자의존재를발견하고150년이흐른뒤에야난자의존재를깨닫는다.지금은정자와난자가결합해태아가발생한다는사실이상식이지만,당시엔인간의생식세포에이미완성된축소인간이존재한다는‘전성설’을비롯해다양한가설이존재했다.그리고마침내정자와난자가결합함으로써인간이발생된다는사실이1900년대를목전에두고증명되었으니,이는당대뜨거웠던과학적발견을예술로녹여낸클림트의역작이라할수있다.또한2부에서는독자의이해를돕기위해클림트의여러작품을비롯해,AI로복원한컬러그림들,당대과학자들의연구스케치,과학전문서의삽화등을다수수록했다.이책을읽는것만으로도클림트의작품세계와생물학,발생학에관한지식을모두섭렵할수있다.
에곤실레,프리다칼로,에드바르뭉크…
과학을뮤즈로삼아정진했던세기의예술가들을만나다
‘클림트를사랑한해부학자’로활동해온저자가가장많이받은질문은“발생학,진화론,세포에대한이해를기반으로작품을그린화가가또있는가?”(231쪽)였다.이러한질문에서시작해저자의연구는클림트와동시대에활동했던예술가들의작품세계로뻗어나간다.3부에서는에드바르뭉크,에곤실레,프리다칼로등총8인의화가가당대의과학적발견들을어떻게자기만의방식으로작품에표현했는지살펴본다.
오딜롱르동과가브리엘폰막스는다윈과헤켈의이론을기반으로인간기원을추적한다.르동은〈기원〉이라는작품에서원시생물체형태의인류조상을상상했고,폰막스는헤켈이주장했던가상의유인원을재현했다.에곤실레는〈엎드린소녀〉등의작품에서클림트와마찬가지로인간의수정,발달,탄생까지의과정을묘사했고특히‘여성의몸’을깊이있게탐구했다.프리다칼로는유전에대한깊은이해를바탕으로〈나의조부모,부모,그리고나〉외에인상적인작품을남기며,기존에잘언급되지않았던여성의출산과돌봄에관한내용을작품에녹여내기도했다.
눈부신과학의발전에힘입어,몇몇예술가들은인간으로서의자신감을작품속에내비치기도했다.디에고리베라는당시대두되었던미생물,면역학의내용을작품속에묘사하며과학의발달에따라생물의발생과진화를인간이조절할수있다고믿었다.결국이러한자신감은우수한인류를육성하려는우생학의근거가되기도했다.하지만이러한기대에도불구하고,3부마지막을장식하는요제프볼프의작품들은인간이범접할수없는세계의질서와자연의힘을깨닫게한다.들꿩의깃털이겨울철에는하얗게,여름철에는까맣게소리없이변화하는것에서자연이지닌경이로움과파괴력을느낄수있다.볼프는결국자연이생물의운명을결정짓는다는다윈의주장을작품에명확히드러낸것이다.
이처럼이책은새로운문화가폭발적으로생산되고놀라운과학적발견이이어지며,인류의삶이혁신적으로개선되리라믿었던달뜬시대적분위기속에서화려하게탄생한예술작품들을조망한다.하지만동시에인간이쉽게손댈수없는자연과세계의질서를다시한번깨닫게함으로써한생명으로서겸허히세계와관계맺는방식을고민하게한다.이책을끝까지읽은후우리에게떠오르는질문이클림트가평생을고민했던바로그주제가아닐까?과학과예술의치열하고아름다운통섭을경험하고싶은독자에게일독을권한다.